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코 이야기
김민정 지음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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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성노예제에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일본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까지 각 국의 어린 소녀들과 여자들을 강제로 잡아다가 전쟁터로 보내고 일본군을 위한 성노예로 활용했다. 그 증거들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사죄와 법적인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와 정반대로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끝까지 사죄하며 국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독일과 완전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 : 라우 대통령은 "독일의 수도사"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 했던 훌륭한 신앙인이었고-독일 개신교 장로- "독일의 현자"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미래를 내다보며 약자를 돌보고 참된 화해를 몸소 실천해간 정치가 였다) 는 강자만이 살아남는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고 독일식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철저히 지켜가려 했다. 그런가 하면 2000년 2월 16일에는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독일 대통령 중 처음으로 과거 독일이 유대인에게 저지른 죄악을 진심으로 사죄하여 독일과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화해할 길을 열어 놓았다"(번역과 반역의 갈래에서, 233~234쪽)

 

"독일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오늘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게 빌리 브란트 수상이 무릎 꿇고 사죄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왜 모르는지 모르겠어. 아시아 국가들은 점점 더 힘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가 더 큰 문제야" (정글만리1, 411쪽)

 

일본군 성노예로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것은 이렇다.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이다. 반면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이렇다. 전쟁은 이미 끝났다,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다, 협상을 통해 사과도 했다, 배상도 다 끝났다, 그런데 왜 한국 정부는 약속을 안 지키는가, 일본 사람들은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식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이다. 요지부동이다. 

 

역사 문제가 곧 외교 문제로 확전되고 국가 간 대립으로 이어지는 모양새가 한일간의 양국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독일이 이스라엘에게 보인 국가적 차원의 사죄, 배상은 좋은 본보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다양한 주장을 펼치며 교과서에 조차 일본군성노예가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왜곡하고 있으니 감정이 격화될 수 밖에 없다. 일본군성노예 피해를 입은 용기 있는 할머님들이 없었다면 영원히 잊혀질 뻔한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1988년에 최초로 김학순 할머니에 의해 폭로가 되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난 성노예 피해 사실은 과거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야기하기엔 국제 사회가 결코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거짓은 거짓을 낳는다. 우리 사회에서도 개인이 거짓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을 때 결국 거짓이 탄로나게 되고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물며 국가가 저지른 범죄라면 국가가 사죄하고 배상하는 것이 순리다. 꽃다운 한 개인의 인생을 처참히 짓밟혀 놓고 지금 와서 없던 것처럼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그 누가 그들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역사를 잊는 국가는 패망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국가는 신뢰받지 못한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사죄할 일이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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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로드 뷰 별숲 동화 마을 36
전성현 지음, 오승민 그림 / 별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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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왜 급식소에서 밥을 먹지 먹지 못하고 급식소 밖 계단에서 밥을 먹을까?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던 태우는 왜 직접 뛰지 않고 구경만 할까?

태우는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볼 때마다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놓는 이유가 무엇일까?

윤지는 정든 고향을 떠나는 이유가 뭘까? 

 

세 친구는 모두 소라읍에 살았던 친구들이다. 지금은 새로운 학교에 다니고 있다. 정든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 중이다. 세 친구 모두 아픔을 지니고 있다. 어떤 아픔일까? 모두 지진이라는 공포스러운 광경을 직접 경험한 친구들이다. 엄마를 잃어 버린 수아, 집 안에 갇혀 있다가 뜨거운 라면 국물에 화상을 입은 태우, 현관문이 열리는 않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갇혀 버려 폐쇄 공포증을 앓고 있는 태우, 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구 공장이 온데간데 없이 무너져 삶의 터전을 몽땅 빼앗겨 버린 윤지. 세 친구 모두 말 못할 아픔을 지닌 친구들이다. 새로 옮겨진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지진 때문에 이주한 아이들이라는 꼬리표, 상대방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자신들이 겪지 않았다는 안도감으로 가볍게 던지는 불편한 위로, 그들이 앓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지진에 대한 공포 휴유증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분위기 때문에 세 친구들은 고향을 더욱 그리워한다. 

