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평전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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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사진을 보면 참 젊은 나이에 순국하셨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이 서른 두살이면 정말 청년 중의 청년이다. 안중근 의사가 살던 때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가문을 책임져야 할 나이라고 하더라도 젊은 나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꽃다운 나이에 안중근 의사는 나라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살았다고 하니 나이에 비해 어른다운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안중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안중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다. 콧수염과 단지로 유명한 사진으로 어렴풋이 하얼빈에서 일제강점기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영웅, 붓글씨를 멋드러지게 쓴 분 정도로 밖에 알지 못했다. 최근 안중근을 배경으로 한 영화 '영웅'을 감상한 뒤 안중근을 제대로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에 갈 때마다 안중근을 검색해서 네 다섯권씩 대출받아 읽기 시작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만 4개 국어로 편집한 책도 있었고 안중근의 거사가 있었던 하얼빈의 열하루만 집중 조명한 책도 있었다. 최근 러시아에서 개방한 문서를 바탕으로 안중근을 새롭게 조명한 책도 신선했다. 그래도 안중근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던 책은 안중근의 생애 전부를 다룬 책들이었다. 이번 책 『안중근 평전』도 안중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다만 평전이라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안중근 입문서로 독자들이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겠다 싶다. 책 두께도 그렇거니와 작가의 관점에 의한 해석들이 스토리와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어지간한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책을 오래토록 붙잡고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랬다. 

 

한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보기 위해서는 관련 책들을 연속해서 읽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이 방법을 선택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예닐곱 권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안중근 평전』을 읽기 전에 이문열의 안중근 소설인 『불멸』을 먼저 읽었기 때문이었다. 평전을 읽기 전에 평전에서 다루는 인물의 소설을 먼저 읽는 것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방법인 것 같다. 소설을 먼저 읽으면 평전을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궁금했던 부분, 좀 더 알아야 할 부분들을 평전을 쓴 작가의 시선에서 다시 살펴 볼 수 있다. 참고로 시중에 안중근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안중근이 거쳐간 장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관련 사진들이 나와 있어 쉬엄쉬엄 읽을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안중근 평전』에는 우리가 궁금해 하던 안중근 가족들의 후일담이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안중근 일가들은 가난과 궁핍, 목숨의 위협을 피해 은신하며 살아야했고 안중근의 유언을 지키며 거의 대부분 독립 운동에 한 몸을 바치며 살았다.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망명지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내야했던 가족들의 눈물어린 일화를 읽으면 과연 내가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며 불평불만하며 살아도 되는가 싶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근근히 살다보니 오늘날에도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반면 일본 제국에 부역하며 살았던 이들은 굳건한 터전 위에 부와 명성으로 대대손손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뭔가 잘못대로 한참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안중근 평전』을 통해 안중근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후손들에게 바른 역사 교육을 전수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국가의 존재 여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 하나만 잘 살겠다고, 우리 가족만이라도 잘 먹고 살겠다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일삼는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고 살아간다면 과연 이 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라를 위해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희생과 헌신으로 살아야했던 그 정신을 우리 자신과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어야하지 않을까. 시대에 뒤떨어진 비합리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다. 

 

부강한 국가를 위해서는 강한 역사 교육이 필수다. 올바른 역사 교육은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다. 정신이 살아 있을 때 돈과 명예와 권력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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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2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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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군부 참모중장 독립특파대장 안중근, 정당한 교전 중에 적장을 사살하다!

(참모중장이란 직함은 지휘부에 속하는 중급 장교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음)

 

러시아인 미하일로프 변호사, 영국인 더글러스 변호사는 훗날 소문으로 안중근을 구하기 위해 광무 황제(고종)가 내탕금을 주어 보낸 밀사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_335쪽

 

『불멸』 2권에는 안중근 의사가 국외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한 사례를 이야기로 구성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김두성을 총대장으로 하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참전한 국내진공작전에서 큰 참패를 보고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다시 연해주로 찾아오게 되는 과정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특히 열이틀동안 두 끼만 먹고 험악한 지형을 넘어 두만강을 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은 작은 것에도 불평하는 우리들의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그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동포들이 살고 있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일진회에 붙잡혀 모진 몰매를 맞고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풀려날 때도 있었다. 그는 국내에서 일본군과 싸워 이결 낼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어 결국 싸움터를 국외로 돌리게 된다. 

