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현복 옮김 / 문예출판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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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데카르트 철학을 일컬어 '근대 철학의 효시'라 한다. 방법서설을 펼쳐든 건 데카르트가 어떤 말들을 했기에 그런 별명(?)이 붙은 건지 내 나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일단 쫄지 말자. 대철학자, 대문호, 거장, 고전 같은 단어에 주눅이 들어 어쩐지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것만 같은심정을 미리부터 갖지는 말자. 그저 데카르트라는 이름을 가진 1600년대의 베스트셀러 작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야 책장을 넘기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과연 내가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양식(bon sens)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이다.”(146)

이럴 수가! 방법서설1부 첫 문장부터 놀랍다. 이 분(데카르트)은 분명히 1637년에 방법서설을 출간했는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양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평해.’라고 말하고 있는 거였다. 뭔가 평등사상의 냄새를 맡은 기분. 내가 확대 해석한 걸 수도 있지만, 첫 문장을 읽고 놀라는 내 자신을 대견해 하며(뭔가 알아낸 듯하여) 읽어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출발이 좋았다.

 

방법서설은 매우 읽을 만했다. 심지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쉽게 이해가 되는데도 어쩐지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것만 같아서 두 번 생각하는 찜찜함) 사실 함께 실려 있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을 먼저 읽었는데(앞에 실려 있어서), 그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은 내 정신이 마치 데카르트의 지도를 거부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데 애를 좀 먹었기 때문이다. 불친절한 글 한편을 읽고 나니(말 그대로 읽기만 한 것) 방법서설이 흔히 보는 에세이처럼(실제로 '에세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방법서설이란 말부터 풀자. 방법에 관한 서설이다. ‘방법(method)’에 대해 차례대로 차근차근 설명(discourse, 敍說)하겠다는 거다. 무슨 방법? 진리를 찾는, 학문하는 방법이다. 그럼 왜 이런 책을 쓴 걸까? 1637이 될 때까지 인류가 학문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지만) 아니다. 데카르트의 얘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 “내가 학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공부하고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사람들도 여럿 만나봤는데, 세상에! 사람마다 이게 맞다, 저게 맞다 그러고, 읽는 책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거야. 여행하는 나라마다 풍습도 달랐어. 이건 뭐, 확실하고 명백한 진리라는 게 거의 없더라고. 도대체 뭘 믿고 따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지. 모든 게 의심스러웠어. 사람이라는 게 뭐야? 이성(理性) 빼면 짐승하고 다른 게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이성을 제대로 쓸 생각을 안 하는 거 같애. 이성을 갖고 있기만 하면 뭐해? 제대로 사용해서 명명백백한 진리를 찾아야 되는 거 아니겠어? 참된 지식을 가져야지 인생도 지혜롭게 살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지혜롭게 사는 게, 그게 바로 행복이야. 자, 그러면 참된 지식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 내가 바로 그 방법을 찾았다는 거지! 하지만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억지로 가르치려(설교하려)는 건 아니야. 그저 내가 이성을 잘 인도하려고 그 방법대로 살아왔다는 걸 말하고 있을 뿐이니 오해 말도록.”

 

그럼 어떤 방법으로 살아왔다는 건가? 데카르트는 본인이 공부한 것 중에 그나마 수학에 끌렸는데, 수학은 확실하고 명확했기 때문이다다른 학문도 수학처럼 확실성과 명증성의 토대 위에 놓인다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수학적인 방법을 응용하여 (모든) 학문하는 방법(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삼는다. 어떤 방법인가? 명석판명하게 내 정신에 (참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만 받아들인다, 검토할 문제는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눈다,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가장 복잡한 것까지 단계적으로 살핀다.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열거하여 검사한다.

