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고양이 - 도시를 누비는 작은 사냥꾼
녹스 사진, 사라 닐리 글, 한희선 옮김 / 예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엄마 아빠가 사시는 집에는 아주 작은 마당이 있다. 옛날 집이다. 집 앞에 재래식 시장이 있는데다가 골목이 많은 동네여서 떠돌이 고양이들이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나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무서워했는데 아빠는 다들 배고파서 우는 거라며 안쓰러워하셨다. 겨울밤이면 마당에 고양이들이 먹을 만한 음식을 내놓으시곤 내게 “고양이들 놀랄지 모르니까 넌 방에서 나오지 말고 있어” 하셨다. 고양이들은 처음엔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눈치였지만, 언젠가부터는 우리 집 강아지들이 맹렬하게 짖어대도 (말 그대로) ‘너는 짖어라’ 하는 듯 유유히 생선 접시를 비우고 가곤 했다. 내가 그럴 만해서 대접 받겠다는데 다들 무슨 상관이야? 하는 듯 당당한 모습이었다.

‘방랑 고양이’는 도시 뒷골목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며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이미 길들여졌거나 길들여질 수 있는 고양이들에게는 보금자리를 주고, 야생의 고양이라면 중성화를 해주는 동물보호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무척 아름다운 책이지만 나는 한국어판 제목이 조금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방랑’이라니. 그건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단어가 아닌가. 이 고양이들은 그저 도시의 뒷골목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트럭 밑에서, 담장 위에서, 허물어진 집들 사이에서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나 이 고양이들은 절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눈빛을 갖고 있다. 이것 역시 자의적인 해석, 특히나 카메라 렌즈를 통해 해석된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버려진 비닐 봉지를 가지고 놀고 (도구를 이용해서 놀 줄 아는 동물은 정말 몇 종 없을 것이다!) 친구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고, 길 한복판에서 낮잠을 자는 고양이들의 모습은 사람인 나를 부끄럽게 하고 ‘네꼬’인 나를 자랑스럽게 한다. 그러나 다시, “아무리 뒷골목에 숨어 지낸다 해도 동물들은 사람이 모는 자동차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 실제적으로 자동차는 뒷골목 고양이들에게 죽음을 유발하는 유일한 기계라고 할 수 있다”라는 저자의 지적에 그만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주이님께 책을 선물 받고 며칠 동안 나는 이 책 속에 있었다. 선물이 온다고, 그것도 멋진 고양이 사진집이라고 좋아라 하고 있었는데 여러 번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과 사이좋게 사는 것은 정말 이렇게 힘든 일일까? 아무도 그것이 ‘생존을 위한 투쟁’인지 ‘선택한 방랑’인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오늘도 거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지구 곳곳의 고양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집 짓고 살 수 있는 동물들은 정말 잘 살아야 한다. 

 

 

*

알라딘 생활(!) 을 시작한 이래, 누군가 이렇게 우편으로 책을 보내주신 것은 처음이예요. 얼마나 좋았는지 포장을 뜯는데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선물 받으시는 분들, 이런 기분이셨군요, 다들!! (나는 이제야 알았다는 억울함마저!) 주이님, 고맙습니다. 주이님 주이님 그러니까 역시 "주인님"같아요. 그것도 좋아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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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춘 2007-08-2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당당한 눈빛이라고 하시니 몇년전에 봤던 풍경이 떠올라요.
지금도 현실같지 않게 느껴지는...
당산역 전철 사거리 한쪽 구석에서 각자 자리들을 잡고
고양이 수십마리가 회합을 하고 있었어요.
고양이들이 그렇게 모이는 건 만화에서만 봤는데...
너무 신기해서 쳐다봤더니 다들 절 노려보길래 얼릉 자리를 피했지만요.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었을지 정말 궁금해요.

네꼬 2007-08-27 19:06   좋아요 0 | URL
히야. 이거 진짜로 구미가 확 당기는 이야기인데요.
고양이 회합이라! 그것도 춘님을 노려보는 고양이들이라!!
아아, 제가 있었으면 엿들었을 텐데!! 상상이 모락모락 피어올라요.
잠 못 잘 것 같아요, 나!

라로 2007-08-2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딘뿐 아니라 제 주위에도 보면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전 고양이가 사실 무서워요.
아마 그 당당하게 쳐다보는 눈빛 때문인가?????ㅎㅎ

네꼬 2007-08-27 19:06   좋아요 0 | URL
저도 전엔 좀 무서웠어요. (사실은 지금도 약간. 바보 네꼬.) 그런데 알고 보면 그렇게 무서운 동물은 아니더라고요. 절 보세요. 제가 어디가....?

에디 2007-08-27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서점에서 이 책을 조금 들쳐봤어요. (사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네꼬님께 빌려보려고. -_-; ) 오래보진 못했지만, 정말 권윤주씨의 글 처럼 "작은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 )

마음에 드셨길 바래요!


네꼬 2007-08-28 14:20   좋아요 0 | URL
얼마든지 빌려드리지요. 하하핫.
: )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려요. 고양이들의 심장도, 제 심장도.
아주 두근두근했답니다. 마음에 들다마다요!

비로그인 2007-08-28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궁금했는데, 네꼬님 서평 보며 쪼매 풀렸습니다.
서평 잘 읽고 갑니다. ^^

네꼬 2007-08-28 14:20   좋아요 0 | URL
디드님, 반갑습니다.
: )
그러게 이 책에 아직 서평이 없었던 게 신기해요. 하지만 사진의 감동을 글로 적기란 참 어렵네요.

짱꿀라 2007-08-28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려진 도시의 고양이들은 얼마나 살기가 힘이 들까요. 인간과 동물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야말로 환상이 아닐까요. 사람들만 버적버적 대는 사회는 그저 악한 기운만이 남는 법이죠. 네꼬님께서 적어 놓으신 문구 '인간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말이 오늘 아침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선물해주신 주이님도 참 마음이 고우십니다. 행복하소서.^^

네꼬 2007-08-28 14:22   좋아요 0 | URL
정말 환상일까요? -_-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완벽하게 어울려 평화롭게 살기야 어렵더라도 우리가 같이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마땅한 것 같아요. 에휴, 쓰레기 분리 수거라도 잘 해야 하는데.. 엉뚱한 결론. 하지만 제 맘 아시죠? ^^ 언제나 언제나 행복하소서. : )

마노아 2007-08-29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꼬님표 사랑스러운 리뷰! 고양이를 볼 때마다 네꼬님이 떠올라요. ^^

네꼬 2007-08-30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그림책, 놀이기구, 트럼프, (물론) 이승환, 만화책 등등을 볼 때마다 마노아님이 떠올라요. 나 리뷰에 자꾸 딴소리 쓰는데, 마노아님처럼 책이 훤히 보이는 그런 리뷰,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어요? (진심으로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