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을 갖는 게 아직도 좀 쑥스러운 데다가, 서재를 잘 꾸미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심지어 닉네임을 바꾸기까지 하는 게 어쩐지 야단스러운 일 같다. (그리고 뭐, 내가 닉네임을 바꾼다고 해서, 응? 이 사람 닉네임 바꿨네, 하고 알아봐줄 이도 거의 없을 것만 같아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심정으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가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고, 정말로 기적처럼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산책이었다. 그리고 산책을 간다면 가능한 한 멀리 가고 싶었다. 대략 우주쯤으로. 그렇게 멀리까지 걷고 걸으면서 제일 먼 데서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현실은 먼지 한톨까지 빠짐없이 다 현실이라는 걸 절실하게 깨닫던 때였다. 그때 가진 닉네임이 '우주고양이'. 지구인, 우주인 할 때의 '우주고양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나에겐 이 이름이 어딘가 마뜩치 않았다. 지어낸 티가 너무 나는 이름인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서재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이 이름을 사용하는 분이 또 계신 것을 보니 있을 수 없는 이름까진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왜 나는 이 이름이 불편했을까. 오늘 아침 워크숍을 마치고 강화도 바다를 보다가 떠오른 생각은, 이 이름이 힘들었던 때를 환기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공기의 무게조차 느껴질 만큼 예민했던 때, 내가 아팠던 때.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으로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다듬다 보니 내가 이 이름에 만족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정리하는 의미에서 적어두는 건데, 어쩌면 아무도 묻지 않을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으니 굉장히 쑥스럽다. (아아 내가 쑥스러워하는 것조차 아무도 모를지 몰라;;; )
이 와중에 떠오르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 "이름이란 뭐지?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 걸."
이름이란 뭐지? 고양이라 부르든 사자라 부르든 나는 나인데. 그래도 닉네임에는 '되고 싶은 나'에 대한 희망을 한자락 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쑥스럽더라도 계속 닉네임을 쓰기로 한다. 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