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을 올려다보던 모르타티 추기경의 머리와 가슴이 극심한 충돌을 일으켰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장면은 현실이고, 실체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모두가 궁무처장이 헬리콥터에 타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가 하늘에서 빛이 번뜩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금 궁무처장은 대성당 옥상 테라스에 높이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사들이 데려다 주었나? 하느님의 손으로 부활한 건가? - P617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은 평생 이 순간이 오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하느님이 이 순간을 현실로 바꿀 방법을 마련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궁무처장은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당신들의 주님은 살아 있습니다! 주위에 가득한 기적을 보시오!"
궁무처장은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몸에 감각이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혼이 그를 움직여, 그는 고개를 숙이고 테라스에서 뒤로 물러났다.
이제 혼자가 된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 P618

"임포시빌레(말도 안 돼)!"
야코부스가 소리쳤다. 로버트 랭던은 텔레비전에 나온 바로 그 사람이다. 바티칸을 도우러 온 미국인 교수였다. 야코부스는 몇 분 전에 랭던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광경을 보았다. - P620

"개인 소지품은 여기에 있어요. 지갑, 캠코더, 펜, 캠코더는 제가 할 수 있는 한잘 말렸어요."
간호사가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말했다.
"캠코더는 제 물건이 아닙니다."
간호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바구니를 내밀었다. 랭던은 안에 든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지갑과 펜 옆에 있는 것은 작은 소니 루비 캠코더였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 콜러가 언론에 전해 주라고 부탁한 것이다. - P622

또 다른 추기경이 외쳤다.
"궁무처장이 우리의 교황이 되어야 합니다! 추기경은 아니지만 주님께서 기적적인 계시를 내려 주셨습니다!"
다른 한 명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콘클라베 규칙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그보다 앞서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투표할 것을 건의합니다!" - P627

이제 시스티나 소성당에는 랭던과 비토리아, 추기경들만 남았다. 랭던은 소니루비 캠코더를 텔레비전에 꽂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이 켜졌다.
추기경들의 눈앞에 교황 집무실이 보였다. 화면은 몰래 카메라로 촬영된 것처럼 앵글이 이상했다. 화면 중앙 부근 어두침침한 곳에 궁무처장이 서 있었다. 벽난로 앞이었다. 처음엔 그가 카메라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래지 않아 비디오를 촬영한 이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랭던은 비디오를찍은 사람이 CERN 소장 막시밀리안 콜러라고 추기경들에게 말했다. - P630

비밀 면담에서 베트라는 당신과 교황에게 심오한 종교적 의미가 담긴 과학적 발견을 했다고 말했어. 그는 물리적으로창세기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지. 그리고 강력한 에너지원이 있으면, 물론 베트라는 그게 하느님이라고 했지만, 창조의 시점을 재현할 수 있다고도 했어. - P631

" "하지만 과거의 악마들은 불과 증오의 악마였다………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적,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적이었다. 하지만 사탄은 약삭빨랐어. 시간이 지나면서 사탄은 악마의 얼굴을 버리고 새 얼굴을 취했다…… 순수한 이성이라는 얼굴이지. 투명하고 눈에 띄지 않지만 영혼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 P633

악의 존재처럼 사람의 마음을 결합시키는 것도 없습니다. 교회 하나만 태워버리면 지역사회가 일어나 손에 손을 잡고 저항의 찬송가를 부르며 재건을 시작합니다. 오늘 밤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보십시오. 공포가 그들을 일깨운 것입니다. 현대인들에게는 현대의 악마가 필요합니다. 지금 냉담함은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악마의 얼굴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 P646

"교황에게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시스티나 소성당 안에서 궁무처장은 흔들림 없이 서서 말했다. 세 단어뿐이었지만 놀라운 사실이었다. 좌중이 동시에 움찔 놀랐다. 그를 비난하던 추기경들의 태도는 순식간에 놀라 쳐다보는 눈길로 바뀌었다. 예배당 안에 있는 이들 모두가 궁무처장의 말이 틀렸기를 기도하는 듯했다. - P652

