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 - 휠체어 위의 유튜-바, 구르님의 유쾌하고 뾰족한 말 걸기
김지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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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이겨내는 것이기보다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_124쪽

 

작년 이맘 때 쯤인가. 장애인의 날 어간에 특수 선생님들의 고충이 담긴 책 <선생님하고 나는 친하니까> 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장애 아동들을 담임하고 있는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선생님의 고충 뿐만 아니라 장애를 지닌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그려냈다. 장애를 지니고 학교 생활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은 비장애인의 한계점이다. 

 

저자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활용하여 이동한다. 뇌성마비를 지닌 사람이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자는 이런 예를 든다. 보통 사람들이 몸이 뻐근할 때나 잠자리에서 막 일어날 때 기지개를 한다. 몸이 펴지라고. 순간은 개운하고 편할 수 있지만 기지개 동작이 오랫동안 지속된다고 생각해 보라. 몸에서 느끼는 충격이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뇌성마비를 지닌 사람들이 몸이 경직될 때 이런 느낌이라고 한다. 주변에서 가끔 뇌성마비를 지닌 분들을 본다. 얼굴 근육이 심하게 뒤틀린 분도 있고 걸음을 걸을 때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의 날 쯤 되면 방송사에서 미담 사례로 장애를 지닌 사람이 불편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방송해 주는 경우가 있다. 장애를 이기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감동을 받으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저자도 지적했듯이 그런 감동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잠시 잠깐 장애를 지닌 사람들의 어려움을 본다고 해서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도 마찬가지다.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오래 간직하다보면 실망이 커지고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 때가 많다. 

 

그래서 저자는 장애를 지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통 사람과 같이 사람들에게 비춰지기를 바란다. 

 

장애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 지는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우리 사회가 가진 장애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깨뜨려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장애 여성이라고 띄워 쓰는 대신  '장애여성'으로 같이 붙여서 쓰자라고 강조한다. 장애와 여성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처럼 한 몸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와 여성을 분리할 때 마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  여성의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시선을 배워가는 것이다" _129쪽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을 도우려하다보면 마치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돕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은 인격체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앉아 있는 사람의 시선을 맞춰가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위로 쳐다볼 때 서로의 시선 차가 달라진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존재다.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장애인의 어깨를 짓누르는 하나의 이유다. 장애인에게는 혜택이 아니라 공정한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다. 장애인들은 일시적인 혜택보다는 함께 어울려 지내기를 원한다. 기적처럼 장애를 치료한 사례가 아니라 장애를 지니고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례가 우리들이 살아가는 진실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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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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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137쪽)

 

라이더들의 일감도 이제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AI가 배당해 준다고 한다. 각 플랫폼들은 사람을 관리자로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일할 수 있는 능력자 AI를 통해 라이더를 조종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중에 택배, 배달 등 우리의 안전을 위해 남몰래 애쓴 이들 덕분에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너무 쉽게 편안함을 누리다보니 그 편안함이 누군가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망각했었다. 저자는 직접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는 라이더다. 현장에서 그가 느낀 라이더들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라이더들이 왜 신호를 어기면서까지 배달에 목숨을 거는건지, 배달 중에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산재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지, 배달대행업체가 생기면서 고스란히 배달 수입이 줄어드는 구조적 문제 등을 책에서 밝히고 있다. 

 

맥도널드 같은 회사들은 그나마 라이더들에게 최소한의 노동의 대가가 정직하게 돌아가지만 배달대행업체는 배달의 진입은 쉽지만 배달하기 위한 모든 부담을 라이더들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오토바이도 자신이 사서 들어가든 리스를 해서 할부로 내든 오로지 그 몫은 라이더에게 있고 사고가 나더라도 각종 손해는 라이더들에게 있다고 한다. 

 

"배달료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알고리즘의 선택에 더 가까웠다" (153쪽)

 

나도 가끔 라이더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에도 핸드폰 화면을 눈에서 떼지 않는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화면을 터치하고 검색하고 쉴 틈 없이 배달 건을 잡기 위해 돌아가는 틈 속에서도 쉬지 않고 전쟁 아닌 전쟁에 몰입한다. 라이더들의 수익은 배달료와 비례한다. 라이더들만의 배달 잡는 노하우가 있다고 한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배달을 잡고 배달하고 이런 식이 아니라 최대한 배달 건 수를 잡고 배달하는 경로에 있는 곳을 순차적으로 배달하고 배달하는 중에도 수시로 자신에게 유리한 배달을 잡는 일들을 반복해서 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교통 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우리가 편안함을 누리는 대가로 누군가는 이렇게 목숨을 건 질주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사회 구조적으로 라이더들에 대한 안전과 복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현실은 유령의 회사와도 비슷한 플랫폼에 의해 모든 과정이 진행되다보니 책임 질 사람도 없는 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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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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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허구의 소설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그로운>은 인종차별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 '그루밍 성범죄'를 다뤘다.