 

소금 한 톨 없이 계곡 물로 목을 축이며 먹는 조밥이었지만, 그처럼 맛있는 음식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 같았다._220쪽

 

일진회의 습격은 국내 진공전에서의 참담한 패주에 못지않게 안중근을 놀라게 하고. _249쪽

 

대의에 찬 자신의 생각을 오해하는 같은 의군 동지들을 바라보며 그가 마음을 다시 추스리는 모습은 독립운동하는 진영 속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릇 영웅이라는 것은 능히 굽히기도 하고 능히 무릅쓰고 버티기도 해야 하는 법이라 들었소._211쪽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의 방향을 국외로 돌렸을 당시 간도 지역은 이미 일본군의 휘하에 철저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그가 발길을 돌릴 수 있는 탈출구는 오직 연해주 뿐이었다. 다만 연해주 안에서도 최재형(동의회)과 이범윤(창의회) 사이에 미묘한 갈등 기류가 있었다. 안중근을 먼저 품은 이는 최재형이었지만 국내진공작전 중 만민공법을 설파하며 일본군을 돌려보내준 사건으로 부대가 위기에 처한 일이 있은 후부터 더 이상 최재형을 의지할 수 없게 되었다. 차선택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동쪽을 바라보다라는 러시아 이름의 땅)였으며 그곳에서 안중근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단지동맹(장천동맹 또는 서천동맹이라고도 함) 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열한명의 동지들을 모아 결의한 모임이었다. 

 

안중근은 연추의 하리(카리)에서. 하리는 연추에서 혼춘으로 빠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 독가촌이나 다름없는 황병길의 집에서 안중근이 그들을 모은 취지를 밝혔다. 그 단체의 이름을 동의단지회라 부르기로._250쪽

 

그 무렵 안중근은 주거와 숙식마저 정처가 없었다. _252쪽

 

『불멸』 2권에서 이문열 작가는 안중근 의사가 국내외에서 독립 운동을 위해 만난 여러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안중근과 안창호의 정의는 뒷날 동지걱 유대로 변해 안중근이 죽은 뒤까지도 끈끈하게 이어진다._21쪽

 

홀연 다동에 나타나 안중근의 출발을 다그친 게 바로 의암 유인석이었다._48쪽

 

중근을 최재형의 부하로 분류해 놓을 만큼 두 사람의 친분은 남달랐는데, _136쪽

 

이강은 평안도 용강 사람으로 나이는 안창호와 같아 안중근보다는 한 살 위였다.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가 안창호를 만나. 공립협회를 설립하고. 공립신문을 창간하였으며. 1907년 안창호를 따라 신민회 조직. _152쪽

 

우덕순은 원래 충청도에 살았는데. 서울로 올라온 뒤에 기독교에 입교. 노령으로 망명하였는데 그 무렵은 잎담배를 궐련으로 말아파는 것으로 생계를 삼고 있었다._177쪽

 

조도선은 원래 함경도 홍원 사람. 마카레이란 곳으로 가서 금광 이에 종사. 통역으로 일함. 모제라는 스물 살짜리 러시아 아가씨와 결혼. 이르크츠크에서 세탁업을 함. 대동공보 하얼빈 통신원 김형재가 추천함. _294쪽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이 사용한 총알은 끄트머리에 십자로 홈이 파여 있었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담담담탄(인도의 담당 지역 공장에서 처음 만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_310쪽

 