 

그렇다. 싱거우리만치 짧고 간단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방법을 토대로 철학을 시작한다(세워나간다)는 것이 함정. 나머지 장에서 데카르트는 자신이 고안한 방법에 따라 확실한 것을 찾아내고(‘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문제를 나누어 차근차근 차례대로(형이상학적 토대에서 자연학까지) 고찰해 나간다. '방법'은 어디까지나 진리를 찾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수단을 마련했으니 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 그 과정이 나머지 장에 실려 있다.

 

나는 읽는 내내 데카르트가 강박증 환자처럼 느껴졌다. 자꾸만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으려 하는 것. 어떤 물건이든 제자리에 오와 열을 맞춰서 두려고 하는 사람처럼, 깔끔한 전제에서 시작해 순서대로, 규칙에 따라 생각해 나가는 것. 정돈되고 균형 잡힌 느낌을 좋아한다는 것(‘정돈’, ‘비율’, ‘규칙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등등. ‘완벽한, 생각하는 기계가 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인간이 자신의 재능으로 무수히 많은 자동기계, 즉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음을 스스로 탁월한 운동을 하는 기계로 간주할 것이다.”(213)) 생각 속에서만 거대한 세계를 만드는 데카르트, 그 세계엔 인간관계, 도덕, 감정 등이 없다. 계산적이고 효율적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들의 세계라는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왜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의 효시일까? 확실히 데카르트가 주장한 방법은 일반적인 학문의 방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방법을 통해 애매모호한 건 모두 보류하고, 이성을 제대로 사용해서 삶에 유용한 지식에 이를 수 있는 바, “강단에서 가르치는 사변적인 철학 대신에 실제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적절한 곳에 사용하고, 그래서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다.”(220) 데카르트 이후의 세계는 알다시피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 밖에 철학은 모든 것에 대해 그럴듯하게 말하는 수단과 학식이 적은 사람들로부터 찬탄을 사게 하는 수단을 제공해주며”(152)라든가, “학자가 하는 사색이란 아무런 결과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것이며, 또 그것이 상식에서 벗어날수록 더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기지와 기교를 부리기 때문에 단지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다.”(157~158)라고 말하는 등, 쓸데없는 논쟁이나 일삼는 학자(특히 철학자, 수사학자 등)들을 비판하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한 번은 읽어 볼만한 책이다. 기대(?)보다 얇고, 지레짐작하는 것보다는 내용이 쉽고 심지어 재미있다. 데카르트가 생각을 밀고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동의도 하고 반박도 하게 된다. 아니, 읽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유용해지는 책이다.(자랑거리가 되므로)

 

 

덧붙이는 말.

내게 있는 번역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현복이 옮긴 문예출판사판(2014, 초판11997)이고 다른 하나는 최명관이 옮긴 도서출판창에서 나온 책(개정판, 2014)이다. 번갈아 읽었는데 둘 다 괜찮지만 문예출판사판이 더 좋은 것 같다.

문예출판사판은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도 함께 있다.(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방법서설방법에 집중해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심화해 놓은 것이다.) 문예출판사판이 옮긴이의 주해가 꼼꼼해서 읽기 좋았고 번역도 최명관에 비해 성실한 느낌이었다. 불어를 모르니 원전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 번역본에서 서로 다르게 번역한 부분을 몇 군데 찾을 수 있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최명관은 "나 자신을 연구하기로"(76)라고 번역한 것을 이현복은 "나 자신 속에서 연구하기로"(158)라 번역한 것이다. 최명관은 아무 설명도 없지만, 이현복은 주석을 달아서 그렇게 번역한 이유와 의미를 짚어준다.

