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 개인의 간격 -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홍대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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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미터 개인의 간격』은 '욕망의 철학자'라고 불리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생(1632년) 스피노자의 행복 담론이다. 책 제목처럼 개인의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간격, 1미터 범주 안에서 결정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상처받거나 분노를 느끼는 것은 1미터 근접 거리에 있는 타인과 자신과 관심사가 같은 세상적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 외의 것들은 무가치하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개인사를 엿보면 왜 행복에 관한 '1미터 간격'을 고민했는지 엿볼 수 있다. 스피노자의 가문은 에스파냐다. 선대때부터 에스파냐인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종교 재판의 마녀사냥이 한창일 때 할머니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해야만 했다. 종교의 자유를 얻고자 이동한 곳이 네덜란드였다. '복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바뤼흐'라는 아명을 지닌 스피노자는 유대계 공동 거주지의 리더로 자라길 원하는 공동체의 뜻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 하지만, 주위의 기대와는 전혀 달리 선대 때부터 지녀온 종교(유대교)를 버린다. 종교관이 다른 네덜란드인에게도 증오의 대상이 되었고 더구나 부유한 재산마저 누이에게 양보를 하고 렌즈를 깍는 노동자의 삶을 선택한다. 낮에는 렌즈 세공업자로 밤에는 철학자로 살아가다 폐에 유리가루가 쌓여 40대 나이로 요절한다.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일수록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증오할 사람을 찾기 위해 반경 1미터의 자원을 모두 낭비한다. 억지 주장을 펼치거나 자신의 논리에 집착하여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다. 그들의 삶은 무척 바쁘고 고단스럽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불행한 사람이다. 행복은 사람이 욕망으로 이루어졌음을 선선히 인정하는데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르다라고 가치 판단하는 일은 행복과 무관하다고 이야기한다. 스피노자 자신이 네덜란드 기독교인과 집안의 누이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때 취한 태도는 그들을 증오하기 보다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었다. 여기에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행복의 기술이 나온다. 행복은 사랑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요즘들어 젊은층들이 산업화 세대였던 60대 어른들을 비아냥거리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SNS상에 분노가 담긴 글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 '선진국'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젊은층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산업화 세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행복은 요원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스피노자의 행복론에 비춰보면.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 위치한 한계령 위령비에 얽힌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전국에 강원도 우유를 보급하기 위한 방법으로 험준한 한계령 도로를 닦는 공사에 군장병들이 동원되었고 공사 중에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위령비를 세웠다고 한다. 지금 세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아니, 우유 보급로를 위해 아까운 목숨을 잃게 했다고? 지금 개인이 누리는 행복은 누군가의 헌신(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단단한 개인이란, 자신이 어느 때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사람인지 남의 도움없이 판단하고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불행한 사람은 기술이 필요하다. 타인을 이해하는 기술말이다. 1미터 개인의 간격은 행복을 구분하는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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