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성숙이 어려운 사회상황이 되어 있다. 온몸이 통째로 소속되는 보육기관이 계단처럼 쌓아올려진 형태로 사회기구가 만들어져 있어서 성숙의 모태인 자유로운 경험은 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보육기로부터 다른 보육기로 옮겨질 때에는 지나치게 격렬한 경쟁시험이 부여되어 있는데, 그 '시험'은 관료기구의 특징인 문서주의 원칙에 따라서 미리 서식이 정해진 필기시험이기 때문에 특정한 일면의 능력만을 묻는다.-18쪽
그들 보육기 속에서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지나칠 정도로 일하고 지나칠 정도로 운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직 그 캡슐 속에 들어가 있음으로써만 비로소 작은 안정과 작은 풍요가 보장되도록 되어 있으므로, 근로나 고생의 유무와 상관없이 정신세계에서는 사회기관의 대부분이 보육기화되어 있다. 현대의 압도적인 '중류의식'은 아마도 이러한 보육기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18-19쪽
사물은 원래 사람 쪽의 자의적인 의도를 넘어선 독립적인 타자이기 때문에 물건이라든가 일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불리며 그것과의 만남과 교섭을 통해 우리들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인데, 현대의 '선험주의'는 사물의 그러한 타자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나타나는 문제는 모두 사전에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물건이나 일에 대한 가공할 만한 전체주의!)이므로 그러한 의식의 틀 내에서는 사물과의 사이에 경이에 찬 그리고 고통을 수반하는 상호교섭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20쪽
모든 생활자료를 대량생산 대량유통의 거대 체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에는 '고래 뱃속에' 꼴깍 삼켜져버린 상태라는 점을 (후략).-28쪽
거기서는 세계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물(物)이 아니라 오로지 소비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가상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중략) 물건 목록으로까지 폄하되어버린 세계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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