[eBook]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
사사키 후미오 지음, 김윤경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달 전에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다. 꽤 값이 나가는 모델이었다. 폼 나는 자전거를 소유하게 되자 왠지 그에 걸맞은 의상과 가방, 헬멧, 장갑, 거치대 등도 모두 갖추어야 할 것만 같았다. 결국 그 모든 걸 장만하고서도 더 필요한것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그 멋진 자전거가 요즘은 거실에 붙박이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거다.

 

아마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갖게 된 물건이 많을 것이다. 책을 자꾸 사다 보니 책장이 필요해지고, 자기 전에 책을 보려니 휴대용 북 라이트가 있어야 편할 것 같고, 발췌하거나 메모할 일이 생기다보니 독서대도 필요했다. 어디 그뿐인가. 커피 원두가 생겨서 커피메이커를 사고, 머그를 사고, 컵받침도 사고.(원두 분쇄기도 살 뻔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안 버리고 모아둔 나무젓가락이나 플라스틱 포크와 숟가락, 각종 증정품들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청소할 때마다 먼지를 털어내고 닦아내야 할 물건이 많아서 번거롭다. 물건이 점점 늘어나니까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다. 난 너무 많은 물건을 가진 탓에 시간과 체력, 정신력 게다가 경제적인 소모가 컸다. 때로는 분에 넘칠 정도로 많이 가졌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그렇다고 비싼 물건을 잔뜩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가진 물건의 태반을 그저 소유하는 데만도 적지 않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언젠가필요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거의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아까워서처분하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큰 불편 없이, 신경 안 쓰고 살았다면 괜찮았을 테지만, 나는 많이 가졌다’, ‘홀가분해지고 싶다’,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거나 기분전환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다만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하고 읽는 것은 좋지 않다. 거의 모든 자기계발서류의 책이 그렇듯이,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이 본인의 실천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 결과 또한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점진적인 변화를 다짐하면서 꾸준히 실천하시길. 의욕이 과하면 금세 지치기 마련이다.

 

군살을 빼면 몸이 가벼워지듯, 군물건(?!)들을 정리하고 한껏 가벼워진 삶을 즐기고 싶다. 그 날을 상상하며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두 가지- 물건을 버리면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리고 물건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오직 '지금'에 집중하는 단순한 삶을 살게 되면, 올지 안 올지도 모를 ‘언젠가를 위해 혹은 과거의 어느 순간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나도 불투명한 언젠가를 모두 걷어내고 오롯이 지금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는 미니멀리스트, 즉 최소주의자의 삶은 단순히 방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다든가, 청소하기 편하다는 표면적인 장점뿐만 아니라 훨씬 더 깊은 본질에 그 가치가 있다. 바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는 것, 누구나 추구해 마지않는 행복을 되짚어보는 일이다.
(전자책, 46/227)

나는 물건을 버릴 때마다 몇 번씩, 지금 필요한지 아닌지 스스로 물었다. `지금`을 계속해서 묻고 `언젠가`를 없애가면서 간신히 `지금`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
마찬가지로 `예전에` 필요했던 물건도 이제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지금 필요한지 어떤지를 계속 질문한 결과, 과거에 중요하게 여겼던 물건, 옛날에는 어떻게든 갖고 싶었던 물건도 지금은 없다. 예전에 나 자신의 일부라고 믿었던 물건도 없다.
(전자책, 208/227)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16-01-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유를 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힘들게 아날로그적으로 얻을 필요도 있는 것 같구요 :-)

cobomi 2016-01-20 23: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아날로그적으로 얻는 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ㅜㅜ

초딩 2016-01-21 00:02   좋아요 0 | URL
수 수공업적으로요 ㅎㅎㅎ 음 만들어 쓰는 것에 가깝게 :-)

나이니 2016-01-20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꿈꾸며 오늘도 인터넷 쇼핑을 하게 되는 일인입니다^^ 깊이 공감하게 되네요^^

cobomi 2016-01-20 23:40   좋아요 0 | URL
인터넷 쇼핑만 안해도 꽤 많은 물건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별이랑 2016-01-2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되네요. 알면서도 안돼는게 참...
저는 오늘도 새로운 물건을 택배기사님 도움을 받아 들여놨답니다. 에구.

