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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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난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이틀 동안 고작 여섯 시간을 자고서 온갖 잡다한 일들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찍 자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택배가 하루만 늦게 왔어도 지금쯤 꿀잠을 자고 있을 텐데. 그만큼 서민의 글은 치명적이다. 과로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당장 읽게 만드니까. 읽기 시작하는 순간 수면욕구가 싹 가시는 신비를 체험했다.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이제는 자볼까 싶은 마음도 잠시. 서평집을 읽고 그냥 자려니 왠지 모를 찜찜함이 밀려왔다. 뭐지? 몽롱한 상태에서 리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집에 대한 서평을 쓰려니 이만저만 어색한 게 아니다. 독후감, 말 그대로 읽은 후 느낀 것을 적어 본다.

 

하나, 새로울 게 없지만 새롭다. 나는 지금껏 서재에 올라온 서민의 리뷰는 죄다 읽었다. 월간 인물과사상도 구독하고 있으니 이 책에서 처음 보는 글은 없는 셈이다. 심지어 원래 글의 어떤 부분을 수정했는지까지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런데도 처음 읽었을 때와 비슷한 부분에서 빵 터지거나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땐 소름이 돋았다.)

읽은 글을 또 읽어도 새롭다니?! 그의 서평 덕택에 읽은 책이 몇 권 생겨서다. 동일한 서평인데도 책을 읽기 전에 본 것과 읽은 후에 본 것이 이토록 다른 것이 놀랍다. 직접 경험해 보시길.

 

, 저자의 서평 쓰기에 눈길이 간다는 점. 처음 읽을 땐 서민이 말하는 책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이 책 재밌겠네, 읽어야 겠다' 이런 식이다. 두 번째 읽으니 그의 글쓰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곳곳에서 재치 있는 표현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걸 저렇게 연결하다니!’라며 혼자 감탄했다.

책의 서문(‘책을 내면서’)에 저자는 자신의 서평집이 가진 장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평집을 내는 분들은 대개 리뷰를 아주 잘 쓰지만,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닌 탓에 글들이 무지하게 쉽다. 독자로 하여금 서평을 쓰고픈 욕구를 느끼게 하는 것이야말로 내 서평집의 가장 큰 순기능이리라.”(9)

책을 다 읽고 그냥 자려 했을 때 느꼈던 왠지 모를 찝찝함이 바로 이거였나 보다. 서평을 쓰고픈 욕구를 누르려 해서 생긴 찜찜함? 아무튼 이 책은 서평 쓰기의 좋은 예문모음집으로도 손색이 없다.

 

, 지름신이 강림할 우려가 있다. 아무래도 서평인지라, 해당 책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하곤 한다. 이 순간에 정신줄을 놓으면 장바구니에 책을 마구 담게 되는데, 흥분한 나머지 무리해서 결제한다면 재정난과 가족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등 곤란을 겪을 수 있다. 그래도 주문한 책들을 읽으면서 충분히 즐거울 테지만, 혹시 모르니 이 책을 읽기 전엔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 매도록 하자.

 

그런데 제목이 왜 <집 나간 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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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이해
이인건 /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부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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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느 블로그에 추천도서로 올라온 책이다.
철학이 다루었던(다루고 있는) 문제들을 주제에 따라 분류해서 정리해놓았다.
그런데 ˝왜˝ 그 블로거는 이 책을 추천했는지 의아하다.
내 기억으로는 그 분이 이 책을 두고,˝서양철학의 흐름과 개념을 꼼꼼히 짚어주는 책˝이라 했던 것 같은데.
흐름도 개념도 꼼꼼하지 못한 느낌이다.

뭐랄까.
딱 교과서 형식?
처음부터 끝까지 간략한 설명 위주의 서술이 중심이다.
그렇다고 매우 쉽게 설명한 것도 아니다.
다른 철학사(특히 번역서)와 비교하며 번갈아 읽었다..
저자가 철학사 책 여러 권을 읽고 공부해서 요약해놓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개론서라 그런가?)
어떤 문장은 다른 책과 거의 비슷해서 누가 누구의 글을 보고 공부한 건지 몰라도, 저자에 대한 신뢰가 좀 떨어졌다.
참고문헌 목록도 없고 인용 표시도 전혀 없다.

