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때문에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동무 7
이원수 지음, 이태수 그림 / 우리교육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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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이 의인화된 동화를 참 좋아한다. 물론 억지로 동물을 사람처럼 만든 부끄러운 동화나(그런 걸 읽으면 속이 울렁거린다), 독자를 바보로 알고 ‘얜 말할 줄 아는 동물이야. 정말이야’ 하고 강요하는 유치한 동화는 절대 사절이다. 하지만 내가 이 동물이라도 그러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동화는 최고다. 이야기 속 동물의 처지가 확 이해가 되면서, 이야기 밖 일상의 동물도 다시 보게 하는 동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동화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김옥의 「학교에 간 개돌이」의 훈견, 그 이름도 정겨운 개, 개돌이다. 개돌이로 말할 것 같으면 사투리를 쓴다! “싫당께롱! 나도 학교 가고 싶단 말여! 나도 하루 종일 집만 지킬라면 얼마나 심심헌 줄 알어? 한 번만 따라갈랑께 나 좀 델꼬 가잉?” (물론 진우의 귀에는 “멍멍!”으로 들릴 뿐이지만.)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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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때문에』는 우리 어린이문학의 자상한 할아버지 이원수 선생님의 단편 동화집이다. 덕분에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동화들을 읽었다. 특히 표제작 「나비 때문에」는 1963년 작으로 거의 반세기 전의 동화이지만, 의인화란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보여주는 듯 감탄을 거듭하게 했다. 개 입장에서 쓴 1인칭 동화로 개 이름은 희수다. 하지만 제 입으로 ‘난 희수예요’라고 말하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자기소개를 세련되게 하는 동물은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희수는 한 집에서 지내는 고양이 나비와 티격태격하는 사이. 그런데 진짜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고 장난으로 그러는 거다. 물론 가끔 너무 약이 올라서 진심으로 달려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도 정말로 아프게 물진 않는다.


내가 입을 쩍 벌리면 나비의 머리나 목덜미쯤은 입 안으로 다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차마 꽉 깨물 수가 없어서 슬쩍 물어줍니다. 그러면 고양이는 신이 나서 내 입술을 물고 귀를 물고 마구 제멋대로 덤빕니다. (14면)

문제는 주인집 남매에게는 항상 희수가 나비를 괴롭히거나, 나비를 쫓아가다 지쳐 헐떡이는 못난 모습만 눈에 띈다는 것. 억울하고 분한 노릇이다. 어느 날 희수가 낮잠을 자다 깨어 보니 이 고양이가 희수 목에 앞발을 척 걸치고 자고 있다.

‘이게?’ .... 조그만 얼굴, 꼭 감은 눈은 갈매기처럼 양쪽 끝이 위로 치켜 올라간 것이 보면 볼수록 귀여웠습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냥 자는 체를 했습니다. 나비가 깰까 봐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28면)

희수는 곰곰 생각한다. 그래, 이 모습을 아가씨와 오빠가 보게 하자. 그러면 우리가 사실은 사이좋게 논다는 걸 알아주겠지. 그러면 나도 좀 예뻐해주겠지. 좀이 쑤셔도 꼼짝 않고 누군가 봐주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밖에서 나비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자 고양이는 매정하게 개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희수는 나비를 붙잡느라 얼떨결에 고양이 뒷다리를 덥석 물었는데 하필 그 장면을 아이들이 보고 만다! ‘미친 개’ 소리를 들으며 (옛날 동화를 읽는 즐거움 중에 하나로, 서슴없이 쓰이는 험한 말 발견하기가 있다. 이 책에는 ‘지랄’이란 단어도 그냥 나온다) 벌을 서고 돌아와 빈 밥그릇을 보자니 새삼 울컥한 희수. 밥을 주는 주인아주머니는 어디 가셨을까? 시장에 간 아주머니를 마중 나가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개도 사람처럼 생각할 줄 알 것이다. 사람과 똑같을 리는 없지만 영 다르지도 않을 것이다. 작가로서 이 균형을 잡기란 곡예에 가까운데, 이원수 선생님은 그걸 어떻게 이루어내셨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어린이 마음을 알고 계셔서다. 동생과 장난치다 오해받는 형, 친구보다 덜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어린이, 그러면서도 그 동생이, 그 친구가 싫지 않은 아이들. 의식하든 안 하든 그런 아이들이라면 이 동화에 어찌 공감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니 효과는 만점이다!

