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연말 결산을 보면서
지난 주의 무한도전은 '무한 EXPRESS' 라는 에피소드로, 무한도전 멤버들이 한 해동안의 감사를 담아 달력을 손수 배달하는 내용이었다.
택배 하나 때문에 시간을 세어가며 기다려 본 사람들, 택배 하나 때문에 온 동네를 휘저으며 '고객님' 찾아 헤매고 교통체증에 시달리고 욕까지 먹으며 하루 10시간 이상 고단한 생활을 하는 기사님들 모두에게 공감 200배였던 에피소드. 달력을 받고 환하게 웃음짓던 사람들의 얼굴만 봐도 저절로 내 맘까지 푸근해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 사람 사는 게 이런 거지, 달력 하나 받고 이렇게나 좋아하는 우리들이지, 아, 역시 무한도전 ~ ! 사랑해요, 무한도전.
난데없는 무도빠 고백으로 서두를 시작하는 이유는, 웬디 님의 한 해 결산 페이퍼를 보고서야 '앗, 이런 서비스가 있었지' 새삼 깨닫고 나도 해보았기 때문. 해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집 3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 모든 택배 기사님들께 새삼 고마웠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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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내 글은 재미가 없나 봐. 왜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지?"
나는 대답했다.
"아, 네 글은 정말 재미있어. 그런데 선뜻 댓글을 달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뿐야."
음, 그런데 난감한 것이, 그 어려운 부분이 어떤 점인지 나 또한 세세하게 말할 수 없었다.
세세하게 말할 수 없기는 하지만 어렴풋하게 알 수는 있다.
거칠게 구분하자면 세상에는 약 네 가지 정도의 글이 있다.
1. 글이 정말 좋은데, 추천은 마구 누르고 싶지만 차마 댓글이 안 써지는 글.
2. 글이 좋고 댓글도 막 쓰고 싶은, 그러니까 함께 수다를 떨고 싶은 글.
3. 글은 그냥 그렇지만, 댓글을 쓰며 함께 놀고 싶은 글.
4. 글이 별로라서 추천도 댓글도 안 하게 되는 글.
으음, 쓰고 보니 내가 4번의 글을 많이 썼겠구나 - 아흑.
아무튼지간에 1번의 유형은 댓글 수에 연연하지 않으셔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벅찬 감동을 댓글로 어지럽히기 싫은 독자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있다는 말씀.
내 통계를 보면, 올해 알라딘 생활을 열렬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럭저럭 책을 읽었지만 전보다 리뷰를 많이 쓰게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땡스 투나 추천도, 리뷰보다는 간단한 소감을 적은 100자 평이나 페이퍼 쪽에 더 많은 점수가 나왔다. 아마도 점점,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일이 조심스러워지는 모양이다.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 관련 페이퍼에 가장 많은 분이 땡스 투를 눌러주셨고,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 대한 리뷰에 가장 많은 분이 댓글을 달아주신 걸 보면, 내 진심은 어느 정도 통한 것 같아 기쁘다.
댓글을 가장 많이 올려 주신 분은 '네오' 님이다! 그런데 네오님, 요즘 어디 가셨어요? ㅠ 돌아오세요 ~
다음은 역시 우리의 다락방 님! 다락방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왜 대단한지는 비밀, 나중에 알려드릴 기회가 있음 알려드리죠. 하지만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겁니다. 헤헤.
3위는 비밀, 4위는 굿바이님, 5위는 에디님!
올해 알라딘에서 개인적으로 위의 2번에 해당하는 글을 제일 많이 써주셨다 생각하는 분이 굿바이 님인데, 내게도 댓글을 많이 달아주셔서 역시 참 기쁘다.
그리고 오, 에디님, 제게 이렇게 은근히 댓글 많이 달아주셨다는 걸 잊고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요즘 바쁘신가 봐요. 엉엉, 페이퍼 좀 자주 써주시지. 에디 님의 그, 묘하게 냉담한 듯 다정한 듯 경계를 넘나드는 글이 그립다고요.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글은 '우린 될 거야(제발)' 이라는 제목으로 쓴 페이퍼 - 그러니까 10.26 서울 시장 선거 전날 쓴 글이다. 올 한 해 가장 마음 졸였던 날로 기억한다. 원래 모든 세상사에 무디고 무심하기 짝이 없는 내가, 이토록 마음을 졸였으니 명박 정권 정말 대단하달 밖에.
내년엔 또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계속 책을 사고 읽고 쓰고 또 다른 서재의 글에 댓글을 달 것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분명하다는 점에,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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