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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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작가의 철학과 시대상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후원자 또는 권력자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종교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시기가 있었다. 당연히 당시의 그림에는 종교의 가치관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종교의 수장이었던 교황은 자신의 뜻을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기 원했다. 천재 화가이자 건축가,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도 교황의 권력 아래 소위 당대의 스타로 떠올랐다. 그림의 이면에는 돈이 뒷받침되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료들은 값비싼 경우가 많았기에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훌륭한 화가라도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없었다. 든든한 재정적 후원은 재력가에 의해 진행되었고 후원을 받은 화가들은 재력가가 원하는 방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많이 알려져 왔던 서양 그림들의 대부분들이 화가의 철학과 소신으로 그려진 작품들보다 권력자들의 뜻에 따라 그려진 경우가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그림은 좀 특이하다. 화가의 시대 저항이 담겨져 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하트의 여왕'이라는 그림은 실제 인물을 소재로 다루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눈치 차렸겠지만 여장을 하고 있는 남자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당시 성 소수자들은 숨어야 살아야 했던 이들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당시 시대에서 버린 바가 된 이들을 작품의 소재로 등장시켰다. 여성의 성을 갖춘 이가 남성으로 살아야했던 실제 인물은 과감히 자신의 성을 드러내며 그림을 통해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미술관』에서 저자 이유리는 무심코 지나 보았던 그림 속에서 그림의 이면에 숨겨진 아픔과 편견, 불평등한 요소들을 끄집어 내어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 있다. 미술 에세이스트인 저자는 '기울어진 미술관'이라는 독특한 주제아래 독자들에게 그림에 담긴 숨겨진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도 담겨져 있다. 선천적으로 왜소증으로 태어난 이들이 귀족들의 장난감으로 살아야했던 그림도 소개하고 있고, 멕시코인으로 태어나면서 털 복숭이로 태어난 소녀는 세계 각지로 옮겨다니며 전시장 안의 동물처럼 볼거리로 취급당해야 했던 그림도 소개하고 있다. 

 

"어머니는 오직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만 자신의 욕구도 충족되고 그녀는 아이와 나누는 것보다 더 풍성한 교우 관계를 찾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매일같이 자녀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에만 진지하게 관심을 쏟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테레즈 베네텍의 말이다. (108쪽)

 

여자에 대해, 어머니에 대해, 모성에 대해 오랫동안 사회가 요구해 온 지배적인 생각이 있었다. 어머니, 여자에 대해 고유한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보다 아이를 위한 어머니, 가정을 위한 여자 등 필요성에 따른 존재를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가부장적 요소는 아직까지 무섭게 똬리를 틀고 견고하게 버티고 있다. 최근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히트 상품으로 떠오른 『배러티』에서도 자녀를 돌보는 엄마는 이래야 하고, 자신의 일보다도 자녀를 돌보는 일이 우선이며 자녀가 죽게 된 이유도 엄마에게 있다라는 전제로 사건의 중심에 여자를 두고 있다는 것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이다. 

 

"선거철만 되면 돈을 쥔 자들은 출마를 준비하며 굳이 낙후된 재래시장과 쪽방촌을 찾는다" (181쪽)

 

요한 밥티스트 슈미트의 <플로트베크의 인간 조각상>을 해설하며 저자는 돈 있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자신의 대리 만족을 위하여 사람조차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낱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추석 명절 전 각종 지방신문을 보면 기초의원, 광역의원, 자치단체장들이 약속이라도 한듯이 장바구를 들고 재래 시장에서 장을 보는 장면들이 실린다. 왜 그럴까? 정말 서민을 위한 행보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언론에 실린 그 장면의 효과는 홍보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선하게 보이게 한다. 형식적인 모습, 일시적인 모습, 광고성 모습임에도 사람들의 인식에는 무의식적으로 선하게 각인된다. 가난한 자들의 모습을 화가에게 그려달라고 했던 당시 재력가의 요청은 바로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기울어진 미술관』을 통해 그림을 바라보는 안목의 깊이가 조금 깊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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