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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2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의군부 참모중장 독립특파대장 안중근, 정당한 교전 중에 적장을 사살하다!
(참모중장이란 직함은 지휘부에 속하는 중급 장교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음)
러시아인 미하일로프 변호사, 영국인 더글러스 변호사는 훗날 소문으로 안중근을 구하기 위해 광무 황제(고종)가 내탕금을 주어 보낸 밀사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_335쪽
『불멸』 2권에는 안중근 의사가 국외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한 사례를 이야기로 구성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김두성을 총대장으로 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참전한 국내진공작전에서 큰 참패를 보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연해주로 찾아오게 되는 과정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특히 열이틀동안 두 끼만 먹고 험악한 지형을 넘어 두만강을 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작은 것에도 불평하는 우리들의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일진회에 붙잡혀 모진 몰매를 맞고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풀려날 때도 있었다. 그는 국내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결 낼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어 결국 싸움터를 국외로 돌리게 된다.
소금 한 톨 없이 계곡 물로 목을 축이며 먹는 조밥이었지만, 그처럼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았다._220쪽
일진회의 습격은 국내 진공전에서의 참담한 패주에 못지않게 안중근을 놀라게 하고. _249쪽
대의에 찬 자신의 생각을 오해하는 같은 의군 동지들을 바라보며 그가 마음을 다시 추스리는 모습은 독립운동하는 진영 속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릇 영웅이라는 것은 능히 굽히기도 하고 능히 무릅쓰고 버티기도 해야 하는 법이라 들었소._211쪽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의 방향을 국외로 돌렸을 당시 간도 지역은 이미 일본군의 휘하에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그가 발길을 돌릴 수 있는 탈출구는 오직 연해주 뿐이었다. 다만 연해주 안에서도 최재형(동의회)과 이범윤(창의회)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있었다. 안중근을 먼저 품은 이는 최재형이었지만 국내진공작전 중 만민공법을 설파하며 일본군을 돌려보내준 사건으로 부대가 위기에 처한 일이 있은 후부터 더 이상 최재형을 의지할 수 없게 되었다. 차선택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동쪽을 바라보다라는 러시아 이름의 땅)였으며 그곳에서 안중근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단지동맹(장천동맹 또는 서천동맹이라고도 함) 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열한명의 동지들을 모아 결의한 모임이었다.
안중근은 연추의 하리(카리)에서. 하리는 연추에서 혼춘으로 빠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 독가촌이나 다름없는 황병길의 집에서 안중근이 그들을 모은 취지를 밝혔다. 그 단체의 이름을 동의단지회라 부르기로._250쪽
그 무렵 안중근은 주거와 숙식마저 정처가 없었다. _252쪽
『불멸』 2권에서 이문열 작가는 안중근 의사가 국내외에서 독립 운동을 위해 만난 여러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안중근과 안창호의 정의는 뒷날 동지걱 유대로 변해 안중근이 죽은 뒤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진다._21쪽
홀연 다동에 나타나 안중근의 출발을 다그친 게 바로 의암 유인석이었다._48쪽
중근을 최재형의 부하로 분류해 놓을 만큼 두 사람의 친분은 남달랐는데, _136쪽
이강은 평안도 용강 사람으로 나이는 안창호와 같아 안중근보다는 한 살 위였다.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가 안창호를 만나. 공립협회를 설립하고. 공립신문을 창간하였으며. 1907년 안창호를 따라 신민회 조직. _152쪽
우덕순은 원래 충청도에 살았는데. 서울로 올라온 뒤에 기독교에 입교. 노령으로 망명하였는데 그 무렵은 잎담배를 궐련으로 말아파는 것으로 생계를 삼고 있었다._177쪽
조도선은 원래 함경도 홍원 사람. 마카레이란 곳으로 가서 금광 이에 종사. 통역으로 일함. 모제라는 스물 살짜리 러시아 아가씨와 결혼. 이르크츠크에서 세탁업을 함. 대동공보 하얼빈 통신원 김형재가 추천함. _294쪽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이 사용한 총알은 끄트머리에 십자로 홈이 파여 있었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담담담탄(인도의 담당 지역 공장에서 처음 만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_310쪽
안중근은 무장독립운동을 결심한 후부터 늘 마음 한 켠에 천주교의 교리 중에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신경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은 나라를 위한 정당행위이듯 본인이 나라를 위해 이토를 죽인 것도 살인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임을 말한다. 그럼에도 조선 천주교에서는 뮈텔 주교를 위시로한 사제들은 안중근의 의거를 살인행위로 규정한다. 사형 직전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이 고해성사를 한 이유도 신앙적 판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