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여름 아침에
다니카와 슌타로
거인이 되고 싶다
이 산 저 산을
이 구름을
이 푸른 하늘을
이 여름 아침을
양팔로 받아들이고 싶다
거인이 되고 싶다
산 저편의 행복을
손가락으로 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밤으로 향하는
모든 그리움을
작은 새처럼
잡아버리는
거인이 되고 싶다
하루 한 번 울리는 심장
영원을 바라보는 눈동자
태양에 화상 입은 손가락 끝
일기에는 역사를 기록하여
혁명의 비참을
배신의 영광을
빠짐없이 양손으로 건져내는
거인이 되고 싶다
암흑의 우주에 몸 던져
흘러가는 은하에서 수영하고
양팔에 지구를 안고서
묵묵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영원히 무력한
거인이 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한 마리 개미가 되고 싶다
달개비꽃 미로에서 끝없이 헤매며
언제까지도 계속 헤매고
그래도 좋다
이 아름다운 여름 아침에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이십억 광년의 고독』은 아름답고 천진한 시집이다.
「아름다운 여름 아침에」가 보여주듯이 시공간을 마음대로 오가면서 때로는 우주를, 때로는 공책을, 때로는 슬픔을, 어떤 때는 책을
내키면 지우개와 연필을 사색하는 시인의 감각이 편편이 놀랍다.
하루 한 번 심장이 울리는, 지구를 안고 우는 거인이 되거나 아니면 달개비꽃 미로를 언제까지고 헤매는 개미가 되고 싶다는 게 얼마나 광활하고 또 아담한지.
마음이 개미만큼 작아진 요즘 자꾸만 생각이 나서 오래간만에 시집을 찾아보니 포스트잇을 붙여 놓은 시가 열 편. 시집 하나에서 다섯 편 건지면 성공이라 생각하는 나에게는 귀한 시집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