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 이상원.조금선 옮김 / 황소자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에 시간을 정복한 사람이라니.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유한한 사람이 무한한 영역인 시간을 지배하고 자신의 영역으로 가지고 온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출신의 곤충분류학자이자 해부학자, 생물학, 유전학, 분산분석 등 열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열의와 정성으로 성과를 보였던 사람, 바로 시간을 정복한 류비셰프다.

189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이며 1972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행적을 살펴본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 것이 바로 '시간을 정복한 사람'이라는 별칭이다. 과연 후세대의 사람들은 류비셰프의 어떤 모습을 보고 시간을 지배한 사람으로 여겼을까?

다름 아닌 그가 남긴 일기가 확실한 증거다. 물론 그가 남긴 논문과 저서, 연구 기록으로도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류비셰프는 1916년 1월 1일부터 매일의 기록을 빠짐없이 남겼다. 서글프게도 지금 사람들은 일기를 잘 쓰지 않는다. 자신을 증명할 기록물이 없다. 류비셰프가 남긴 일기의 핵심은 '시간'이었다.

그가 쓴 일기는 보통 사람들의 일기와 달랐다. 일기가 그날에 있었던 일상과 느낌, 감정과 사실 등을 총망라하여 개인적 생활을 담는 글임에도 류비셰프는 군더더기 없는 아주 객관적인 일들만 일기에 남겼다. 간혹 감정이나 느낌을 기록하기는 했지만 그것조차도 아주 절제하며 표현을 단순화했다.

그의 일기에는 그가 하루 동안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이 기록을 보고 사람들은 류비셰프를 가리켜 '시간을 정복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류비셰프가 고안해 낸 '시간 통계 방법'에 의하여 56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사용한 시간을 기록했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나는 매우 꼼꼼히 책을 읽기 때문에 책 내용이 오랫동안 나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_67쪽

류비셰프의 일기에 기록된 그의 독서 흔적을 보면 책 제목과 하루하루 읽는 쪽수까지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출장 중에 가지고 가서 읽을 책, 머리를 식힐 때 읽을 책, 연구에 도움이 되는 책등 늘 손에 책을 달고 살았다. 책을 읽고 내용을 분석한 것을 기록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훗날 집필에 유용한 도구로 삼았다.

"나는 읽었던 책은 모두 세밀히 분석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책을 읽고 나면 항상 비판적인 분석을 써놓으려고 한다" _77쪽

류비셰프의 일기가 가치가 있는 것은 한 개인이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있는지, 일에 대한 열정과 취향, 관심사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밀도 있게 계획을 짜서 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77세의 노인이 되었을 때조차도 그는 하루의 시간을 통계 내며 기록하였는데 마치 대기업 회계 장부를 방불케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긴 류비셰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쉽다. 상상 속의 인물로 단순히 미화시키는 사람도 있는데 류비셰프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가 살아온 행적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다. 과연 시간이 없는 것이 맞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자투리 시간마저도 계산하여 허투루 쓰지 않은 류비셰프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수시로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다. 나는 어떤가. 스스로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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