문예출판사판에는 <정신지도를 위한 규칙들><방법서설>, 주해, 옮긴이의 해설, 데카르트 연보가 실려 있고, 도서출판창판에는 역자가 구성한 <데카르트의 생애><방법서설>, <성찰>, <데카르트 연구>(옮긴이 논문)가 실려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반드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한 것이고,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가당치 않은 억측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것임을 주목하고서,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일원리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185쪽)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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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2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근대 철학의 효시`일까? -> 코기토(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제시로 그리 되었죠. 근대성의 출현을 자아 출현에서 보니까요.
하지만 현재는 `나는 잘못 생각한다`는 지적들이 대두... `불확실성의 원리`라든지 등등.
저도 늘 미흡한 철학공부 중이라 더 깊게 아시는 분이 또 말씀해 주시길~

cobomi 2015-05-21 00:12   좋아요 1 | URL
아 그러네요~ 저도 자아(주체)출현이 근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 배웠던 것 같아요. 책 읽으면서는 안 떠올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요ㅎㅎㅎ
감사합니다^^

yureka01 2015-05-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코키토 에르고 숨.^^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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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 읽기,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이 유행하는 건가? 아니면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이 그런 종류인가.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도 그 비슷한 책이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책에 나오는 24명의 '파워라이터'들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걸 가리키는 건지,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는 결심을 촉구하기 위한 것인지 모호하다.

 

책은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다섯 명이 '파워라이터'를 선정하고, 그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 모음이다. '자기 분야와 관련된 책을 계속 쓰면서 일정량의 판매를 올리고 대중 담론에 영향을 미치는 저자를 일컬어 파워라이터라고'(5쪽) 한다. 파워라이터들이 글감을 마련하는 과정과 글을 풀어내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책의 목적은 파워라이터들에 대해 갖고 있는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 그리고 예비 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저자들의 장서 규모와 삶의 이력, 직접 만나본 기자의 소감 등도 소소하고 간략하게 실려 있다.

 

300쪽 남짓한 분량의 책에 서문과 목차 등을 제외하면 280쪽도 채 안 되는데 무려 24명의 파워라이터를 다루고 있다. 한 명 당 10쪽 내외이고 그마저도 본문에서 따온 문구와 저자의 사진으로 채운 부분이 있으니, 내용이 빈약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양한 저자들을 소개하려는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책의 목적에 비해 내용은 가볍다.

 

구체적으로는 파워라이터마다 인터뷰한 내용을 글로 정리해 놓은 형식이다. 10쪽도 안 되는 글인데 그걸 짧게 쪼개서 각각 제목까지 달아놓았다. 신문기자들이 만든 책이라서 그런가, 시사주간지를 읽는 듯한 구성이었다. 덕분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점이 아쉽다. 인터뷰가 중심이라기엔 인터뷰 자체보다 기자의 서술 부분이 많다는 것. 그렇다고 해당 파워라이터에 대한 정보나 인터뷰 내용을 분석·해석한 것이 중심이라기에도 어설프다. 둘 중 어느 쪽이든 한 가지에 집중해서 내용을 풍부하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책 두께에는 과분할 정도의 파워라이터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평소 잘 몰랐던 저자(혹은 작가)를 소개받을 수 있는 점은 좋다. 파워라이터마다 글쓰기, 책 쓰기에 대한 철학(?)과 방법이 다르므로 공통된 지침을 마련하기는 힘들지만 각각을 참고하는 것은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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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2015-05-17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글쓰기에 욕심이 생겨...읽을려고 했었는데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장정일의 독서일기 2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2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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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권은 1권에 비해 독후감 한 편당 분량이 늘었다. 덕분에 한 권의 책에 대해 좀더 풍부해진 해석과 감상을 맛볼 수 있었다.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스,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김승옥의 무진기행, 린 챈서의 일상의 권력과 새도매저키즘,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 마루야마 겐지의 달에 울다물의 가족, 김인숙의 칼날과 사랑, 김주영의 아들의 겨울, 호영송의 흐름 속의 집, 신경숙의 외딴방편이 특히 인상 깊었다.

