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찻잔 - <할머니의 조각보>에 이은 가족 사랑 이야기 미래그림책 131
패트리샤 폴라코 지음, 김서정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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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가치를 다시 생각한다. '축복은 부여잡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 차르 황제는 유대인들을 자국이 땅에서 쫓아냈다. 유대인들은 황제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수레에 싣고 갈 분량만큼의 짐만 허락했다. 패트리샤 폴라코의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다. 미국으로 건너가기로 결정한다. 먼 친척이 있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타고 갈 배의 뱃삯을 마련해야 했다. 패트리샤 폴라코의 증조할아버지는 폐렴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다. 뜻밖의 천사 같은 존재를 만났다. 러시아 의사였다. 자신의 집을 내주며 병든 몸을 치료해 주고 심지어 미국으로 건너갈 뱃삯도 조건 없이 마련해 준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증조할머니가 가족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할머니의 찻잔'은 축복의 상징이다. 찻잔을 나누어 마시며 서로의 축복을 빈다. 축복은 부의 많고 적음이 기준이 아니다. 가족 간의 애틋한 사랑과 보호가 곧 축복이다. 가난하더라도 가족끼리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게 바로 축복이다. 할머니의 찻잔은 축복의 통로였다. 쫓겨가는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며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누었다. 

 

축복의 가치는 고여 있지 않다. 흘러넘친다. 할머니의 찻잔을 러시아 의사에게 나누어준 것처럼 패트리샤 폴라코의 가족들은 이웃들에게 증조할머니의 유언처럼 빵과 소금을 나누듯 자신의 것들을 기꺼이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간다. 축복은 나누어 주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부여잡고 지키는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축복의 사람은 나누는 삶을 산다. 언뜻 나누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있겠지만 나중을 생각한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참고로 축복은 반드시 물질적인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질적 풍요가 주는 정신적 빈곤도 생각해야 한다. 인색한 삶은 메마른 땅과 같다.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나눔은 부유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공감하기에 어려움을 함께 하고자 함이다. 이웃의 고통에 눈을 감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힘이 있는 사람일수록 약자를 돌아보아야 한다. 부유할수록 가난한 자를 돌아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축복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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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선생님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2
패트리샤 폴라코 지음,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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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책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이다. 나는 조병영 교수의 『읽는 인간 리터러시를 경험하라』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글과 그림을 직접 그린 페트리샤 폴라코의 자서전적인 책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글자를 읽지 못했던 그녀가 훗날 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 되기까지 주변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페트리샤 폴라코의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기가 막힌 방법으로 책 속에 담긴 지식의 보화를 알려주었다. 

 

"지식의 맛은 달콤하단다. 지식은 꿀을 만드는 벌과 같아

 

할아버지는 페트리샤 폴라코가 일곱살 때 책 표지에 꿀을 떨어뜨린 뒤 손으로 찍어 먹게 했다. 달콤한 맛을 보게 했다. 책에 떨어뜨린 꿀을 통해 지식의 맛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게 했다. 할아버지의 지혜는 백 마디 잔소리보다 낫다. 책 좀 읽으라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것보다 강인한 인상을 준 행동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페트리샤 폴라코는 여느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글을 읽지 못하기에 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한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학교 가는 일은 그녀에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기적은 새로 바뀐 담임 선생님을 통해 일어났다. 생명의 은인이자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 준 조지 펠커 선생님. 

 

"우리 모두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인생이 경이로운 거다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다양한 시도를 해 본다. 페트리샤 폴라코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낸다. 글 읽는 원리를 터득하게 되자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은 바로 페트리샤 폴라코였다. 스스로에게도 놀라움 그 자체였다. 

 

지금 어른들도 어렸을 적 페트리샤 폴라코의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글을 읽고 글을 이해한다는 것은 놀라움 그 자체다. 단순한 문자를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맥락 안에서 뜻을 새롭게 펼쳐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기적 중에 기적이라고 본다. 아이들마다 글을 깨우는 속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억지로 속도를 내게 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좋다. 일부러 선행 학습이라는 방법을 동원하여 남들보다 일찍 깨우칠 필요도 없다. 스스로 깨닫고 기쁨을 맛볼 때 무서운 속도로 책을 읽게 된다. 페트리샤 폴라코처럼 말이다.

 

"선생님은 영원히 나의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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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스타! - 수줍음 많은 아이를 위한 책 마음별 그림책 1
패트리샤 폴라코 글.그림 / 나는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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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위한 그림책

한 명의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고 밖으로 꺼내는 숭고한 과정이다. 그 아이의 부족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할 수 있는 것을 기대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선생님은 나의 잠재력을 깨워 주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나는 미친 듯이 책을 읽었지요."

"네가 나의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이야"

"아이들을 끝까지 믿어 주셨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신이 지닌 진정한 힘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가르침은 우리 모두가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기회와 용기만 있다면요"

사람들 앞에서 입 뻥 긋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누군가는 발표도 못하는 아이로 취급한다. 반면에 누군가는 그 아이가 왜 발표를 하지 못하는지 원인을 자세히 살펴본다. 어떻게 하면 수줍음 없이 발표를 할 수 있을지 환경을 찾아본다. 기회를 주고 용기를 끊임없이 보내준다. 조건 없이 격려하고 기다려준다.

아이마다 두려워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아이는 한 명도 없다. 교사는 아이의 잘할 수 있는 점을 함께 찾고 두려움의 대상에 적응하도록 인도한다. 자서전적 그림책인 『오늘은 내가 스타』에는 주인공이자 작가인 페트리샤 폴라코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자신이 성장하기까지 도움을 준 웨인 선생님과 조셉 트랜치나 선생님이 계셨다.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다. 미친 듯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다.

