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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도시 하나가 통째로 죽음의 수용소가 되어 버리다!
서술자의 시선으로 전염병이 어떻게 한 도시를 집어 삼켰는지 기술하고 있다. 독자들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품을 이끌어가는 서술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유(리외)다. 그는 의료인의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작품의 스토리상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죽어간다. 의료인의 책무를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과 동시에 도시 전체 방역의 책임까지도 담당한다. 한 아내의 남편이기도 한 리유는 페스트가 도시 전체에 번지자 감염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의료 행위에 나선다. 잠을 쪼개면서까지 환자들을 진단하고 격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리유의 가장 큰 고뇌는 페스트에 걸린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단지, 진단하여 가족들로부터 떼어 놓는 일, 가족들을 안전하게 격리하는 일까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자신의 병든 아내마저도 간호하지 못하고 멀리 요양원으로 보내야 했던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해 대책 마련에 고민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확진자가 계속 발생되어 온 국민이 사회적거리두기에 동참하고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힘입어 안전세로 접어들고 있다. 베르나르 리유의 모습과 우리나라 의료진들이 오버랩된다.
죽음 앞에 인간의 본심이 드러나다!
리유 외에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서술자는 스토리를 이어간다. 랑베르라는 신문기자의 의외의 변화된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랑베르는 도시가 봉쇄되자 조속히 애인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한다. 다양한 방법을 취한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기까지 한다. 드디어 탈출할 날이 도래했다. 그동안 친분이 있었던 주변 인물들에게 작별을 고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탈출을 포기하고 의료진을 돕는 봉사대원으로 남기로 결심한다. 그의 마음이 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헌신적인 의사 리유의 모습을 보며 아마도 마음을 바꾸지 않았나 싶다. 한 사람의 헌신적인 모습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게다.
또 한 사람 타루라는 직업 미상의 젊은이가 있다. 호텔에 기숙하며 전염병이 도시를 감싸는 모습들을 수첩에 낱낱히 기록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아났지만 아버지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온 인물이다. 정의감에 불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며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이상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전형적인 이상주의자다. 그런데 전염병이 그를 변화시켰다. 이상주의자에서 현실주의자료. 당장 죽어가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뜬구름 잡는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봉사 현장에 뛰어 들어가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쉬운 것은 그가 전염병 기세가 수그러진 마지막 고비에 페스트에 걸려 죽음을 당한다.
그랑이라는 시청 공무원도 눈에 띄는 인물이다. 나이 많은 공무원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깨어진 가정 때문에 늘 아내를 그리워하며 퇴근 뒤에는 자신의 취미 생활인 글쓰는 일에 절대 시간을 양보하지 않는다. 글쓰는 일이 그의 유일한 낙이다.
파늘루 신부, 전염병 초창기에 신이 내린 징벌이라며 모두가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역사적으로 발병한 전염병의 모든 원인이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우리 모두에게 닥칠 것을 예고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파늘루 신부 본인 뿐만 아니라 신자들 모두 생각이 흐트러진다. 전염병에 만성이 되어버린 것일까? 미사 참석 인원이 날이갈수록 줄어들며 예전처럼 신부의 설교에 집중하지 못한다. 파늘루 신부도 의료진을 돕는 봉사대에 들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며 애쓴다. 애통스럽지만 그도 페스트에 감염되어 죽임에 직면한다. 등장인물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호통 판사의 아들이 고통 중에 죽었기 때문이다. 작디작은 어린애가 처절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개운하지 않다. 페스트균이 완전히 박멸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멈추어진 현상이라는 점이다. 언제 또다시 발병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일시적으로 잠시 주춤할 수는 있어도 언제 기지개를 펼지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오래전 알베르 카뮈는 바이러스의 공격이 주기적으로 있을 것을 알고 있었을까? 바이러스의 전개 양상이 어쩜 이렇게 동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