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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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만 훑고 산 책이다.

부제는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싸우는 법'이라기보다는 연예인인 저자가 도쿄대에서 공부하고 논쟁하는 걸 배워가는 이야기다.

저자는 외계처럼 느꼈던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뿐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과 문헌에서도 많은 걸 배운다.

그 좌충우돌의 과정이 여러 에피소드에 버무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공부법'보다 책에 등장하는 우에노 지즈코라는 인물이 더 흥미로웠다.

나도 저자처럼 우에노 지즈코의 학생이 되어 공부하고 싶다.

그녀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그녀가 지도하는 방식에 따라 사회학(페미니즘) 공부를 해보고 싶다.

그렇게 되면 나는 저자보다 더 우왕좌왕, 좌절하고 울겠지.

일본어는? 영어는? 한국에서도 별로 공부 안하면서? 학비는? 그리고 애는?(페미니즘 공부하는 것과 이 와중에 애는 어쩌지 걱정하는 것도 상관 있어 보인다)

여러 현실적인 여건이 떠오른다.

그래도 한번 공부라는 걸 해보고 싶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상당히 성공한 게 아닐까.

일단 내가 책을 구입했고(판매 성공), 책을 읽고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으니 말이다.

심지어 일본어를 공부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이 무슨...)

 

 

저자의 출발점은 연예인으로서, 여자로서 '뭔가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서곤 했던 경험들이다.

이론으로 무장하고 논쟁하는 법을 배우면 더 잘 싸울 수 있을 거라 여긴 저자는, 뭐가 뭔지 감이 안 잡히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악착같이 공부한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된다.

정답이 없는 거다.

진리는 하나가 아니고, 하나의 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다.

고군분투 끝에 저자가 얻은 깨달음 중 하나가 바로 그거다.

'뭔가 아닌 것 같은' 상황을 적절한 말로 표현하고, 해결책을 끊임없이 찾는 과정.

그게 공부임을 깨닫는다.

나도 공부하고 싶다.

공부 잘하고 싶다.

'뭔가 아닌 것 같은' 상황을 잘 짚어내고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멋진 해결책도 내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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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26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부생 시절에 ‘여성학’ 강의를 듣지 않은 게 후회합니다. 그 때 여성학을 공부했으면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일찍 알았을 겁니다. ^^

cobomi 2016-09-26 14:38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잘 몰랐는 걸요;;; 학부 때 어렴풋이 들어본 건 같은데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ㅜㅜ

낭만인생 2016-09-26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페미니즘... 예전에 박완서 선생의 <서있는 여자>를 읽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는데... 저도 페미니즘 강의를 들어보고 싶네요.. 저 책에 나오는 우에노 지즈코에게서.

cobomi 2016-09-26 14:49   좋아요 0 | URL
그쵸?ㅎㅎ박완서 책도 한번 읽어 봐야겠네요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 부채사회 해방선언
구리하라 야스시 지음, 서영인 옮김 / 서유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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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을 보고 놀랐다.

어쩜! 나도, 나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당당히 제목으로 붙이다니 흥미롭기도 하고.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저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빈부나 인종, 국적, 학력, 계급,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이 없고 별다른 능력이 없어도 모두가 한 데 어울릴 수 있는 세상 말이다.

사람을 특정한 잣대로 등급 매기지 않는 세상.

그는 국가도, 사회도(시민? 사회인 따위), 도덕주의도 '똥'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런 저자에게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는 말은 가장 듣기 싫은 헛소리다.

일하고 돈을 버는 것, 그 돈을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쓰는 것, 더 나은(혹은 현재의) 삶의 질을 위해 다시금 일하고 돈을 버는 것 _ 그런 삶은 인간답지도, 즐겁지도 않다.

저자는 이런 현대 사회를 '인지자본주의'라 일컫는다.

말하자면 이 사회는 정보를 듣고 그것을 인지하여 거기에 반응하는 것만을 중요시한다. 그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을, 한마디로 말해서 귀만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이런저런 정보가 귀에 들어오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들은 대로 움직이라는 것. 그러니까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거기에 따르기만 하라는 것이다. (19쪽)

옮겨 적고 보니 살짝 비약이 있는 문구지만, 앞뒤 내용을 보탠다면 모든 것이 자본주의에 따라 세팅되어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돈이 되는 일은 좋은 일,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그 반대일까?).

우리는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제 몫을 하는 인간으로 대접 받는다.

여기서 방점은 '일한다'가 아니라 '돈을 번다'에 찍힌다.

돈을 벌어야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대접받는 것이다.

아, 분하다.

 

 

이십대 초중반 쯤인가부터 내 꿈은 이런 거였다.

배우자 혹은 파트너가 벌어오는 돈으로 실컷 책 읽고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글쓰면서 살고 싶다는 것.(그런 점에서 이건 내가 이룬다기 보다 남이 이뤄줄 수 있는 꿈이다.)

