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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평점 :
말을 부순다?
폭력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 언어 폭력은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행위다. 대부분의 폭력이 그렇듯이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행위다. 권력 있는 자가 일방적으로 행하는 행위다. 그뿐인가. 언어로 폭력을 휘두르는 자는 상대방을 고통 속에 가둬 버린다. 언어가 곧 그 사람의 존재이기에 권력의 언어를 쓰는 이는 곧 권력자다. 저자는 권력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입맛대로 말을 부수는지 21가지 주제로 구분하여 독자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아니 고통의 목소리를 여과없이 소개해 주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보통 글을 쓰는 일을 창작이라고 말하며 글 쓰는 과정을 출산에 빗대어 표현한다. 반면 육체적인 일은 그야말로 몸을 쓰는 일임에도 출산이라는 표현 대신에 노동으로 갈음한다. 근데 과연 창작과 출산을 동일선 상에 놓고 비교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저자는 책 앞부분부터 이의를 제기한다. 화이트 칼라라 불리우는 지성인들의 글쓰는 일은 고귀한 일이기에 출산에 비유할 수 있고 블루 칼라라 부르는 노동자들의 육체적인 일은 하챦은 일로 여기기에 특별히 비유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 사람들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또 한 가지는 여자들이 출산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과 글 쓰는 이들이 창작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을 함께 보면서 창작의 고통을 좀 더 돋보이게 하려는 남성 중심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의문점을 남긴다. 고통의 참뜻을 부수는 예다.
시간이라는 말은 '금'으로 비유될 정도로 소중한 그 무엇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금에 비유되는 시간이 누군가에는 극심한 고통에 이르게 하는 말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보도된 바가 있듯이 배달 노동자들에게 있어 시간은 여유가 아니라 고통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로켓배송, 당일배송 뒤에 가려진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뒷모습은 가려지고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는 권력자들의 모습만 부각되고 있다. 시간은 금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음을 '말을 부수는 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말이라는 게 참 묘하다. 의식하지 않으면 상대방보다는 '나' 중심적으로 사용하게 되고 권력자의 시각에서 해석하게 된다. 말은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나 아름다운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말은 세상을 바라보는 해상도인 것 같다. 언어 감수성이 필요한 때다. 같은 언어라도 좀 더 그 언어가 담고 있는 뜻을 생각하고 사용한다면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는 언어에 대해 참 멋진 말을 남겼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내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된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을 보면 된다"
『말을 부수는 말 』 에서 저자 이라영님이 지적한 부수는 말은 곧 생활 속에서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이고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다문화라는 말도 그렇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외국인일 경우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럽이나 미국인이 부모 중 한 사람일 경우에는 다문화로 부르는 뉘앙스가 다르다. 동남아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 부모 중 한 사람일 경우 좀 더 낮추어 부르는 말로 다문화로 칭할 때가 일반적이다. 이 또한 부수는 말의 대표적 사례다. 차별의 언어가 될 수 있기에 누군가는 다문화 교육이라는 말 대신에 상호문화 교육이라는 말을 쓰자는 이들도 있다. 문화 다양성은 수용과 존중이지 차별과 폭력이 아님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