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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만나는 그림책
무라타 히로코 글, 테즈카 아케미 그림, 강인 옮김, 츠지하라 야스오 감수 / 사계절 / 201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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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름난 작가가 어린이들과 함께 저개발국가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쓴 동화를 읽었다. 이야기는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작가의 말은 뜻밖에 마음에 남았다. 함께 간 어린이들이 봉사 여행을 통해 한층 성숙해졌다면서 아이들이 "이 나라 애들은 왜 이렇게 못 사는 거냐."며 눈물을 글썽거린 것을 그 증거로 내세웠고, 우리나라에도 도울 어린이들이 많은데 왜 굳이 다른 나라까지 돕냐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에 자신은 "한국전쟁 후 도움을 받던 나라가 이만큼 성장해 남을 도울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응수한다며, "우리 스스로 노력해 다른 나라에 가서 인종차별을 받지 않도록 능력을 키워야 된다"고 쓰여 있었다. 남을 돕는 선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 말들에 숨어 있는 시혜적인 시선과 미묘한 열등감이 불편했다.

 

어쩌면 세계를 이해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감수성이 아닐까? 세계가 아주 넓고, 문화는 다양하며 사람들은 다 다르고 또 비슷하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감각이 필요하다. 어린이들이라면 특히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계와 만나는 그림책』은 바로 그런 감수성을 키워주는 책, 여기에 흥미로운 정보들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여러 가지 나무가 자라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여러 동물이 모이듯이, 세계에는 여러 사람이 살고 있어." 첫 두 장면에서 나는 마음을 빼앗겼다. (미리보기를 꼭 보세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전제와 비유, 이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지 찬찬히 설명한다. 신체의 특징 -> 멋 내기 -> 민속 의상 -> 전통적인 집의 특징 -> 좋아하는 음식 -> 간식 -> 시장 풍경 -> 독특한 생활 용품 -> 운송수단 -> 놀이-> 운동 -> 음악과 춤 -> 종교 -> 언어 -> 인사법의 순서다. 세계의 삶이 비슷하게 현대화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TV 여행 프로그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옷맵시나 가옥의 특징을 전통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는 방식은 독자의 흥미를 확 끌어당긴다. 신체와 같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해 추상적인 생활습관 쪽으로 설명을 이어가는 것도 아주 효과적인 구성이다. 

 

 

 

(죄송하지만, 알라딘에 소개된 그림 갖고 왔어요)

 

 

그리고 그림이 적절하다. 간결한 선으로 대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게 그려졌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보다 효과적으로 정보가 전달된다. 이렇게 단순한 선 덕분에 화가 자신의 특징(국적을 포함해서!)은 뒤로 숨고 객관적인 정보가 남는 것이다. 객관적이서서 오히려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을 따뜻한 색감이 보완해준다. 전략적인 그림인 것이다!  "놀이 방법도 여러 가지야. 그치만 놀기 좋아하는 건 모두 똑같아. 여러 나라 사람들과 함께 놀고 싶어." 이렇게 핵심을 잘 잡아낸 지문들과, 소소한 듯하지만 흥미로운 캡션도 좋다.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라면 큰 지문을 읽고 그림을 손으로 짚어가며 캡션의 정보를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어린이라면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어도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마지막 지문, " 함께 사는 지구. 서로 다르니까 더 재미있어." 서로 존중하자거나, 사이좋게 지내자거나, 도와주자거나 하는 군더더기없이, "서로 다르니까 더 재미있어."가 결론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이로써 충분하지 않은가?

 

TV와 인터넷 덕분에 오늘의 어린이들은 더 많이 '세계'라는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다문화가정(대체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이 많아지면서 어린이들에게 "다르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노력도 많아졌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세계의 다양성을 가르치는 책들은 "(약자인)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배려하자"는 구호에서 시작된 것이어서 결국 그 아이들을 타자화하거나, "세계는 넓다"는 것을 알리고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는 데 머물곤 한다. 그런데 다양성이란 게 뭔지 진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양, 즉 감수성이 전제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세계를 이해하는 감수성이라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오히려 단순한 것이다. 세계는 넓고, 문화는 다양해. 사람들도 다 다르지만 어떤 것은 똑같아. 그게 재미야. 이 책과 함께라면 어른들도 그 감수성을 새롭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일단 나부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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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10-1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문화 가정, 대체할 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네꼬님의 회색글씨에 격한 공감 누르고 가요..
초면에, 초절정 인기 서재에, 처음으로 첫댓글 남기려니 뒤통수가 뜨끈하네요.ㅎㅎ

네꼬 2013-10-16 22:57   좋아요 0 | URL
견디셔님 안녕하세요? 인사 나누는 것은 처음이지만, 저도 견디셔님 알고 있었어요. (이런 닉네임을 어떻게 모를 수 있겠습니까!) 인기라뇨! *_*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이 생길 때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지만 요즘은 참 내키지 않아요. 다른 적절한 말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없어지든가!

다락방 2013-10-1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은 어제 했고 오늘은 이 댓글 달러 왔어요.

훌륭한 리뷰입니다!!!!!!!!!!!!!!!!!!!!

네꼬 2013-10-17 13:18   좋아요 0 | URL
헤헤헤헤헤헤헤헤 (<- 이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꿀꿀페파 2013-10-2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보고갑니다.

네꼬 2013-10-28 15:30   좋아요 0 | URL
꿀꿀페파님 안녕하세요? 이거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