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느린 아이들
김영훈 지음 / 시공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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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느린 현상은 공동체 생활에서 외톨이, 부주의, 부정적 교우관계로 나타날 수 있다. 부모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모의 기대 수준에 따른 영향으로 배움이 느려진 학생인지, 난독증으로 인한 것인지 관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배움이 느린 현상을 진단할 수 있는 전문적 안목이 필요하다. 학부모 상담을 통해 진단과 처방을 제시할 수 있다면, 서로 간 신뢰가 생겨 불필요한 갈등을 줄여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카톨릭 의대 김영훈 교수의 『배움의 느린 아이들』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현직 초등학교 교사들도 공통으로 고민하는 사항인지라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영훈 교수는 책에서 배움이 느린 아이를 학습 속도가 느린 아이를 정의하고 있다. 흔히 혼동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학습 장애와의 구분이다. 학습 장애는 보통 뇌에 이상이 있거나 주의력 결핍 과다행동과 같은 장애를 지니고 있는 경우라서 치료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경계선 지능(IQ 70~84)을 포함하여 가정적 환경, 부모의 양육 태도, 기타 사회적 요인으로 배움이 느려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책임을 먼저 고려하고 읽어야 한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배움이 느린 아이를 판단할 때 직관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을 가지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학업 성적이 지극히 낮거나 학습을 따라오는 속도가 떨어지는 경우, 공부를 싫어하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에 배움이 느린 아이로 분류한다. 물론 그들 중에는 특별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김영훈  교수는 배움이 느린 아이는 배우는 과정에서 누군가 도움을 주면 해낼 수 있다라고 한다. 가장 좋은 파트너는 부모이겠지만 가정만큼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상황인지라 담임 선생님의 역할도 무척 중요할 것 같다. 배움이 느린 아이들의 유형으로 글자를 유창하게 읽지 못하고 구구단을 잘 외우지 못하는 기본 학습력 부족한 아이,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 기질 상 느긋한 아이, 공부 습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아이, 의욕이 없는 아이, 재촉하는 부모를 둔 아이 등이 있다. 

 

배움이 느린 아이의 특징은 주의력 부족과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어휘력도 떨어지고 심리 정서적 측면에서는 오래된 학습 무기력, 학습 동기 저하, 불안과 위축으로 낮은 자아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을 감안하여 배움이 느린 아이를 만났을 때 적절한 칭찬과 보상으로 학습 외적 동기를 끌어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지속적인 격려와 신뢰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봐주거나 인정해 주면 좋아지는 것처럼 배움이 느린 아이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부모(교사)와의 상호작용이 과제 수행력과 자존감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어떤 모습이든 항상 힘이 되어주는 어른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다. 

 

배움이 느린 아이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부모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생각, 대화 방식, 식생활, 수면 습관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어야 한다. 긍정적인 양육 태도는 아이의 뇌를 자극해 재능을 꽃 피우게 할 수 있다. 분노와 두려움, 혐오와 불안은 학습 참여에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배움이 느린 아이가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배경 요인을 가정에서부터 만들어주어야 한다. 40년간 하와이 섬의 아이들을 종적 연구한 에미 워너는 가정에서부터 회복탄력성을 키워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움이 느린 아이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갈등이나 문제가 생길 확률이 비교적 높다. 단순히 읽지 못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에 아이에게 난독증이 있을 경우 반드시 진단과 치료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난독증은 듣고 말하는 기능이 떨어져 머릿속으로 글자의 소리를 처리하면서 동시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능력이 부족한 현상을 말한다. 난독증 아이가 낭독하는 모습을 보면 문장에서 읽기 어려운 단어를 빼먹고 읽거나 다른 단어로 바꿔 읽는 경우가 있다. 난독증은 신체의 평형 감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평형 감각은 운동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기 능력도 좌우한다. 리듬 감각도 마찬가지다. 신체 활동을 유도하거나 규칙적인 음악 놀이도 난독증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이들을 향한 정서적 지지와 신뢰로 자기 주도성을 키워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한 가지 더 혹시 가정에서 부모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 배움이 느린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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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을 보다 - 100년 만에 드러난 새 얼굴 다큐북 시리즈 1
황병훈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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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모두 공히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하나가 안중근 의사라고 한다. 남북한 공동으로 제작한 다큐 프로그램을 책으로 발간한 자료다. 안중근의 고향 황해도 해주의 현재 사진 뿐만 아니라 안중근의 후손 안우생 직계 후손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실려 있다. 놀라운 점은 북한에서도 안중근의 직계 후손들을 극진히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을 독립유공자 가문으로 우대하며 안중근 정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 방송된 안중근 영화 화보도 책에 실려 있다. 안중근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신중하게 계획을 세워 진행한 듯 싶다. 2년 넘게 안중근에 집중하여 관련 인물들과 중국에 남아 있는 안중근의 흔적들을 추적하여 기록에 남기고자 애 쓴 것 같다. 