문장도 너무 길어서 무슨 말인지 직접 끊어 읽고 나서야 이해한 부분이 수두룩하다.
맞춤법 틀린 부분, 오탈자 같은 것도 제대로 교정했다면 좀 나았을 텐데...
˝철학의 이해˝라는 제목에 걸맞은 개론서는 아니다.
다른 책과 교차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재미 있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스토리를 술술 읽는 듯한데도 핵심은 놓치지 않는,
그런 철학사 책은 없는 걸까?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책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자연스럽고 유창한 한국어 문장으로 적힌 책이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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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7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내용이 좋더라도 오탈자가 많은 건 절대로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없어요. 제목만 보면 대학교 교양과목 교재 같은 느낌이 들어요. ^^

cobomi 2015-04-27 20:26   좋아요 0 | URL
그런가 봐요. 공감합니다.
추천도서라 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했더니 이렇네요ㅎㅎ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
조르주 뒤비 지음, 채인택 옮김, 백인호 외 감수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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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전처럼 곁에 두면 유용한 책이다.
다른 책을 읽다가 지도가 필요할 때 바로 펼쳐 본다.
지역별, 시대별 목록이 있어 편리하다.
역사 지도가 거의 없어서 답답했는데, 중고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득템한 기분을 만끽했다.
인터넷이 있어 필수 아이템이라고 할 순 없다.
그래도 책은 책으로 찾는 손맛이 있는 법.
온라인 게임으로 하는 낚시가 실제 낚시만 못한 것과 같은 이치다.

책이 너무 크고 무겁다는 게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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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5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중고매장에서는 최상급 상태로 5만 2천원대의 가격으로 팔고 있더군요. 소장하고 싶은데 가격과 크기 때문에 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

cobomi 2015-04-25 19:30   좋아요 0 | URL
제가 그 가격에 산 것 같아요.
중고인데도 가격이 상당히 오바라고 생각했지만, 찾던 책이라 냉큼 질렀죠...
역사 지도책이 없더라구요.
그저 지도 보는 용도로만 적합한 책인듯 해요.
크기랑 무게, 가격만 빼고요ㅎㅎㅎ

우공 2015-04-27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책을 보다보면 지도가 첨부되었으면 좋겠단 생각 많이 했었는데...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cobomi 2015-04-27 18:52   좋아요 0 | URL
역사책... 다른 사람들 평까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대체적으로 평이 안좋더라구요.
저는 주로 서양철학사나 역사소설 읽을 때 지도 참고 하거든요ㅎㅎ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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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책을 구매하는 데 광고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친구에게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구입하고 싶다는 문자가 왔다. 이유인즉, "광고 많이 하길래, 읽어 보고 싶더라"는 것. 나도 책 광고에는 귀가 얇은 편이기에 친구 마음이 이해된다.

 

사실 나는 유시민의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건 친구의 말과 광고 때문이다. '30년 베스트셀러 영업 기밀!'이란 문구는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이 책은 '유시민처럼 글쓰기를 하는('글을 잘 쓰는') 방법'을 담고 있다. 여기서 글쓰기는 문학 장르를 제외한 '논리적 글쓰기'를 말한다. 책 내용은 크게 글쓰기에 임하는 태도(자세),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철칙 및 유의점, 추천도서, 출간 예정작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글을 잘 쓰는 법'을 알려주려는 목적을 띈 책인 만큼, 독자가 그러한 목적을 달성한다면 이 책은 100%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 목적에 충실한가? 책이 표방하는 목적과 '30년 베스트셀러 영업 기밀!'이라는 광고 문구는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좋다. 마치 이 책을 읽고 나면 글을 잘 쓰는 엄청난 비결을 알게 될 것만 같다. 이러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책을 구입하는 사람이 적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서 내가 직접 읽고 평가한 책의 장단점을 적어볼까 한다.