 

강원도에서도 몇 년 전 큰 산불로 집을 잃고 가족을 잃은 이재민들이 지금까지 임시 거처에서 불편하게 생활하는 모습들이 언론에 공개된 적이 있다. 수해로 피해를 잃은 분들도 금방이라도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살아왔는데 정부의 미온적 대처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된다. 언론에서는 천재지변 당시에는 피해를 당한 이들을 취재하며 아픔에 동참해 달라고 방송을 끊임없이 흘려보내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남의 일처럼 여기는 듯 하며 정부의 다양한 보상 대책 방안들도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피해를 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재민들의 고통을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없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아픔을 감내해 내는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년전 로드뷰>의 세 친구들도 일년 전 자신이 살았던 소라읍을 다시 찾아간다. 일년 전 끔찍하게 경험했던 지진의 현장을 찾아간다. 모두가 외면해 버린 지진의 현장을. 세 친구들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 자신이 다녔던 학교, 학교 운동장에 묻어 두었던 학급 보물상자를 찾아 나선다. 태우는 잃어버린 축구공을 찾는다. 수아는 뜻밖에 선물인 고양이 까망이와 재회한다. 까망이는 유일하게 수아 엄마가 담장에 깔린 체 누워 있는 것을 끝까지 곁에서 지킨 장본인이다. 윤지는 소중하게 자신이 쓴 편지를 찾아낸다. 폐허가 된 곳에서 자신들의 추억이 담긴 현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로드뷰' 사진 때문이다. 로드뷰는 일년 전 자신이 살던 마을의 골목골목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태우가 학교에서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 볼 일을 보는 모습은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태우의 지진 휴유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아는 엄마의 부재를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 없는 애라고 놀림 받을까봐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학교 안에서 우리가 알 지 못하는 다양한 아픔을 지닌 아이들이 있다. 며칠 전 한 교실에 수업을 하러 들어갔다. 맨 앞에 친구들 보다 키가 작은 아이가 앉아 있다. 수업에 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색종이 접기 시간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비행기를 접더니 나에게 날린다. 색종이로 집게 모양의 종이를 접더니 내 팔을 꼬집 듯 접근해 온다. 그 아이의 반응에 리액션을 크게 해 주었더니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반응을 내게 보인다. 좁은 교실 안이지만 짧은 시간을 내어 술래잡기도 했더니 나를 종종 쫓아온다. 그리고 뭔가 내게 이야기를 하고 연필을 가져와 내 이름을 적어 달란다. 공부하자고 할 때에는 고개를 숙이고 풀 죽어 있던 아이가 놀이 시간에는 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아이는 전에도 학교 교문 앞에서 등교할 때 본 적이 있다. 엄마랑 손을 붙잡고 매일 등교하는 아이다. 등교할 때도 기운 없이 걸어오던 모습이 생각나다. 교실에서 몇 번 만나면서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삶을 들어보지 않고서는 아이가 보인 행동의 원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의 삶을 들여다 보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다. 코로나 시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결국 교실 안에서 아이와 대화를 많이 나누는 방법 밖에 없다. 말 문을 닫아 버리고 입을 떼지 않는 아이라면 입을 떼는 뭔가의 접촉점이 있을 때 그 순간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아이에 맞게 다가서야 한다. 교실 안에 담임 선생님들이 힘과 에너지를 뺏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 밖 사람들은 꼬맹이 얘들 가르치는 것이 뭐가 어렵냐고 하는데 모르는 소리다.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들 모셔다가 교실 안에서 일주일 정도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시라고 한다면 모두 두발 두손 다 들며 차라리 일하는 게 낫다라고 할 것이다. 그만큼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생활하는 일은 엄청난 힘이 드는 일이다. 아이들이 눈높이에서 하나하나 맞춰가야하니까 말이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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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 - 한니발부터 닉슨까지, 패배자로 기록된 리더의 이면
장크리스토프 뷔송.에마뉘엘 에슈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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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승자의 기록이 오랫동안 남아 역사가 되곤 했다. 우리나라도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 뿐만 아니라 전해오는 기록들을 보더라도 승자의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패자의 기록은 패자 자신이 죽거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기에 기록으로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했다. 다만 억울한 패배라든지 패배에 담긴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후대에 역사가들에 의해 다시 조명되고 역사화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무명의 용사들이 이름없이 죽어갔듯이 대부분의 인물들은 연기 사라지듯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는 승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주목받을 수 없었던 인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보인 투쟁과 정신적 사상들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했고 결과는 패배였지만 패배의 역사 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의 주인공들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저자들이 고집스럽게 역사 속에 파묻힌 패배자들 중 열 세명을 시대순으로 다시 불려냈다. 책의 부제 또한 '한니발부터 닉슨까지 패배자로 기록된 리더의 이면' 인 것처럼 리더는 패배자였더라도 분명히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역사가들이 증명하고 있는 듯 싶다. 