 

며칠 전 장정일의 독서일기1을 읽고 독후감을 올렸는데, 오늘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했다. 리뷰를 살펴보니 예상과는 달리 리뷰는 4~5편 밖에 없고, 부정적인 평가가 절반이다. ! 사람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르니 감상평도 다르겠지만 어떻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내가 저자도 아닌데 변명하고 싶은 기분이었다.(오지랖)

 

같은 책이라 해도 저마다 다른 관점으로 읽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볼 것인지, 무엇을 얻어갈 것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讀者)의 몫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를 어떤 관점에서 읽고 있으며, 무엇을 얻을 속셈인가? 물론 처음부터 숨은 목적(?)을 가지고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다 보니 어떤 점을 중심으로 읽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몇 가지만 추려보자.

 

먼저, 책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평가 방식.

내가 읽지 못했고이젠 구할 수 없는 책이라 해도 상관 없다. 저자가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무엇을 근거로 어떤 해석을 내놓고,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정히 언급된 책이 어떤 내용인가(줄거리)가 궁금하다면 우리에게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있으니 검색하면 된다.

 

두 번째는 한정적이긴 하지만(저자의 취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영화, 연극, 희곡, 음악에 대한 감상평도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희곡집에 대한 평은 내가 평소 안보는 것이라 신선했다. 관심이 많아서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화나 음악(음악에 관한 책),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접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세 번째는 역사적인(?) 것. 20년이면 짧은 것 같지만, 사회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른 만큼 그 시절(20년 전)과 달라진 점이 많다('응사'를 보면 알 것이다). 책에 언급된 작품들과 논의되고 있는 주제들, 저자가 자주 쓰는 단어 등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민주화 이후 운동권 출신(학출?)에 대한 반성,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빚어진 가정의 붕괴, 개인화, 물신화, 환경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등을 보면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앞으로는 어떨지 등을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는 것. 잘 몰랐던 작품이나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절판된 책도 많아 구하기 힘들지만 중고장터와 도서관을 적절히 이용하면 된다.(그래도 못 구하면 어쩔 수 없다) 책에서 언급된 작가와 작품뿐만 아니라 요즘 나오는 작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점 또한 이 책이 나에게 끼친 중요한 영향이다. 2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요즘은 어떤 주제를 많이 택할까, 작가론 소설론 시론 같은 건 어떤 것일까, 비평집을 좀 읽어야겠다 등등. 실로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 하나 새로운 발견은, 장정일의 아내가 소설가 신이현이라는 것!(까무러칠 정도로 놀라진 않았지만) 책에 FBI 심리분석관, 원래 내가 읽으려고 샀던 책이 아니라 아내가 자기 소설을 쓰는 데 참고하고 싶다면서 보고 싶어했던 책.”(45)이란 문장이 있기에 검색해서 알게 되었다.

 

2권에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프란체스코 알베로니의 에로티시즘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부분(121~124), 정화진의 시 51편을 민음사에 보내며(출간 부탁) 쓴 편지(나중에 장마는 아이들을 눈뜨게 하고라는 시집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211~213), 저자가 쓴 단막극 이디푸스와의 여행(원제: 긴 여행)에 대한 작가의 말(259~260), 최현묵의 연극(끽다거〉) 책자에 실은 작가 초상(269~270) 등의 글도 실려 있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체제에 비판적인 체하는 작가들이 인간을 사랑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111쪽)

기껏 자기가 체험하거나 어깨 너머로 목격한 인상적인 사건을 몇 명의 꼭두각시 같은 화자의 입을 빌려 나열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믿고 있는 작가에게 어떻게 소설을 가르칠 것인가? 막막하지만, `내가 살아온 날들을 책으로 묶으면 열 권, 스무 권은 될 거다`고 마음속 깊이 벼르면서도, 결국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사라져 간 노인네들의 절망만이 소설이 뭔가를 가르쳐 줄 수 있지 않을까? 노인네들은 생각했다. `내 삶은 그 누구의 삶과도 비교되거나 교환될 수 없을 만큼 유일무이한 것이다. 하므로 내 삶을 온전히 담기 위해서는 똑같이 유일무이한 글쓰기가 고안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안되지 않는다면, 나는 내 삶을 표현할 수 없다. 유일무이한 내 삶을 어떻게, 누구나 해왔던 글쓰기의 방식으로 담아낸단 말인가!` 노인네들을 절망하게 하고, 절필하게 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절필을 요구하지 않지만, 작가에겐 절필에까지 이르는 절망이 필요하다.(199쪽)