cobomi 2016-01-20 23:40   좋아요 0 | URL
역시 인터넷 쇼핑이 중독성 있죠?ㅎㅎ

머슴둘레 2016-01-2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민들은 농촌 삶은 너무도 모릅니다. TV를 보며 필요를 넘는 물건을 탐욕합니다. 돈이 흔해서일테지요. 자기 노동으로 수입을 얻지 않았거나 자기 노력에 비해 노동력의 댓가를 지나치게 많이 받아서일테지요. 농촌에서는 농기구 살 돈이 없어서 남의 땅에 얹혀서 맨손으로 농사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문에 속듯이 TV에 TV광고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돈에 속으면 제국주의자에게 속는 것입니다. 돈에 대해서 모른다면 역사에 대해서 무지한 것입니다. 진실된 친구를 찾으려면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은 곧 생존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돈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십시오. 사회의 역사에 대해서 연구하십시오.

cobomi 2016-01-20 23:50   좋아요 0 | URL
도시 사람들이 농촌 사람들의 삶을 잘 모르는 건 맞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로 농촌 사람들도 도시의 삶을 잘 모르는 건 아닐까요? 농촌에서 맨손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도시에도 하루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 게 반드시 돈이 흔해서도, 노동에 비해 지나친 대가를 받고 있어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말에 더 공감하는데요. 물건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기 때문에, 그리고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서 필요 이상의 물건을 갖게 된다고요.
생각 없이 속으면 안된다는 님의 말씀은 잘 새겨듣겠습니다.

비로그인 2016-02-1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하고 나머지는 버리든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지혜롭지요. 군살이 건강에 좋지 않듯이 불필요한 소유물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겠지요. 물건들을 정리하신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

Grace 2016-02-2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석 하나만 놓인 빈 방을 늘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못하더라구요.ㅎㅎ
정말 우린 가진게 너무 많아요.^^

비로그인 2016-03-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cobomi님 좋은 하루되세요.

애즈라엘 2016-03-1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건이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것이 아니다...정말 확~꼳히는 문구네요^^
 
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 / 사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5년 대한민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금수저, 흙수저로 대표되는 수저계급론이 아닌가 싶다. 수저계급론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며, 한 번 정해진 계급은 어떠한 노오력으로도 바꾸기가 힘들다는 것을 내포한다. 사람들은 수저계급론을 자조적이고 체념하듯이 내뱉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책의 제목처럼 능력주의는 허구라는 걸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로 드러낸 것은 아닐까.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은 강력하다. 사람들은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손쉽게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곤 한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이나 각종 고시를 비롯한 시험 성적, 학력, 취업, 연봉 등에서부터 심지어 외모나 부정부패까지도 능력으로 취급할 정도다.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져가고 누리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이 개인의 능력에 좌우되는 것인가?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는 게 당연한가?

 

책의 두 저자는 능력주의 신화를 요모조모 분석하는데, 핵심은 능력적 요인과 비능력적 요인 중 전자는 과대평가된 반면 후자는 과소평가되거나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허구'라는 것. 구체적으로는 학교와 교육은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2)이며,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아는가가 중요하다’(3)는 점, 상속은 능력마저도 이겨버리는 최고의 비능력적 메커니즘’(4)이고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 요인들’(5)이 있으며, ‘능력을 가졌다고 모두가 똑같이 성공하는 건 아니’(6)라는 것, 그리고 더 이상 자영업에서 자수성가형 인물은 나올 수 없’(7)고 차별은 능력주의를 왜곡시키는 첫 단추’(8)라고 말한다.(놀랍게도 책의 목차만 차근히 읽어도 책 내용을 70% 이상 알 수 있다.)

 

저자들의 분석과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그 결론이 좀 더 공정한 사회로 만들려면 () 반드시 정책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력자들의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39)는 것이라니 온몸에 힘이 빠진다. 너무나도 교과서 같은 대답에 깜짝 놀랄 정도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건가.

 

생각해볼 것은, 저자들이 능력주의는 허구다라고 말하면서도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 능력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자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분배가 이뤄지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평등한 방법일까? 저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시대적, 장소적 배경에 따라 선호되는 능력이 다르다는 점에서 능력주의 또한 운이 아닌가. 그리고 능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물론 저자들은 개인이 어찌 손쓸 수 없는요소들을 최대한 걷어내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공평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16-01-08 1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능력주의`는 그저 `기득권의 대 물림`, `비열한 경쟁`을 좋게 포장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ㅠㅠ
변혁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기득권은 그변혁을 당연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고...
그저 능력주의는 그들에 의한 포장지다 정도로 생각하는 것으로 위안해봅니다 ㅠㅠ

cobomi 2016-01-08 14:03   좋아요 2 | URL
공감이 되네요. 문제는 기득권이 없는 사람들도 능력주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데 있는것 같아요.

