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 창비교양문고 20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199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004. 1. 4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작과비평사,
1992년 4월 초판 발행, 2000년 12월 12쇄 발행

저는 초판본(컬러 도판은 책 앞에 4쪽 있고 책 사이사이에,
그리고 책 뒤에 부록으로 흑백 도판이 있는 문고판)을 샀는데,
2002년 2월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책 속의 그림과 사진을 모두 컬러로 바꾸어 양장본으로 낸 모양입니다.
개정판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초판본을 보면서 그림 자료가 아쉬웠는데,
그걸 보강한 개정판이 나왔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원제는 私の西洋美術巡禮.
재일교포인 서경식 선생이 일본어로 써서 일본에서 발표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이 책을 산 것은 2002년 1월입니다.
작가나 여행가들이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보고,
서양 미술을 소개하는 책은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 공부하시는 어떤 분에게서,
그런 “비전문가를 위해 미술책” 붐이 일기 전,
서경식 선생이 쓴 바로 이 책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10년 전에 작은 문고판으로 나온 책이라,
요즘처럼 그림 자료를 다양하게 수록하고 화려하게 편집한 책과는
외양을 비교할 수 없지만, 그리고 서양미술 전문가가 쓴 책도 아니지만,
과연 이 책은 그 동안 제가 본 미술관 여행기, 미술 입문서
그 어느 것보다도 독특했습니다.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림을,
어느 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제게 알려주신 그분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서경식 선생은, 아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바로 서승, 서준식 형제의 막냇동생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서승, 서준식 형제는,
조국을 배우고, 독재정권 아래 조국이 나아갈 길을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잠시 북한에 다녀온 일 때문에 간첩 혐의를 받고 옥에 갇힙니다.
그때부터 일본에 있던 그들 가족은 오로지
두 형제를 구해내는 데에 생활을 바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서준식 선생은 1988년 5월 17년 만에 세상에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인권운동가로서 살고 계십니다.
19년 동안 옥중에서 생활한 서승 선생은,
취조실에서 고문에 못 이겨 시뻘겋게 달아오른 난로를 껴안고
죽으려 하다가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습니다.
1990년 2월말 출소한 서승 선생은 지금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신다 합니다.

이런 와중에 무슨 미술 이야기냐고요?
197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 한국으로 먼 옥바라지 길을 다니던
이들 형제의 어머니가 1980년 세상을 떠나고,
3년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난 뒤,
서경식 선생은 누이와 함께 1983년 10월 난생 처음 유럽 여행을 떠납니다.
"부모를 잇따라 잃고 허탈해진 누이에게 기분전환 한번 시켜주자는
생각이 없진 않았으나" ... "기묘하게 경건한 심경"으로.

그리고 "헤엄치듯이, 떠밀리듯이, 단지 관광지를 돌아다닐 뿐"이었던 그는,
벨기에 브뤼헤(브뤼주)에서 그 그림(그게 무엇인지는 책에서 보십시오)을 보고는,
그만 순례를 시작하게 됩니다.
아픔과 피, 절규와 고뇌로 얼룩진, 서양미술 속의 인간사를 찾아서.
그것들을 보며 서경식 선생은 그 아픔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달래고, 스스로를 단련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이 매우 어둡기만 한 듯 여기실지도 모르겠군요.
아니, 아름다운 그림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흐도 이야기합니다.
고흐 이야기는 워낙 많은 책에 소개되었지만,
서경식 선생은 다른 것을 느낍니다.
고흐와 테오 사이에 '창조하는 인간'과 '그것을 감상하는 인간'
사이의 어쩔 수 없는 단절이 있다지만,
서경식 선생은 역사 앞에서 자신을 채찍질한 두 형과 자신 사이의
단절을 그렇게 간단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서경식 선생은 여행하면서 이런 경험도 합니다.
피레네 산맥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방은 프랑스와도, 에스파냐와도 다른
고유한 문화와 언어를 지닌 바스크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이곳을 차지하고자 오래 경쟁을 벌여온 프랑스와 에스파냐는
1659년 바스크 사람들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들 맘대로 이 지방을 나누어 가집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바스크 지방은 피레네 산맥 양쪽으로
프랑스령과 에스파냐령으로 갈리어 있습니다.
서경식 선생은 이런 바스크 지방에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에스파냐를 여행하다가 바스크의 국경 마을인 안다유로 갑니다.
안다유 기차역의 승강장에 바로 국경선이 있습니다.
에스파냐에서 프랑스로 가는 승객들은
기차에서 내려, 에스파냐 출국검사소를 거쳐 프랑스 입국검사소를 통과한 뒤
프랑스 쪽 기차로 갈아타야 합니다. 

