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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 노트 (반양장) - 17가지 주제로 읽는 의학 이야기
예병일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3월
평점 :
팬데믹(pandemic, pan 지구 공간 전체 +demic 인류 전체) 을 통해 의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연일 계속 보도되고 있는 신종 감염병(신종 : emerging,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던 병원체가 새로 감염병을 일으킴) 인 COVID-19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까지 하며 앞으로도 새로운 감염병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들어 감염병이 이토록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의학사를 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감염병의 위협이 역사와 함께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인류의 역사가 곧 전염병의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의학사 노트』의 저자 예병일 박사가 쓴 『세상을 바꾼 전염병』에서도 십자군의 성패를 갈랐던 것은 '장티푸스'(수인성 감염병, 콜레라와 함께)였으며 중세를 몰락시켰던 것도 '페스트'였음을 밝히고 있다. 위 책 『의학사의 노트』에서도 저자 예병일 박사는 고대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부터 오늘날 맞춤의학의 시대를 연 유전학의 발견까지 17가지의 주제로 의학의 이야기를 일반 대중들에게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저자 예병일 박사는 인류 의학의 첫 번째 개혁을 신비의 학문이던 의학을 과학의 한 분야로 받아들이게 했던 점으로 꼽고 있다. 주술적이고 신의 영역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고대 사람들에게 의학이 과학적이며 의사에게 필요한 것은 윤리적인 의식이라고 강조한 점은 일대적인 전환점이었다고 강조한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의학을 지배했던 갈레노스의 의학은 철옹성과 같았지만 해부학계의 거두 베살리우스의 등장으로 의학계의 패러다임은 바뀌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용어 중에는 의학에서 발전된 것들이 종종 발견된다. 검역이라는 용어는 페스트가 한참 유행이었던 시기에 환자 발생 지역에서 배가 오는 경우 배를 항구에 40일간 정박시켜놓았다가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에만 배에서 사람과 물건을 내리게 했는데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의학계에서는 최초로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경우보다 파급효과를 중시하는 서양인의 사고 방식에 따라 역사에 미친 영향이 클수록 '최초'의 수식어를 사용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해부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해부학계에서는 베살리우스를 거두로 모신다. 해부학에서 유래한 '강사'라는 용어는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는데 '강사'는 해부학 수업 과정을 읽어주는 사람이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인 관점으로 의학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각이 있었기에 혈액의 순환 논리를 펼친 세르베투스는 종교학자 장 칼뱅에 의해 반대 여론에 부딪치게 되었고 이단으로 몰려 종교재판으로 화형에 당하기도했다.
인류가 감염성 질환을 정복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사례인 두창(천연두: 일제의 잔재)은 보툴리누스균, 탄저균과 함께 인류를 위협하는 제3대 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1979년 공식적으로 지구상에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공포했다. 공중보건학의 아버지 '존 스노'는 빅토리아 여왕의 분만을 마취제를 통해 통증없이 한 것을 계기로 신임을 얻게 되었고 1853년 콜레라가 런던에서 재유행할 때 질병의 분포와 런던의 개인 상수도 분포와의 관계에 관한 매우 뛰어난 연구를 수행했다. 스티븐 존슨의 『감염도시』에서 '존 스노'의 활약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때 의사로써 소신을 굽히지 않고 콜레라의 원인은 마시는 물 때문이라고 주장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존 스노'라는 의사다. 당시 런던 주택가에서는 분뇨 처리 시설이 없어 대부분의 분뇨를 쌓아두거나 별도의 지하 저장소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분뇨에서 발생한 오수들이 식수원인 템즈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오염된 물들이 다시 식수로 사용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1854년에 런던 브로드 가에 콜레라가 집단적으로 발생한 원인이 여기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불쾌한 악취에 있고, 오염된 공기에 있었다고 여겼다. '존 스노'는 직접 현장 조사와 탐문을 통해 콜레라의 원인이 되는 오염된 식수원을 밝혀냈고 콜레라를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해냈다."
수술을 받은 사람의 70%가 패혈증으로 발전해 죽어간다는 사실을 밝힌 제멜바이스는 의사가 산모를 대하기 전 소독 액으로 손을 씻기만 하면 산욕열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으나 거의 대부분 무시당하고 말았다.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은 외로운 법이다. 자신들이 과거에 행한 잘못을 인정해야 할 처지였기에 무시하는 방법으로 넘기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의 존재를 발견한 파스퇴르에 힘입어 리스터는 무균 처리법을 개발했다. 파스퇴르에 의해 광견병 또한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으로 알게 되었고 균을 약하게 만들면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백신 개념과 예방접종을 발견하면서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차츰 자유로와질 수 있었다. 파스퇴르가 남긴 말인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는 말이 코로나-19로 인해 여러모로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는 진료인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한다.
세균이라는 미생물의 존재를 확실히 밝힌 코흐는 현미경으로 각종 세균을 연구하다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공중보건의 영웅이라는 찬사를 얻는 존 스노도 다수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매몰찬 냉대와 조소를 받곤 했다. 한 때 조선이라는 땅에도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생각되는 콜레라로 수 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듯이 코로나-19 또한 인류가 딛고 서야 하는 과제로 남겨져 있다. 예병일 박사의 꼼꼼한 메모 형식의 『의학사 노트』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직면한 감염병을 어떻게 대해야할 지, 지금까지 감염병을 퇴치하기 위해 수 많은 선각자들의 노고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아무쪼록 모든 이들이 힘들어하는 코로나-19 감염병이 속히 지나가기를 손모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