이 책에선 이원수 선생님의 아름다운 문장도 만난다. 「등나무 그늘」에서 은준이는 창식이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그저 등나무 아래서 시간을 보낼 뿐이다.

등나무 그늘은 참 시원합니다. 등나무 줄기들이 얹혀 있는 시렁을 쳐다보면 초록 잎사귀들이 우거진 사이로 해가 반짝반짝하다가는 안 보이고, 안 보였다가는 또 반짝입니다. 눈이 부시어 땅바닥을 보면 땅바닥에는 그늘이 흐늘흐늘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늘에는 잘 돌아가는 팽이 같아 보이는 동그란 햇빛이 수없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53-54면) 

눈부신 햇빛의 묘사 자체도 섬세하지만, 여기에는 친구들과 놀이에 끼고 싶은 은준이의 살짝 외롭고 심심한 마음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어서 울림이 더 깊다. 대가는 역시 대가다.

다섯 편의 짧은 동화만으로 이원수 선생님의 면면을 살펴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동화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여간 뿌듯한 일이 아니다. 저학년용 동화집이지만 나는 우선 동화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어린이들 마음에 들고 싶다면, 말장난과 누구 흉내로는 어림도 없다. 어린이들은 아부하는 작가를 단번에 가려낸다. 어린이들이 원하는 건 자기들과 똑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친구라는 걸, 이원수 선생님은 잔소리도 없이 점잖고 단호하게 보여주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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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7-30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단해요, 네꼬님.
그러니까 이 리뷰는 리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글이랄까요. 글을 읽으면서 입맛을 다셨어요. 너무나 맛있는 글이라서요. 다섯줄만 읽고 다시 일해야지, 네줄만 읽고 다시 일해야지, 바쁘니깐 오늘은 댓글 안달고 도망쳐야지, 했던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갔어요.
이 글은 정말이지 온 맘을 다해 추천이예요!

네꼬 2007-07-3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헷. 뭐 그런 칭찬까지... (이렇게 의젓하게 말하면서도 사실은 촐싹맞게 웃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받을게요. : )

섬사이님.
아 감사합니다. 책을 읽으면 더 멋진 기분이 된답니다. : )

nada 2007-08-0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고 젤 먼저 든 생각.
아, 정말 네꼬 님은 얼른 떡고양이 같은 아가부터 낳아야 하시는 거 아니에요? >.<
이렇게 좋은 동화 같이 읽으면서, 얼마나 아기자기 예쁘게 잘 키우시겠어요.

네꼬 2007-08-0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양배추님.

(떡고양이래. ㅋㅋ 맛있겠다..... 이건 아닌가?)
동화는 제가 좋아서 읽는 거고, 나중에 그 떡고양이는 지가 알아서 읽어야죠, 뭐.
그나저나 일단 하늘을 봐야 별을... 쿨럭.

씩씩하니 2007-08-0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가 좋아서 누구보다 아름답게 동화를 읽고 느낌을 나눌 수 있으시네요..
하긴..저도 좋아하긴 하지만,,리뷰가,점점 어려워서 요즘은 슬럼프에 빠졌답니다..
쓸려면 왠지 기부터 죽지 뭐에요...ㅋㅋ

네꼬 2007-08-0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씩씩하니님.
전 그냥 일기 쓴다~ 생각하고. (안 그러면 저야말로 기죽어서 못 쓸 거예요.) 전 어째 동화를 읽을 때만 깊이 빠지는 것 같아요. 어려서 책을 안 읽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