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함
최순조 지음 / 리오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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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한국전쟁 발발 당일 동해안에서 벌어진 최초의 해전도 알지 못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기습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육로를 통해서만 공격한 것이 아니라 해로를 통해서도 거침없이 공격을 해 온 사실을 알게되었다. 당시 38도선을 기준으로 분단되어 있었으니 지금의 속초는 북한 지역으로 최전방 지역이었고 남한 지역은 <백두산함>에 기록된 대로 묵호(현재 동해시)가 최전방 지역이었다. 

 

"스탈린은 어디로 얼마의 병력을 이동시킬 것인지 물었다. 김일성은 정동진과 옥계 해안 일대에 1,800명과 삼척과 임원 해안 일대에 1,300명 그리고 부산에 600명을 침투시킬 것이라고 했다" (298~299쪽)

 

부산에 600명을 침투시킬 요원들은 적후방을 교란하고 만에 하나 있을 미군 원조를 차단하기 위한 교두보로 부산항구를 장악하기 위할 목적이었다. 정예요원 600명을 탑승시킨 천톤급 이상의 철제선은 당시 소련이 원조해 준 선박이었다. <백두산함>의 방어가 없었다면 김일성이 장담한 대로 두 달만에 남한 지역을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백두산함>은 우리 국민들의 땀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첫 해군함정이었다. 해방 후 국가 재정은 말할 수 없을만큼 바닥이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군함을 사들일 형편은 없었다. 이 일에 손원일이라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민간 차원에서 일어난 해군 만들기 운동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부녀자들이 폐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월급을 떼어 군함을 구입하는 일에 기부하며 여비마저 반납하면서까지 재정을 아껴 미군이 쓰다버린 폐함과 같은 군함을 전투함으로 변모시킨 것이 <백두산함>이었다. 

 

대한민국 초대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은 직접 미국으로 건너가 미군을 설득하고 미국 사업자들과 만나 담판을 지으면서 열악한 재정이었지만 바다를 지켜낼 전투함을 사들였다. 재정을 아끼기 위해 손수 페인트 칠을 하고 중고 부품을 사서 교환하며 쓸고 닦고 수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승조원들의 일화가 담겨 있다. 누가 시켜서 했던 일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오직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해상 침투를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는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내용일 수 있겠다. 나 또한 1970년대생이니 당연히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 간접적으로 경험한 바는 있다. 1996년 9월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 때였다. 당시 나는 703특공연대 1대대 4소대장이었다. 1996년 9월 당시 북한은 잠수정을 강릉 앞바다까지 침투시켰다. 승무원조를 제외한 침투조를 육상에 침투시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그만 잠수정이 기관 고장으로 좌초되고 북한의 승무원과 침투조는 퇴로를 위해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주변 산악으로 이동했다. 이 소식이 군당국에 의해 전해지고 대침투작전 수행이 가능한 부대였던 703특공연대는 새벽에 강릉으로 바로 투입되었다. 실탄과 함께 방탄조끼가 지급되었고 작전 지역은 우리 특공부대 외에는 철저히 통제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실제 전투는 쫓고 쫓기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1996년 12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동면 모전리 마을, 칠성산 만덕봉, 오대산, 계방산, 향로봉까지 매복과 수색 작전을 반복했다. 그때 나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제발 아침을 보게 해 주세요" 였다. 캄깜함 밤 중에 어떤 방식으로 교전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기에 시계가 보장되지 않는 밤에는 목숨을 위한 기도를 애타게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군생활 2년 4개월 중에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이라면 바로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백두산함>의 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천한 경험이지만 전쟁의 순간이 무엇인지, 왜 우리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목숨을 담보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지 많은 생각을 했던 시기였다. 분명한 사실은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태세가 없다면 언제든지 침략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놓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연평해전도 그렇고 천안함 사건도 그렇다. 다른 국가가 대신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지금도 우리가 평안히 지낼 수 있는 것도 평화가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다. 다만, 정치권들이 서로 대립하기 보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지혜를 모으고 대립하지 않았으면 한다. 민생을 위해 경제를 위해 치열한 대립은 있을 수 있겠다. 먹고 사는 일에 이런저런 방법들을 시도해 보고 더 좋은 방안을 찾겠다는 데에 누가 반대하겠느냐마는 국가의 안보가 달린 일은 다툴 일도 아니고 정당의 욕심을 담보할 일도 아니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국가가 혼란할 때 어김없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더 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친 순국선열들에 대해 감사함과 고마움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이창수의 독서 향기> https://www.youtube.com/watch?v=MlxeVb-MYtk&t=44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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