위대한 교사는 아이를 위대한 작품으로 바라본다. 조각가의 눈에는 평범한 돌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이미 자신이 완성하게 될 작품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평범한 아이가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동반한다. 한 아이가 위대한 작품으로 빛날 때까지 교사의 수고와 열정을 필요로 한다. 교사의 손에 아이의 장래가 달려 있다. 아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교사는 끊임없이 아이와 함께 한다.

『오늘은 내가 스타』에 그려진 그림에 몰입된다. 선생님의 표정 하나하나에 진심이 묻어 있다. 친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저마다의 개성이 듬뿍 담겨 있다. 실망하지 않고 기대감으로 끝까지 바라보는 선생님의 모습에 마음 한편에 따뜻함이 베어 온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역할이 주어졌을 때 조금씩 조금씩 표정이 밝아지고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여겨졌던 부분도 두렵지만 살며시 도전해 가는 모습에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

아이 안에 어떤 잠재력이 숨어 있는지 꺼내지 않고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선생님이 노력하면 하늘이 도와준다. 교사의 노력을 신뢰하지 않으면 아이는 위대한 작품이 되기 어렵다. 교사가 아이에게 온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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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독의 시대 - 문해력 붕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박세당.박세호 지음 / 다산스마트에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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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붕괴의 원인 중 하나는 난독이다. 난독이란 후천성 독서 장애를 말한다. 선천성인 난독증과는 다른 개념이다.

난독은 결국 문해력의 저하로 나타난다. 어린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인들 중에도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아 책 읽는 뇌가 닫힌 경우가 나타난다. 기능이 퇴화된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점점 심화되고 있다.

난독은 치료가 가능하다. 어휘력을 복구하거나 책을 읽는 시선을 교정하여 읽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큰 소리로 낭독하거나 정독 또는 반복 읽기를 통해 어휘와 음운을 처리하는 기능을 빠르게 당길 수 있다.

문해력은 네가 단계를 밟아 발달한다. 글자와 발음을 정확하게 대응시키는 음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단어를 깊이 이해하고 문장 내의 용도와 가변성을 아는 어휘력, 글을 빠르고 정확하게 읽는 유창성이 습득되어야 이해력 단계에 이를 수 있다. 문해력은 단순히 문자를 읽고 쓰는 힘이 아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난독을 염려해야 아이러니 현상이 나타난다. 대부분 디지털 기기에서 글 읽기는 위아래 또는 스크롤을 기준으로 금방 금방 내려 읽는 습관이 생긴다. 글을 정독하여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뇌 구조 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 처리를 하며 뇌 회로로 전달해야 한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깊이 있는 지식보다 얕은 지식이 소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 자정작용이 더디게 진행된다. 일상에서 책을 멀리하다 보면 독서 기능은 퇴화된다.

새삼스럽게 책을 읽어보려 해도 곧 좌절을 경험한다. 난독을 극복하는 일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시선추적기를 활용한 난독 분석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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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문해력 - 끊어진 대화의 시대, 텍스트와 세상을 새롭게 읽는 법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26
조병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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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이란 무엇일까? 단지 읽고 쓰는 힘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힘'이어야 한다. 기계가 읽고 쓰는 시대에 사람이 직접 읽고 쓰는 것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텍스트는 삶이고, 삶은 텍스트다" _282쪽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의 발달로 누구나 읽고 쓰는 일이 가능해졌다. 읽고 쓰는 일은 단순히 문자를 인식하고 표현하는 일을 넘어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AI의 발달로 기계가 사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읽고 쓰게 되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월등히 앞선다. 사람이 쫓아갈 수 없을 정도다. 효율성은 뛰어나나 인간 답지 못하다. 삶이 배제되어 있다. 그냥 텍스트일 뿐이다.

문해력은 소통하는 도구다. 소통은 쌍방향이다. 균형 잡힌 대화다. 점점 소통이 단절되고 연결의 시대이나 고립되어 간다. 이유가 무엇일까? 무늬는 소통이라고 하지만 삶을 공감하고 경청하는 태도가 누락된 일방적인 문해력 때문이다. 정치도 양극단에서 대립하고 있다. 겉으로는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정치를 운운하지만 문해력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문해력은 삶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을 읽고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맥락으로 말을 했는지를 살피며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다.

문해력이 높아질수록 사람다워진다. 현명한 생각과 행동, 지혜로운 판단을 가지게 된다. 텍스트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담겨 있다. 천천히 읽고 깊이 읽게 되면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된다. 그게 공감이다. 단순히 문해력 점수가 높다고 해서 뛰어난 자질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수능 점수가 높다고 해서 인간성이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말이다. 문해력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이해하려는 마음의 태도와 관련이 있다.

현재 우리의 문해력은 기울어져 있다. 읽고 싶은 것만 읽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한다.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뱉는다.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다. 문해력이 기울어진 상태다.

"비판적 문해력이란 개인이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는 문해력이다" _71쪽

AI가 인생의 무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잘만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자칫 시스템에 노예로 전락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직접 텍스트를 생산하고 읽어내야 한다. 남을 향한 비난은 나쁘지만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은 약이 될 것이다. 읽고 쓰면서 비판적 사유의 힘을 길러내는 일이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는 비결이다.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AI 시대 문해력도 달라져야 한다. 많이 읽는 것보다 어떻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과 성찰이 동반된 읽기, 천천히 생각하고 몰입하는 읽기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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