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중심 시간경영 - 소명과 사랑을 발견하는 A.R.T.
황병구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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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3년 전(2010.6.23.)에 읽었던 책이다. 2023년 올해 읽어도 여전히 도전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자기계발서와는 분명히 격이 다른 책이다. 일반 책들은 보통 시간을 아껴써야 하는 이유를 남보다 성공하기 위한 전제가 깔려 있다. 시간을 분, 초 단위로 쪼개어 플래너에 계획하고 작성한 뒤 알뜰하게 쓰는 습관을 가져야 성공한다고 가르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시간 절약하는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되면 분명히 남들보다 잘 살게 된다. 자신이 노력하는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결과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 

 

반면 <관계중심 시간경영>은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른 차원에서 풀어썼다. 성공하기 위한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성공하려고 하는냐에 있다. 관계중심 시간경영은 책 제목처럼 관계를 위해 시간을 검소하게 쓰라고 강조한다. 시간을 절약해야 하는 이유도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서다. 주어진 과업을 위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시간을 아끼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이것을 두 가지 용어로 대비하여 독자들에게 설득한다. 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시간을 절약하는 개념을 '시계시간' 이라고 정의하고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관계를 위해 시간을 절약하는 개념을 '사건시간' 이라고 정의한다. 많은 사람들이 훗날 기억해 보면 그날 그때 누굴 만나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주로 기억하게 된다. 몇 날 몇 일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느냐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옛 시간들을 추억하게 된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땅에 살아가는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이 분명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모든 시간을 자기 중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계 중심으로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쓰라는데에 강조점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시간을 쓰고, 이웃과의 관계를 위해 시간을 쓰며, 세상과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줄 알아야 이것이 바로 올바른 시간 경영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나도 직장 안에서 일에 매몰되다보면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빨리 해치워야지만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다보니 주위에서 보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평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내 자신에게 만족이나 기쁨이 현저히 사라진다는 점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어찌보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 보다 최대한 이웃들을 사랑하기 위해, 섬기기 위해 쓸 수 있어야 참 기쁨과 만족이 든다. 실천해 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거다.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섬기는 사람' 이 되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하셨다. 시계시간의 개념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택도 없는 소리다.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낭비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건시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오늘 내가 만난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아낌없이 사용할 때 의미있는 삶이 되고 나도 모르게 기쁨이 차고 넘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실상 시간은 경영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은 주어진 것 뿐이다. 이제 선택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아직도 나의 성공과 유익과 명예와 돈을 위해 시간을 분초 단위로 아껴쓰려고 하는 지독한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후회할 날이 분명히 다다를 것이다. 최후에 남는 것은 일이 아니라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사람만이 남는다. 조건 없이 아낌없이 사랑하는데에, 베푸고 섬기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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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밝은 검정으로 - 타투로 새긴 삶의 빛과 그림자
류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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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반영구적인 잉크를 몸에 새긴다면 추후에 생각이 바뀌었을 경우 후회되지 않을까,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로울텐데 그것을 참고 이겨낼 수 있을까. 젊은 날 한 때의 치기로 보기에는 너무 과격한 결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몸에 타투를 새기는 젊은이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주류에 대해 저항하고 다양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들을 타투로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장난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건 처벌한 몸부림의 표현이다. 문양 하나 하나에도 자신의 고민과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로 평생 간직하고 싶은 그들의 인생 표현이다.

 

그렇다면 나와 같은 기성 세대들은 타투로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 세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젊은 세대들이 패션의 한 분야로 몸에 반영구적으로 새기는 것이 기성 세대들이 옷이나 악세사리로 자신의 기호를 표현하는 것과 같다고 보아야할까? 

 

직업군에 따라 타투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젊은 세대 중에도 타투에 대해 상대방의 표현에 대해서는 존중은 하나 본인은 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다. 기성 세대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타투를 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은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타투도 소위 말해서 귀엽게 살짝 하는 것은 좋지만 과도하게 드러나는 문양은 보기에 좋지 않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이런 인식들이 사회적 소리에 대한 무의식적 규정에 갇혀진 생각이 아닌가라는 타투이스트의 반론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타투에 관해서는 우리나라가 앞서가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많은 해외의 사람들이 타투를 받기 위해 찾아오는 추세다. 국회에서도 타투업 법제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활의 시위는 당겨지고 있다. 타투의 의미 속에 담겨진 정체성의 문제를 들여다 보아야 할 것 같다. 다른 사람이 강요하는 정체성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찾아낸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 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할 것 같다. 