 

안중근은 이기심과 기회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이런 위대한 사상가를 역사 속에 가둬 놓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순국 정신과 철학은 끄집어내어 후손들에게 널리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기념이 되는 날에만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룰 것이 아니라 미래의 안중근이 곳곳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책 서두 추천사에 보면 안중근을 이 시대의 멘토, 리더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약자를 위한 정치, 미래를 향한 구체적 비전 제시, 낮은 자세로 정책을 구현해 내는 리더십이 안중근 의사에게 있었다고 평하고 있다. 가족을 먼저 생가했다면 아마도 안중근은 거사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을 생각했다면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에 회유에 고개를 숙이며 생명을 부지했을 것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될 재판정에서 그는 당당히 항소를 포기하고 자신의 거사 이유를 분명히 외쳤다. 그의 외침은 분명한 논리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주장이었다. 안중근의 명분이 분명하였기에 일본도 속전속결로 안중근을 사형으로 몰고 간 것이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국제적 여론이 불리할 수 밖에 없고 항일 운동의 거센 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터무니없이 형사범으로 몰고 정당한 재판 절차를 무시하고 부끄러운 만행을 만인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 이후 일본 본토에서도 그의 죽음을 지켜 봤던 이들이 오랫동안 안중근을 추모하며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는 다큐 자료를 보면 그는 단순히 정치적 거물을 죽인 살인자가 아닌 대의명분을 가지고 동양평화를 위해 제국주의적 야욕을 품고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이를 처단한 의인이요 군인의 본분을 지킨 대한의군 참모장임에 틀림이 없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안중근의 증손자는 그의 집에 안중근 정신을 기리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고 꿈을 이뤄가는 사람을 향해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라를 위해 자신의 욕심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사까지도 내어 맡기고 헌신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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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평전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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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사진을 보면 참 젊은 나이에 순국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이 서른 두살이면 정말 청년 중의 청년이다. 안중근 의사가 살던 때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가문을 책임져야 할 나이라고 하더라도 젊은 나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꽃다운 나이에 안중근 의사는 나라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았다고 하니 나이에 비해 어른다운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안중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안중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다. 콧수염과 단지로 유명한 사진으로 어렴풋이 하얼빈에서 일제강점기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영웅, 붓글씨를 멋드러지게 쓴 분 정도로 밖에 알지 못했다. 최근 안중근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영웅'을 감상한 뒤 안중근을 제대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안중근을 검색해서 네 다섯권씩 대출받아 읽기 시작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만 4개 국어로 편집한 책도 있었고 안중근의 거사가 있었던 하얼빈의 열하루만 집중 조명한 책도 있었다. 최근 러시아에서 개방한 문서를 바탕으로 안중근을 새롭게 조명한 책도 신선했다. 그래도 안중근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던 책은 안중근의 생애 전부를 다룬 책들이었다. 이번 책 『안중근 평전』도 안중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다만 평전이라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안중근 입문서로 독자들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겠다 싶다. 책 두께도 그렇거니와 작가의 관점에 의한 해석들이 스토리와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어지간한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책을 오래토록 붙잡고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랬다. 