마페 2016-01-1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고율의 상속세, 1%대의 재산세, 뭐 이런 제도적 뒷 받침이 없는 능력주의는 지금 자본주의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것 같아요.
능력주의가 자본주의 엔진이었는데 이제는 무조건 계속 사용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아요.

cobomi 2016-01-13 02: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상속과 능력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거였죠. 그런 점에서 능력주의가 허구라고요. 능력주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마페님 말씀처럼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머슴둘레 2016-01-12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능력주의가 허구라는 것은 개인주의(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분을 후천적으로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금수저-흙수저론의 비극은 빈부격차가 아니라 대물림된다는 것에 그 현실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대물림되는 특혜와 권좌를 바꿀 수 없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노동자들이 자기 계급의 당을 중심으로 단결투쟁한다면 특혜와 권좌는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반쪽짜리 세계사 역사관에 파묻혀 자기 자신과 자기 계급의 역사를 창조하는, 노동계급의 위대한 역할을 부인한다면 대물림되는 흙수저가 되고 맙니다. 단결투쟁!!

cobomi 2016-01-13 02:56   좋아요 0 | URL
수저계급론의 비극이 `대물림`에 있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계급이란 게 꼭 `자본가-노동자`로 나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보다는 오히려 `권력`을 중심으로 계급이 설정되는 게 아닐까요. 성별, 지역, 성적 취향, 국적 등도 계급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차별이 대물림되니 말입니다.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
한지희 지음 / 경상국립대학교출판부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시사IN> 제429호에 실린 '장정일의 독서일기'(68~69쪽)에 소개된 책이다. 장정일의 독후감을 읽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읽었다. '소녀'의 의미와 역사를 살피고, '소녀'라는 이름에 부여된 이중적 이미지를 대중문화를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대략 3분의 2지점까지는 나름 재미있게 읽었음을 밝혀둔다.

 

책 전체를 읽는 것도 물론 나쁘지는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앞서 말한 <시사IN> 제429호에 실린 장정일의 글을 읽는 것이 책 내용을 더욱 선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내 이해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굳이 비유를 들자면, 어려운 내용의 고전을 직접 읽는 것보다 요약·해설된 글을 읽는 것이 내용을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니 장정일의 글을 먼저 읽고, 책이 궁금하다면 그때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책의 주요 내용을 장정일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남성들의 가부장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생애주기 가운데 문턱에 해당하는 소녀 시절을 육체와 정신 양면에서 봉쇄해왔다. 소녀들은 오랫동안 성적 욕망은 물론 자신의 육체마저 의식하지 못하는 중성이나 무성애자로 훈육되어왔는데, 소녀들이 중성이거나 무성애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순진열렬함이 한 남자만을 위한 희귀재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걸그룹이 활개를 치는 지금은 양상이 더 나쁘게 변했다. 걸그룹을 모범 삼은 소녀들은 자신의 육체와 매너를 섹시하게 가꾸면서, 여전히 중성이나 무성애자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이런 이중적인 구속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켜 한층 더 다루기 쉬운 여성으로 만들며 여성 자신을 자학적이고 분열적 주체로 만든다. 걸그룹의 막강한 영향력은 소녀들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일종의 육체 자본"으로 내면화시키고, 걸그룹에 심취한 삼촌(오빠)의 존재는 소녀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성적 매력을 이용하라고 가르쳐준다. 프리가 하우그와 그 동료들이 함께 쓴 <마돈나의 이중적 의미>(인간사랑, 1997)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화 과정은 그들의 육체와 매너가 남성이 만들어놓은 주형의 주형물이 되는 것으로 완료된다."(<시사IN> 제429호, 6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기적 섹스 -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은하선 지음 / 동녘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쎄다. 그저 재미있게 읽었어도 그만인데, 읽는 내내 생각이 아주 많았다. 글쓴이의 생각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꾸만 내 처지와 경험이 떠올랐다. ‘아 맞아, 그랬었지, 그렇지,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런가등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나의 성()역사(?)와 더불어 나라는 인간 자체에 대해, 여성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늘 안고 있는 고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숨이 막혔다. 정말 쉽고 재미있는 글인데 간단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 여성이 약자인 증거는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일상적으로 문제에 부딪히고 고민하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외모, 음주, 흡연에서부터 운전, 가사, 취업, 직장생활, 옷차림, 결혼, 육아, 시댁, 말투, 섹스, 연애경험, 소비습관에 이르기까지 스스로가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할 주제들은 널렸다. 너무 많아서 탈이다. 반면에 남자들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에 대해 일상적인 고민을 할까?