 

예전보다 잘 살게 되고 풍요해졌지만 상대적으로 정신적 빈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들은 다양해졌지만 정체성의 빈곤이 깊어지고 있다. 타투에 가려진 사람들의 정체성 발견과 회복에 귀를 기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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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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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란 무엇인가?

 

더티 워크는 선량한 사람들의 암묵적 동의 하에 사회 또는 국가가 운영되는데 꼭 필요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다지 반기지 않고 불편하게 여겨지는 일을 말한다. 이 책은 미국에서 사람들이 꺼려 하는 일들 중에 필수 노동이라고 말하는 직업들을 예로 들고 있다. 교도소 내에 정신질환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도관과 관련 상담사들, 원격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드론 조종사들, 미국 국경 내 순찰과 감시를 맡고 있는 국경수비대원들, 도살장 노동자들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직접 그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도덕적 외상을 호소한다. 더티 워크를 자발적으로 선택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경제적 곤경에 빠져 있기에 선택의 폭이 사실상 넓지 않다. 사회적으로 존경 받기 보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일반 시민들은 자신을 대신하여 일하고 있음에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사회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교도관의 직업이 더티 워크가 된 이유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집단' 이라는 점과 그들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교도관 중에서도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재소자를 괴롭히게 하거나 징계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게 하는 더티 워크를 시킨다는 점이 존재한다. 이런 점은 교도소 자체가 외부의 감시를 받지 않기 때문이고 완전한 폐쇄된 시설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도 드론으로 원격 전쟁을 벌이는 조종사들도 근무하고 있는 곳이 외부와 동떨어져 있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철저히 기밀 사항으로 보안 처리되고 있다는 점은 더티 워크로 바라보게끔 하고 있다. 실제 전쟁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 군인과 달리 컴퓨터 화면 상으로 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드론 조종사들은 자존감이 낮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심적 고충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그들을 오랫동안 현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들의 상처를 완화시키고자 부대 내에 목사, 상담사 등을 두지만 근본적인 해결점은 제시해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누군가는 필수적으로 종사해야 하는 일이지만 더디 워크로 분류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 나를 대신하여 불편한 일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직업 특수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걸맞은 예산과 복지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함에도 예산 절감을 이유로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부유층의 사람들과 자녀들은 그 누구도 그런 일을 시키지 않는다점도 돌아봐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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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학교의 탄생 - 스마트폰 종족을 위한 새로운 학교가 온다
최승복 지음 / 공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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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학교 교육은 100년 전 시대의 필요에 의해 생긴 교육 제도 기반에서 이루어진 교육이었다면, 포노 사피엔스라 불리우는 현재의 학생들에게 과연 과거의 교육 방법이 통용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전제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현대 학교 기관이 탄생하게 된 배경인 프로이센의 학교 모습에서 시작한다. 당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던 프로이센은 국가를 살리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가 통제하는 학교를 짓기 시작했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획일적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교육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영국과 미국도 마찬가지였고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그들의 제도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겪으면서 강제로 일본이 주입하는 교육 제도가 우리 땅에 들어서게 되었고 한국 전쟁 이후에는 친미 반공교육을 기반으로 미국식 교육 제도가 정착되면서 근대 이후 우리의 교육은 많은 혼란 속에서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것은 기정 사실이다. 다만 시대가 바뀌면서 교육의 목적과 방향이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학교라는 기관이 기존의 방향을 답습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다. 

 

오늘날 교육은 지식을 많이 습득하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 파편화된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어떻게 창의적으로 만들어갈 것 인가가 관건이다. 학교나 교사가 해 주던 지식 습득도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지식을 손쉽게 찾아내 활용할 수 있게 된 점도 큰 변화 중에 하나다. 학교의 존재 이유가 과거 산업 인력을 양성한다든가 국가의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며 공존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존재의 이유가 되어가고 있다. 

