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
이정화 지음 / 달꽃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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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 서예가. 어린 꼬꼬마시절부터 묵향을 맡으며 살아온 그녀가 서예가이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만의 서체를 연구하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으로 취급되어 버려진 서예가의 길로 우직히 나아가는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미디어의 발달로 손글씨마저 쓰지 않는 시대다. 손에 힘을 주어 연필로 꾹꾹 눌러쓰던 시대에는 자신만의 필법으로 자랑스럽게 글씨로 공책을 채워나가던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연필은 물론이거니와 공책 마저도 웹노트라 대신하며 글씨의 영역은 오래된 유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 와중에도 붓에 묵향을 담아 자신만의 서체를 갈고 닦는 이가 있으니 바로 서예가 인중 이정화님이다. 

 

각종 드라마 서예 대필가로 활동 중이며 경기대학교 서예문자예술학과를 졸업한 저자의 자서전적 에세이이기도 하지만 책에 수록된 저자의 서체와 그림을 보면 과연 젊은이가 쓴 작품이 맞나 할 정도로 서예에 있어 문외한인 나로써는 입을 떡 벌어질 정도다. 20년 넘게 서예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부모의 영향도 컸지만 자신만의 철학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내재화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간혹 자신이 쓴 글씨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마음 속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버려질 것 같으면 한 장 달라는 이들, 정성껏 쓴 작품을 값없는 종이 취급하는 이들을 대할 때 다시한번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다부진 생각을 갖는다고 한다.

 

요즘 초등학교 교실에서 궁서체, 판본체 따라쓰기와 같은 서예 수업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 초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는 학년별로 심화된 서예 쓰기가 의무적으로 할당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서예의 맛을 조금이나마 맛보고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정보화 시대의 빠름을 강조하는 시기에 서예는 점점 뒤안길로 접어 들고 있는 추세다. 천천히 벼루에 묵을 갈고, 정갈하게 붓끝을 모아 화선지에 한 획 한 획 긋기 연습을 하던 시절은 아득한 옛 추억으로 접어 두어야 할 것만 같다. 벼루에 묵 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먹물을 사 가지고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 시간의 쫓김 속에서도 신문지에 글씨 연습을 하고 세로로 된 화선지에 자신만의 글씨를 연습하던 것도 이제는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고이 저장해 두어야 할 시대인 것 같다. 갤리그라피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 글씨 기술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저자처럼 우리의 서체를 쓰는 이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의 저자의 노력은 각별하게 보인다.

 

다시한번, 묵향이 그리워진다.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 받기 전 기초적인 서예라도 배우고 교단에 서야 겠다는 결심으로 한 달동안 서예를 가르쳐 주는 곳에 등록하여 연습한 적이 기억이 난다. 한 달 시간이니 얼마나 배웠겠느냐마는 지금 돌이켜보면 스킬보다는 서예에 담긴 정신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문방사우. 서예의 도구를 대하는 법, 붓을 말리는 법, 획을 긋는 법을 배우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지만 아직도 그때 그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긴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영혼을 쏟아야지만 서체가 완성되듯, 시대를 거슬러 서예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 그 자체가 용기이자 비범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30세 서예가, 인중 이정화님의 서체를 책 속에서 만나 보시라. 읽다보면 당장이라도 벼루와 먹을 구비하고 붓으로 획을 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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