그게 어렵다면 근근히 알바나 하면서 살아도 딱히 나쁘지는 않겠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절대 결혼은 못할 줄 알았다.(그러나 세상엔 나 같은 빈대 혹은 베짱이도 좋다고 하는 너그러운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정작 나를 들들 볶는 사람들은 내 꿈을 책임지고 있는 배우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다.

한심하다, 그 놈의 책은 맨날 읽어서 뭐에 쓰냐, 그거 전공해서 어디 취직하려고 하냐, 그렇게 빈둥대는 시간에 자격증이나 따라, 어디 써먹을 데도 없는 것 좀 하지 말아라, 요즘 세상엔 여자도 돈을 벌어야 먹고 산다 등등.

정말 저런 소리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요즘 ***자격증 있으면 취직 잘 된다더라. 한가할 때 그거나 따지 그러냐."

"아, 저도 들었어요. 하지만 그 일은 제가 하고 싶은 게 아닌데요. 그리고 저도 나름 바빠요."

"뭐 하는데 바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책도 봐야 하고요. 공부도 하고요."

"무슨 공부?"

"이것저것 관심 있는 거요."

"그거 공부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건 저도 잘....(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음...)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예요."

"사람이 재밌는 일만 하고 어떻게 사냐!"

"....."

 

대화는 대충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는 '일'이란 돈으로 보상받는 걸 뜻하고, 나는 그런 쪽엔 잼병이다.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아주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는 그렇다.

아니, 재밌는 일을 하는 게 뭐 어떠냐 말이다.(직접 대꾸하진 못하는 소심함.)

나도 외치고 싶다.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딩가딩가 놀고 싶다!

 

 

유쾌하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친한 친구 만나서 수다 삼매경 빠진 것처럼 이야기가 여기저기로 샜다가 돌아오길 반복하고,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뒤섞여서 혼자 큭큭거리기도 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옮긴이가 번역을 아주 맛깔나게 한 덕분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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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9-24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제 이야기를 옮겨 놓으신줄 알았어요. 제가 요새 듣는 말들, 그리고 제가 하는 말들이거든요.
저희 친정엄마가
˝만날 뭐가 그리 바빠?˝
˝바빠..할 일이 너무 많아. 집안일에 육아에 책도 봐야하고 공부도 해야하고 봉사도 해야하고˝
˝뭔 공부를 여태해. 돈 벌 궁리는 안 하고˝
입병나서 아프다, 매일 잠 못 자서 피곤하다면서 정작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일이라는 게 꼭 돈을 창출해야만 일은 아닐텐데 말이에요.
여튼 동지를 만난 느낌이에요.^^


cobomi 2016-09-24 10:29   좋아요 0 | URL
헐! 베짱이 동지, 반가워요ㅎㅎ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 - 내 취향대로 살며 사랑하고 배우는 법
김경 지음 / 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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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럽다.

글 잘 쓰는 사람을 보면 그 글에 매료된 나머지 잠시나마 글쓴이의 생각에까지 동화된다.

나와 다른 '취향'을 펼쳐놓는데도 어쩐지 따라하고 싶어진달까.

 

김경의 글을 연달아 읽으면서(<뷰티풀 몬스터>와 이 책) 난 내용도 물론이지만 에피소드, 표현방식, 단어 선택, 연상의 고리들 같은 것에 더욱 끌렸다.

그것이야말로 김경이란 사람을 보여주는 장치들이다.

이를테면 특정한 상황에서 지난 일을 떠올리고, 어떤 예술가를 떠올리고, 문장을 떠올리고, 다시 자신의 삶에 끌어오는 그런 것들.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오랜만에 접하는 단어들과 '어쩜 저걸 저렇게 표현하지?' 싶은 문장들.

왠지 이 사람은 고상하고 지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속물적이고 우중충하며 애틋한 구석이 있다.

 

 

읽고 나니 미묘한 느낌이 든다.

읽을 때는 '아, 이 사람 매력 있네'라며 뭔가 친근한 느낌마저 가졌는데 읽고 나니 모든 것이 희미하다.

"나는 항상 패배자에게 끌린다"는 것 말고는(사실 이것조차도) 김경의 '취향'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두루뭉술하다.(대충 읽은 건가...)

더불어 그녀의 '스타일'은 그녀 말에 따르면 '그런지'한 스타일이라는데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확실한 건, 그녀는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미술관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며, 강원도에서 화가 남편과 함께 여러 가지를 만들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그녀의 취향대로 잘 살고 있다.

그게 어떤 취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본과 사회가 인정하고 종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 가치관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는 거다.(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김경이 말한 취향이란 삶의 방식이자 그 사람과 그의 인생을 담고 있는 뭔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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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 고기를 굽기 전, 우리가 꼭 생각해봐야 할 철학적 질문들
최훈 지음 / 사월의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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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만 보고도 대충 내용을 짐작할 수 있지만, 왜 채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이때, '해야 한다'는 윤리적 당위의 표현이다.

채식이 윤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저자는 채식이 윤리적인 행위라는 것을 친절하고 쉽게 설명하고 있다.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이나 <실천 윤리학>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잘 이해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피터 싱어의 책보다 쉽게 읽혔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생활한 사람이 쓴 책이라서 친숙한 예시가 많다.