 

학습의 방향도 단순히 누군가 주입해 주는 학습 경로를 쫓아 수동적으로 진행해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좋아하는 흥미와 관심거리를 주도적으로 찾아 학습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를 다닐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시대의 변화가 이러할진대 아직도 우리는 대학 입학 또는 취업을 목표로 성적 과열 경쟁의 대열에서 악착같이 더 빠른 속도로 성공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방법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 될 수 있었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의 노동을 대체하고 있고 지식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이 시점에서 아직도 학교가 예전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면 국가적으로 보았을때도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포노사피엔스들이 학교에 대거 다니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의 필요와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다양한 디바이스와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이들에게 학교의 교육과정은 국가적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화를 통한 창의성에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포노사피엔스들은 지식과 정보를 순차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 프로젝트 수업이야말로 자신의 관심과 흥미를 중심으로 지식정보 세계를 구성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제는 수업 과정의 민주화, 학생 인권, 학생 복지 문제를 넘어 교육혁신의 중심 과제가 지식 중심 교육을 벗어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밀레니얼에게 존재하는 지식과 정보의 전달, 주입은 강요와 폭력이다. 

밀레니얼에게 지식과 정보의 속성은 자신의 관심과 흥미, 필요에 맞는 지식과 정보인지, 내가 찾고 싶은 내용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얼마나 최신 지식과 정보인지,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지식과 정보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는지 등이 매우 중요하다. _117쪽

 

밀레니얼의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 이다. _120쪽

 

조선의 성리학자들과 정조 등은 18세기 조선에 일어난 활발한 인쇄, 출판문화와 새로운 작문, 독서 문화를 비천하다고 탄압하고 저술가들을 억압했다. 각종 서적을 읽기 쉽고 휴대하기 편리하게 소형화한 책자들을 경망하다고 탄압했다. 오늘날 지식과 정보가 디지털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스마트 기기 출입을 금지하고 압수하고 있는 우리 학교의 모습이 18~19세기 조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_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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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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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서울의 모습은 어떨까? 

 

오래된 도시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에 사진은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만약 사진 자료가 많지 않았을 때라면 어떻게 해야 될까? 

 

소설가 김남일님은 100여년 전 서울의 모습을 사진 자료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남긴 문학 작품 속에서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서울에 대한 여행 자료를 100여년 전 문학 작품 속에서 소중한 추억들을 건져내어 깊이 있는 도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 책은 학고재 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 근대 문학 기행 시리즈 중 하나다. 평안도, 함경도, 도쿄, 서울 등을 중심으로 문학가들이 남긴 발자취를 돌아보며 덤으로 도시를 기행하는 즐거움을 선 보이고 있다. 우리도 잘 아는 바와 같이 우리 근대사는 슬픔과 아픔의 역사가 간직된 시기다. 대일 항쟁기를 비롯하여 광복 이전까지 숱한 사람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했다. 특히 <서울 이야기>에 등장하는 문학가들 중에는 중도에 변절한 인물도 있지만 대다수 작품을 통해 저항 정신을 드러내고 나라 잃은 슬픔을 글로 표현했다. 

 

서울은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행정적인 수도일 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의 중심 도시였다. 수 많은 문학가들이 서울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들이 남긴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서울의 모습이 당시 100여년 전 서울의 모습을 돌아보는데에 큰 도움이 되는 자료로 쓰일 수 있게 되니 글이라는 것이 효용성이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저자가 발굴해낸 문학 속 서울의 이야기를 살펴 보면 이렇다.

 

1887년 경복궁 후원 건청궁과 향원정 일대를 밝힌 전기는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2년쯤 앞섰다. 그해 5월에 개통한 전차도 마찬가지다. 도쿄는 1903년이 되어서야 전차가 개통되었다고 하니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다. 현재 우리의 행정 지명 명칭도 한일 병합 조약 체격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변경되었다고 한다. 도, 군, 면 체계로. 

 

일제는 식민 정책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수시로 공진회니 품평회니 박람회니 하는 대규모 행사를 열었다(169쪽)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이러한 행사의 폐해는 이루말할 수 없다. 경복궁이 난장판이 되었다. 

 

당시 서울 사람들은 하루 하루 식사를 챙겨 먹는 일이 큰 일이었다고 한다. 서울 사람 하루 품삭이 일본인에 비해 턱없이 작았고 여자는 남자에 비해 더더욱 적었다고 한다. 옛 서울의 북촌은 사대부 명문가들이 살았고 남촌은 가난한 서민들이 살았는데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부터 전세가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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