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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에 히어로는 무리지만
구로노 신이치 지음, 사타케 미호 그림, 이미향 옮김 / 한빛에듀 / 2025년 2월
평점 :

교실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한 학급을 이룬다. 소규모 학교라면 그 학급이 6년 내내 같은 집단으로 구성된다. 한 개 학급이 전부라서 그렇다. 1학년 때 학급이 6학년 졸업 할 때까지 그대로 간다.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분명 있다. 서로서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게 되는 장점도 있지만 만약 관계가 틀어질 경우 보고 싶지 않아도 함께 지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서열 관계가 존재한다. 우열을 나누는 기준은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도 있지만 대게 얼마큼 잘 사느냐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큰 관심사다. 옷 입고 오는 것만 보더라도 아이들은 대번에 알아차린다. 요즘은 어느 아파트에 살고 있느냐만 보더라도 아이들 사이에서 무리가 갈린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다. 교사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아이들 관계가 부의 기준으로 나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만큼은 모두가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아이들 관계에서도 어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기준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폭력이라는 용어자체가 참 부정적이다. 마치 학교에는 폭력이 늘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학교폭력'이라는 말 대신에 차라리 '학생갈등'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폭력은 당연히 없어야 하는 것이 맞다. 폭력은 나이와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초등학교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폭력'이라는 개념과 결이 다르다. 언어폭력도 학교폭력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기에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학교폭력이 안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학생들 간 갈등은 어른이 교사가 개입해서 풀 수도 있지만 가능한아이들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면 어떨까 싶다. 민주시민을 기르는 대한민국 교육에서 학생들 간에 일어난 갈등을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도록 접근 금지시키고 분리시킨다면 과연 민주시민을 기를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왕따, 따돌림이라는 용어로 학생 간 갈등을 모두 대입시킨다면 피해자의 회복은 물론이거니와 가해자의 자발적 사과도 진행될 수 없다. 초등학교 안에서만큼은 학교폭력이라는 용어 자체를 바꿔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