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 - The Secret in Their Ey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음악을 꼭 올리고 싶었는데 어찌 된 셈인지 html 입력이 안 되네요. 히융. 그래도 들어보고 싶은 분은 여기 클릭. 

장면 1. 

월요일 오후, 3시30분, 사람 없는 극장에서 큰 스크린을 마주할 호사를 누리려고 예매한 시각. 뭉기적거리며 깜박 졸기도 하다가 조금은 급하게 집을 나섰다. 없는 시간에 커피는 또 어찌나 마시고 싶은지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며 종종걸음 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씨네큐브로 걸어가는데, 척 봐도 '도를 아십니까' 포즈인 청년이 나를 가로막고 '직장인인지 학생인지'를 묻는다. '이봐요, 나는 직장인도 학생도 아니지만 지금 안 보면 크게 후회할 것 같다는 영화를 보러 간단 말이요, 그러니 매우 바쁩니다!' 라고 하지는 않고 맨 뒷 말 '매우 바쁩니다'를 외치고 잰 걸음을 다시 옮겼다.  

(커피를 마셔두기는 참 잘했다, 영화 속에서 어찌나 커피 한 잔 하자는 대사가 자주 나오는지. :) 

장면 2. 

나는 어떤 영화든 우선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중하기 힘들다. 이 영화의 시작 음악은 내 가슴을 이상하게 뛰게 만든다. 바깥까지 들릴 정도로 쿵 - 쿵 - 왜 이럴까. 아주 유니크한 음악 사용이 아닌데도, 사연을 잔뜩 담았지만 숨 죽여 겨우 몇 마디 말 밖에 못 내놓는 사람 같은 음악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 때문에 뛰기 시작한 가슴은 끝나는 순간까지 평소보다 높은 떨림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아 - 오랜만이다, 이렇게 오래 뛰는 가슴)

장면 3. 

영화를 보는 중간에, 왜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기가 힘들다고 한 건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다른 이야기를 빼놓는 것이 마음에 잔뜩 걸려서 그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버리자니 각각의 이야기가 지닌 아름다움을 약간 훼손하는 느낌도 든다.  

장면 4. 

중간에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쓴다. 나는 주인공 남자보다 그의 친구 산도발이 좋다고 쓰고, 이런 영화는 충분히 대중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데 왜 홍보를 그 정도로 밖에 못했을까 라고 쓰고, 열정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고 쓰고, 사랑...그래, 세상에 널리고 널린 사랑에 대해 또 쓴다. 

장면 5. 

하루가 지났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사랑이 두렵고, 사랑만으로는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세상이 두렵다. 그래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두려움에 단 한 글자 A를 표기하는 것만큼 간단하지만 실천하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용기를, 끊임없이 내면서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그래야 내가 '고를 수 있는' 기억이 차곡차곡 쌓일테고, 그래야 이 어지럽고 미친 세상에서 버틸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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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1-3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번에 대해서는 두려움과 사랑이 A 자 하나 차이라는 걸, 영화를 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는 생각을, 이 글을 읽으면서 막 하게 되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말은, 저는, 이 영화를 봐서,

뿌듯하다는 겁니다, 치니님.

좋다고 말한 영화를 정말로 좋게 봐줘서 고마워요.(어쩐지 감독모드, 어쩐지 배우모드)

치니 2010-11-30 14:4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참 대단해요, 다락방님이 좋다고 하면 안 보고 못 베기는 심정을 만들고야 마니. :)

네, 5번은 스포일러일 수도 아닐 수도, 보지 않은 분들도 어렴풋이 이해하시겠지만 봐야만 그 맛이 훅 ~ ㅎㅎ

아웅, 저는 막 스페인어 배우고 싶어져서 큰일이에요. 공부도 디게 싫어하는 주제에 이거 참 난감.

굿바이 2010-11-3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 참 좋았죠?^^
그나저나 영화를 함께 봤던 H군에게 그대의 열정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평화라고 하더라구요. 미친 세상을 버티는 한국형 산도발과 함께 있는 기분이었답니다 ㅎㅎㅎ

치니 2010-11-30 16:24   좋아요 0 | URL
네! 오랜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음악이었어요. 요즘은 이상하게 음악도, 대충 흘려듣게 되어서.
열정이 평화인 분, 한국형 산도발인 분과 함께 보셨다니, 우와 ~ 감동을 나누기에 가장 적절한 파트너였네요.
산도발, 아흑, (대담하게 스포일러) 전화 받을 때마다 다른 장소로 말할 때 어찌나 귀엽던지요!

레와 2010-11-30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까지 별다섯의 리뷰를..!!!
디비디 쬐끔한 화면말고 저도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이 영화를 보고싶어요.
지금 못 견디게 보고싶네요. 이 영화. (어쩔..;)


치니 2010-11-30 19:46   좋아요 0 | URL
아, 설마 레와님 계신 곳은 상영 안하는 거? 흑, 그렇담 정말 어쩔;;

Kir 2010-11-30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매일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커져가는 기대치만큼이나 후폭풍이 두려워지는군요^^;
이 음악처럼 참 좋지만, 먹먹함에 어떤 말도 선뜻 꺼낼 수 없는 영화일 것 같아요...

