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산 소고기 파동에 참견하지도 못하고, 아침 저녁으로 그야말로 소처럼 일하느라고 입에서 음메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입에서 음메 소리가 나올 지경'이라는 표현을 생각해내고 사실은 혼자 좀 좋아했다. 시의적절한 비유잖아? 그럼 나는 뭐야, 미친 고양이야? 미친 소야? 그러다 든 무서운 생각. 소가 왜 미쳤는데, '미친 소'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할까,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고기를 그럼 끊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다가 나는 나에게 깜짝 놀랐다. 동물을 위해서나 환경을 위해서나, 최소한 육식에 치우친 나의 건강을 스스로 돌보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저 '미친소'를 먹게 될 걱정에 고기를 끊을까 고민하는 나는 참 시시한 짐승이구나.

'미친소'를 걱정해주고, 이 참에 생태의 문제를 고민해보고, 대안을 찾아보고 싶다. 그런데 미친 정부가 국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들이 할 일을 국민이 하게 하니까, 우리 같은 국민들은 하고 싶은 걱정,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시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겨레 안수찬 기자가 인권연대에 쓴 글의 이 대목이 오래 생각난다.  

"미국의 미친 소를 다루는 이명박 정부의 허술한 실용주의를 타박하는 것은 두말이 아까울 정도다. 정상적인 보수주의자라면 한국 닭 수입을 금지하는 미국에 대해 연일 비방을 퍼부어야 옳다. AI 조류독감 파동이란 철새에 병원균을 묻혀 반도로 날려 보내는 이웃 나라들의 음모이며, 조류독감에 걸린 닭도 충분히 익혀 먹으면 아무 탈 없으니, 날지도 못하는 닭을 조리하여 식용으로 포장해 수출하겠다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떼라도 써야 한다. 그 정도는 돼야 미국의 미친 소와 한국의 감기 닭을 비교급으로 놓고 무역 협상을 벌일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그 정도의 역할을 해줄 때, 진보주의자들은 한국의 조류독감과 미국의 광우병 사이에 놓인 ‘생명’의 문제를 짚어 보편적인 생태운동의 차원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시 한 번, 보수주의자들이 친미주의자가 되고 진보주의자들이 애국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수 언론이 ‘미국 소가 한국 소보다 더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는 기묘한 비교급의 기사를 쓸 때, 그것은 분명 비겁한 말장난에 불과하다. 다만 그 안에는 진보주의자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아주 없지 않다. 한국 소는 정말 안전한가? 한국인들이 소를 기르는 방식은 미국의 기업적 축산농에 비해 얼마나 더 생태적인가? 현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생태적으로 기른 소를 먹는다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가난한 사람은 동물사료를 먹은 수입소를 먹고 돈 많은 이는 생태적으로 기른 국산소를 먹는 일의 생명권적인 계급 불평등은 과연 시장의 조절기제에 맡겨 해결해도 괜찮은 문제인가?

....분노가 사색을 짓누른다. 저열한 실용주의가 먹고 사는 실용 그 자체를 무너뜨린다. 하여 오늘은 그냥 거리에 나가 미국 미친 소를 들여오려는 미친 사람들에 대해 미치도록 욕하는 것으로 한국 진보주의자 노릇의 전부를 대체하도록 하자. 언젠가 우리도 미친 소와 감기 닭을 앞에 두고 인간과 동물의 생명권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안수찬, <영국 미친소의 추억>중 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susan&y_number=74&nnew=2

 

2.

오늘, 권정생 선생님 작고 1주기다. 작년 이맘때 나온 수많은 추모의 글 중에서 가장 내 마음을 울린 글 한 편을 여기 복사해둔다.