안중근은 무장독립운동을 결심한 후부터 늘 마음 한 켠에 천주교의 교리 중에 살인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신경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은 나라를 위한 정당행위이듯 본인이 나라를 위해 이토를 죽인 것도 살인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임을 말한다. 그럼에도 조선 천주교에서는 뮈텔 주교를 위시로한 사제들은 안중근의 의거를 살인행위로 규정한다. 사형 직전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이 고해성사를 한 이유도 신앙적 판단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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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1 - 소설 안중근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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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안중근이 태어나 30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아간 당시 대한제국의 시대상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안중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극적인 장면만 따로 떼어서 인물을 바라보면 자칫 한 점의 흠결도 없는 신인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안중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아니 구한말 대한제국의 국민으로 나라를 잃고 비분강개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초라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다만 조부때부터 이어져내려오던 가풍이며 황해도 일대에서 제법 위세를 떨친 가문의 명성의 후광으로 타고난 기질을 펼칠 수 있었던 가정적 배경은 충분했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아버지 안태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씨 가문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써 집안 대소사 뿐만 아니라 지역 일대의 호족으로 왕권을 흔드는 동비(동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낮춰 부르는 말)에 대항하여 지역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 왔으며 민초들을 괴롭히는 지방관들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지역 어른으로 살았기에 안중근은 맏아들로써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치적 위기에서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이게 된 안태훈은 당시 치외법권으로 여러 가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주교 신부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추락한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편으로 천주교를 활용하기도 했다. 안태훈의 신앙적 열심이 안중근과 그 가족들에게 전파되면서 안중근이 살았던 청계동 일대는 천주교 신심이 두터운 장소로 바뀌게 된다. 

 

안중근을 이해하기 위한 두번째 측면은 바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천주교 신앙이다. 아버지 안태훈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어떨결에 신앙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교리를 전파하고 열심으로 임했던 이가 안중근이다. 그의 호는 다묵, 토마스다. 천주교 신부의 영향으로 교육 사업에도 뛰어들어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열심도 천주교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삼흥학교, 돈의학교에 재정적 기부를 힘에 겹도록 도왔다. 

 

이문열 작가의 장편소설 『불멸』1권에서는 구한말 대한제국의 흔들리는 국가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청일전쟁, 을미사변, 러일전쟁, 아관파천, 굴욕적인 한일협약 등 근대사를 흔들었던 아픈 역사들이 안중근이 살았던 그 시대에 일어났다. 동학운동이 청일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안중근의 생각은 왜 안씨 가문이 사비를 털어 동비들과 전면전을 선포했는지 이해가 간다. 한성에서 멀직히 떨어진 황해도 지역에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그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일임을 알고 고민했던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일례로 민영익이라는 한때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상해로 망명을 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고 서상익이라는 거상은 자신이 먹고 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투로 말한다. 나라를 걱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양분되어 살아가는 시대가 바로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였다. 

 

누군들 편안하게 부를 누리며 살고 싶지 않을까. 안중근을 영웅이라 부름은 을사오적이라 부르는 명민하고 지식인이었던 그들이 초개처럼 나라를 버린 이들과 완전히 다른 편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그도 한 인간으로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술과 춤추기를 좋아했던 20대 혈기 왕성한 젊은이였다. 그러나 안중근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문열 작가를 통해 바라본 안중근의 모습이 다른 여타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 안중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기 위한 작가의 치밀한 배경 설명들이 1권에서 무려 400여쪽이나 할애하고 있다. 무장 독립운동에 뛰어들기 전 안중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지난 옛일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구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문열 작가가 쓴 기억해 둘 만한 문장을 초록해 둔다.

 

견수(함께 걸을 때 반걸음쯤 뒤처져 걸어 예를 표한다는 뜻으로 곡례에 따르면 다섯 살 위의 연상에게 표하는 예)_121쪽

 

중근은 어렴풋하게나마 그런 아버지의 내면에서 피 흘리고 있는 의식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무력감으로 상처받은 자부심이 그랬고, 낡은 구조와 급변하는 시대에 끼어 있는 가문과 자신을 지켜 내야 하는 신흥 호족으로서의 번민이 그랬다. _151쪽

 

먼저 내 영혼을 구원하고 아울러 이 몸도 해방하고자 천주 야소(예수)의 가르침에 투탁하려 합니다._203쪽

 

효도를 넘어 거의 신앙과도 같은 존숭으로 아버지 안태훈을 따르는 중근은 누구보다 열심히 천주교의 교리를 익혔다. _206쪽

 

이제 천주학은 우리 가문이 함께 걸을 길이 되었다. _221쪽

 