고통은 인간 존재의 출발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으로 절을 짓는다.(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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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6 0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은 극작가이기도 하지요. 희곡도 작품성 뛰어납니다.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한국에서 학력 문제로 가장 시달림과 폄하를 많이 당한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토록 더 공부에 치열했던 거겠죠. 시대에 더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김기덕 감독과 오버랩이 되기도 하는데, 장정일이 프랑스에서 시나리오 공부도 해서 김기덕과는 또다른 영화를 만들어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작업을 하지 못한 건 아쉬워요.

cobomi 2015-05-16 03:5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왠지 아쉽네요.
희곡도 찾아 봐야겠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낭만인생 2015-05-16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 얼마 전 서민교수가 서두에서 장정일을 유난히 부러워 하더군요. 그에 비해 자신은 무명이라고! 그럼 우리는 뭐죠? 글 잘 읽었습니다. 1은 읽었는데 2는 아직 읽지 않아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런데 절판이라 구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cobomi 2015-05-16 23:0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최근 여러 곳에서 `장정일` 이름 발견했어요. 그러던 차에 스승의날까지 겹쳐서 다시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ㅎㅎ 중고 장터까지는 못 살폈는데 아마 있을 것 같습니다. 즐독하세요!

cyrus 2015-05-1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서평집을 서평으로 쓰는 것이 어렵더군요. 남이 쓴 서평에 대해서 따지는 듯한 입장이 되는 것 같아요.

cobomi 2015-05-16 23:15   좋아요 0 | URL
서평집을 서평으로 쓰는 건 어색하고 쫄리긴 해요. 하지만 그것도 책은 책이니까요.
전 저자한테 따지려 한다기보다 책에 대해서 따지고 싶을 땐 꽤 되는데요? 이 때 따진다는 건 읽다가 혈압 오르는 책... 이를테면 모양만 한국어일 때... 내용이 빈약하다 못해 읽을 거리가 없음에도(저자가 같은 내용을 다른 제목의 책으로 반복 출간할 때 포함) 책값이 비쌀 때... 심각한 오탈자 같은 거 말이죠ㅎㅎㅎ
또 저자의 주장에 반박할 거리가 있을 때, 논리가 이상하거나 빈약할 때도 소심해서 속으로 혼자 따져요 ㅋㅋㅋㅋㅋㅋㅋ
 
장정일의 독서일기 1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1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 이건 꼭 읽어볼 책이라는 말을 먼저 하자.  

그리고 독후감.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달력에 표시된 각종 기념일과 행사를 체크하다가 문득 스승의 날에 눈길이 머물렀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이건 순수한 의미에서다) 국어선생님이 있었다. 난 가끔 내가 읽은 책에 대해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곤 했다. 뭔가 그 나이 때 아이다운 허세 같은 거였다. 그저 내 얘기를 듣기만 하셨던 선생님께서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읽어 보렴."

 

당장 책을 샀는데(허세였다), 무려 다섯 권이었다.(당시 5권까지 출간)

학생이 가진 돈으로 장만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수능공부에 필요하다는 둥 온갖 구실로 엄마의 주머니를 털었던 듯하다. 열심히 읽었고, 내 기억 속에 장정일은 '책을 많이 읽는 똑똑한 아저씨' 로 남았다. 그 시절 독후감 공책을 찾아 보면 <장정일의 독서일기>에 대한 글도 있을지 모르겠다. 보나마나 민망한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다시 읽다니?

몇 개월 전에 알라딘 중고 매장에 책을 잔뜩 들고 갔는데(팔려고), 그 속에는 <장정일의 독서일기> 다섯 권도 끼어있었다. 놀랍게도 "밑줄 그은 부분이 5페이지가 넘어서" 팔지 못했다.(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기준이다.)