 

그루밍 성범죄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얻은 뒤 가하는 성폭력으로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가 많다. (439쪽)

 

소설 속에서 미성년자 흑인 소녀는 가수 지망생이다. 흑인 가수이자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유명 가수는 미성년자 흑인 소녀를 대상으로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른다. 가두고, 때리고, 성폭력을 하며 심지어 마약까지 투약시킨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몇 차례 진실을 폭로할 기회가 있지만 오랫동안 그루밍을 당하고 있기에 정신이 순간 마비된다고 한다. 가족에게 피해가 갈까봐 두려워한다.  

 

특히 피해자가 흑인이거나 약자일 경우 사실을 폭로하더라도 수사가 왜곡되게 흐를 수 있다. 마치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피해자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피해자가 거짓말쟁이로 몰리기도 한다. 피해자는 피해를 당한 처지에서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는 돈과 힘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간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해야 할텐데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잣대를 대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흑인들의 연대 모임이 나선다. 극적으로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되지만 그동안 가족들이 당해야 했던 고통은 보상 받을 길이 없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폭력은 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성범죄도 점점 악랄해지고 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끔찍한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폭력의 정도는 점점 강해지고 지능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꾸며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거대한 성범죄 조직의 꾀임에 빠져 고통을 당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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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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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작가도 대단하고 그 어머님도 대단하다. 대한민국에서 20대 청년이 정규직으로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것도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직업을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자녀의 정규직 입사를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자랑했을 부모였을텐데. 청년이 성인과 사고 방식이 다르다하더라도 자신의 장래가 달려 있는 일인데 아무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저지렀을 것은 아님에는 분명한데 마음 한 구석에는 도대체 무슨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 좋은 직장을 관둘 용기가 있었을까. 그 어머니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20대 자녀가 취업 실패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수민 작가의 퇴사 결정이 얼마나 힘든 과정이었는지, 지켜보는 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의 바램이 있다면 자녀가 당당하게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고 성취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도 부모의 일방적인 욕심일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생각과 분명 다른데 부모는 과거 자신의 청년 때의 모습만 기억하며 내 자녀가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 꿈을 꾸데 현실적인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세상 속에 나아가 힘든 일을 거뜬히 이겨내며 늘 웃으며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희망 사항을 늘 간직하며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는 일이겠는가. 

 

김수민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 20대 청년들의 취업에 대한 생각이 무엇인지, 20대 청년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 20대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게 된다.

 

"삶에 있어 직업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었다" (87쪽)

 

누구나 다 아는 명제임에도 성인된 부모의 시각에서는 방향성도 좋고 가치관도 좋지만 그래도 일단 직업부터 얻고 그 속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버티어내다보면 방향성을 찾을 수 있으니 어른 말 들어라라고 설득부터 하려 든다. 직장 안에서 긍정의 힘으로 버텨내려고 바둥바둥 거려보았지만 결국은 20대 젊은이들이게는 긍정의 한도를 넘은 부당함이라는 사실을 성인된 부모들은 알 지 못한다. 

 

20대 청년들이 구조적으로 기존의 세대에 맞춰진 분위기 안에 적응하기란 결코 쉽지 않나보다. 예전보다 많이 달라졌다고 기존 세대는 강변하지만 아직 청년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거리감이 있고 간격 또한 큰 것 같다. 김수민 작가도 결국 자유를 찾아, 나만의 인생을 위해 은퇴를 결정한다. 아니 도망친다. 