에스파냐 출국검사소를 지키던 경찰관은
국적이 "Republic of Korea"라 적힌 서경식 선생의 여권을 보고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께를 슥 자르는 시늉을 하더니
손바닥을 위로 펼쳤다가 아래로 뒤집어 보이며
"남이요? 북이요?" 하고 묻습니다.
'남'이라면 상관없지만 '북'이라면 쉽사리 국경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서경식 선생은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아래쪽으로 돌려 보였다 합니다.
'남'이란 뜻으로요.

"그래, 여기서는 조선이란 무엇보다도 분단국가로서 알려져 있을 테지.
어느 민족의 분단이 그 민족을 식별하는(identify) 지표가 되어 있다니
이게 도대체 뭔가? ......
게다가 나는 방금, 분단된 자기 민족의 어느 한쪽 나라에 자기가
소속한다는 뜻을, 이국의 관헌 앞에서 승인한 것이다. 이 승강장 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저편에 기다리고 있는 기차를 타겠다는,
단지 그것뿐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말한다면, 본시 이곳에 살고 있는 바스끄인들 자신부터가
자기네 땅의 이쪽 저쪽을 왕래하는 데 일일이 두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주변을 오가는 바스끄인 누군가를 붙들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당신네 나라는 스페인인가 프랑스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쁘라도 미술관에서 지겹게 스페인의 독기를
쐰 뒤에 바스끄 땅에 서 있는 내가 무척 과민해져 있는 탓이리라."-95쪽

참고 삼아 적자면, 이 책의 73쪽에 피카소의 게르니카 앞에 선 서경식 선생이
"아까의 그 차마르틴 역에서 본 일본인 샘통이 여기에도 왔을까,
왔다면 도대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말로 "쌤통"이라 하면
"남이 낭패 본 것을 고소해하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에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샘통"이란 말은 그 뜻으로 쓰이진 않은 듯해서,
원래 서경식 선생이 쓴 단어가 무엇인지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에 문의했더니,
아래와 같은 답글이 달렸습니다.

"지적하신 대목은 원저의 ふくれっ面이라는 말을 의역한 표현입니다만,
역자 박이엽 선생님께서 작고하셔서 직접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ふくれっ面'는 '(불만에 가득 차) 뽀로통한 얼굴'이란 뜻이므로
중쇄작업을 진행하면서
원문의 뜻을 독자분들이 명확히 이해하실 수 있도록 바로잡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샘통 대신 "심통"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다음 쇄에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제가 가진 초판 12쇄본에는 이런 부분도 있습니다.
140쪽에 얀 반 아이크의 생몰 연도를 1380~1425년으로 적고는,
144쪽에는
"로베르트 캄핀의 출생년에 대해서는 1375년에서 80년까지
여러 설이 있는 모양이나 사망연도는 1444년이 분명하다.
얀 반 아이크보다 2, 3년 일찍 태어나, 3년 더 살았다는 이야기다."고 했습니다.

로베르트 캄핀이 얀 반 아이크보다 3년 더 살았다면
얀 반 아이크가 사망한 해는 1425년이 아니라 1441년이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천리안과 엠파스로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얀 반 아이크 생몰 연도를 1395?~1441로 해놨더군요.

얀 반 아이크가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사망한 해는 이 책 본문의 문맥이나 백과사전 자료에서나
1441년이 맞는 듯합니다.
개정판에는 생몰 연도 표시를 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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