그때 팔 수 있었다면, 그래서 팔았으면 지금 난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을 것 같다.

 

국어선생님…. 스승의 날에 찾아뵙지는 못할 것 같고, 대신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다시 펼쳤다. 읽다가 이따금씩 선생님이 떠올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나한테 왜 이 책을 읽으라고 하신 건지 십 여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 것 같아서. 아마도 내 허세가 우스꽝스러우셨던 거 아닐까 싶다.

그땐 아마 대충 읽었을 것이다. 하버마스니 사회주의니 마르크스니 그런 것도 몰랐을 때고, 에로티시즘이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백지상태였으니까.(지금이라고 눈에 띄게 나아진 것 같진 않지만.)

 

그런데 이게 정말 20년 전에 나온 책이야? 등장하는 책의 제목이나 출간년도, 상영 영화, 김영삼, 새마을호(지금 같으면 KTX를 탔겠지) 얘기가 나오는 걸 봐서는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선 책 참말로 많이 봤다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핵심을 쉽게 전달(전달하려는 목적이 아닌데도)하는 글솜씨에 놀라고, 저자만의 명쾌한 해석에 또 놀란다. 놀람의 연속이다.

얼추 계산해 보니, 이 글을 쓸 무렵 저자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와 엇비슷하다. 근데 난 왜 이 정도 수준인지에 대해 살짝 심각해졌지만, 대신 나는 저자보다 술을 더 열정적으로 마셨을 거라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본다.(ㅠㅠ)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아, 나도 독서와 글쓰기에 더욱 매진해야겠어!'라고 마음을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그걸 바라셨을까?) 애석하다.

 

졸업한 지 10년도 넘은 제자에게 여전히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를 다시 읽어야겠다.

6, 7권도 중고로 구입했으니 부지런히 읽자.

 

* 그런데 이거 시리즈인데, 한 권씩 독후감을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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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13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나 2권 이상의 책에 관한 서평을 쓸 때 난감합니다. 서평을 안 쓰면 시리즈 전체를 다 읽어도 읽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cobomi 2015-05-14 18:43   좋아요 0 | URL
공감! 저는 서평이라기보다 독후감인데요, 안쓰면 괜히 찜찜해요ㅎㅎ 그냥 읽고 치운 느낌이죠.
 
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로쟈의 <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내친 김에 <아주 사적인 독서>를 읽었다.

그 두 권은 같은 날 주문한 책으로, 내 나름 로쟈 컬렉션이다.(민망하지만)

 

우선 <책을 읽을 자유>를 읽을 때 속도가 더디었던 반면 이 책은 수월한 편이다.

둘은 내용이나 분량 자체도 다르지만 책장을 넘길 때 종이 두께도 다르다.

먼저 읽었던 책은 종이가 얇아서 두 장씩 넘어가곤 했는데 이 책은 종이가 두껍다.

별로 안 읽었는데 상당히 읽은 것 같은 두께감 때문에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는 줄 알면 출판사 직원들이 더 섬세해지려나.

 

일곱 편의 고전 문학작품을 저자가 어떻게 읽었는지 보여주는 게 책의 주내용이다.

원래는 강의한 내용인데 그것을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처음 제목을 보고서 '그럼 공적인 독서는 뭐지? 공적으로 기여하는 독서인가?' 생각했다.

나처럼 제목에 의문을 가지는 독자가 많았을까.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적인'이란 말이 여러 가지 뜻을 가질 수 있지만 여기서는 '남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독서'라는 의미로 쓰고자 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교양으로서의 독서는 '읽은 척 매뉴얼'을 참고하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주 사적인 독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위한 독서를 가리킵니다. 나의 관심과 열망, 그리고 성찰을 위한 독서입니다."(6쪽)

마치 공적인 독서와 사적인 독서가 흑과 백처럼 확연히 다른 듯이 말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개념 설정을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독서는 남에게 뽐내기 위한 독서와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독서 그 중간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대화를 나누고(논의의 토대) 소통하기 위해 읽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기도 하니까. 그 둘이 분명하게 나뉘는 것 같지는 않다.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마담 보바리>, <주홍 글자>, <채털리 부인의 연인>,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 손님> 7편이다.