치니 2010-11-30 19:48   좋아요 0 | URL
기대가 너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뭐랄까, 영화의 완성도나 스토리 전개가 남녀노소 취향을 거의 다 어우르는 면이 있어서, 그런 걱정은 안 드는 영화 같아요.
하지만 후폭풍은, ^-^;; 개인 차가 클 것으로 사료됩니당.

웽스북스 2010-11-30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저도 음악이 참 좋았어요 :) 디지털 싱글도 있던데.
http://music.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2392437000
생각난 김에 들어야겠다. 흐흣.

덕분에 오늘밤이 풍성할 예정.

저도 음악 거슬리면 영화보기 힘들어하는데, 못미쳐도 그렇고, 또 앞서가도 그런 것 같아요. 음악이 이렇게 좋은데, 앞서가지 않다니, 아, 영화가 정말 좋았던 거에요. 헤헷. 스포일하지 않은 저를 칭찬해주시죠 ㅋㅋ

그리고, 저도, 치니님과 같은 생각. 뭐 하나 말하면 다른 뭐가 아쉬워지는 그런 거요. A빠진 타자기 얘기도 하고 싶었는데, 치니님이 해주셨고, 역시 40자평보다는 리뷰를 썼어야했나봐요. 암튼,

치니님도 잘 봤다니 신나요!!

치니 2010-12-01 11:41   좋아요 0 | URL
오, 알라딘 뮤직 샵 은근 다양하군요.

음악은 영화에 너무너무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감독님은 미워요. 뭐 제 느낌이 다 맞을 리 만무하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어버리면 그 영화까지 대충 보게 되더라고요. ^-^;

스포일 하지 않은 웬디님, 완전 고마워요!! 히히, 전 원래 무정보 상태로 보는 걸 좋아해서 글키도 하고 이 영화는 다락방님이랑 두 분이 막 좋다고 하시니 더더욱 두 분이 왜 좋았는지 안 듣고 봐야 온전히 내 감상대로 볼 거 같았거든요.

40자평 썼다고 리뷰 못 쓰라는 법 없습니다. 또 쓰면 되쥬 ~ ㅎㅎ

프레이야 2010-11-30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꼭 보고 싶어요.
아직 이곳에는 개봉하지 않네요.
치니님이 별 다섯을 준 영화라니!! 더더^^

치니 2010-12-01 11:41   좋아요 0 | URL
아, 아무래도 이 영화가 서울만 먼저 개봉한 모양이네요 저 위에 레와님네도 그렇구.
프레이야님이 보시면 또 얼마나 멋진 리뷰를 써주실 지 벌써 기대되네요. 흐 -

토니 2010-12-0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리뷰 올려주셔서 저도 작으나마 감사의 표시로 이 영화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아 이런... 살찐 토니는 점점 굼뱅이가 되어가고 있나 봐요. 이거 하나 딱딱 못맞추니... 옛날엔 미국 영화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참 보석같은 유럽영화가 많더라고요.

치니 2010-12-02 11:04   좋아요 0 | URL
아, 토니님도 보셨구나. :)
근데 이 영화, 아르헨티나 영화로 알고 있는데 유럽영화였어요? 안 그래도 배경은 아르헨티나인데 만든 건 스페인인가 어쩐가 좀 궁금.

토니 2010-12-02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르헨티나 맞아요. 제가 최근 유럽영화를 많이 보고 있거든요. 혹시 "블라인드"라는 네델란드 영화 안보셨다면 추천하고 싶어요. 좋아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치니 2010-12-02 14:37   좋아요 0 | URL
블라인드는 처음 들어보는 영화네요. 오케이, 접수 ~ ^-^

Forgettable. 2011-01-0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어제 봤어요. 스포일러 싫어해서 리뷰는 지금 읽고. 여튼 태그가 그렇게 맘에 남았었는지 계속해서 좋아하는 친구에게 보자고 보자고 막 그래서 같이 봤어요. 설득하면서 리뷰가 좋은게 많았었다고 했는데 ㅋㅋ 읽지도 않고선 좋다고 ㅋㅋ

내말이 딱 치니님 리뷰네요. 정말. 영화 보고 나서 마음속에 고여 있던 말이 다른 사람 리뷰로 이렇게 나오니까 신기해요.

치니 2011-01-06 19: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스포일러 조금이라도 보는 거 딱 질색이라, 보겠다 맘 먹은 영화는 아무리 좋아하는 리뷰어가 썼더라도 미루고 안 읽어요. ㅎㅎ
어어, 포게터블님도 비슷하게 생각하셨어요? 그렇담 저도 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