그녀는 다시문을 열려고 했지만, 추기경들이 놀란 얼굴로 더 가까이 다가서며 가로막았다.
"저한테 어떻게 하시려고요? 죽이실 건가요?"
비토리아가 소리쳤다.
늙은 추기경의 주름진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비토리아는 금세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 P658

‘영대의 벽감‘에서 궁무처장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몸에 기름을 발랐다. 머리카락과 얼굴, 리넨 천으로 된 사제복, 살갗에까지 발랐다. 이제 그는 기름등잔에 들어 있던 투명하고 성스러운 기름으로 흠뻑 젖었다. 그의 어머니처럼 향기로운냄새가 났지만 인화성이 강한 기름이었다. 그의 죽음은 은총 가득한 승천이 될것이다. 기적적이고 빠르게. 그리고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스캔들이 아닌………새로운 힘과 경의만 남을 것이다. - P665

"’숭앙에 의한 선출‘ 이란…… 모든 추기경들이 성령에 영감을 받은 것처럼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한목소리로, 크게 한 사람의 이름을 외치는 것을 말한다."
글릭은 빙긋 웃었다.
"그러니까 박사님의 말씀은, 어젯밤에 추기경들이 다 함께 카를로 벤트레스카의 이름을 외친 것이 사실상 교황 선출이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조항에는 이 경우 기존의 추기경 자격 요건은 상관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서품을 받은 신부, 주교, 추기경 할 것 없이 어떤 성직자도 선출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무처장은 이 절차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될 완벽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P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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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낙인들은 일루미나티 연구자 대다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이니, 그 자체로도 매혹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자 안에 있는 다른 뭔가가 랭던을 불안하게 했다. 암살자가 다시 움직일 때 랭던은 또 한 번 상자를 흘긋 보았다.
‘맙소사!‘
인두들은 바깥에 있는 칸 다섯 개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가운데에도 칸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부분은 비어 있었지만 분명히 하나가 더 있어야 할 자리였다.
가장 큰 정사각형 인두. - P540

"자만심이 지나치군. 너희 둘은 아무것도 아니야. 물론 너희들도 죽는 건 확실하지만, 내가 말하는 최후의 희생자는 정말로 위험한 적이다."
랭던은 암살자의 말을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위험한 적? 하지만 프레페리티는 모두 죽었다. 교황도 이미 죽었다. 일루미나티는 그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마침내 랭던은 텅 빈 암살자의 눈에서 해답을 찾았다.
‘궁무처장.‘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이야말로 이 위기 상황에서 전 세계에 희망의 등불이 된사람이었다. - P542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근위병들은 다들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 언론에 일루미나티 공격의 실제 영상을 제공하기로 한 궁무처장의 과단성 있는 결정이 훌륭한 작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루미나티는 교황청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항상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침묵을 지킬 거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카를로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은 쉽지 않은 적수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 P546

그녀는 방금 뭔가를 보았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뭔가를 본 것이다. 비토리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헬리콥터를 가리켰다. 이렇게 멀리서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헬리콥터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움직이는 모양이 특이해 그 사람외에 다른 사람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앉아 있는데도 힘들이지 않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는 사람… 전기 왕좌에 앉은 대왕.
막시밀리안 콜러였다. - P550

"아드님의 몸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약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의사 하나가 꾸짖듯이 말했다.
콜러 부부는 결코 허락하지 앉았다. 그들은 약을 믿지 않았다. 누가 감히 주님의 광대한 계획에 끼어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더 열심히 기도했다. 결국 아들을 주신 것은 주님이다. 그런 주님께서 왜 아이를 데려가신다는 말인가? - P554

콜러가 교황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방 안에는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이 혼자서 꺼져 가는 벽난로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콜러가 들어서는데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콜러 씨, 나를 순교자로 만들어 주러 오셨습니까?"
궁무처장이 말했다. - P556