 

성은 곧 권력이라고 했나. 책 이곳저곳에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당연한 듯이 권력을 휘두르는 그놈들을 보면서 분개하다가 문득 그년들의 권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내게 식은땀 폭탄을 가져오는 기억 중 하나는 나의 섹스에 대해서 가까운 친구들이 날 비난했던 일이다. 그녀들은 내 욕구나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나를 탓하고 몰아붙이고 자제력 없는 애로 취급했다. 친구를 잃을까봐 두려웠던 나는 어이없게도 그녀들에게 사과를 했다. 내 사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지금까지도 나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오히려 그 친구들에게 사과했던 나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다. 그녀들은 내 섹스 상대의 애인도 아니었고 가족도 아니었다(애인이나 가족이었다고 해도 그게 어쨌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들은 나를 이해할 필요도 없는 거였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들의 이해를 바라고 섹스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들의 이해를 구걸했고 친구라는 집단에서 내쳐지지 않기를 바랐다. 기껏해야 10년도 못 갈 친구사이였건만 그때는 뭐가 그렇게 두려웠는지.

 

그런 일이 있은 후 내가 깨달은 바는, 여성이 남성보다 여성의 연애나 섹스에 대해 더 억압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였다. 여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논리는 주로 도덕윤리의 탈을 쓰고 있는 것 같다. 그 도덕윤리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다수의 여성이 그렇겠지만, 그러한 남성적 시선에서 나조차도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자기 힘으로 생각하지 않고 마구 휘둘러대는 남성적 시선혹은 올바름이 무서울 뿐이다.

 

그년들이 휘두르는 권력 못지않게 깊이 생각했던 건 미성년에 대한 성인의 권력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성년자들이 미숙하다고 여기고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는데, 성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보호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기본적으로 아주 어린 사람의 경우엔 힘도 약할 것이고, 자기 의사를 솔직히 밝히기 힘든 상황도 많으니까. 하지만 어리다고 해서 성감수성과 성감대, 성욕, 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도 성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건가? 이건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한 주제일 수 있다. 왜냐하면 미성년자에겐 주어진 권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투표권, 일할 수 있는 권리, 결혼할 수 있는 권리, 학교에 다니거나 다니지 않을 권리, 숙박업소에 드나들 권리, 야동 사이트를 이용할 권리, 성용품점을 이용할 권리 등이 없거나 늦게 주어지거나 제약이 따른다. 그러니 자신의 성생활로 인해 발생할 일들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기가 힘들고 언제나 어른들이 개입하도록 손 놓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을 결정할 다른 권리들은 하나도 없는데 오직 성적인 결정권만 부여하자고? 저자의 말처럼 갓 스물이 된 사람과 열아홉인 사람은 무슨 차이가 있기에? 스무 살은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데 열아홉 살은 안 되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성문제에 있어 연령 기준을 대체 몇 세로 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사람을 연령으로 나누어서 다루는 것 자체가 크게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닌가?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적인 문제다. 그저 법적인 제한일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법이 청소년에게 여러 사회적 권리들을 제한하더라도 문화적 혹은 개인적으로는 자유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법이 청소년의 숙박업소 출입을 금지하더라도 부모는 아이의 성생활을 위해 방 한 칸을 내어줄 수 있다. 피임법을 가르쳐줄 수 있고, 여러 섹스토이를 즐기도록 해줄 수도 있다. 아이들과 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성생활을 지켜줄수록 성폭력 등의 청소년성범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물론 이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성적 취향이나 정체성을 찾는 데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가 성폭력이고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금지하고 억압하는 것보다는 드러내놓고 얘기하는 게 그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적절해 보인다.