 

10년 전쯤 <실천 윤리학>을 읽고 채식에 관심을 가졌는데, 실천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 3년 전에 드디어 채식을 실천하려 했지만 한 달도 안 돼서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나의 의지가 그리 강하지 못했다는 것.

나는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

갑자기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

너무 기분 내키는 대로 시작해서 어찌해야 할 바를 잘 몰랐다는 것.

그리고 가족 및 지인들의 끊임없는 설교, 잔소리, 협박, 훼방, 조소 등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

특히 마지막 이유는 치명적이었다.

대단한 이해를 바란 건 아니었다만, 동참해 달라고 한 적도 없다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고기를 안 먹겠다'는 데에 참견하기를 좋아했다.

고기를 먹을 때는 받지 못했던 관심이 집중적으로 쏟아지니까 이만저만 피곤한 게 아니었다.

 

처음엔 왜 고기를 안 먹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설명을 한다.

하지만 귀담아 듣지 않는다.

내가 말을 재미 없게 했을 수도 있지만, 말을 재미 있게 했더라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였을까 싶긴 하다.

어쨌든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특히 어른들의) 걱정과 비웃음 등이 쏟아진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

'그래도 고기를 먹어야 기운이 나지'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된다'

'야, 그럼 고깃집 갈 때 넌 오지마라ㅋㅋㅋㅋ'

등등.

내 설명을 귀담아 들었다면 적어도 한 명쯤은

'애쓴다. 하지만 너 하나 고기 안 먹는다고 동물들이 고통을 덜 받을까...?'

정도의 말은 했을 법한데 현실은 생각보다 더 냉정했다.

 

 

나는 여전히 채식을 지향한다(지금 채식을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옳은 행위라는 데 대해 (아직은) 반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터 싱어의 책을 읽은 이후 10여년 동안 고기를 (좋아하지만) 먹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느껴지는 가책이랄지,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윤리적인 삶을 살고 싶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윤리적인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덕 교과서대로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오히려 도덕 교과서는 형편없다고 여긴다).

합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 보편적으로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게 윤리 아닌가?

 

 

이 책은 채식을 해야 하는 윤리적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삶에 대해서도 다시금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설명도 쉽고 여러 에피소드도 곁들여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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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이메일을 확인하다 교보문고에서 보내온 글을 한 편 읽었다.

[김연수의 곰곰이 생각해보니]라는 칼럼에 연재된 글이다.

그런 칼럼이 있는지도 몰랐다.

오늘 메일로 온 글 제목은 "우리의 삶은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이다.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12275&OV_REFFER=http://netpion2.kyobobook.co.kr/1I-147632I-44612375I-4goaSoZE-8zPqrCF-1938052I-4ehhgE-8D-7D-7HPDzD-6ZACvCvCCZD-6oCD-6ZuD-7oCbbBD-7CgPHfCaUbHxSPDD-6SHZF-3zHhHI-5SJF-112275I-3

 

 

나는 올해 초 첫 아이를 출산했다.

덕분에 독서할 시간이 절반 이상 줄었다.

독서는커녕 잠자기, 밥먹기, 씻기, 화장실 가기 등 그동안 당연한 듯이 누려왔던 거의 모든 활동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지치는 날에는 아이 낳은 걸 후회하거나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를 또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물론 아이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예쁘고, 그 아이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순간도 많다.

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아니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난 내가 출산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감정과 사건들을 겪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냥 무심코 글을 읽어내리다가 저자가 아이를 낳기로 하고, 딸에게 남긴 메시지를 발췌한 부분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아침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잠들었던 아이가 깨서 나를 찾았고, 오늘 낮엔 유난히 보챘다.

진 빠지는 시간을 보낸 후 이제야 다시 노트북을 열었는데 아침에 읽은 글이 그대로 화면에 떠있었다.

 

잘 모르겠다.

아이는 온전한 기쁨일까?

내가 깨달은 한 가지는, 어쨌거나 아이를 기르면서 나 자신이 단련되고 있다는 거다(근육도).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게 되는 것들도 늘어났고,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지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사가 좀 넓어졌다.

욕심을 줄이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으며, 웬만한 일에는 유난을 떨지 않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순간도 많아졌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모든 일이 아이의 존재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이전의 삶은 생각할 수가 없다.

나 또한 책의 저자처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음으로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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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9-07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너무 좋네요
현재 시각. . 비 오는 밤에 읽어도요^^

cobomi 2016-09-09 06:57   좋아요 0 | URL
네, 김연수님 글 좋죠?

clavis 2016-09-09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 저는 cobomi님 글이 와닿아서..♥저희 언니도 아이 둘 키우면서 근육과 감성모두 일신우일신을 이뤄가고 있어서^^!

에디터D 2016-09-2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의 저부분이 맘에 남아 별도로 메모했어요.ㅎ 누군가의 딸이라면 거의 같은 맘이었을 것 같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