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디 캔디 애장판 1 - 흑백
미즈키 쿄오코 글, 이가라시 유미코 그림 / 하이북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2002. 5. 20

 

이가라시 유미코, <캔디 캔디>, 전 9권, 하이북스


이 만화를 모르는 사람도 있기는 있겠지요, <캔디 캔디>.
텔레비전 만화영화로도 만들어져, 그 만화는 안 봤더라도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주제가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만화.

일본에선 고단샤(講談社)라는 출판사에서 1975~1977년에 출간했다는데,
고단샤는 꽤 역사도 깊지만 지금도 갖가지 책을 다 내는
아주 큰 출판사지요.

제가 국민학교 다닐 적에, 그러니까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
최초로 소장한 만화책이었지요.
그때 표지에는 한글로 "캔디♡캔디"라고, 가운데 하트가 있었어요. ^^;

국민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쯤에,
매일이다시피 가는 동네 서점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추리소설 따위를 한 권씩 살 수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나를 데리고 가서 책을 사 주었는지
아니면 내가 돈을 들고 가서 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좁은 서점의 서가 앞에서 이 책 저 책 한참 들여다보곤 했던 기억으로
보아 어른이 따라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9권짜리로 출간된 만화 <캔디 캔디>도
그렇게 한 권씩 사서 모았더랬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빌려주다 보니, 한 권 한 권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지요. 오호, 통재라~
만화책으로 먼저 캔디를 본 저는, 그 후 텔레비전에서
만화영화로 할 때는 별로 잘 보지 않았습니다.
책으로 먼저 보고 난 다음에는 영화가 재미없기 일쑤이니까요. ^^;
그리고 왠지 만화영화 속 캔디의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들었답니다.

그리고 10년쯤 뒤... 대학 3학년 때이던가요,
과외를 가르치던 아이에게 캔디 만화책을 빌릴 수 있었어요.
저녁 8시쯤부터 보기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펑펑 울면서 다 보았습니다.

이상한 일이지, 국민학교 땐 캔디를 재미있다고만 생각했지
보고 울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대학 때 보니까,
캔디라는 여자아이의 힘든 삶, 그 꿋꿋한 자세에
눈물이 줄줄 흐르지 뭡니까.
저, 책이나 영화 보고 잘 안 웁니다.

그 후 텔레비전의 어느 주말 프로그램에서,
홍경인이 여장을 하고 캔디로 분해 짤막한 코믹 드라마를 연기했는데,
그때 캔디가 어려운 상황에서 눈물만 훌쩍이고
남자들의 도움을 받아 곤경에서 벗어나는 여자아이로 그려져
화가 났더랬습니다.

캔디는 "울면 안 돼" 하고 다짐하는 아이입니다.
남에게, 특히 남자에게 의지해서 살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 열심히 생활하는 여자입니다.

예쁜 남자들이 포진한 만화, 그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캔디,
이런 도식적인 구도가 분명하긴 하지만,
이른바 '사랑'이 중요한 갈등 구조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되긴 하지만,
누구와 누구와 맺어지는 데 이 만화책의 종결이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도, 인생도 스스로 선택하는 캔디.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났을 때
이른바 '애장판'이라 하여 두꺼운 네 권으로 묶여
<캔디 캔디>가 팔리는 것을 종로 지하상가에서 보고, 샀습니다.
아마 해적판으로 이런 저런 수상한 출판사 몇 군데에서 나온 모양인데,
읽다 보면 중간 중간 몇 장씩 건너뛴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인쇄도, 제대로 된 필름을 가지고 한 게 아니라
만화책을 복사하다시피 해서 그림이 군데군데 뭉개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산 네 권짜리 '애장판' 캔디를 보고,
두 번째로 펑펑 울었습니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그렇게 눈물이 나다니.