 

한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보기 위해서는 관련 책들을 연속해서 읽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예닐곱 권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안중근 평전』을 읽기 전에 이문열의 안중근 소설인 『불멸』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었다. 평전을 읽기 전에 평전에서 다루는 인물의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방법인 것 같다. 소설을 먼저 읽으면 평전을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궁금했던 부분, 좀 더 알아야 할 부분들을 평전을 쓴 작가의 시선에서 다시 살펴 볼 수 있다. 참고로 시중에 안중근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안중근이 거쳐간 장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관련 사진들이 나와 있어 쉬엄쉬엄 읽을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안중근 평전』에는 우리가 궁금해 하던 안중근 가족들의 후일담이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안중근 일가들은 가난과 궁핍, 목숨의 위협을 피해 은신하며 살아야했고 안중근의 유언을 지키며 거의 대부분 독립 운동에 한 몸을 바치며 살았다.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망명지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내야했던 가족들의 눈물어린 일화를 읽으면 과연 내가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며 불평불만하며 살아도 되는가 싶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근근히 살다보니 오늘날에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반면 일본 제국에 부역하며 살았던 이들은 굳건한 터전 위에 부와 명성으로 대대손손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뭔가 잘못대로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중근 평전』을 통해 안중근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후손들에게 바른 역사 교육을 전수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국가의 존재 여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 하나만 잘 살겠다고, 우리 가족만이라도 잘 먹고 살겠다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고 살아간다면 과연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라를 위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야했던 그 정신을 우리 자신과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어야하지 않을까. 시대에 뒤떨어진 비합리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부강한 국가를 위해서는 강한 역사 교육이 필수다. 올바른 역사 교육은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다. 정신이 살아 있을 때 돈과 명예와 권력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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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2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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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군부 참모중장 독립특파대장 안중근, 정당한 교전 중에 적장을 사살하다!

(참모중장이란 직함은 지휘부에 속하는 중급 장교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음)

 

러시아인 미하일로프 변호사, 영국인 더글러스 변호사는 훗날 소문으로 안중근을 구하기 위해 광무 황제(고종)가 내탕금을 주어 보낸 밀사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_335쪽

 

『불멸』 2권에는 안중근 의사가 국외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한 사례를 이야기로 구성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김두성을 총대장으로 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참전한 국내진공작전에서 큰 참패를 보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연해주로 찾아오게 되는 과정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특히 열이틀동안 두 끼만 먹고 험악한 지형을 넘어 두만강을 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작은 것에도 불평하는 우리들의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일진회에 붙잡혀 모진 몰매를 맞고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풀려날 때도 있었다. 그는 국내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결 낼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어 결국 싸움터를 국외로 돌리게 된다. 

 

소금 한 톨 없이 계곡 물로 목을 축이며 먹는 조밥이었지만, 그처럼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았다._220쪽

 

일진회의 습격은 국내 진공전에서의 참담한 패주에 못지않게 안중근을 놀라게 하고. _249쪽

 

대의에 찬 자신의 생각을 오해하는 같은 의군 동지들을 바라보며 그가 마음을 다시 추스리는 모습은 독립운동하는 진영 속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릇 영웅이라는 것은 능히 굽히기도 하고 능히 무릅쓰고 버티기도 해야 하는 법이라 들었소._211쪽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의 방향을 국외로 돌렸을 당시 간도 지역은 이미 일본군의 휘하에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그가 발길을 돌릴 수 있는 탈출구는 오직 연해주 뿐이었다. 다만 연해주 안에서도 최재형(동의회)과 이범윤(창의회)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있었다. 안중근을 먼저 품은 이는 최재형이었지만 국내진공작전 중 만민공법을 설파하며 일본군을 돌려보내준 사건으로 부대가 위기에 처한 일이 있은 후부터 더 이상 최재형을 의지할 수 없게 되었다. 차선택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동쪽을 바라보다라는 러시아 이름의 땅)였으며 그곳에서 안중근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단지동맹(장천동맹 또는 서천동맹이라고도 함) 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열한명의 동지들을 모아 결의한 모임이었다. 