 

먼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다'는 것. 읽기 좋다는 의미다. 어려운 단어도 별로 없고, 내용도 복잡하지 않다. 예시도 있고, 에피소드도 있어 재밌다. 이 점이 사람들이 유시민의 책(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두 번째 장점은 추천도서를 나열한 부분이다.(153~164쪽) 도서목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도서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는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유시민은 여느 추천도서목록과는 달리, 도서 내용을 질문 형태로 나타냈다. 나는 이 점이 신선했다. 다른 책을 읽을 때도 지침이 되리라 생각한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질문의 형태로 책 내용을 되새겨 본다면 주제, 논제, 키워드, 핵심 내용 등을 파악하는 데 좋을 것이다. 더불어 질문하며 읽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세 번째 장점은 번역문과 난해한 글에 대해 예문과 수정문을 동시에 수록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분량은 적지만 의미 있는 부분이다. 번역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는 책이나 글도 많고, 인터넷 서점에서 번역서 밑에 달린 댓글만 보더라도 유용한 정보(호불호를 표현한 것일 지라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난해한 글'에 대한 평가는 번역서에 대한 것보다 찾기 힘든 것 같다. 심하게 난해하고 모호한 책은 먼저 읽어 본 사람이 그 점에 대해 언급해 주면 유용하지 않을까.

 

이제 단 점을 몇 가지 짚어 보자. 첫 번째 단점은 에피소드가 과도하게 실렸다는 것이다. 예문도 정치적인 것이 많다. 정치적인 것을 다뤘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예시문을 글 자체로 살펴보는 것을 넘어 정치적 맥락과 그에 대한 저자의 견해 혹은 변명이 등장해서 논점을 흐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게 문제다. 본인의 경험담도  자주 나오는데 글쓰기와 관련한 경험담이니까 상관은 없다. 하지만 '본인만의 경험담'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좀더 다양한 사례를 수록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에피소드와 관련해서 덧붙일 것은, 유시민의 책 <청춘의 독서>, <어떻게 살 것인가> 등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아 지루했다는 것이다. 재탕 삼탕의 느낌.

 

또 하나의 단점은 치명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 너무 평범하다는 것. 글쓰기 방법을 알려주는 책인만큼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과는 달랐으면 했다. 글쓰기 책을 몇 권만 읽어 봐도 알겠지만, 글쓰기에 왕도나 비법 같은 건 없다는 것이 모든 책이 핵심적으로 말하고 있는 바다. 그래서 글쓰기 책은 대동소이한 방법들을 담고 있다. 책마다 다른 점은 저자에 따라 에피소드, 경험담, 예문 등이 차이난다는 것이다. 나는 앞서 에피소드와 경험담이 많은 게 이 책의 단점이라 했는데, 어쩌면 사람들은 저자의 에피소드와 경험담을 읽으려고 글쓰기 책을 구입하는 건지도 모르겠다.(지난 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도 에피소드가 더 눈에 띄는 책이다.)

 

결국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은 저자의 경험담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한 글쓰기의 철칙이나 방법은 다른 글쓰기 책에도 나오니까. '기밀'이랄 수 있는 건 저자만의 경험담인 셈이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260쪽)라는 문장에서 묘하게 허탈한 느낌을 가졌던 사람은 나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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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4-23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이면의 심리가 느껴 지더군요...쓰기 전에 읽기라는 충고가 포인트겟고...맺힌 게 많았겟죠.정치판에서...ㅎㅎㅎ 잘봤어요.

cobomi 2015-04-23 01:0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전 유시민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책은 별로더라구요... 글이 쉽고 막힘없긴한데.. 노정태 책 <논객 시대> 에서 유시민 부분 읽고 공감했던 기억이 나네요. 유시민은 정치 얘기할 때가 가장 논리적이고 힘있는 듯해요ㅎㅎㅎ

cyrus 2015-04-23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시민이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지 글은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물론 그가 쓴 책을 감명깊게 읽었고, 글쓴이로서의 유시민의 행보를 좋아하지만요. 논객으로서의 이미지에 강한 탓에 글 잘 쓴다는 이미지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cobomi 2015-04-23 17:10   좋아요 0 | URL
그럴 수도 있겠네요.저도 유시민이 정치 얘기하는 데만 익숙해서, 내가 그 사람 글을 제대로 못 보는 건가 싶어요.

해피북 2015-04-23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을려고 준비해뒀는데 많은 도움 되었어요 유시민 저자의 책이 집에 몇권되는데 아직 한권도 읽지 않았던 탓에 쉬이 손이가지 않았는데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장기보수시대 - 미처 몰랐던 징후들
신기주 지음 / 마티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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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체가 보수화 혹은 우경화 되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일베현상이나 종편의 활약(?), 최근 대선과 총선 및 재보궐선거 결과 등이 그 예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예전에 비해 얼마나 보수화 된 것인지, 예전에도 보수적이었는데 더 보수적이라는 건지, 아니면 예전엔 그렇지 않았으나 지금은 보수적으로 되고 있다는 건지 잘 판단이 안 된다.