 

문제는 나의 이런 생각조차 성인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일 뿐이라는 점이다. 과연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지 궁금하다. 나도 그 시기를 거쳐 오긴 했지만 청소년이라고 다 같은 과정을 겪고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테니,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성을 주제로 그놈이나 그년 그리고 모두,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어쩌면 그놈들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낮추고, 얼토당토않은 말과 욕설을 내뱉는 식의 권력 휘두르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내 예상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 자체(그런 열린 분위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게 진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lbatros 2016-01-0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cobomi 2016-01-04 11:51   좋아요 0 | URL
한 번쯤은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아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은 저자가 지방대 대학원생으로서, 시간강사로서 어떤 삶을 살아내고 또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담담하게 쓴 글이다. 노동자로서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시급과 처우를 받고 있는 대학의 비정규 노동자들나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엔 분노하기 일쑤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엔 분노보다 슬픔이 밀려왔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도 안다. 관행은 거스르기 힘들고, 다수가 침묵하며 따르는 일에는 반발하기 어렵다는 것을. 나의 장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기 힘들며, 게다가 여러 사회적도덕적 관습들 때문에 서열을 거스르는 언행도 하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의 위치를 받아들이고 묵묵히 따르는 저자가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지만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든 의 위치에 서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니 적어도 관행을 거스르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

 

저마다 학교, 특히 대학에 대해 품고 있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자주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중 하나는, ‘대학이 어떤 곳인가(무엇을 하는 곳인가)?’에 대한 대답이었. 교수들은 종종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그렇다면 교수와 학생들은 진리 즉, 학문을 치열하게 추구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면에서는 취업에 필요한 지식만이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인문학 강의에서는 정의’, ‘공정’, ‘인권’, ‘성찰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지만 막상 그것을 말하고 추구하는 대학에서도 비정규직은 넘쳤고, 시간강사뿐만 아니라 근로 장학생이나 조교들의 처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교수, 교직원은 거의 없었다.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또 하나의 기업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은 저자가 자신의 꿈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다소 부당하고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혹은 허울만 좋은 '꿈'을 위해 그렇게 사느니 당장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게 현명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게 최선인지도 모르겠으나, 오히려 그러한 생각들이 저자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네가 선택했으니 참고 견디렴. 못 하겠으면 떠나든가.”라는 논리는 대학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폭력적이지 않은가. 어떠한 선택이든 최소한의 생활 유지는 되어야 하고, 인간 대접은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화가 나는 것은 네 주제를 알라는 논리다. 맞다. 어떤 점에서 주제 파악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생존(생계유지)은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문제다. 하지만 주제 파악이 모든 가치판단과 선택의 유일한 잣대일까? 주제 파악의 그 '주제'라는 것이 반드시 경제적 능력을 말하는 것인가?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주제에 맞게공부보다 취업을 선택해야 하는가? 공부는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또 잘하는 사람이 해야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만 해야 하나?

 

저자의 말처럼 책에 등장하는 모든 문제적인상황들은 특정한 개인이 나빠서라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구조가 잘못된 것이라면 구조를 바꿔야지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2, 33091201호가 끊임없이 이어질 뿐이다. 물론 구조는 바뀌기 힘들다. 때문에 개인이 현실과 타협하는 편이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그런 타협적인 개인만 있다면 구조는 더욱 바뀌지 않을 것이고, 개인의 삶을 주제 파악의 잣대로만 평가한다면 모든 을들의 삶이 더욱 힘겨워질 것이다.

 

얘기가 거창하게 흘렀지만, 저자는 자신이 겪고 생각한 바를 담담히 글로 옮겼을 뿐 구조개혁을 주장하거나 특정한 개인의 태도를 지적하며 문제 삼지는 않는다. 나는 저자의 그런 태도가 오히려 슬펐다. 차라리 대학의 부조리한 측면을 하나하나 따지는 글이었다면 덜 서글펐을 것이다. 저자는 이 글을 내가 이후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든 나의 과거를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썼다.”(15)고 했다. 그것이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가 슬펐던 지점이다. 저자의 경험이 미화하거나 추억하지 않고’, 또한 더 과장하거나 나쁘게 말하지 않은, 이 시대의 대학과 젊은이들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저자를 비롯한 많은 지방시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나는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내 아이에게는 어떤 삶과 길을 보여주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어려운 문제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11-23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23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소년 2015-12-10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잘 쓰시네요. 누군가의 공감을 얻어내는 글쓰기에 뛰어나신 듯합니다.

cobomi 2015-12-31 14:06   좋아요 1 | URL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송히 2015-12-18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을 읽고 정말 이책이 어떠한지 읽고 싶어지네요.

cobomi 2015-12-31 14:06   좋아요 0 | URL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