***

[권정생, 그의 반역은 끝났는가]

경향신문 문화부는 지난 17일 출판사로부터 부음 하나를 전해들었다. 그리고 두어 시간 지나 망자(亡者)를 돕는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정으로 쓸 사진이 없다면서 경향신문에 게재됐던 그의 사진을 보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영정으로 쓸 사진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난 그는 누구인가. 평생 살아온 5평짜리 흙담집은 남김없이 헐어 자연상태로 되돌려 놓고, 인세로 들어올 돈은 북한·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린이에게 나눠주고, ‘나를 기념하지 말라’며 나이 일흔이 남긴 흔적을 이 세상에서 말끔히 지워버리려는 그는 누구인가. 권정생. 도쿄 혼마치 빈민가 뒷골목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분단과 전쟁, 굶주림의 골짜기를 넘은 그는 제대로 배우지도 먹지도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나무장수·고구마장수·담배장수를 했고, 10대에 결핵·늑막염·폐결핵·신장결핵·방광결핵을 앓았다. 그래도 살아남아 경상도를 떠돌며 걸식을 했고, 운좋게도 가난한 예배당 종지기 자리를 얻었다. 그의 거처는 예배당 부속 토담집.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 그 곳에는 찢어친 창호지로 개구리가 들어와 놀다갔고, 잠자는 밤에는 쥐가 발가락을 깨물고 돌아갔다. 그는 거기에서 동화를 썼다.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을 담아내기 턱없이 부족한 지면에서도 그의 부음이 한 구석을 차지할 정도로 그는 꽤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새 아름답고 감동적인 글을 쓰는 유명 아동문학가가 된 것이다. 그는 자기 인생처럼 못나고 버림받고, 가난하고 하찮은 것들에 관해 써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이 풍지고 흐벅진 세상의 지루함을 달래주는, 추억의 당의정이 입혀진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로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동화는 세상을 예쁘게 포장한 선물세트가 아니다. 그 것은 그가 살아온 방식도, 글쓰는 방식도 아니다. 그는 전사였다. 그는 살아 숨쉬는 동안 생활이라는 최전선에서 그가 보고 듣고 알고 겪은 모든 모순과 부딪치며 하루도 쉬지 않고 싸웠다. 그는 농민들이 낫과 곡괭이를 들고 착취계급에 저항하다 실패한 역사를 슬퍼했다. 물질이 한정된 세상에서 몇 사람이 풍요롭게 살기 위해 나머지는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승용차를 버리면 기름 걱정안하고 전쟁할 이유가 없어지고, 우리가 파병을 안해도 된다고 믿었다. 미국은 절대악이었다. 약탈과 살인으로 강국이 되고, 전세계 인구의 5%가 세계 자원의 50%를 소비하는 미국은 그의 눈에 악마였다. 그리고 그 악에 맞선 테러리즘을 “새끼 빼앗긴 엄마 닭이 적한테 자기 목숨을 내놓고 달려드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가!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서슬이 퍼렇던 1985년에는 ‘초가집이 있던 마을’을 썼다. 아버지는 월북하고, 남은 복식이는 동족을 살상하는 무기를 들 수 없다며 징집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주제이다. 이게 그가 스스로 꼽은 최고작품이다. 석유·자동차·전쟁·미국·자본주의와 터럭만큼의 타협도 용서도 화해도 하지 않았다. 신채호·장준하·함석헌을 존경하는 그는 히틀러를 죽이기 위해 암살단을 조직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를 닮고 싶어했다. 물론 그는 안중근처럼 권총도 없고,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고, 테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이상의 것들을 했다. 저 깊은 곳에서 울렁거리는 분노를 삭이고 녹여, 그 진액을 짜내 시와 동화, 산문을 쓴 것이다.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 이 세상의 한 구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반역을 꿈꿨다. 욕망의 체계인 자본주의 한 가운데에서 그는 무욕, 절제, 가난을 무기로 정면 대결했다. 사람들이 그의 베스트셀러 ‘우리들의 하나님’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모르지만, 31쪽에는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리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닌 평화를 느끼게 할까. 그에게 소멸은 무엇이기에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일까. 한 줌의 흙, 한 포기 풀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그는 “싸움이라는 삶이 끝났을 때라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경향신문(2007.05.24)  이대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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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17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가 사색을 짓누른다' 아~ 정말 우리의 현실을 잘 표현한 말이네요.
작년 5월 17일 내가 '몽실언니' 리뷰를 쓰고 두 시간 후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었죠.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생을 힘겹게 살아내신 그분께 평화로운 안식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졌어요. 삼가 명복을 빌며...추모합니다!

