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더라? 화순 운주사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운주사 참 아스트랄하지." 그랬는데. 운주사는 입구부터 크고 작은 부처님과 다양한 패턴을 자랑하는 탑들이 서 있어 가히 "천불천탑"이 가능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등반 끝에 그 유명한 와불을 뵈었다.



감은 눈이 참 예쁜 부처님. 이 와불이 일어나시면 세상이 바뀐다지. 동거녀 왈, "네꼬 씨, 여기까지 와서 누군가를 벌해달라고 하면 벌 받을까?" 그 누군가가 MB라는 걸 잘 아는 나는, "속으로만 비는 건 괜찮지 않을까?"라고 답한 뒤 함께 와불 둘레를 돌며 그 누군가를....

 



넓은 운주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부처님들. 이 많은 불상들은 거북이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고, 거의 한 사람의 솜씨로 보이기 때문에 누군가 일생을 바쳤을 거라는 설도 있고, 이 운주사가 석공들의 연습장이었을 거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괜찮다면 첫번째 설이 맞았으면 좋겠다. 바다에서 꽤 멀어서 거북이들이 고생은 좀 했겠지만,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화순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길, 내내 나를 흥분시킨 것은 나주평야에 우뚝 선 월출산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나주평야. 곡창지대란 이런 것이구나, 약간 소름이 끼치려고 하던 찰나에 나타난 월출산은 그 포스가 어찌나 강렬한지, 산에 대해서 아는 바 전혀 없는 나조차도 "야, 이건 정말 명산이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운전을 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야 근데 정말 굉장하네, 굉장해. 응? 굉장했죠? 역시 굉장해. 야 난 또 저런 건 첨 봤네, 굉장하죠? 응. 정말 굉장해. 와, 정말이지, 굉장해 굉장해. 월출산을 옆에 두고 가면서 나눈 우리 넷의 대화는 이게 다였다.

다산초당은 생각보다 높은 데 있었다. 바닥이 얇은 운동화를 신은 나는 할 수 없이 좀 투덜거리면서 산을 올랐다. 그 길에는 소나무 뿌리들이 땅 위로 올라와 자연스럽게 계단을 만들어주었는데, 정호승 시인이 "뿌리의 길"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단다.


다산초당. 지붕 위 나뭇잎에 묻은 햇빛과 마루 앞 그늘을 비교해보면, 이곳이 꽤 깊은 숲속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길 그냥 한번 더 해보자면, 원래 다산초당은 말 그대로 초가였는데 후손들이 복원하면서 기와집으로 꾸몄다고 한다. 조만간 초가로 다시 고쳐 지을 예정이라고. 역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긴데 그냥 한번 해보자면, 내가 가는 곳엔 반드시 적용되는 법칙이 있다. "모기가 있다. 네꼬씨가 물린다." 나는 이 깊은 산속에서 추운 계절에 맞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모기들에게 무려 네 군데의 식사 포인트를 제공했다. '내가 청바지도 뚫는 전라도 모기인데 너 따위 티셔츠는 개콩으로 보인다' 하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모기 가족에게 등짝을 고스란히 헌납. ㅠㅠ

사진에는 없지만 초당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설명하시는 분의 말에 의하면 다산은 이 연못에서 뛰노는 물고기들만 보고도 그날의 날씨를 맞혔다 한다. 슈퍼컴도 못하는 일을....

 



멀리 구강포가 보이는 천일각. 이렇게 저렇게 찍어봤지만 이 정자에서 평원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개운함을 사진으로 담기엔 원망스러운 나의 고양이발. 내가 다산이었다면 초당보단 여길 더 좋아했을 것 같다. 뒹굴뒹굴 책을 끼고 놀다가 먼 데를 보다가, 빗소리를 들으면서 낮잠도 자고 모기에게도 물리고... 공부는 언제..? 그래서 나는 다산이 못 된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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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10-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일각에...반했어요 ㅜㅜ

엉엉 우리나라 왜이렇게 좋은나라인거에요....ㅜㅜ 아스트랄한 운주사도 마음에 들고...

네꼬 2008-10-04 20:39   좋아요 0 | URL
응 근데 다산초당 올라가려면 트래킹화 정도는 신어줘야 돼요. 난 캔버스화 신고 발바닥 아파서 조금 고생했어요. 그러게 우리나라에 볼 데 왤케 많아. ㅜㅜ 남도는 정말 4박 이상 일정으로 잡고 답사를 해야 할 듯해요. 나 아주 결심하고 왔음.

마노아 2008-10-0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의 풍경, 저 각도, 저 그림자까지 모두 완소예요! 지금도 충분히 문학소녀, 아니 문학고양이인 사랑스런 네꼬님!