 

어느 사회나 보수 세력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보수의 반대를 진보라 할 때, 보수와 진보가 얼마만큼의 균형을 이루어야 보수화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을까?

사회의 보수적인 부분(성향)은 항상 있어 왔는데 드러난 몇 가지 현상만으로 보수화를 논할 수 있을까?

물론 보수화의 징후에 관한 논의가 전혀 무의미하고 터무니 없는 것이란 말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보수화 되었느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보수화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중요한 이유 같은 것들이 아닐까.

 

 

<월간 인물과사상>에서 인터뷰어로 자주 등장했던(최근 몇 개월은 계속 등장했다) 신기주의 책 <장기 보수 시대>는 '미처 몰랐던 징후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한국 사회가 장기 보수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징후를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꼼꼼히 짚어주고 그것의 의미와 영향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책이리라 기대했다.

더구나 '미처 몰랐던' 것을 알려준다는 솔깃한 수식어까지 붙어있으니.

 

저자는 장기 보수화의 징후를 경제(시장), 사회(좁은 의미의 사회 또는 신문지면의 '사회' 정도), 미디어, 정치라는 네 개의 국면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각 국면마다 5~8가지 소주제로 징후들을 실었다.

 

책의 내용을 가름하는 큰 틀이 경제, 사회, 미디어, 정치인 이유가 있다.

그 네 가지가 서로 얽히고설켜서 돌아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보수화니 민주화니 하는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즉, 그 네 가지 국면에서 드러난 징후들을 살펴보면 한국 사회가 장기 보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때 미시적으로 드러난 징후들은 '보수화'라는 거시적 흐름에 따라서 앞으로도 펼쳐지고 심화될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여기서 의문은 '보수'라는 말 자체다.

보수, 혁신, 진보, 좌파, 우파…. 

꽤 자주 접하는 단어들인데도 그 의미, 담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흐릿한 느낌이다.

보수(保守).

한자를 보면 보존하고 지킨다는 뜻인 듯하고, 국어사전을 보면 새로운 것에 반대하고 재래의 풍습을 중요하게 여겨 그걸 유지하려는 것이라 한다.

 

내 느낌에 '보수'는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다.(당연한가?!)

'유지'라는 것의 본질은 계급 혹은 권력 문제라는 느낌적인 느낌.

권력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판을 짜고 룰을 정하는 힘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수(세력)가 전통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결국 지금껏 누려오던 기득권, 우위 등을 지키기 위해서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인 이유도 살아온 관성 때문인데, 이미 오랜 기간 익숙해진 룰을 바꿔 버린다면 혼란스러울 뿐더러 새로운 룰에 따라서 우위를 점하기도 힘들다.

거기다 살아온 기간만큼 후배(후세대)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보수화'에 한몫 한 것은 아닐까.

 

'장기 보수 시대'란 말은 한국 사회에서 '구조적 보수화가 진행되고 있단 말이다.'(6쪽)

저자는 정치적 민주화(87년 체제)와 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사회에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것이 보수화의 징후라 말한다.

 

개인화된 사람들은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지 않는 피해자'다.

개인은 자신이 능력과 열정만 있으면(열심히 하면) 성공할 것이라 기대한다.

교육기관은 사회적 리더(공적인 책임감이 있는 리더)를 기르기보다 기업의 입맛에 맞는, 혹은 개인의 출세만 생각하는 인재를 양산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익이나 가족부양의 책임 때문에 서로 연대하지 못한다.

자본(시장)과 정부는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기에 개인들의 연대를 싫어한다.

그래서 미디어를 통제하고, 개인들을 통제한다.

정치권은 자신에게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다.

게다가 권력 구조의 모순으로 정치적 힘을 낭비한다.

이 상황에서 개인들은 각자 살길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모든 것은 개인의 능력이자 개인의 책임이 된다.

 

이런 모습들이 사회 전체적으로는 보수화라는 커다란 흐름을 만든다.

긍정적인 건지 부정적인 건지는 각자의 판단이겠으나, 만약 문제의식을 가진다면(그러니 저자도 책을 썼겠지만)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새로운 판을 짜고 새로운 룰을 만드는 것이 방법일까?

