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돼지 이야기 - 돼지는 어쩌다가 우리 밥상과 술상에 매일 오르게 되었을까
최승철.김태경 지음 / 팬앤펜(PAN n PEN)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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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정육점을 다녀 온 곤 했다. 자주 안 것은 아니다. 특별한 날에만. 생일 즘에는 소고기를 사러, 명절에는 돼지고기를 사러. 그것도 아주 작은 양만 사왔다. 정육점 주인 아저씨께서 저울에다가 무게를 잰 다음 큰 갈로 듬성듬성 썰어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주면 그것을 들고 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고기를 싼 신문지를 보면 벌써 기름끼가 스며들어 반질반질해지는 것을 본다. 군침을 흘리며 오늘 하루만큼은 괴기국을 먹을 수 있겠구나라는 기쁨으로 쏜살처럼 집으로 갔던 기억이 난다. 1970년~1980년대만 하더라도 가난한 저소득층에게는 돼지고기조차도 쉽게 먹을 수 없는 육류였다. 또 한 번은 어머니께서 큰 다라(바구니)에다가 뭔가를 잔뜩 넣어가지고 오신 다음 부엌 시멘트 바닥에 쏟아 놓으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소금으로 이리저리 세척하시면서 손질하는 것을 보니 돼지 창자였다. 아마도 동네에서 돼지 한 마리를 잡았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돼지 창자를 사오신 것이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자녀에게 고기 반찬을 못해주더라도 최소한 단백질 덩어리는 섭취시켜야겠다는 어머님의 심정이 담긴 음식이었다. 여러 번 손질을 거친 다음에 삶아서 먹고 반찬해서 먹고 두루두루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돼지 창자도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한 고급 음식이었다. 부족한 단백질 보충은 시장에 가서 닭목아지(닭을 손질하고 남은 닭머리와 목부분)를 칼로 다져 후라이팬에 지져 먹었다. 참고로 당시 닭목아지 1개는 100원이었다.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는 돼지에 관한 역사서이자 대백과사전이다. 밥상에 자주 오르내리는 우리와 친숙한 돼지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지 돼지가 우리 역사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고 인류와 함께 한 육축이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돼지를 신성시하고 아주 귀한 동물로 여겼던 역사가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구려와 고려는 국가 초기에 국가의 수도를 정할 때 돼지의 움직임을 보고 도성을 정했다고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이 지금의 개성에 도읍지를 정할 때도 돼지의 움직임을 보고 정했다고 전해온다. 당연히 돼지를 키우는 관청이 따로 존재했고 돼지의 개체수는 국가적으로 관리에 들어갈 정도로 귀중한 자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 사신을 맞을 때 귀한 음식으로 돼지를 이용한 음식을 내 놓았다고 한다. 돼지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우리나라 토종 돼지는 재래종으로 크기가 작되 먹성은 엄청 좋았다고 한다. 그만큼 사료값이 많이 들다보니 개체수를 늘이기에 부담이 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덩치가 크고 새끼를 많이 낳는 외래종이 들어오면서부터 재래종은 역사의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때는 의도적으로 돼지 사육을 늘리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그 이유는 식민지 국가로써 아픔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일본으로 반출되는 곡식의 양을 증가하기 위해 양질의 퇴비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퇴비 생산에 가장 큰 몫을 감당하는 것이 돼지였다. 돼지는 잡식성으로 심지어 사람의 인분까지 먹어치울 정도로 식욕이 왕성했고 돼지가 밟고 지나간 자리들은 짚더미와 함께 섞이면서 양질의 퇴비로 만들어졌다. 화전민들이 산간 지역을 개간할 때 사용했던 가축이 돼지였다. 움직임이 활발했고 농사 짓기 좋은 땅으로 돼지가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혹시, 용인자연농원(지금의 에버랜드) 시작에 양돈 농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1973년에 개발된 용인 양돈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형 양돈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 전쟁 후 한국 축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은 선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다.

 

돼지의 먹는 부위도 시대마다 달라졌다. 지금은 삼겹살이 성수기에 금결살로 소비되지만 삼겹살 소비가 확실히 늘어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돼지는 부위별로 버릴 것이 없을 정도로 고르게 쓰인다. 꼬리털은 발모제로 쓰인다고 할 정도니 정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가축인 것 같다.  돼지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가축이자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사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인류와 함께 했던 돼지의 이야기를 역사로 풀어낸 <대한민국 돼지 이야기>를 상식 삼아 읽어볼 것을 권해 본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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