스물 살 때부터 중근은 언제든 빌렘 신부의 부름만 있으면 복사 안 다묵으로 그를 따라 황해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천주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_282쪽

 

천주교의 세력에 기대 행패를 부리거나 사사로운 이득을 꾀하는교인들을 특히 자세 교인이라고 불렀다. _286쪽

 

천주교 또는 천구교인들과 기존의 전통 사회와의 충돌을 일컫는 교안은 원래 서양 신부나 선교사들이 새로운 전교지로 갈 때 지역민들이 전교를 방해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력 사태와 이 전교된 곳이라도 새로 교당을 지을 때 교당을 훼손하거나 파괴할 목적으로 일으키는 소동에서 비롯되었다. _325쪽

 

중근이 내디딘 사회 활동의 첫걸음은 아버지 안태훈의 호족 활동을 계승하여 동학군과 싸운 일이었다. 그 뒤 자신의 호족 활동을 비호해 줄 세력으로 천주교를 선택한 안태훈은 일가를 이끌고 천주교의 세례를 받았으나, 그의 호족 활동은 곧 호교 활동을 거쳐 호민 활동으로 발전해 갔고, 중근도 그 길을 따라 걸어왔다. _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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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리포트 - 소설로 읽는 안중근 이야기
유홍종 지음 / 소이연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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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다!

참고로 하얼빈은 만주어로 '그물 말리는 곳'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원래는 한적한 어촌이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들은 일본측이 기록한 문서에 많이 의존해 왔다. 이번 <하얼빈 리포트>는 최근 개방된 러시아 역사문서, 외부 유출이 금지되었던 해외자료들를 근거로 작성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는 지금의 국정원에 해당되는 고종 황제 직속 군사 첩보기관 '제국익문사' 비밀요원이었다!

 

고종 황제는 일본에 의해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비밀리에 첩보기관을 운영한다. '총독 김두성' 이라는 이름으로 비밀 요원들을 국내외에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한다. 일본에 의해 군대도 해산되었기에 대한독립을 위한 의군들을 모집하고 의군들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도 독일, 홍콩에 있는 영국 은행에 예치를 해 두었으나 강대국들의 횡포로 출금을 할 수 없었다. 당시 고종 황제가 예치해 두었던 황실 내탕금은 대한독립을 위해 모인 의군 1만명에게 최신식 총기를 구입해 줄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902년 6월, 고종은 오랫동안 추진해온 황실 직속 군사 첩보기관 '제국익문사'를 출범시켰다. _140쪽

익문사는 오늘날의 국정원이나 미국의 CIA에 해당ㄷ하는 정보기관이다. _142쪽

익문사의 통신원은 실제로 모스 전신이라는 빠른 통신수단이 있어서 멀리 미국이나 연해주에서도 대한의군 총사령관과 명령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_144쪽

 

당시 고종황제의 비자금은 해외차관이나 특수상품의 판매대금으로 충당되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액수는 영국의 홍콩은행 상하이지점에 예치된 중국 내의 홍삼 판매대금이다._172쪽

 

조선통감부 친일매국노들은 예금주인 고종도 모르게 이토 통감의 지시로 황실의 내탕금 인출을 문서위조로 빼낸 것이다._220쪽

당시 독일은행의 조선 황실 비자금 부정인출사건은 그 후 1945년 한국이 해방된 후에 방문한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이승만 정부에게 독일 채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본의 이토가 허위 인출서를 작성, 금융사기로 돈을 탈취해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_220쪽

 

하얼빈 거사는 일본 후쿠시마 파견된 한국계 출신 익문사 소속 요원 마사코가 수집한 극비 정보에서 시작되었다.

