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어머니 여신 : 사라진 여신들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11
장영란 지음 / 살림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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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엔 여성의 모습으로 신의 형상을 빚던 인간이 어이하여 “신”이라면 수염 달린 할아버지를 연상하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책입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빚은 신상이 여성인 이유는, 그들이 믿은 신이 여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인식 범위 안에서 위대한 자연의 신성과 가장 닮은 것은 생명을 낳고 젖먹이는 어머니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다 강력한 군장을 중심으로 한 청동기 문명-계급사회가 도래하면서 신화는 가부장제의 입김을 받아 어머니 여신을 살해하거나, 여신을 어머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최고 남성신의 아내나 누이로 만들어버립니다. 이 책은 구석기 시대의 여신상-메소포타미아 신화-이집트 신화-바빌로니아 신화-그리스 신화를 훑으며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지은이가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이라선지 우리나라나 동양의 신화 속 여신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94쪽짜리 문고판이니 지식 충족 면에선 배부르지 않은 책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수메르와 이집트를 비롯, 여러 지역의 신화를 더 찾아보고 싶은 의욕(! 사놓은 책이나 다 읽으시지? T_T)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도리어 좋습니다.

다만 책의 머리와 꼬리에서는 약간 황당했습니다. 서두에서 지은이는 여신을 철저히 배제한 기독교를 겨냥해, 완전한 신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데 왜 하느님을 “아버지”로, 구세주를 신의 “아들”로만 인식하느냐고 시비를 겁니다. 그 시비 자체에는 동의하고, 또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하느님 아버지를 불러온 기독교인들이 바빌로니아나 그리스 신화를 보고서 태도를 바꿀 것 같진 않습니다. 기독교의 “아버지” 비판과 고대 신화의 변천사는 둘 다 매우 중요하지만, 서로 약간 방향이 다른 이야기인데, 지은이는 두 가지를 다 이야기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맨 마지막 문단도 그렇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결국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긴 여정이었다면, 고대에는 세계로 통하는 통로의 역할을 신화가 주로 담당했고, 중세에는 종교가 그리고 현대에는 과학이 그러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프레이저(J. Frazer)의 말처럼 다가올 미래에는 지금 우리가 예측하기 힘든 또 다른 학문이 과학의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결승점이 없는 목표에 대한 무한한 도전의 과정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멋지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런 결론이 이 책의 어떤 맥락에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 앞 문단, “신화적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는... (후략)”으로 잘 정리되는 듯했는데.

2003년 7월에 나왔습니다. 살림지식총서 011권인 이 책에는 앞서 보았던 [인도신화의 계보], [두 얼굴의 하나님]보다는 별 한 개를 더 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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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2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아시아 여성신화를 추천할게요^^ 며칠 전에 밑줄 긋기에 글을 한참 쳤는데 다 날아갔어요-_-

숨은아이 2004-11-25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그 책 읽으시는 거 보고 보관함에 챙겨뒀어요. ㅎㅎ / 저런. 역시 한글에서 치고 나서 복사해 올리는 방법이 안전해요.

로즈마리 2004-11-2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화와 기독교 신에도 관심이 많으신 듯 하네요. 저도 그쪽으로 관심이 많아요..^^ 비슷한 관심분야를 가진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게 알라딘의 장점인 듯 하네요. 혹시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신의 역사>란 책을 추천합니다. 성서의 신, 이슬람, 유대교의 신, 즉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역사라 할 수 있는데, 아주 재밌고 유익한 책입니다.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장영란 선생님은 신화를 통한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약간 생뚱맞지만 그런 글귀들을 적어 놓으신 것 같네요.

숨은아이 2004-11-2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즈마리님 반갑습니다. 신화와 종교 역사 쪽에 관심은 있는데, 아직 책을 많이 읽진 못했어요. 추천하신 책, 고맙습니다. 보관함에 넣어둬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