 

"당시의 나는 타인의 피드백이 너무 무서워 얼어버렸고, 당혹스러운 나머지 정색 밖에 하지 못했다" (232쪽)

 

기존 세대는 청년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한다고 하지만 청년들이 받아들이기에 친절한 안내가 아니라 딴 나라의 희한안 규칙이며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리는 것 같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여유가 없다보니 듣기 싫은 왕부담인 피드백인 결국 청년들에게는 '자기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와 같은 사람이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취업관, 직업관, 삶의 방향성은 분명 기존의 나와 같은 세대들이 생각하는 것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한다. 우리 집에 있는 20대 자녀를 불안하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언젠가 자신의 꿈을 찾아 준비해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겠다. 20대 정규직 취업의 꿈을 이룬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말못할 괴로움을 참지 못해 은퇴를 결정한 김수민 작가는 지금 백수의 시간이 허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안을 채우는 시간' 이라고 말했듯이 자신만의 빈 공간을 채워가고 있을 자녀를 마음 속으로 응원하고 기도해야겠다. 

 

어른이란 이해+력(힘) 이 길러진 성인이라고 김수민 작가를 말한다. 이해하는 힘이 커진 사람이 성인이라고 할진대 나는 과연 이해하려는 힘을 가진 사람인가? 스스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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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풀어쓴 성경 -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는 의미역 번역과 통찰 풀어쓴 성경
강산 지음 / 하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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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교회는 많지만 말씀 앞에 서 있는 교회는 많지 않다. 교인들은 많지만 말씀 앞에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살아가려는 교인들은 많지 않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목회자들도 많지만 말씀을 연구하기 위해 애쓰고 말씀 앞에 지독하게 기도하는 목회자들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홍수가 나면 물이 많지만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겉으로 보여지는 신자들은 많지만 진작 소금과 같이 쓸모 있는 신자들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프고 부끄러운 얘기다. 진정한 부흥은 모두가 말씀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말씀 앞에 순종하는 신자들이 많아지는 것이고, 다리에 피가 돌지 않을 만큼 무릎을 끓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신자들의 기도의 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 시간이 많아져야 하고, 성경의 말씀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져야 한다. 여러 가지 계획과 상황 앞에 판단의 기준을 성경에 두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부흥을 갈망하면서 부흥을 위해 실천하는 모습이 없다면 결코 부흥은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사순절 끝자락에 귀한 책을 만났다. 경기도 안양에 위치하고 있는 십자가 교회를 담임하는 강산 목사다. 저자를 소개하는 란에도 적혀 있듯이 그는 말씀을 지독하게 연구하는 진짜 목회자다. 연구한 말씀을 타협하지 않고 강단에서 쏟아내는 사자후를 가진 용기있는 목회자다. 더구나 무릎이 망가질 정도로 기도하는 목회자이기도 하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줄기 빛을 본다. 아직 한국 교회는 썩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 앞에 서 있는 무명의 목회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유명해 지는 것을 포기하고 개척 교회 교인들을 말씀으로 섬기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목숨을 거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다. 이들을 통해 영향력을 받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말씀 앞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분투하며 살 것이다. 

 

사실 저자와 나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오래 전(2013년) 책 한 권의 책을 읽다가 내가 복무했던 703특공연대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 놀랬던 적이 있었다. 다시 책 앞쪽에 나와 있는 저자의 이름을 보았는데 익숙한 이름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며 군 생활 때 썼던 일기장을 뒤져 보았다. 저자와 대화 했던 그날의 장면이 짧게 기록되어 있었다. 미시령 교회였다. 이렇게 각별한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저자의 책이 나올 때마다 찾아 읽게 된다. 누가복음 풀어쓴 성경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예배가 회복되고 기도가 회복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말씀의 힘이다. 

 

풀어쓴 성경은 저자가 오랫동안 원어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한국 사람의 정서에 맞게 오늘의 현대인들의 시각에서 풀어썼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적용한 저자의 삶도 소개하고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읽는 독자들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들 정도의 강력한 글이다.  성경과 함께 살아온 저자의 삶이고 성경을 실천하고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전작 이사야서 풀어쓴 성경처럼 성경 누가복음도 쉽게 번역했다. 쉽게 쓴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초등학생들도 읽으면서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썼다. 어려우면 나 같아서도 잘 읽게 되지 않는다. 성경은 읽혀져야 성경이다. 읽혀지지 않고 덮혀만 있다면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다. 저자를 통해 성경이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저자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로 누구든지 성경을 손때가 가득하도록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밑줄을 그어가면서 나의 말씀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의 원래의 의미를 놓치지 않고 성경을 쉽게 번역하는 일이란 정말 고단한 작업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의 고백처럼 누가복음 1장 첫 구절 '바야흐로'로 번역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보아도 저자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이제 독자들의 몫만 남아 있다.

누가복음 풀어쓴 성경, 펼쳐 읽어 보라.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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