 

내가 주목한 인물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와 탄핵 당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다.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였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편하게 습관적으로 부른 호칭이 진짜 이름보다 더 많이 애용되고 있다. 체 게바라를 대표하는 사진, 별무늬 장식이 달린 베레모를 쓴 사진은 파리 출신의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촬영했다. 그는 극좌파 중에서도 더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지닌 원액의 스탈린이라고 저자들은 평가한다. 볼리비아 산악지대를 거침없이 다니면서 지옥행군도 마다하지 않았고 변변치 않은 전투복과 신발로 험악한 지형을 소수의 부대원들을 인솔해서 다녔던 혁명가였다. 항상 그의 전투복 바지에는 책과 탄환, 에어로솔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어디에서든지 책을 읽었으며 천식이 있었기에 상비약을 챙겨다녀야했다. 

 

볼리비아, 쿠바 등 혁명이 필요한 지역을 국경선을 밥 먹듯 넘나들며 어느 한 곳에 구애받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자신의 혁명 사상에 동조하는 이들을 끌어모으고 기존의 정치체를 전복하는 하는 일에 목숨마저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패배자로 역사에서 기록된 것은 쿠바의 카스트로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볼리비아에서 결국 최후의 생애를 마감했지만, 남아메리카에서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워터케이트로 불명예 퇴진을 당했던 리처드 닉슨은 정치적 대결자였던 케네디와 늘 비교되곤 했다. 케네디가 귀족의 느낌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면 리처드 닉슨은 늘 시골 아저씨처럼 평가되었다. 닉슨의 가정 환경도 케네디가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 정세에서 반공주의가 흐름 속 대세를 잡아가는 쯤에 닉슨은 정치적 재계를 시도할 수 있었고 결국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중국 마오쩌둥과 회담을 통해 국교를 정상화하는 등 대국민적으로 인지도가 높았으며 그의 재선은 따논 당상이었다. 대통령 대선에서도 당연히 민주당 후보를 앞질렀다. 그러나 문제가 터진 것은 도청했던 사실을 은닉하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닉슨의 정치적 참모들의 판단도 부정확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신뢰도가 워낙 높았던 것이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었을 수가 있었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한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으로 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으나, 그의 죽음 이후 닉슨을 추모하는 후임자들의 등장과 그가 남긴 외교적 성과들이 재조명 되면서 위대한 패배자로 재인식되고 있다. 

 

역사가들의 의해 소환된 13명의 패배자들의 면모를 다시 살펴 보는 기회를  가져보시라.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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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르완다 나의 첫 다문화 수업 1
엄소희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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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아프리카청년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엄소희 작가의 책이다. 르완다라는 국가 이름은 생소했다. 최근 나는 한 모임에 갔다가 르완다에서 한국으로 유학온 학생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친구는 현재 대전 소재의 대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그외에는 사실 르완다는 지리적으로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 몰랐다. 책 표지 다음 장에 그려진 아프리카 지도를 보며 르완다라는 국가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알게 되었다. 도서출판 '초록비책공방'에서는 <나의 첫 다문화 수업> 시리즈로 르완다, 가나,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여행을 가더라도 아프리카는 잘 가지 않는다. 여행 관련 책이나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들을 보더라도 아프리카 관련 책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르완다에서 직접 머물며 청년의 시선으로 르완다를 바라본 그대로, 있는 그대로 기록한 <있는 그대로 르완다>는 상업적이지 않아서 좋았고 르완다의 역사, 문화 뿐만 아니라 최근 아시아의 싱가포르를 꿈꾸며 도약하는 발전가능 풍부한 르완다를 소개한 점 등이 읽어내려갈 때 식상하지 않고 고리타분하지 않게 느껴져서 좋았다. 

