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품이 되어버린 노동권 2004/06/15 17:56

사치품이 되어버린 노동권


유엔 산하의 국제노동기구(ILO)가 최근 발간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노동자의 절반 정도는 기본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 노동권이란 노동자들이 자주적 조직을 만들어 단결할 권리, 그리고 경영진과 단체로 교섭을 벌일 권리다. 1919년 ILO가 생긴 이래 약 100년 가까이 노동자 권리에 관한 한 세계적으로 동일 기준을 적용하여 최소한 이것만은 모두 지키자고 노력했으나 아직도 절반에게는 그것이 사치품이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브라질, 멕시코, 인도, 중국 등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가장 선진국이라는 미국조차 유엔이 권고한 노동자 단결권 인준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60∼70년대의 한국에서도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가입하여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취급받거나 협박과 폭행, 아니면 해고를 당하는 일이 잦았다. 물론 오늘날도 그런 일이 꽤 있으나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셈이다. 그 대신 그런 사태가 상대적으로 뒤처진 나라로 이동해 버렸다. 즉 80년대 이후 노동자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사회저항이 강화되면서 한국의 일부 대자본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해외 투자를 하면서 보다 유리한 생산입지를 찾아나갔고, 여건이 그렇지 못한 중소자본은 해외의 값싼 노동력만 수입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본들은 기존의 정규직 대신에 비정규직을 대체하여 씀으로써 직접적인 노동비용 효과는 물론 간접적인 노동통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한편, 그간 한국의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이라는 구호 아래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걸음씩 저항을 한 결과, 95년 민주노총의 탄생은 물론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이라는 성과도 거두었다. 동시에 40만명에 이르는 이주 노동자들도 독자적 노조운동에 나섰다. 아직 한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사이에 실질적 연대는 거의 없으나 동일한 문제의식을 얼마나 공유하는가에 따라 상황은 변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미국 상황이다. 미국은 나라 자체가 이주민의 역사로 이뤄졌지만 불과 200년 사이에 세계 최강국으로 행세한다. 그런 나라가 유엔이 정한 단결권 조항조차 거부한다니 말이나 되는가. 최근 선거 국면에서 많은 미국 언론은 2001년 부시 대통령 집권 이래 일자리가 300만개 정도 중국이나 인도, 멕시코 등 해외로 수출되었다고 비판한다. 미국 노총도 일자리의 해외 수출을 높은 강도로 비판한다. 수출된 일자리가 제3세계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따위엔 별 관심이 없이 말이다. 한편 대형 슈퍼나 백화점, 대공장 등에서는 저임의 이주 노동자들이 일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노조와 같은 조직활동 자체엔 별 관심이 없다.

가난한 나라는 가난하기에 아직 노동권이 ‘사치’라고 치자. 그런데 미국과 같이 부자 나라가 되어도 노동권이 사치라면, 과연 무엇을 위해 부자 나라가 되자고, 또 허리띠 졸라매자고 꼬드길 것인가? 한국 자본과 정권이 미국을 본받자고 할까 봐 심히 두렵다. 그러기 이전에 한국, 중국 노동자와 미국 노동자가 서로서로 연대해서 진짜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얘기가 왕성히 나와야 할 터인데. 그래서 노동권이 사치품이 아니라 물이나 공기 같은 필수품이 되어야 할 터인데.

 

 

강수돌 고려대 교수·미국 위스콘신대 객원교수 ksd@korea.ac.kr / 1961년생. 경영학(노사관계)을 공부하면서 돈의 경영학이 아니라 삶의 경영학을 고민하고 있다.

 

=원문=  인터넷 한겨레 2004.6.15.

 

=================================================================

 

서서히 병원노조 파업에 대해 '의료 대란'어쩌고 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노사 모두를 겨냥하는 듯하지만, 찬찬히 들어 보면 화살은 노조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고 ? 혼란, 파업, 대란, 마비 대략 그런 단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 머리 속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것들이고, 근본적인 원인 해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덮어 버리고, 또 무조건 눈에 보이는 원인 제공자를 공격하는데 익숙해버린 사람들 눈으로 볼 때, 결국 뭔가를 먼저 요구한 것은 노조고(조용히 가만히 있지 왜 뭔가를 요구하고 난리야 ? 그래서 원인 제공자 ?), 노조가 파업한 결과 누구라도 불편을 겪게 되었다는 결과(혼란 ? 마비 ?)가 발생하였으니, 현 사태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 - 혼란 ? 을 줄이기 위해서는 노조가 그만 파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어떤 환자의 말을 전하는 것 - 자체가, 이미 노조에게 화살을 겨냥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효~~~ 늘 난 삐딱한가 ? 아니, 지금은 균형추를 맞추어야 할 때. 더 삐딱해야 할 때. 지금까지 우린 공정하다는 말, 객관적이다는 말로 어는 일방에게 몰매를 가해 온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