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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ㅣ 창비시선 369
권혁웅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류승완 감독의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내가 반복해서 본 영화 중 하나다. 특히 윤소이가 정말 무술 같은 걸 배우는 게 가능한가 묻는 류승범한테 일상 속 숨은 도인들을 보여주는 장면을 좋아한다. 거의 자기 키만 한 짐을 머리에 이고 양손 놓고 유유히 걷는 사람, 손가락 사이에 구두를 수십 켤레 끼고 지나가는 사람, 냉장고쯤 번쩍 들어 이삿짐 트럭에 싣는 사람. 눈을 크게 뜨고 보라, 세상에 고수가 얼마나 많은가. 권혁웅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를 읽는 동안 그 장면이 떠올랐다. 시집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라. 시가 없는 삶이 어디 있나.
시가 있는 삶은 그럼 무엇인가. 시계 방향을 따라가면 죽음을 맞이하니, 반시계 방향으로 고스톱을 치며 "힘을 합쳐 시간에 저항하는" 동네 할머니들의 삶이다(고스톱 치는 순서는 왜 왼쪽인가).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취객이 "다시 직립 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수평으로 편안하게 누워 있는 시간이다(봄밤). "이자는 필요 없으니 원금만 돌려다오" 청춘을 달라고 격렬하게 외치는 주부들의 노랫소리다(주부노래교실). "불굴의 의지로 최선을 다해 망가지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려도 "말 거는 전화는 경찰서에서만" 오는 어미들의 삶이다(호랑이가 온다2). 심지어, 음식에 단번에 앉기 쑥스러워 끈끈이 위에 잠시 앉으려다 영원히 붙잡히는 파리의 짝사랑이다(짝사랑). 모두의 삶에 시가 있다. 그것을 시인은 부지런히, 엄숙하게 받아 적는다. 엄숙하게.
애인은 토막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시간째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댓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
그는 눌린 머리고기처럼 얼굴을 눌러
눈물을 짜낸다
새우젓이 짜부라진 그의 눈을 흉내낸다
나는 당면처럼 미끄럽게 지나간
시간의 다발을 생각하고
마음이 선지처럼 붉어진다 다 잘게 썰린
옛날 일이다
연애의 길고 구부정한 구절양장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빨래판에 치댄 표정이 되었지
융털 촘촘한 세월이었다고 하기엔
뭔가가 빠져 있다
지금 마늘과 깍두기만 먹고 견딘다 해도
동굴 같은 내장 같은
애인의 목구멍을 다시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버릇처럼 애인의 얼굴을 만지려다 만다
휴지를 든 손이 변비 앞에서 멈칫하고 만다
시집 속의 삶들이 우리를 웃게 하지만 결코 우습게 보이지 않은 것은 시인이 연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의 삶에는 눈물이 핑 돌지만 결코 그가 불쌍하지 않은 것은 시인이 그의 삶을 존경하기 때문일 것이다. 울고 웃고 쓰러지고 버티면서 장하게도 살아남는 것이 삶이라고 시집은 웅변한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을 때처럼, 첫 시를 읽고는 앉은자리에서 마지막 시까지 읽었다. 좋아서 표시해둔 부분은 아직 하나도 인용하지 못했는데, 이 글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