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현실 인식이 지나치게 단층적이고 상투적일 때 아이들의 눈은 어른들이 보는 것과 다른 진실을 본다. 어른의 눈은 상식으로 흐려져 있지만 아이들의 투명한 눈은 다른 진실을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언어라는 표현 수단을 포기하고 이른바 '문제 행동'이라는 표현 수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어린이 문학의 존재 의의가 있다. 어린이 눈으로 사물을 보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린이 문학의 과제이다. 이 과제는 어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고, 어린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그 사이의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달성된다. 이 책에서 다룬 작품들을 읽어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책'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는 '어린이를 위해서' 어른이 쓴 책도 있다. 그러한 책의 존재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내가 흥미를 가지는 것은 앞에서 말한 의미에서의 '어린이책'이다. 그것은 '어린이의 눈빛'을 잃지 않은 어른이 쓴 책이며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현대 사회의 특성을 생각할 때 이러한 책의 존재 의의는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12-13쪽)
『어린이책을 읽는다』를 읽었다. 이 책의 부제는 '심리학자가 읽어 주는 어린이 문학'이고, 뒷표지에서는 이 책을 "융 심리학의 권위자가 분석한 어린이 문학의 대표작 12편에 담긴 어린이 심리 세계와 삶의 진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심리학(특히 정신분석학)으로 어린이책을 분석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것이 1996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도 벌써 2006년의 일이니까 그간 내가 듣거나 읽은 이야기 중에 알게 모르게 영향받은 것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와 눈이 번쩍 뜨이네!" 할 정도로 신선하지는 않다. 책에서 분석한 작품들도 일부는 국내에 아예 소개되지 않은 것들도 있고 심지어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어서 살짝 건너뛰어가며 읽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책이지만.
그런데 정작 내가 이 책에 충격(?)받은 것은, 저자 가와이 하야오가 2002년 일본 문화청 장관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2007년 작고한 그는 생전에 일본 사상계에서 존경받는 지성이었고, 그 영향력도 무척 컸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지난 5월 무라카미 하루키가 18년만에 독자와의 만남을 가진 것이 가와이 하야오 재단의 초청에 의한 거라고 한다. 가와이 하야오와의 각별했던 교분 때문이라고.
이웃나라에서는 "아이들은 언어라는 표현 수단을 포기하고 이른바 '문제 행동'이라는 표현 수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어린이 문학의 존재 의의가 있다."고, "현대 사회의 특성을 생각할 때 이러한 책의 존재 의의는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고 쓴 할아버지가 문화청 장관을 지냈다니.... 어딘가 아득한 기분이 든다. (...이거 눈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