네꼬 2008-05-17 13:18   좋아요 0 | URL
저의 완소기자 안수찬, 편집국으로 컴백하면서 글발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해보이더라고요.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게 벌써 일년이에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것이 선생님을 잘 기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보았어요.
: )

turnleft 2008-05-1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kbs에서 만든 광우병 관련 프로에서 공장형 축사의 모습을 처음 봤어요. 보다 싼 가격에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먹이고, 고기량을 늘리기 위해 성장호르몬을 주사하고, 운동을 못하게 해 강제로 비만으로 만들어버린 소들이 모습을 처음 본 게지요. 소위 '과학영농'이 의미하는게 무언지, 생산성이라는 말이 뜻하는게 무언지 다시 생각해보니 끔찍하더군요.

그러니까, 결국 이 모든 일이 인간이 탐욕에서 시작된 일이잖아요. 조류독감도 갇혀 살아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닭들을 대량으로 '사육' 하다보니 급속도로 번지게 되는거구요. 2mb 탄핵도 좋고, 정부의 굴욕외교도 비판받아야 하지만, 한 입으로 두 소리하는 기회주의적 보수주의자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삼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되짚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전의 황우석 사태에서도 비슷한 맹목을 경험한 적이 있잖아요.

이슈를 따라가는게 언론의 몫이라 치면, 이슈 자체를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로 사람들을 이끌만한 정신적 스승이 없다는게 참 가슴 아픈 일이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 요즘입니다...

네꼬 2008-05-17 13:22   좋아요 0 | URL
무척 슬픈 일이에요. 저처럼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벽력 같은 일이죠. 그동안 전혀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애써 모르는척 했거든요. -_-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환경과 생태를 고려하면서 나도 행복하게 사는 일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아는 것도 많아야 하고요. 산다는 게 한 순간도 허투루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요즘입니다. 정말이지 현대사회는 똑똑해야 착하게 살 수 있으니.

지혜로운 분들이 쓴 책을 읽고 그 분들의 말씀을 듣고 의논해가면서 살고 싶어요. 그런 분들이 누가 있을까. 책 속에서라도 그분들을 깨워 보기로 해요.

Mephistopheles 2008-05-1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 혹시...
되새김질도 하지 않으시나요??
소처럼 일하다 보면 밥 먹을 시간도 빡빡해서..
되새김질로...한끼를 해결.....=3=3=3=3=3

네꼬 2008-05-17 13:23   좋아요 0 | URL
나 놀리는 재미 없으면, 메피님 서재 생활 재미의 약 20%는 사라질 거야.
-_-
그러는 줄 알면서, 그래서 놀리는 줄 알면서, 나는 왜 또 넘어가는가!
이리와욧!!! =3=3=3=3=3

치니 2008-05-1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왜 이리 다들 글을 잘 쓰는지, 아유, 오늘도 네꼬님 서재에서 눈시울 뜨끈해지고 갑니다.

네꼬 2008-05-25 00:00   좋아요 0 | URL
다들 왜이러시는지 진짜. -..- 이런 이들 덕분에 좀 후련해지기도 하고 그래요. 그쵸? 이대근 기자의 글은 읽을 때마다 눈물이 좀 나요.

마노아 2008-05-1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뭇 다른 두 글에서 똑같이 반성과 감동을 느껴요. 그게 네꼬님이 올려주어서 더 기쁘기도 하구요^^

네꼬 2008-05-25 00:01   좋아요 0 | URL
저는 마노아님이 그렇게 얘기해주서어 기쁜걸요.
: )

도넛공주 2008-05-18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딴 얘긴데,'미친소'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짠해요. 미친건 그따위 사료를 먹이고 상황을 이렇게 만든 인간들인데.소들은 그저 아플 뿐인데.

네꼬 2008-05-25 00:01   좋아요 0 | URL
그게 딴 얘기가 아니에요. 저도 그 얘길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 아픈 소들을 '적대시'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어지럽게 느껴져요.

2008-05-19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5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