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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오후 ㅣ 샘터만화세상 4
마정원 지음 / 샘터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이제 스물다섯 살인 젊은 작가가 무작정 튀는 감각과 비관주의(만화 동인지에 흔히 보이는)에 빠지지 않고, 한눈에도 짜임새가 제대로 짜인 듯한 그림(물론 저는 활자 감각에 비해 미감이 덜 발달했으므로 그냥 제 눈에 그렇게 보였단 이야기여요), 몸을 낮춘 시각, 공중에 떠다니는 자아가 아니라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땅에서 소재를 구한 점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만화 한 편을 극영화로 친다면, 아직은 스냅사진 같달까요. (정지된 사진 한 장으로도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저는 만화라 하면 일반적으로 “생동감 있는 대사와 역동적인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야기”로 봅니다.) 진실의 어느 한 측면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긴 했지만, 독자인 저를 “이야기”로 빨아들이진 못했어요. 이 책에 실린 세 단편은, 뒷부분에 나오는 “우리 이웃들” 갤러리-청계천 시장 사람들의 이모저모-의 각각 한 장면을 클로즈업한 정도로 보였지요.
하지만 독자를 살짝 속이는 역동적인 구성을 할 줄 알고, 또 단편마다 깊숙이 찔러오는 장면-“첫눈 내리던 날”에선 송이와 아빠가 있는 병실에 단풍잎이 한가득 밀려드는 듯한 장면이 가장 좋았어요-과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있으니, 다음에 발표하는 작품은 좀더 제 마음을 움직이겠지요.
표제작 "나른한 오후"와 200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만화 부문 초대 당선작인 "과꽃", 그리고 "첫눈 내리던 날" 세 편이 실림. 200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