실제로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체 게바라와 쿠바, 68혁명 등을 이야기하며 한국 사회에도 문화혁명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덧붙인다.

자본주의를 성숙시키는 문화적 혁명이란 게 어떤 것인지는 불분명하게 느껴지지만, 저자는 혁명의 가능성이 있어야만 체제가 가진 모순도 해결하고 사회도 진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획기적인 혁명 또는 혁신도 시간이 지나면 자체적인 모순과 갈등을 낳게 된다.

그래서 혁명을 통해 주기적으로 체제를 초기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 혁명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만으로도 체제는 모순과 갈등을 어느 정도 해결할 방도를 모색한다.(그래야 체제 안에서의 기득권이 유지되므로)

혁명의 가능성은 체제 발전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사회 발전을 위한 혁명은 어떻게 가능한가? 

저자는 정치(력)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 생각하는 것 같다.

개인들이 '군중'이 아니라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홉스의 시민이 아니라 로크의 시민이 되어야 한다.

시민은 정부에게 통치를 신탁하는 계약을 맺었을 뿐이다.

정부를 감시·감독하다가 제대로 안 하면 위임했던 권리를 다시 받아 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과 정부, 미디어의 선동과 속임수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하고, 필요하면 연대해서 대응해야 한다.

 

정치(력)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한다.

정치가 매우 먼 이야기인 줄 알았던 나도 언제부터인가 관심을 좀 갖게 되었는데, 짐작했던 것보다는 내 삶이 정치와 관련이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서점은커녕 변변한 도서관도 하나 없어서, 나는 대도시로 나가거나 온라인 서점을 통해 (직접 살피지도 못하고) 책을 구입해야 한다.

지역에서 주민의 문화지식 인프라 구축(혹은 복지)에 신경을 안 쓰기 때문이다.

무엇 무엇을 유치해서 일자리를 몇백개인지 몇천개인지 만든다고 하더니, 지역 실업률이 줄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 건설 허가는 왜 그렇게 잘 내주는지 공사장 소음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덕분에 대도시의 투기자본이 우리 동네로도 몰렸는지 우리집을 비롯한 주변 집값이 불과 1년도 안 되어서 두 배로 올랐다.

그런데 집은 1년 전보다 딱 그 기간만큼 더 낡은 것을 제외하면 똑같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복잡한 심경이다. 

담배값 오른 것도 짜증나는데, 모든 술집에서 금연이라니.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못해 화나는 게 아니다. 

흡연자를 야만인 보듯 몰고가는 분위기에 몸서리가 쳐진다.

금리는 자꾸 낮아져서 나만을 위한 혜택을 준다는(빚쟁이가 되라는/대출) 전화, 문자, 메일, 전단지가 날마다 몇 통씩 온다.

 …

이 모든 것들이 예전에는 별 관심 없었거나 혹은 그러려니 했던 일들이다.

개인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보이던 게 보이고, 군중에서 '시민'으로 탈바꿈하게 될지도 모른다.

 

 

장기 보수의 징후들 중 특징적인 것들을 뽑아 요모조모 살핀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다른 시기, 다른 상황에서 일어난 일들을 네 가지 국면으로 분류해서 '보수화'라는 큰 흐름으로 엮어 논의를 전개한 점도 유용했다.

물론 보수화 논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왔다면 획기적이었을 테지만 조금 뒤늦은 감이 있어 아쉽다.

 

단점도 몇 가지 있다.

우선 단문이 많고 접속사가 거의 없어서 끊어 읽는 듯한 느낌이 불편했다.

게다가 어려운 단어(전문용어인가)와 전후사정을 밝히지 않은 사건들이 등장해서 일일이 검색해야 했다.

추론(논증?, 논의?)과정이 너무 비약적이라 도저히 파악이 안 되는 부분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일본 사회는 여전히 상명하복과 예의만 중시하고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그 증거다."(242쪽)

라는 부분이다.

나는 일본인이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의 증거가 왜 후쿠시마 원전 사태인지를 진짜 모르겠다.

이것처럼 대체적인 내용과 흐름은 이해가 되어도 중간 중간 등장하는 사건(혹은 인물)들이 심하게 압축 제시되어 있어서, 읽고도 덜 읽은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을 준다는 점이 단점이다.

물론 평소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등에 관심도 많고 지식도 많은 사람이라면 아무 어려움 없이 읽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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