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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거리 수사대 : 한양풍문기의 진실 ㅣ 사계절 아동문고 110
고재현 지음, 인디고 그림 / 사계절 / 2023년 11월
평점 :

"글은 말보다 강하다" _130쪽
조선 후기에 소설 빌려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가게가 있었다. 바로 세책점이다. 『책방거리 수사대』에는 세책점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책 '장화홍련전'에 쓰인 '한양풍문기'의 글이 사건의 발단이 된다. 의문의 죽음을 밝혀 내고자 책에 메모가 되어 있는 글들을 추적하여 결국 범인의 자백을 받아낸다. 만약 단서가 되는 글이 없었다면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지 못했을 것이다. 글은 그 어떤 말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된다. 말보다 글이 더 신뢰가 가는 이유는 글은 진실을 전제로 한다. 거짓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서였다. 말은 소문으로 확장되면 진실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종이에 쓴 글은 시간이 지나도 고스란히 남게 된다. 말보다 글을 더 신뢰하는 이유다.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이 한 때 각광을 받았다. 소설을 실감 나게 읽어주는 재주는 특별한 능력이었다. 전기수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유튜버일 것이다. 사람들을 구름 떼처럼 모이게 하고 몰입하게 하는 전기수는 당시 아이들이 가장 되고 싶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무엇보다 소설을 대여해 주는 도서 대여점인 '세책점'이 여러 군데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문화를 주도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세책점을 이용하는 대상은 누구였을까? 아마 양반들은 과거 시험이나 유교에 기반으로 한 전통 학문서를 읽느라 소설 따위는 거들 떠 보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소설과 같은 책들을 읽어낸 사람들은 여인들이었지 않나 싶다. 『책방거리 수사대』 두 주인공도 여자다. 소설을 하챦게 여기는 기득권층은 민심을 잘 읽어내지 못했다. 반면 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서민들은 당시 사회의 부조리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소설의 힘이 크다. 글의 힘이다.
글이 진실성이 위협받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챗GPT는 웹 자료를 모두 찾아내 나름 사실이라는 답을 척척 내놓는다. 심지어 창작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 작문도 그럴싸하게 지어 낸다.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의 진실성 여부를 판별하는 일이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글은 진실되어야 한다. 지어내고 멋지게 포장된 글에는 생명력을 느낄 수 없다. 사람들이 원하는 글은 잘 쓴 글이 아니라 진솔함이 묻어 있는 글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글의 진실성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찾아낸 글보다 서툴지만 사람이 직접 쓴 글이 희소가치를 발휘할 날이 올 것이다. 생각의 고뇌가 담긴 글이 힘을 드러날 때가 도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