 

르완다는 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작은 국가라고 한다. 1990년대 제노사이드라고 집단인종학살 사건으로 이름 오르내렸던 르완다는 세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적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고산지대이기에 우리나라의 봄가을 기후를 느낄 수 있기에 쾌적한 환경이라고 한다. 국토 면적이 좁기에 인구밀도는 세계에서도 거의 9위라 한다. 특이한 점은 르완다는 일회용 비닐봉투를 강력하게 규제한다고 한다. 공항에서도부터 샅샅히 뒤져 비닐은 아예 반입시키지 않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뿐인가. 길거리에 휴지하나 없다고 한다. 예전에 일본이 그랬다고 하는데 일본은 비교할 대상이 아닌 것 같다. 환경미화원, 경찰관들이 비교적 많은 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처럼 르완다는 매주 토요일 8시부터 11시까지는 온 국민들이 나와서 공동체 활동으로 마을가꾸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한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전 세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국회의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르완다라고 한다. 그 이유는 제노사이드 이후 남성들이 많이 사라진 이유도 있겠지만 국민들 인식이 달라진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전기자동차를 생산하고 스마트폰까지 생산하는 나라라고 하니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초중학교까지 무상교육 제도가 있으며 특별한 먹거리로는 고산지대에서 나는 커피는 커피애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좋다고 한다. 르완다 커피! 그리고 고산지대에서 재배하는 감자는 우리나라에서 먹는 감자맛과 전혀 다르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달달하고 푸석하지 않으며 각종 요리에 단골로 들어가는 재료라고 하니 국민재료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우리와 동떨어진 국가들에 대한 책을 대하면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된다. 특히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들은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관련 책들이 시중에 많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르완다를 비롯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 피해에 대한 아픔이 많다. 르완다는 독일, 벨기에로부터 오랫동안 지배를 당해왔다. 특히 벨기에는 르완다 내 부족간 이간 작업을 해 왔다. 식민 지배의 편리성을 위해 치졸한 짓을 한 것이다. 제노사이드 즉 집단인종학살이 일어난 이유의 한 쪽 측면에서는 벨기에도 자유로울 수 없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학살 사건이 봉합되었지만 아직도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완전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상처와 아픔이 잊혀지지 않을까 싶다. 르완다에서는 이런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제노사이드 해설사' 를 학교에 파견하여 지속적으로 교육을 한다고 한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교육을 통해 예방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통령도 헌법을 개정하여 장기 집권을 하려고 한다고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국민적 인기가 높고 지지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물러나야 할 때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물러나야 하는 것이 순리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특히 권력에 대한 욕심은....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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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마음을 묻다 - 인공지능의 미래를 탐색하는 7가지 철학 수업
김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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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인간을 능가할 것인가? 사람과 같은 존재로 여길 수 있을까? <인공지능, 마음을 묻다>에서는 철학자의 시선으로 인공지능을 말하고 있다.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범위를 넘어 사람처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사람처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존재'를 현상적 지식을 가진 존재로 말한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위험해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활 곳곳 인공지능이 내재되어 있지 않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쓰여지고 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은 탑재한 알파고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바둑 기보를 짧은 시간 안에 쉬지 않고 익히는 능력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알파고의 능력은 점점 고도화될 수 밖에 없다. 이제 알파고를 이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확신한다. 유일하게 알파고를 이긴 사람으로 이세돌 9단이 최초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알파고 제로라는 인공지능은 기존의 인공지능과 달리 사람이 주입한 지식과 달리 사람이 주입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학습 능력을 진보하여 바둑 기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이제 사람에 의해 움직여 지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단계가 되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바라본다. 

 

그렇다면 점점 진화되는 인공지능을 사람처럼 생각해야 할까라는 문제가 생긴다. 인공지능은 분명 기능적으로 사람보다 앞설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 예술감각(저자는 '감각질'이라고 표현한다), 윤리관 등 현상적 지식은 내재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사람의 고유 특성인 감정 표현은 내밀한 것 외에는 일반적인 표현들은 충분히 인공지능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이 당초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인공지능을 발전시킬 것이며 심지어 사람을 초월하는 지능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여기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인공지능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사람이 우선 시되고 인공지능은 보조가 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 관건이다. 만에하나 인공지능이 사람을 지배하거나 사람과 같이 되어 또 다른 인격체가 된다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처음부터 적절한 경계선을 그어놓고 개발해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윤리적인 부분은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에 의한 윤리적 판단이 과연 절대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람도 판단이 옳지 않고 편견에 의한 각종 오해와 불신을 유발시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라고해서 편견의 오류에서 완전 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최근 사례에서 보듯이 인종차별, 성차별 등이 인공지능에 의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 마음을 묻다>에서는 이와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철학적 질문으로 던지며, 현재 수준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생각해야 되며 앞으로 인공지능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위험성이 감지된다고 해서 인공지능을 피해갈 수는 없다. 인공지능을 사람들이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는 공동의 합의를 세워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의료, 교육, 전쟁, 재판 등 사람들의 안전과 복지에 깊숙히 관여하는 부분은 친인간적인 활용 지침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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