너무나도 많이 들어 봐서(<석상 손님>은 빼고) 마치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다.(저자는 '너무도 유명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란 표현을 쓴다.)

나도 한 두 권은 확실히 읽었는데 나머지는 긴가민가하다. 어린이 시절 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중요하지도 않은데 왠지 세어보게 된다는…)

 

이런 종류의 책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읽은 책도 다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마담 보바리>와 <주홍 글자>, <햄릿>이 그랬다.(확실히 읽은 책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니, 엠마가 저런 짓을 한 걸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거였어?!'

'헐, 저런 게 있었나?'

속으로 이 비슷한 말을 주절거리며 읽게 된다. 결국 내가 읽은 책이 진짜 저 책이 맞는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만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바쁜 유형이다.

드라마를 보며 등장인물의 대사나 행동, 사건에 일일이 흥분하고, 마치 자기 일인 듯이 온갖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잘 안 본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이유도 읽고 나면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좋게 말하면 몰입도가 뛰어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빠져들어서 현실과 이야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거다.

그런데 성찰이라니?! 내가 문학작품을 읽고 과연 성찰할 수 있을까?! 내가 '아주 사적인 독서'를 할 수 있을까?!! 로쟈사마처럼 저런 해석을 할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다.

 

로쟈가 펼쳐 보이는 고전 작품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난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물론 저자의 훌륭한 해석과 빼어난 글솜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나도 이제 고전 작품을 로쟈처럼 읽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로쟈사마에게도 몰입하다니, 난 진짜 몰입능력이 좋은 것 같다) 

그러한 흥분을 가라앉히기 싫어서(열정은 좋으니까) 책을 다시 훑어 보는데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 나온다.

 

"(…) 저는 고전을 최대한 우리 가까이에 갖다놓고 싶었습니다. (…) 작품이 갖는 보편성을 발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발견은 자기 발견의 구문으로 이루어집니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라는 식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 안의 햄릿과 돈키호테와 파우스트와 돈 후안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질 때, 고전 독서는 시간이 남아돌 때나 가능한 독서가 아니라 필수적인 독서로서 의의를 갖게 될 것입니다."(7~8쪽)

 

난 저 부분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처음 읽을 땐 왜 몰랐을까?) 난 이미 저자가 말하는 독자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햄릿이다', '나는 돈키호테다', '나는 보바리다' ……

날카롭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읽을 때 난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주인공(또는 꽂히는 인물)인데.

 

문제는 내가 작품 속 인물과 완전 합체(?)되던가 아니면 아예 따로 놀던가 하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내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달까.

포인트는 '자칫 진부해보일지도 모르는 주인공들의 물음에 나의 물음이 포개지'도록 하는 것에 있다. 아, 소중한 깨달음.

이야기, 해석, 정보 게다가 깨달음까지 빼곡하게 담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도 읽고 싶어졌고, 이미 읽었던 책들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책에 나온 저자의 가르침(?)이 도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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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12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부터 아직까지도 돈키호테입니다ㅎ 앞으로도 바꾸고 싶지 않고요.
누군가, 그건 틀렸어. 하려나요ㅎ

cobomi 2015-05-13 06:01   좋아요 0 | URL
돈키호테요?! 틀렸을 리가 있나요. 그냥 다를 뿐이죠 ㅎㅎ
전 아직 안 읽어 봐서 깊이 와닿는 느낌은 없지만, 돈키호테에 대해 들은 이야기들에 따르면... 이상주의자? 시대착오적 인물? 이런 정도의 평이었던 거 같네요.
아무래도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