달려가는 랭던의 머릿속은 만화경처럼 뒤섞인 이미지로 가득했다. 콜러, 야누스, 암살자, 로체… 그리고 여섯 번째 낙인?
"아마 들어 봤을 걸? 마지막 낙인이 가장 뛰어나."
암살자가 말했다.
하지만 랭던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떠돌아다니는 음모론 중에도 여섯번째 낙인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실재는 허구든 전무했다. 금괴와 완벽하다는 일루미나티 다이아몬드에 대한 소문은 있었지만 여섯 번째 낙인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 P557

궁무처장은 일종의 외상 후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인사불성 상태처럼 악마의 혼이 깃든 듯 갑자기 힘이 넘쳤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에게로 두 팔을 뻗은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에게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했다.
"말씀하시옵소서! 네, 들립니다!"
궁무처장이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 P577

궁무처장이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그들의 눈이 마주치자 랭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사불성 상태에 오락가락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궁무처장의 눈은 맑은 각오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가슴에 찍힌 낙인이 몹시 아파 보였다.
"처장님, 거기 내려가시면 안 됩니다. 피신해야 하니까요."
랭던이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궁무처장은 섬뜩하리만치 멀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 나는 방금 계시를 받았습니다. 나는 .…
"처장님!" - P583

랭던은 자신이 등진 불빛과의 간격을 좁혀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장님! 반물질을 그 자리에 두셔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 말을 하면서도 랭던은 스스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궁무처장이 받았다는 신의 계시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인 성 베드로 대성당과 그 안에 든 예술품을 파괴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 P590

궁무처장이 성 베드로 대성당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시간은 11시 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반물질을 무슨 신성한 봉물처럼 들고 바깥세상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나섰다. 궁무처장은 불타는 눈으로 광장의 방송사 스크린에 거인처럼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반라에 부상을 당한 모습이었다. - P598

랭던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궁무처장의 계획을 완건히 오판한 것이다.
‘하늘을 보시오!’
이제 랭던은 말 그대로 하늘이 목걱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궁무처장은 반물질을 떨어뜨릴 생각이 건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반물길을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바티칸에서 가장 멀리 가져가고 싶었던 것뿐이다.
돌아가지 않는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 P604

번쩍 섬광이 일었다. 빛의 점은 스스로를 먹고 자란 것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부풀어 올라 눈부신 흰빛의 반경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빛은 상상도 못할 속도로 어둠을 집어삼켰다. 빛의 원구가 커지며 밝기도 세졌다. 악마처럼 자라나 하늘 전체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빛은 빠른 속도로 아래로 달려 내려왔다. - P606

"저길 봐! 저기!"
당혹감에 휩싸인 모르타티는 뒤를 돌아 모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들은 일제히 대성당 맨 위층, 옥상 테라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를 묘사한 거대한 조각상이 군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에서 두 팔을 뻗은 채 서 있는 사람은…… 카를로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이었다. - P609

로버트 랭던은 낙하산도 메지 않은 채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렸다. 밤하늘이 굴러 떨어지는 그의 몸을 집어삼키는 동안 헬리콥터는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랭던 자신이 자유낙하하는, 귀가 멀 듯한 소음 속에 헬리콥터 날개 소리가 점점 파묻혔다. - P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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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에 바티칸에서 인정하지 않은 유일한 언어가 영어였습니다. 이탈리아어, 라틴어, 독일어, 심지어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까지도 취급했지만, 영어는 바티칸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영어는 더러운 언어이고, 초서나 셰익스피어 같은 불경스러운 자들, 자유사상가들이 쓰는 언어라고 생각했던겁니다. - P266

"첫 번째 표식은 산치오의 무덤에 있나 보네요."
비토리아가 말했다.
랭던이 미소 지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잖습니까."
"그래, 산치오가 누구예요? 무덤은 어디에 있어요?"
갑자기 신이 난 비토리아가 물었다.
랭던은 혼자 웃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르네상스 미술가의 성(性)인 ‘산치오‘를 아는 사람은 놀랄 정도로 드물었다. - P273

