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반역이다 -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
임지현 지음, 소나무 발행.

작년에 박노자 선생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민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1999년에 나온 책을 2001년에 사서 2004년 말과 2005년 초에 걸쳐 읽은 셈이다. /,.|

나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회비만 내는 회원’이다. 작년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어렵게 추진해온 친일인명사전 발간 사업에 국가 예산을 배정받은 기회가 생겼는데, 그 예산을 국회가 몽땅 삭감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성금을 냈고, 그 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지속적인 후원이 필요하다며 만인 봉화 운동을 벌일 때 회원으로 가입했다. 내가 민족주의자라서가 아니다. (난 애국애족을 실천하시는 분들이 발표하는 글에 동원된 표현을 보고 거북할 때도 많다.) 하지만 ‘민족’으로 통칭할 수 있는, 내가 속한 사람들 집단(말하자면 공동체)이 외부의 압박 때문에 풍요로운 문화를 잃어버리고 자유로운 성장 가능성을 제압당했는데, 그때 그 외부 세력에 빌붙어 앞잡이 노릇하며 이웃들을 착취한 대가로 잘 먹고 잘 살던 인간들이, 해방 후에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지 않고 도리어 이웃들을 기만하며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자신의 업적인 양 도둑질했다. 그래서 우리 ‘민족’ 사회가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상류층은 대대로 도둑 집안이고, 정직하게 사는 건 바보들이나 할 짓이며, 짓밟히지 않으려면 큰 도둑의 망을 봐주고 뒷돈을 챙기는 작은 도둑이 되어야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렇게 거꾸로 되어버린 질서의 시작을 밝히려고 애쓰는 곳이기에, 내가 내 발로 서서 제정신으로 잘 살 수 있으려면 이런 곳이 잘되어야 한다. 이것이 민족허무주의자에 가까운 내가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된 사연이다.

하긴 월요일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며 애국 애족하는 마음을 고취하는 교육을 받아온 내가 진정 민족허무주의자가 될 수나 있을까? 우리 사회에 보이는 배타적 가족주의, 혈연주의, 지역주의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생명보다 속도를, 자율권보다 금전적 이득을 더 추구하는 태도에 나 자신 물들어 버린 것을 끔찍하게 생각하면서도 한국인을 모욕하고 비웃는 외국인 소식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열이 오르지 않는가? 외국 그림책만 들입다 수입하는 국내 굴지의 출판사에 대해 어린아이 적부터 외국적인 감성에 맛들이게 해야 해? 하며 분통을 터뜨리지 않는가? (그건 눈앞의 이익만 보고, 풍요로운 문화를 계발하는 소임을 소홀히 하는 출판사에게 화가 나서. --a)

사회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나는 ‘민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민을 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를 낳고 키운 것이 한국 민족의 문화이니까.
 
그럼 ‘민족’은 그렇다 치고, ‘민족주의자=애국자=좋은 편’이라는 도식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서유럽이나 러시아에서 대놓고 “민족” “애국심”을 들먹이면, 적어도 지식인 사회에서는 파시스트 아냐? 하며 위험하게 볼 것이다. 무리의 안쪽을 사랑하다 보면 바깥쪽에는 등을 돌리기 쉬우니까. 박노자 선생이 2002 월드컵 때 깜짝 놀랐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로서 가해자였던 민족과, 식민지 경험이 생생한 피압박 민족에게 “민족”이니 “애국애족이야말로 내가 살 길”이라는 말이 동의어일 수 있을까? 작년에 쿠르드족 아이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영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을 볼 때는 ‘그래서 나라가 있어야 해’ 하는 생각이 들어 나 스스로 섬찟했다. 그러나 나라가 없어 이등 인간 취급을 받는 민족이 나라를 세우겠다고 총을 드는 걸 누가 뭐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모든 민족이 다 개별 국가를 세울 필요는 없을 터이다. 다민족 국가로서 평화로이 나라를 유지해온 스위스 같은 나라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애국은 애족과 동의어가 아니며, 애국이 “국가권력에 충성하는 것”인지 “현재의 권력자를 보위하는 것”인지 “나라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도모하는 것”인지도 역시 경우에 따라 다를 터이다.

그리고 피해자였다고 해서, 피해를 받은 만큼 가해해도 되지는 않을 터이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주장에 파르르 떨면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압박을 비난하면서도 “만주 땅은 우리 땅”이라고 참으로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많다. (설령 임나일본부설이 옳다 하더라도 일제의 침략이 정당해지는 건 아니잖아? 유대민족이 수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다 하더라도 지금 그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쫓아내는 게 옳은 일은 아니잖아? 마찬가지로 만주와 연해주가 고구려 땅이었다 해도 그 땅을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옳지 않잖아?)

그래, ‘민족’의 정체는 한 가지가 아니고, ‘민족주의’의 얼굴도 가지가지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의 1부의 요지는 바로 그것이다. “민족 개념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은 지구상의 각 민족이 겪은 역사적 경험만큼이나 다양”(24쪽)하고, “민족주의는 특정한 사회적 교리를 완강하게 고수하기보다는 역사적 변화에 열려 있는 이데올로기”(24쪽) “사회적 총관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방향과 내용을 수정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역사적 변화에 열려 있는 운동”(25쪽)이다.