 

그녀가 수집한 극비정보는 즉각 샌프란시스코의 국민회 총장 정재관의 귀에 들어갔다. _247쪽

 

이토가 하얼빈에 온 이유에 대해서, 책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주를 분할통치하고 있던 러시아와 일본은 구미 강국들이 만주철도부설권의 입찰에 뛰어들자, 이토는 서구 세력들의 개입을 막기 위해 러일회담을 제안한 것이다._251쪽

 

안중근 의사가 우리 민족의 원흉으로 지목한 이토는 1890년대 초기부터 중국을 지배하겠다는 장기전략을 수립했고 그 중간단계로 대한제국을 침략한 것이다. 최초 일본군은 동학 농민군을 지원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조선 침략의 교두부를 확보하기 위한 비밀 전략이었다. 명성황후를 시해(여우사냥)하기 위해 모인 일본인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경력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일본 신문 '한성신보' 사장 아다치, 편집장 고바야카, 기자출신의 기구치, 주한 일본공사 서시관 스기무라, 하버드대 출신 중의원 작가 시바시로, 도쿄대 법학부 출신 호기쿠치. _103쪽

 

똑똑하다고 해서 모두 다 제대로 된 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일본 안에서 당대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한 나라의 국모를 처참하게 살해하는 일에 자진해서 가담했다니. 극우 성향을 지닌 일본 우익 세력들의 행동에 혀를 내두를수 밖에 없다. 

 

한 때 일본의 세력들을 견제하고자 고종 황제는 러시아 공관에 임시로 옮겨가 있기도 하고 러시아 측에 비밀문서를 통해 군사적 협조 요청을 했었다. 그러나 러시아도 겉으로는 돕는 척을 했으나 내심으로는 일본의 견제를 막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일례로 스탈린이 집권하고 수 많은 연해주 등지의 독립운동가들이 처참한 학살을 당하고 강제 이주를 당해야했다. 

 

『하얼빈 리포트』의 시작은 노후의 빌렘 신부와 마샤 김이라는 익문사 비밀요원이 프랑스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빌렘 신부는 적극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해 주었던 인물이다. 안중근 의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안태훈의 독립운동 행적도 살펴보아야 한다. 이토의 저격 후 안중근 의사하면 하얼빈으로 통하지만 사실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한 부분들도 적극적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육사업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노력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의 가문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일정도로 대부분의 가족들이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쳤다.

 

『하얼빈 리포트』를 통해 하얼빈의 안중근이 있기까지 수 많은 이들이 대한제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기록해 놓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종황제의 노력, 첩보기관 익문사의 존재, 러시아 사람으로 고종황제의 손발이 되어 주었던 손탁 등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안중근을 다룬 영화 <영웅>을 깊게 감상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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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용기가 되어 - 초등학생이 궁금해하는 시민운동 이야기
레베카 준 지음, 시모 아바디아 그림, 김유경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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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용기와 힘이 모이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세상도 바뀐다!

 

어떤 사람은 뉴질랜드 열대 우림 푸레오라 숲을 구하기 위해 나무 위에 올라가고, 영국에서는 선거권을 얻기 위해 진흙이 묻은 치마를 입고 행진했고 , 기후 위기를 위한 평화 시위, 아프리카 라이베리라에서는 전쟁 종식을 위해 여성들이 침묵 시위를, 볼리비아에서는 영토를 지키기 위한 원주민들의 평화 행진, 서독과 동독을 가로질렀던 침묵의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기도회, 러시아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노래로 축제를 열었던 에스토니아 등 연합과 협력이 기적을 만든 사례들이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큰 소리로 외치고 있다. 

 

언제나 고여 있는 물은 섞기 마련이듯이 권력은 부패하고 만다. 부패한 권력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 최대한 권력에 접근하는 세력들을 짓밟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하며 자신만의 권고한 성벽을 높이 세워간다. 그 뿐인가.

 

인간과 환경이 서로 공존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기본 상식인데 돈에 눈이 먼 이들은 기후 위기라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돈벌이에만 혈안되어 있다. 이들을 향해 청소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평화 시위를 하며 오래된 나무 위에 올라가 벌목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행동에 나타낸다. 이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아름다운 지구를 그나마 보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른이 깨닫지 못하는 바를 어린이의 눈으로 보여주며, 사회의 기득권층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약자라 분리되는 이들이 직시하고 있다.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권력은 사유화되고 힘 있는 자들의 도구로 전락 당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을 인간답게, 환경을 환경답게 보존하는 것은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연합의 정신이고 협력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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