그리고 올해 초에, 마침내 <캔디 캔디>가 다시 9권짜리로
나온 것을 알았습니다. 판권을 보니 2001년 3월 출간했더군요.
지난달 9권 전집을 샀는데,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돌려 보고는,
마지막으로 제 손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토요일에 붙잡고 읽었답니다.

이제 나이 들어 마음이 메말라, 울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도. 세 번째.

그런데 울면서도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어요.
이 만화는 배경을 모두 미국이니 영국으로 삼고,
등장 인물 역시 모두 미국이나 유럽의 백인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사고방식이 모두 철저히 일본식이라는 겁니다.

사실 미국이 배경인데도 흑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부터 그렇지요.
만화 종반에 1차 세계대전(1914~1917)이 터지는 것으로 보아
캔디는 1899년쯤 태어나 1910년대를 살아가는데,
1860년대 전반 미국 내전(이른바 남북전쟁, American Civil War를 왜
남북전쟁이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남북전쟁은
6.25 아닌가?) 이후 흑인들은 농촌에서는 농장 노동자로,
도시에서는 공장 노동자로 사회의 하층 계급을 형성했지요.

이건 앵글로색슨계 백인을 동경하는 자세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로지 당주의 뜻에 좌지우지되는 대가족...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 일본의 법률은 가족을 호주제로 묶어 놓아,
호주(그러니까 집안의 주인) 아래에 모든 가족이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종속되었습니다.
그런 일본식 호주제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나라에 들어왔고,
일본은 패전 후 그 법률을 고쳤는데,
오로지 남한에서만 아직 호주제가 그 위세를 떨치고 있지요.
그리고 호주제 폐지가 논의될 때면
전국의 유림이 들고 일어나 우리 고유의 문화를 없애려 한다고
벌떼같이 떠들어대니, 통탄할 일입니다.

아무튼, 아드레이 집안은 윌리엄 '할아버지'의 결정에 따라
모든 일이 좌지우지됩니다. 이 윌리엄이 전면에 나서지
않을 때면 이인자, 에르로이 할머니가 집안을 휘두릅니다.
캔디에게 쏟아지는 다른 가족의 횡포를 막아 주는 건
바로 윌리엄의 이른바 '변덕'이지만,
그리고 윌리엄은 이러한 가부장의 지위에서 벗어나려
애쓴 자유주의자로 그려지지만,
결국 윌리엄은 대가족의 가부장으로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두, 윌리엄의 명령에 꼼짝도 못합니다.

사유제 질서 속에서 어느 나라나
상류층은 가부장제의 질서를 유지한다지만,
이런 극단적인 가부장주의는 극히 일본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의 일본은 법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렇지도 않지만,
아직도 일본 영화를 보면 일본 가정 속 여자의 지위는
여전한 느낌입니다. 뭐, 영화는 현실을 반영할 뿐
진실 그 자체는 아닐지 모르지만 말이지요.

그러나 만화 속 등장인물의 말투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캔디는 왈가닥처럼 굴 때는 다른 남자 친구들에게
반말투로 말하지만, 진지한 자세를 보일 때는
존대말투를 씁니다. 일본어를 잘은 모르지만,
일본어에는 여자 말투와 남자 말투가 따로 있어서,
여자 말투는 공손한 존대말투로 번역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왈가닥인 캔디도 성실하고 진지할 때는 여자 말투를 쓴다는 것...

안소니, 테리, 스테아, 아치는 모두 캔디의 친구인데,
특히 사랑을 느끼는 상대인 안소니와 테리에게 말할 때
캔디는 존대말을 씁니다. 안소니와 테리는 반말을 쓰고!
허허...