그렇다는 건 어쨌든 ‘민족주의’가 다양하게 변신하면서도 사라지지 않고 실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민족 단위의 정치, 경제, 문화가 대다수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리고 박노자 선생 말대로 자신이 속한 생활 공동체에 애착심을 갖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에.
 
결론. 민족은 실체가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절대선이 아니다. (참 단순하기도 하지. -_-)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이 책은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논리를 전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해주진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쓴 글이 아니고, 지은이가 다양한 지면에 발표한 논문을 모은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1990년에 동구권이 해체되며 민족주의가 대두하는 걸 보고 쓴 글도 있다. 15년 동안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그래서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 “한국사 학계의 ‘민족’ 이해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 이루어진 <1부 민족주의 : 운동사와 관념사>(주 내용이 민족 개념과 민족주의에 대한 고찰)와 “사회주의 거대 담론의 틈새 읽기” “이념의 진보성과 삶의 보수성”으로 이루어진 <4부 에필로그-이데올로기의 속살들>(현실 좌파 세력의 치부와 희망적인 가능성을 살펴봄)은 재미있고 유익했지만, 2부와 3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한참 뜨지만, 아마 좌파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그러한 논문들을 한 권으로 묶을 수 있었으리라.

<제2부 맑스주의와 민족주의>에서는 맑스주의자(로 자처했던 사람)들이 민족 문제를 어떻게 봐왔는지 흐름을 정리해,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럽의 사회주의자들도 책상 위에서 남의 민족 운명을 이리저리 좌우하려 든 건 유럽 제국주의자들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왜 논쟁을 벌일 때 진짜 문제가 무엇이고 그 해결책은 또 무엇인지 따지기보다, 반애국주의니 민족허무주의니 교조주의니 기회주의니 경제주의니 정치주의니 하고 서로에게 딱지를 붙이기 바빴을까? 80년대 한국의 운동권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제3부 동유럽의 민족주의>는 지은이의 전공이 서양사인 만큼 근현대 동유럽에서 민족주의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정리한다. 학교 다닐 적에 교과서 퀴리 부인 이야기가 나오자 선생님이 폴란드와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을 자주 받은 점이 닮았다고 했는데, 이 책을 보니 폴란드와 우리나라가 닮긴 닮았나 보다. 외세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 봉건 귀족의 위상과 변신 양상이 ‘양반’과 비슷해서다. 폴란드의 봉건 귀족은 국수주의에 가까운 우월의식을 가지고서 외국에서 배울 거라곤 없고 다만 프랑스 문화만이 예외라고 생각했다.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을 통합하여 민족적 전망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도 자신들만이 민족문화의 주체라 생각했고, 자본주의의 물결이 몰려들자 부르주아로 변신했으며(그래서 폴란드 부르주아는 보수적이라 서유럽 부르주아가 해낸 것 같은 사회 진보를 이룩하지 못했다), 노동자 농민 운동이 거세어지자 도리어 위협을 느끼고 외세에 협력했다. 구한말 양반의 변신 과정과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조선시대 양반들도 중국만 예외이고, 다른 세계는 다 오랑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과연 무슨 뜻일까? “민족주의는 반역의 이데올로기여야 한다(그러니 국수적인 민족주의는 꺼져라)”? “민족주의는 혁명 세력에게는 적이 되는 이데올로기다(그러니 배격해야 한다)”? 그냥 심오한 뜻 없이 멋을 부린 제목인지도 모른다(아마 그런 것 같다). --;


*제 글을 보고, 이 책을 편집한 분이 아래와 같은 답변을 하셨습니다. *

그 책의 편집자로서 한마디하면... 그냥 멋을 부린 것은 아니라는 말씀. 국내에서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면서 자민족중심주의와 동일하게 쓰이는 민족주의는 역사적 대의에서 반역이란 뜻으로 쓴 말이지요.

물론 이러저러한 말을 생략한 것은 단순한 문장이 갖는 힘을 기대한 측면도 있고... 뿐만 아니라 당시까지만 해도 민족주의는 막연하게 그저 '선'이라고 여겨졌던 측면에 대한 강력한 제동으로서의 이슈 파이팅이라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말씀처럼 중간에 끼여 있는 2,3부는 저로서도 못마땅한 부분이었지만...

이번에 소나무에서 나온 임지현 선배의 책, <적대적 공범자들> 또한 비슷한 맥락의 구체적 현상들을 지적하는 시론들의 모음입니다. 일독까지는 아니지만 한번 서점에서 훑어 보시고 판단해 보시는 것도 좋겠지요. 삼인과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필자의 책들과 크게 다른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서두...

암튼 민족주의에 대한 의식 환기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한적으로 뿌듯하고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아이 2005-02-0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a 무슨 책인지 알아보러 가요.

숨은아이 2005-02-0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