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듣는 시간 -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 피디의 독서 에세이
김현우 지음 / 반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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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피디의 독서 에세이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영상을 제작하는 피디의 독서 에세이라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에세이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사회적 약자의 아픔과 상처를 담아낸 책을 읽고 오늘날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취재하는 형태의 다큐멘터리 기록물이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정신병리학자 노다 마사아키가 쓴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를 읽은 김현우 피디는 가족을 상실한 또 다른이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취재 일정을 잡는다. 참고로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는 1985년 일본항공(JAL) 추락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유족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거기서 툭 하고 시간이 끊겨 버렸다" (101쪽)

 

가족을 상실한 이들의 마음이 담긴 문장이다. 문장이란 단순히 글 재주로 표현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김현우 피디의 말에 의하면, 어떤 문장은 그 문장이 나올 때까지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고 한다. 

 

"어떤 문장은 그 문장이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단어를 정교하게 골라 쓴 문장의 정확함은 천재성이나 번득이는 영감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하고, 여러 단어들을 대입해 보고, 수정해 온 결과인 경우가 더 많다" (29쪽)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말로 상처를 표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작가든 취재하는 사람이든 성급하게 인터뷰 기사를 따 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아직 그들에게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기억이 툭 끊긴 상태로 남은 기간을 살아내야 하는 고통이 그들에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아픔의 문장은 짧지만 곰곰히 생각한 흔적이 베어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그들의 시간을 기다려 주고 그들의 세계에 함께 동화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책 시작부터 바다를 오고가는 콘테이너선에서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일들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취재하는 장면이 나온다. 선장을 비롯한 간부급 선원은 한국인들이고 힘을 쓰는 노동자들은 외국인들이다. 그들은 최소 6개월 이상 배에서 먹고 자고 가족을 떠나 오랜 시간 동안 바다에서 생활한다. 그들의 아픔을 취재하기 위해서 김연우 피디는 그들이 생활하는 곳인 배를 함께 타며 마음 속 이야기를 듣기 위해 최대한 오랫동안 기다리며 대화를 물꼬를 튼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약함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여기서 약함은 비겁함이다. 폭력성을 발휘하는 근본주의다. 권력과 부를 얻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안락함 속에 추악함을 감추려고 한다. 그 약함들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가능한 한 그 다른 세계를 보여 주고 싶은 이유는, 다른 세계와의 접촉이 없는 개인, 다시 말해 확장되지 않는 개인은 결국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 (23쪽)

 

약자들의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대와 협력을 통해 사회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김현우 피디의 약자들을 위한 다큐멘터리 기록물을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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