 

안중근은 연추의 하리(카리)에서. 하리는 연추에서 혼춘으로 빠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 독가촌이나 다름없는 황병길의 집에서 안중근이 그들을 모은 취지를 밝혔다. 그 단체의 이름을 동의단지회라 부르기로._250쪽

 

그 무렵 안중근은 주거와 숙식마저 정처가 없었다. _252쪽

 

『불멸』 2권에서 이문열 작가는 안중근 의사가 국내외에서 독립 운동을 위해 만난 여러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안중근과 안창호의 정의는 뒷날 동지걱 유대로 변해 안중근이 죽은 뒤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진다._21쪽

 

홀연 다동에 나타나 안중근의 출발을 다그친 게 바로 의암 유인석이었다._48쪽

 

중근을 최재형의 부하로 분류해 놓을 만큼 두 사람의 친분은 남달랐는데, _136쪽

 

이강은 평안도 용강 사람으로 나이는 안창호와 같아 안중근보다는 한 살 위였다.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가 안창호를 만나. 공립협회를 설립하고. 공립신문을 창간하였으며. 1907년 안창호를 따라 신민회 조직. _152쪽

 

우덕순은 원래 충청도에 살았는데. 서울로 올라온 뒤에 기독교에 입교. 노령으로 망명하였는데 그 무렵은 잎담배를 궐련으로 말아파는 것으로 생계를 삼고 있었다._177쪽

 

조도선은 원래 함경도 홍원 사람. 마카레이란 곳으로 가서 금광 이에 종사. 통역으로 일함. 모제라는 스물 살짜리 러시아 아가씨와 결혼. 이르크츠크에서 세탁업을 함. 대동공보 하얼빈 통신원 김형재가 추천함. _294쪽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이 사용한 총알은 끄트머리에 십자로 홈이 파여 있었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담담담탄(인도의 담당 지역 공장에서 처음 만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_310쪽

 

안중근은 무장독립운동을 결심한 후부터 늘 마음 한 켠에 천주교의 교리 중에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신경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은 나라를 위한 정당행위이듯 본인이 나라를 위해 이토를 죽인 것도 살인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임을 말한다. 그럼에도 조선 천주교에서는 뮈텔 주교를 위시로한 사제들은 안중근의 의거를 살인행위로 규정한다. 사형 직전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이 고해성사를 한 이유도 신앙적 판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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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1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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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안중근이 태어나 30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아간 당시 대한제국의 시대상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안중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극적인 장면만 따로 떼어서 인물을 바라보면 자칫 한 점의 흠결도 없는 신인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안중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아니 구한말 대한제국의 국민으로 나라를 잃고 비분강개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초라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다만 조부때부터 이어져내려오던 가풍이며 황해도 일대에서 제법 위세를 떨친 가문의 명성의 후광으로 타고난 기질을 펼칠 수 있었던 가정적 배경은 충분했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아버지 안태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씨 가문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써 집안 대소사 뿐만 아니라 지역 일대의 호족으로 왕권을 흔드는 동비(동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에 대항하여 지역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민초들을 괴롭히는 지방관들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지역 어른으로 살았기에 안중근은 맏아들로써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치적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된 안태훈은 당시 치외법권으로 여러 가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주교 신부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추락한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편으로 천주교를 활용하기도 했다. 안태훈의 신앙적 열심이 안중근과 그 가족들에게 전파되면서 안중근이 살았던 청계동 일대는 천주교 신심이 두터운 장소로 바뀌게 된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한 두번째 측면은 바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천주교 신앙이다. 아버지 안태훈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떨결에 신앙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교리를 전파하고 열심으로 임했던 이가 안중근이다. 그의 호는 다묵, 토마스다. 천주교 신부의 영향으로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어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열심도 천주교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삼흥학교, 돈의학교에 재정적 기부를 힘에 겹도록 도왔다. 

