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먹이사슬'을 배웠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일단 이 말이 무서웠다.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게 계속 이어진다니. 그러는 한편으로 사람은 누가 잡아먹진 않으니까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마도 나는 사슬보다는 피라미드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가 단순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학교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안 가르쳐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슬의 끝이 다시 첫 고리로 돌아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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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미국에서 국립공원을 정비하면서, 사나운 동물 늑대를 모조리 사냥했다고 한다. 포식자 늑대가 사라지자 엘크나 들소 같은 덩치 큰 동물들의 수가 늘어나 풀과 나무 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그러자 거기 깃들여 살던 작은 동물들이 살 곳을 잃었다. 간단히 말해서 생태계가 파괴된 것이다. 캐나다의 늑대를 데려다 가까스로 번식 시키고 나서야 다시 균형이 잡혔다. 자료를 찾다 보니 이 생태계 복원과 늑대의 컴백은 별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늑대가 돌아왔다>>는 이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늑대가 없으면 이렇게 된다."고 겁을 주는 게 아니라, 늑대가 돌아옴으로써 자연이 다시 풍성해졌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영리한 점은 새끼 늑대가 바라보는 자연을 그렸다는 것. 늑대가 사냥한 엘크를 갈까마귀, 검독수리, 회색곰, 까치, 생쥐, 딱정벌레가 나누어 먹고 새로 자란 풀 사이로 참새가 지저귀고 비버가 버드나무로 못을 만드는 것을 새끼 늑대가 지켜본다. 긍정적인 기운으로 가득찬 생태 그림책이다. 늑대가 돌아와서 잘된 일로 마인드맵을 그리고, 동물들 이름마다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쳤더니 아이들 종이 위에도 숲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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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누구를 먹나>>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책이다. 표지는 강렬한 빨강이지만 본문은 오로지 검은 선으로만 그려져 있다. 판형도 시원하고 화면마다 배경 없이 주인공만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 눈을 딴데로 돌릴 수가 없다. 화면마다 글은 한 줄, 그것도 빨간색.

 

꽃이 자라났습니다.

진딧물이 꽃을 먹었습니다.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먹었습니다.

할미새가 무당벌레를 먹었습니다.

여우가 할미새를 먹었습니다.

 

늑대가 여우를 삼키고 늙어서 죽자 그 위에 파리들이 모이고, 개구리가 파리를 먹고 알을 낳았는데 물고기가 그 알을 먹고, 물고기를 물총새가 먹고. 때로 늙어서 죽는 동물이 등장해서 분위기 전환(?)을 하지만 먹이사슬은 계속 이어진다. (여기서 눈치가 빠른 아이는 "덩치가 커서 누가 안 잡아먹는 동물은 늙어서 죽네요?"라고 한마디.) 강한 동물만 약한 동물을 먹는 것이 아니다. 스라소니 죽은 자리에 난 풀을 토끼가 먹고 토끼 똥을 쇠똥구리가 굴린다. 이 아름다운 고리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 따로 읽은 네 명의 아홉살이 마지막 장면에 모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렇다. 꽃이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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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앞의 두 권은 사실, 이 책을 읽으려는 워밍업이었다.  

 

아기 누가 사자를 고소한다. 엄마를 잡아먹었다고. 표지를 보고 내용을 짐작한 아이들은 먼저 유죄다 무죄다 말이 많다. (그런데 어째서 아이들은 혼자 있어도 시끄러운가!) 사자는 죽은 누가 자기를 잡아먹어 달라고 했다고 항변하지만, 누 측 증인들은 사자의 사냥으로 인한 개체수 감소를 호소하고 죽은 누의 선량함을 회상하면서 사자를 압박한다. 그러다 죽은 누가 병들어 있었고, 그게 사자한테는 잡아달라는 사인으로 보일 수 있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또 이렇게 개체수가 조정되지 않으면 초식동물들도 굶어죽을 수 있다는 이야기, 초원에 병이 퍼지면 모두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이야기도. 침묵 속에 판결이 내려진다. "사자가 엄마 누를 죽인 것은 무죄입니다. 다만... 모두들 엄마 잃은 아기 누를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다시 사자의 죄에 대해 묻자 아홉살 셋은 무죄에 동의했고 무려 한 명은 아기 누를 고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무고죄.

 

그런데 요즘 '정의' '공명심'에 경도된 S만은 끝까지 사자는 유죄라며 판결의 부당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S의 주장은 이랬다. 1) 병에 걸렸다고 해도 사자가 할퀴고 무는 게 더 아프다. 2) 누는 병에 걸렸으므로 어차피 밖에 나가 놀 수 없으니 남한테 옮기지 않을 것이다. 3) 누를 죽이고도 무죄라고 하면 사자는 또 다른 동물을 마음대로 잡아먹을 것이다. 오! 자연의 조화 균형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S의 주장도 성실하다. S는 자연의 법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 자연의 법칙을 인간 사회에 적용했을 때 생기는 문제를 어렴풋이 지적한 것이다.

 

*

 

흥분한 S에게는 <<선인장 호텔>>을 읽어 주었다. 아주아주 천천히 자라지만 200년 가까이 살면서 14미터까지 자라는 사구아로 선인장에 여러 동물이 깃들이는 이야기라 조금 진정이 되었다. 늑대의 생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어린이에게는 <<영리한 사냥꾼 개과 동물>>을, 늑대나 다른 동물을 그려 보고 싶은 어린이에게는 <<킁킁이가 간다1, 2>>을 읽어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따로 만났는데, 강아지를 선택한 두 명은 약속한 듯 강아지 소리를 내면서 그림을 그렸다. 두 번 다, 하마터면 손을 뻗어 쓰다듬을 뻔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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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1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이 페이퍼 찜했어요! >.<

네꼬 2014-04-15 11:37   좋아요 0 | URL
다락님! "누가 누구를 먹나"는 다락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타미랑 같이 보면 더!

아무개 2014-04-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같은 사람에겐 어쩌면 동화책이 가장 읽기 어려운 텍스트 일지도 모르겠어요.



네꼬 2014-04-16 09:27   좋아요 0 | URL
어려운 책도 있지요;; 저는 그래도 어린이책이 제일 좋습니다.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 (^^)

서니데이 2014-04-1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누와 사자의 문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면, 인간사회는 간단합니다. 먹으면 안돼요. 절대 안돼요!! 무조건 유죄. 이럴 땐 사람은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심각한 이야기인데, 갑자기 딴 생각이... ^^;)

네꼬 2014-04-16 09:28   좋아요 0 | URL
네, S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한꺼번에 생각한 것 같아요. 아주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의문 또는 비분강개라 너무 진정시키진 않았습니다. ㅎㅎ

밤의숲 2014-04-21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왜 혼자 있어도 시끄러운가! 에서 빵 터진 1인입니다. >_< 아아앜 귀요미들!!

네꼬 2014-05-12 16:41   좋아요 0 | URL
오늘도 답을 찾는 1인 -_-a 애가 없는 저로선 미스터리 투성이.

강희맘 2014-12-1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