그리고 애니나 스잔나는 얌전하고 여자다운 성격이면서
남자에게 접근할 때는 참으로 노골적입니다.
겉으로 활발해 보이는 여자가 도리어 연애 감정에는
솔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내성적이라 잘 나서지도 못하는 여자가
그토록 적극적이라는 데 일본 여자들의 성격을 떠올립게 됩니다.
얌전한 애니와 스잔나가 그런데,
적극적인 악녀 이라이자가 안소니나 테리를 대하는 태도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우리 나라 작가가 지은 만화라면 이렇지 않을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 상황 연출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를테면 멕시코 농장에 팔려 간 캔디가
아드레이 가문의 양녀가 되어 돌아왔을 때,
그 사실을 미리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돌아온 캔디를 보고 안소니, 스테아, 아치는 매우
놀라면서도 반가워하는데,
다음 순간 바로 이 세 사람이 미리 준비된 캔디의 방으로
캔디를 안내합니다. -.-
(소설을 각색하면서 줄거리를 과감히 축약하느라 그렇게 된지도.)

또 종반부에서 데이지라는 잠깐 나오는 여자가 닐에게
"오페라를 보고 콘서트에 간 다음에 미술관을 관람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오페라는 보통 저녁 7시, 8시에 시작해서 두 시간 정도 하는데,
그럼 오페라가 끝난 밤 9시, 10시에 시작하는 콘서트는 뭐며,
그 콘서트가 끝나는 밤 11시, 12시까지 문을 여는 미술관이
어디 있다는 말인지!

만화를 읽는 내내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그런 저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캔디 캔디>가 다시 없을 명작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 만화는 미즈키 교코라는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것이라는데,
1998년인가 원작자 미즈키 교코와 만화가 이가라시 유미코가
캐릭터 저작권을 놓고 소송을 벌였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미즈키 교코는 인물 캐릭터가 소설 속 묘사에 근거한 만큼
자기도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이고,
이가라시 유미코는 인물의 외모 등이 기본적으로 소설에
묘사되었다 해도 그걸 구체적인 형상으로 표현한 것은
만화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라고 주장한다는 이야기였어요.

"원작자 측의 얘기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95년에
'작품을 이용할 경우에는 쌍방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작년에 만화가 측에서 단독으로 도쿄도내에 스티커 사진기를 설치했으며
홍콩에서의 단행본 출판 계약을 맺은 사실이 발각되었다.
또한 복제 원판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모두 원작자의 허가가 없었던 것으로
약 150만엔의 손해배상 등을 요구하여 도쿄법원에 제소했다."
- DSD Today News World, 1998. 12. 4

이 재판의 결과는 알 수 없는데,
azn4.n4.co.kr에 2000. 4. 25자로 올라온 소식은 아래와 같습니다.

"작년 10월 「캔디♥캔디」의 유명 만화가 이가라시 유미코가
자신이 그린 「캔디♥캔디」 캐릭터를 무단으로 배포 및 판매했다는 이유로
원작자 미즈키 쿄코를 고소하여 화제가 되었던 사건의 결과가 3월 17일 발표되었다.

판결의 내용은 미즈키 쿄코가「캔디♥캔디」의 원작자로서
원작에 대한 저작권은 갖고 있지만 이가라시 유미코가 창조한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은 가질수 없으니 향후로는 「캔디♥캔디」의 캐릭터를
무단 판매하는 행위를 금한다는 것.

그러나 이번 판결에 대해 원작자 미즈키 쿄코는
"원작자는 스토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에 대한 컨셉트도 제공하기 때문에
당연히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
3월 30일 도쿄 근교에서 항의 시위를 펼쳐 주목을 끌었다."

흠... 그런데 이 두 작가의 나이는 대체 어느 정도 되었을까요?
책에 태어난 해는 밝히지 않고 생일과 별자리만 나와 있네요.
이가라시 유미코는 1970년에 데뷔했다,
미즈키 교코는 열여덟 살 때 주니어 소설 신인상을 수상해 데뷔했다,
이 정도만. 별자리는 왜 알려 주는 거지?


****

현재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면
9권짜리 <캔디 캔디>는 안 나오고 5권짜리 애장판만 뜨며,
그나마 모두 품절이군요. 아쉽다.-200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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