 

이문열 작가의 장편소설 『불멸』1권에서는 구한말 대한제국의 흔들리는 국가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아관파천, 굴욕적인 한일협약 등 근대사를 흔들었던 아픈 역사들이 안중근이 살았던 그 시대에 일어났다. 동학운동이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안중근의 생각은 왜 안씨 가문이 사비를 털어 동비들과 전면전을 선포했는지 이해가 간다. 한성에서 멀직히 떨어진 황해도 지역에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그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일임을 알고 고민했던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일례로 민영익이라는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상해로 망명을 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고 서상익이라는 거상은 자신이 먹고 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투로 말한다. 나라를 걱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양분되어 살아가는 시대가 바로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였다. 

 

누군들 편안하게 부를 누리며 살고 싶지 않을까. 안중근을 영웅이라 부름은 을사오적이라 부르는 명민하고 지식인이었던 그들이 초개처럼 나라를 버린 이들과 완전히 다른 편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도 한 인간으로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술과 춤추기를 좋아했던 20대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안중근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문열 작가를 통해 바라본 안중근의 모습이 다른 여타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 안중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기 위한 작가의 치밀한 배경 설명들이 1권에서 무려 400여쪽이나 할애하고 있다. 무장 독립운동에 뛰어들기 전 안중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지난 옛일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구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문열 작가가 쓴 기억해 둘 만한 문장을 초록해 둔다.

 

견수(함께 걸을 때 반걸음쯤 뒤처져 걸어 예를 표한다는 뜻으로 곡례에 따르면 다섯 살 위의 연상에게 표하는 예)_121쪽

 

중근은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아버지의 내면에서 피 흘리고 있는 의식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무력감으로 상처받은 자부심이 그랬고, 낡은 구조와 급변하는 시대에 끼어 있는 가문과 자신을 지켜 내야 하는 신흥 호족으로서의 번민이 그랬다. _151쪽

 

먼저 내 영혼을 구원하고 아울러 이 몸도 해방하고자 천주 야소(예수)의 가르침에 투탁하려 합니다._203쪽

 

효도를 넘어 거의 신앙과도 같은 존숭으로 아버지 안태훈을 따르는 중근은 누구보다 열심히 천주교의 교리를 익혔다. _206쪽

 

이제 천주학은 우리 가문이 함께 걸을 길이 되었다. _221쪽

 

스물 살 때부터 중근은 언제든 빌렘 신부의 부름만 있으면 복사 안 다묵으로 그를 따라 황해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천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_282쪽

 

천주교의 세력에 기대 행패를 부리거나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는교인들을 특히 자세 교인이라고 불렀다. _286쪽

 

천주교 또는 천구교인들과 기존의 전통 사회와의 충돌을 일컫는 교안은 원래 서양 신부나 선교사들이 새로운 전교지로 갈 때 지역민들이 전교를 방해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력 사태와 이 전교된 곳이라도 새로 교당을 지을 때 교당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목적으로 일으키는 소동에서 비롯되었다. _325쪽

 

중근이 내디딘 사회 활동의 첫걸음은 아버지 안태훈의 호족 활동을 계승하여 동학군과 싸운 일이었다. 그 뒤 자신의 호족 활동을 비호해 줄 세력으로 천주교를 선택한 안태훈은 일가를 이끌고 천주교의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호족 활동은 곧 호교 활동을 거쳐 호민 활동으로 발전해 갔고, 중근도 그 길을 따라 걸어왔다. _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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