네꼬 2008-10-04 20:39   좋아요 0 | URL
호홋 문학고양이라. (좋아서 일단 한 바퀴 구르고...) 천일각에서 보는 풍경은 시 한 수 절로 읊게 하더이다. 마노아님이 가셨더라면 멋진 소설이 한 편 나왔을 거예요! >_<

paviana 2008-10-0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초당을 3번정도 갔어요. 대학때 대학원때 그리고 그 누군가랑...
제일 기억에 남는건 대학 3학년때 답사로 과친구들이랑 왁자하게 떠들면서 올라가서 천일각에 앉아서 이렇게 경치좋은 곳으로 보내는게 귀양이야? 이 경치에서 어케 공부를 하고 책을 썼을까 하면서 수다떨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때까지는 구르는 낙엽만 봐도 웃을때 였잖아요. 거기다 여대라서 여자들만 우르르 몰려다녔으니...ㅋㅋ

네꼬 2008-10-05 23:00   좋아요 0 | URL
파비아나님 기억에 남는 건 답사일지 모르지만, 지금 제 기억에 남는 건 파비아나님의 "그 누군가랑"이에요. 누구예요 누구, 누구?

우리도 다산초당 가서 똑같은 말 했는데. 아니 여기서 공부를 어떻게 한담? 하여간 모범생들은 그런 데서도 공부가 깊어지는 모양이지요. -_- 누구냐고요, 누구! 엉!

순오기 2008-10-0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불님 사진을 기막히게 찍었네요~~ 역시 사진 실력이 좋으시군요.^^
다산초당보다 천일각에 반하는 건 앞이 탁 트였기 때문일지도~ 그 천일각에서 흑산도에 유배중인 형, 정약전도 생각했겠죠~~ ㅜㅜ
단풍으로 둘러싸인 다산초당도 가히 환상적이에요. 그 옆 연못에 비친 풍광도 예술이고요~

네꼬 2008-10-05 23:03   좋아요 0 | URL
아유 참, 순오기님도.. 별 말씀을... (아이고 나도 모르게 자꾸 으쓱대는 내 어깨.) 어떻게 찍어도 누워계신 모습이 한번에 들어오질 않아서 애먹었는걸요. 좀 전에 동거녀랑 나눈 이야긴데요, 그 형제들 그리 똑똑하니, 같이 있으면 다투지 않았을까요? (제 노트북을 들여다보던 동거녀 왈, "순오기님 좋겠다, 광주 사셔서." 꼭 전해달래요. 실시간 중계.)

순오기 2008-10-09 23:04   좋아요 0 | URL
뒷북댓글~~ㅎㅎ 광주에 살아서 너무 좋아요. 광주 사는 덕에 여기 저기 참 좋은 곳을 많이 가봤어요. 다산초당도 계절 따라 가봤지요~~ ^^
11일엔 소록도 가야돼서 이청준님의 '당신들의 천국' 읽고 있어요.
동거녀에세 순오기가 광주댁으로 살아서 행복하다고 전해주세요.^^

네꼬 2008-10-21 00:57   좋아요 0 | URL
저도 뒷북댓글. ㅋㅋ 네 전해 드렸어요. ^^

BRINY 2008-10-05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답사 생각났는데, 역시 파비아나님 같은 코스로 ^^;; 그런데 전 다산초당 올라갈 때 어려워다는 생각한 기억이 없는데 그땐 젊어서 그랬을까요? 호호호~

네꼬 2008-10-05 23:04   좋아요 0 | URL
하하하. 브라이니님, 저 한참 웃었어요. 호호호. 그... 그럼 전.... (털썩)

Alicia 2008-10-0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남도는 참 볼 곳이 많죠. 음식도 맛있구요.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예요 으흣) 소쇄원,미황사나 운주사 다산초당... 모두 어릴 때 가본곳들이라 지금가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어요. 고교때 수학여행가서 천일각에서 담임선생님과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이 지금도 앨범에 고스란히 간직되 있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어릴 때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좋구요.
즐거운 휴가 보내신것 같네요. ^^

네꼬 2008-10-06 12:13   좋아요 0 | URL
알리샤님 안녕하세요? 네 아주아주 즐거운 휴가를 보내고 왔습니다. 아니 근데 소쇄원 미황사 운주사 다산초당을 "어릴 때" 가보셨다니!!! 완전완전 부러운걸요. 천일각에서 담임선생님과 사진이라니. T.T (네꼬 씨 기억 속엔 무슨무슨 능에 가서 찍은 사진들만 줄창... 아 서울 어린이들 불쌍해.)전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경주로 갔는데 그때도 참 좋았지요. 근데 개인적으로 남도가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사실은 100%) 음식 덕분. 잠시나마 알리샤님께 옛 기억을 가져다 드렸다니 저도 기분이 좋아요.
:)

파란여우 2008-10-0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출산은 억새가 흰 날개를 활짝 펼칠 즈음인 11월 초에 가면 근사해요, 바위와 흰 억새.
운주사의 호떡탑(입구에 둥글고 납작한 탑을 여우 맘대로 붙인 이름)도 잘 있죠?
네꼬님의 삘 받은 뻬빠를 읽으며 지나간 추억의 그림자를 들춰봅니다. 땅콩베리머취~

네꼬 2008-10-09 00:39   좋아요 0 | URL
하하 여우님. 제 동거녀 또치 씨도 그 탑을 제일 좋아해요. 그리고 또치 씨도 그 탑을 "호떡탑"이라고 불러요. 동거녀 왈 "너무 호떡탑이잖아." 잘 있더라고요. 맛있게. (응?)

바위와 흰 억새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저 월출산에 정말 반하고 왔어요. 거기 더 가을에 가야 더 좋다는데 ㅠㅠ 꼭 한번 올라보고 싶은 산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