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은 녀석들을 위한 동화 - 북아뜨리에 13
쟈끄 프레베르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87년 6월
평점 :
절판


2002. 3. 16

 

[착하지 않은 녀석들을 위한 동화]


요즘은 서점에서 나갈 시간이 별로 없어 인터넷 서점에서
보내오는 안내 메일을 보고 이 책 저 책 찜해 놨다가
한꺼번에 주문할 때가 많습니다.
책을 넘겨다보고 사지 않으니 그림책 같은 경우는 속아서 사는
일도 생기지요. ^^; 뭐, 나쁜 책을 잘못 샀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예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책이 오더라는 말씀입니다.

책을 직접 살펴보고 살 수 있다는 점말고도 오프라인 서점의 장점은
또 하나 있지요. 그 전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충동구매할 수 있다는 것.

이 책, [착하지 않은 녀석들을 위한 동화]도 98년 여름,
서점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걸 제목에 끌려 꺼내 보고는
사버린 책입니다.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 지음, 박혜영 옮김.

고려원에서 1987년에 나온 책입니다. 108쪽짜리로,
3000원이군요.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 보니 아직도
살 수 있습니다.

원제는 Contes pour enfants pas sages. 1977년에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번역했다는군요.
이 책에는 짤막한 이야기 여덟 편이 실려 있는데,
착하지 않은 녀석들을 위한 동화라기보다는
'예쁘고 선하고 부지런한' '인간'이 언제나 승리한다는
동화를 지어내는 위선적인 백인 어른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타조>는 페로의 동화 <엄지소년>을 뒤틀어버린 이야기인데,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같이 기존 동화의 관점을
정치적으로 전복해 보고자 했다기보다는
짓궂은 장난꾸러기처럼 타조 같은 엉뚱한 동물을 등장케 해
갑자기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끌어갑니다.

프랑스 사람 페로의 동화는 그림 동화와 같이
우리 같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도 점령했더랬지요.
<엄지소년>은 바로 부모가 너무나 가난해 아들 일곱 명을
숲 속에 버리자, 막내인 엄지소년이 기지를 발휘해 집을 찾아가고,
또 사람을 먹는 '오그르'란 인종을 골탕먹이는 이야기이지요.
(이 책 뒤편에는 친절하게도 페로의 <엄지소년>이 같이 실려 있습니다.)

17세기에 민담을 정리한 페로의 동화는
19세기에 독일 사람 그림 형제가 정리한 동화보다
더 끔찍한 것 같아요. 아마 원래의 민담은 그보다 더 끔찍했겠지요.
페로도 역시 민담을 나름대로 점잖게 각색한 것이지만,
후대에 훨씬 더 점잖고 우아하게 각색한 그림 동화보다 페로의 동화가
더 원형에 가까울 것입니다. 페로와 그림의 동화는 20세기 들어
정신분석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만, 그 원형인 민담은
상징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당시 아이들의 생활 환경을
사실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는지도 모른다고,
문학과지성사의 [고양이 대학살]이라는 책에 보면 나옵니다.

부모는 굶어죽을 지경이 되면 자식을 버립니다.
그리고 양고기, 송아지고기, 돼지고기가 충분히 있는데도
사람의 아이를 잡아먹겠다는 '오그르'는 어떤 사람들을 말할까요?

[착하지 않은 녀석들을 위한 동화]의 다른 이야기들은
첫 번째 이야기와 같은 패러디 동화가 아닙니다.
영양, 낙타, 바다코끼리, 기린, 말, 사자, 당나귀가 주인공인데,
<우리 속의 어린 사자> 이야기와 같이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사자의 관점으로 우리 밖의 인간들을 구경하지요.
자유와 조롱. 그것이 이 책의 정신입니다.

자크 프레베르는 1900년에 태어나 1977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당나귀'라는 말을 '멍청이'에게 욕할 때 쓰는 모양인데,
당나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인간이 그런 욕을 할 권리는
없다는 거, 지금부터 30년도 더 전에 이 사람은 알았군요.

***

오늘 검색해 보았더니 이제는 이 책을 서점에서 살 수 없군요.
헌책방에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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