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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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뒤흔들었다. 개인의 병력과 생애를 결합시켜 고찰하는 병력전기학(pathobiography)을 근거로 역사의 중심축에 있었던 각계 각층 지도자들의 질병이 어떻게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는지 고찰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질병과 각종 질병에 걸린 권력자들을 서술하고 있기에 다소 편향적인 기록일 수가 있다. 역사의 서술이라는 것이 지금껏 힘 있는 권력자들 중심으로 되어 왔기에 마치 역사가 그들만의 이야기로 치장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현존 하는 역사 기록이 불행히도 왕 또는 유력한 권력자 중심으로 되어 왔기에 불가피하다는 것을 미리 이야기해 두고 싶다. 질병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이 앓았던 질병은 단 한 줄에 그치지만 권력자들의 병력은 지나칠 정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질병이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의 역사를 바꾼 흑사병, 페스트


14세기 유럽 경제를 주도한 도시국가가 있었으니 '제노바 공화국' 이다. 크림반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 카파는 제노바 상인들의 교역 요충지였다. 1346년 여름부터 타타르인(몽골족)들이 카파 시를 점령하기 위해 포위하기 시작했다. 포위하는 과정에서 타타르군 진영에 서식하던 쥐들이 카파 시로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쥐들과 함께 박테리아에 감염된 쥐벼룩도 유입되었을 것으로 본다. 쥐벼룩이 페스트의 매개라는 사실은 1894년 스위스의 의사 알렉상드르 예르생이 발견했다.


페스트의 발병 원리는 이렇다.

페스트균이 쥐벼룩의 소화가에 장애를 일으킨다. 식도가 막혀 아무것도 삼킬 수 없게 된 벼룩은 굶주림을 극복하기 위해 숙주의 몸을 더 열렬하게 뜯으며 피를 빨아 먹는다. 이때 벼룩의 위 속에 있던 박테리아에 감염된 내용물들이 침샘에 섞여 나온다. 벼룩은 한 마리 쥐에서만 피를 빨지 않는다. 이 쥐, 저 쥐, 다른 동물과 인간도 공격한다. 페스트균에 감염된 벼룩의 희생양이 된 생물은 죽음을 맞이한다.


페스트는 역사에 곳곳에 등장한다. 기온이 급감한 6세기에 농작물 피해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렸을 때 대규모 발병이 일어났다. 13세기 폭우로 인해 농작물이 대거 피해를 입었고 위생이 불결한 지역과 교역의 발달로 페스트균의 전달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졌다. 전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그리고 많은 쥐들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 같은 환경이 필요하다. 중세 초기는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에 그나마 피해갈 수 있었다. 반면 영국에서는 664~666년 사이 페스트의 습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영국 도시 중심으로 목조 건물이 많았고, 목조 건물은 쥐가 서식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전쟁 지역에 전염병이 발병하는 이유가 주둔하고 있는 지역의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교통이 발달로 교역의 범위와 속도가 빨라졌다. 페스트는 상인들, 난민들 그리고 여행객과 여행객들의 짐가방을 통해 전파되었다. 당시 직물 교역은 경제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기둥 중 하나였다. 모직물은 벼룩이 서식하기에 매우 좋은 보금자리였다. 벼룩들에게 있어 최고의 서식지는 화물선에 화물과 같이 탑승한 쥐의 털이었다.


중세는 종교의 힘이 강해 페스트가 진노한 신이 세상에 내리는 벌이라고 믿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신을 분노하게 만든 이들을 색출하여 벌하고 싶은 인간의 본능도 어김없이 고개를 들었다. 광신도들의 목표가 된 이들은 이번에도 유대인들이었다.


일반적인 유행병(epidemic)에 비해 범유행병(pandemic)은 전염 지역이 매우 광범위하다. 범유행병은 한 대륙 전체나 여러 개의 대륙이 감염성 질환의 공격을 받는다는 특징을 가진다. 1817년 인도에서 대규모 콜레라가 최초로 발발했으며, 그 전파 속도와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발병 원인은 이상 기후(1815년 4월,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 대폭발)로 인한 흉작, 그로 인해 영양분 섭취량이 턱없이 부족해 면역력이 감소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뇌졸중을 앓았던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이야기다. 그는 대한민국 초기 역사에 큰 영향을 준 결정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으로 강대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국제적 명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윌슨은 1919년 10월부터 임기 종료 시점인 1921년 3월 사이에 국제 정세가 긴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뇌졸중으로 인해 아무런 결정을 할 수 없는 권력 진공 상태였다. 동아시아에 식민국가들에게 또 다른 액션을 취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몸져누워 있었야 했다는 사실을 질병의 역사에서 발견하게 된다.


존. F. 케네디에 관한 일화도 질병과 관련하여 무수히 많이 회자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기에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케네디는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했다. 그렇기에 그는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풍부한 지식과 태고난 매력으로 최연소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병약한 심신으로 인한 독서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임기 중 케네디의 병력은 철저히 보안 사항이었다. 추후 공개된 사실은 그가 애디슨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스테로이드를 수시로 복용해야 했고 척추 이상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사망 당일에는 코르셋을 착용하고 있어 몸을 굽히기만 해도 피했을 총알을 고스란히 맞아야했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프랑스 최장수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은 전립선 암을 앓고 있었으며 재임 기간 중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4선을 역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자신의 병명을 철저히 보안 사항으로 감추어야했고, 결국 그 사실이 국민들에게 폭로되자 미국은 수정헌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되, 재임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처럼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의 건강은 때때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에 걸림돌이 되어왔고 세계 역사의 굴곡점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지나온 기록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2020년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해 세계 각국 정상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일본 아베총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각혈까지 토해냈다고 한다. 미국의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트럼프는 과연 재임에 성공할 것인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얼마 전 있었던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국회의석의 3분의 2이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해 낸 것이 코로나19 전염병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선방한 정부의 노력에 힘입어 나타난 결과로 보고 있다. 전염병은 이제 우리 생활에 밀접한 연관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코로나19 이후 생활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확연한 구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전보다 더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안전에 대해서 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세계 역사가 곧 질병의 역사라는 말이 세간에 두루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멀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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