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날 메모리 도넛문고 9
민경혜 지음 / 다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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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편향적인 면이 있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하려는 기억 왜곡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진다.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은 뇌의 의식 속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싶어 한다. 기억 왜곡이 인지 왜곡으로 전환된다.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학식이 많든 적든 머리가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억의 흐릿함은 결코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고통과 상처, 아픔과 절망의 기억들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기억의 특성들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이다. 정확하고 오래전 사건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소환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오히려 허점 투성이인 기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삶이 정겹기만 하다.

저자는 언제든지 기억을 저장시킬 수 있고 소환할 수 있는 외계의 별에서 지구여행을 떠나온 행성인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지구인을 위해 상담소를 열어 흐릿해진 기억력을 복원시키고 오해하고 잘못 기억된 부분들을 상기시켜 뒤틀려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참 좋은 선한 역할을 맡는다. 행성인이 그토록 애달프게 관심을 주목시키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깨어진 가정, 상처 입은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들이다.

도둑질을 하든 폭력을 휘두르든 그들 모두 피해자라고 이야기한다. 법정에 서야 할 만큼 뻔뻔한 그들이지만 그들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는 결국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부모가 무책임하게 행한 결과임을 말해준다. 겉으로 드러난 돌발 행동들이 미덥지 못하다고 그들의 삶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점점 지구인들은 사람을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평가한다. 옳고 그름을 보이는 현상에서 결정짓는다. 그들의 피해를 어루만지려는 행성인들의 모습이 참 반갑게 여겨진다.

청소년 성장 소설이기도 한 이 책의 주된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상기시키며 청소년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일이 어른들의 몫이라는 점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이 때로는 상식 밖으로 보인다고 정죄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상처와 아픔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사회, 어른이 필요한 시대임을 말해준다. 누군들 스스로 파괴적인 삶을 살고자 일부러 계획하는 이들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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