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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따먹기 ㅣ 청년사 고학년 문고 6
최진영 지음, 김홍모 그림 / 청년사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그럴 만한 사정들
개와 고양이와 닭과 참새와 쥐는 마당을 두고, 사람들은 아파트 지을 땅을 두고 어디까지가 자기 영역인지 다툰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과 동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기술하는 이 동화는 신뢰할 만한 결론을 주진 않지만 ‘야, 그러고 보니까 정말 그럴 수 있겠네’ 하게 한다. '해묵은 주제'라는 건 '당연히 진부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해를 묵혀가며 고민할 만큼 중대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가,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소중한 성과를 주었다. 대충 얼버무려 "사이 좋게 삽시다"가 아니라, 내 처지 네 처지 우리 처지를 함께 고민한다는 점이 좋다. 이를테면 사냥을 하는 동물은 그런 대로, 집에서 사는 동물은 그런 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직면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 동화의 성과는 그런 것이다.
2. 채식하는 집고양이
무엇보다 등장인(동)물 각자의 개성을 살린 말투는 눈에 띄게 훌륭하다. 특히 엄마 아빠 아들 참새의 아침 인사 부분이 압권. 어찌나들 수다스러운지, 읽기만 해도 귀가 아프다. 한국 어린이문학사상 가장 시끄러운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 또 하나의 장점은 이 책 속의 고양이 ‘모질이’의 캐릭터가 이룬 쾌거(!)다. 모질게 사냥하라고 ‘모질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엄마 아빠의 바람이 무색하게, 이 들고양이는 고기를 입에도 못 댄다. 억지로 새 고기를 입에 대려 하면 구역질이 나오는 채식주의자 고양이로서 쥐포 등 건어물에만 조금 관심을 가질 뿐이다. 특이한 건, 자유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여러 동화 속의 집고양이들과 달리, 들고양이가 무리에서 독립하여 떳떳하게 집고양이가 된다는 점(전형성아 저리 가라!). 이것은 모질의 스스로의 ‘선택’이어서 빛난다. 모질이는 들고양이 시절, 고양이는 당연히 사냥을 하는 거라고 배워왔지만, 더 많은 동물들과 ‘놀고’ 싶고 자기 식으로 살아가고 싶어서 결심을 내린 것이다. 모질이의 엄마 아빠도 쿨하게 이 사실을 인정해준다. 엄마 아빠 고양이가 마지막 밤에 모질이를 떠나는 장면은 뭉클했다. 이제 우리 동화는 모험하는 고양이가 아니라 선택하는 고양이를 가질 만큼 여유가 생겼다. 므흣하다~
3. 개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 유머감각
평소에 "웃기는 것은 선(善)한 것이다"라는 개인 신앙을 갖고 사는 나로선, 썩 맘에 드는 장면이 몇 번 나왔다. 예를 들어, 강아지를 사달란 말을 다시 꺼낼 속셈으로 “저 까치 소리 좀 들어봐요, 엄마, 아빠. 까치가 울면 집안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던데. 음, 이건 우리 집에 아주 예쁜 강아지가 온다든지……” 하고 운을 떼는 딸에게 “옆집 까치야.” 하고 짧게 잘라 치는(!) 아빠의 말솜씨! 또 평소엔 “으르렁” “컹컹” “멍멍” 하고 짖다가 웃을 땐 “헝헝” 소리를 내는 속깊은 누렁이 씨는 정말 완소! (본문의 그림이 얼마나 훈훈한지, 이걸 보고 웃지 않을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