판테온이 첫 번째 과학의 제단임을 깨달은 건 달콤하고도 슬픈 순간이었다. 역사를 좇는 이에게 역사는 잔인한 장난을 친다. 모든 조각상이 제자리에 있고 ‘계몽의 길‘도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한편으로는 랭던도 그 길을 끝까지 따라가 직접 일루미나티의 신성한 은신처를 보는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 P282

"여러분, 12월 25일은 고대 이교도에서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즉, 무적의 태양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동지와 겹치는 날이죠. 태양이 다시 돌아오고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멋진 날입니다." - P303

‘흙(Earth)을 앰비그램으로? 어떻게?"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보고 말았다. 수백 년을 전해 내려온 일루미나티의 전설이 그의 머릿속을 휘감았다. 추기경의 가슴에 찍힌 불탄 낙인에서 체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살은 시꺼멓게 되어 있었다. - P349

비토리아는 고개를 돌렸다. 모든 사건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벌어지고 있었다. 창밖 어둠 속에서 인간의 비극이 강렬한 힘으로 인파를 바티칸으로 빨아들이는 광경이 보였다. 광장에 모여든 사람 수는 일 분 일 초가 다르게 늘어났다. 길 가던 사람들이 인파에 합류하고, 언론사 차량도 더 많이 모여들어 성 베드로 광장에 자리를 잡겠다고 아우성이었다. - P404

텔레비전에 나타난 MSNBC 기자는 이제 정말로 불안한 표정이었다. 기자 옆에는 사망한 교황의 사진이 나오고 있었다.
"BBC에서 방금 들어온 긴급 속보입니다."
기자는 정말 이것을 보도해야 하는지, 승낙을 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았다. 곧 확인을 받은 듯, 그녀는 다시 우울한 얼굴로 정면의 시청자를 향했다.
"일루미나티가 밝힌 바에 따르면 .…" 기자는 잠시 망설였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보름 전에 발생한 교황의 사망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합니다."
궁무처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 P405

"바티칸은 변화에 능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시인하고 현대화의 길을 가는 것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기피해온 일이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그걸 바꾸고 싶어 하셨습니다. 현대 세계에 손을 내밀고 주님께 가는 새로운 길을 찾고자 하셨지요." - P417

비토리아는 사후 경직으로 교황의 입이 꽉 다물어져 있어 혀를 보기 위해 턱을 부숴야 할까 봐 걱정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양 볼이 움푹 들어가 입이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교황의 혀는 죽음 그 자체만큼이나 새까맸다. - P431

천장 높이 돔 안에 연기와 불길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향로 줄은 남자의 손목에서 시작해 천장에 있는 도르래를 통과한 다음 성당 양편 벽에 있는 금속제 쐐기에 고정되어 있었다. 랭던은 쐐기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마저도 벽 높은 곳에 있었고, 만약 거기에 올라가 줄을 느슨하게 하더라도 오히려 추기경을 불바다에 던져 넣는 꼴이 될 뿐이다.
갑자기 불길이 더 높이 타올랐고, 머리 위에서는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남자의 발에서 피부 허물이 일어나고 있었다. 추기경은 산 채 불태워지고 있는 것이다. 랭던은 쐐기를 향해 달려갔다. - P459

투표 세 번, 선출 실패.
시스티나 소성당 안에서 모르타티 추기경은 이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고 있었다.
‘후보를 보내 주시옵소서!‘
이미 지연될 대로 지연된 상태였다. 후보 한 명이 사라졌다면 모르타티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 명 모두 사라지다니, 남은 선택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3분의 2에 달하는 표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 P463

모르타티 추기경은 시스티나 소성당에서 어리둥절한 동료 추기경들에게 둘러싸인 채 궁무처장의 말을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모르타티의 눈앞에서, 촛불의 희미한 빛에만 의지한 궁무처장은 온몸이 전율할 만한 증오와 배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추기경들이 납치되고, 낙인이 찍히고, 심지어는 살해되었다는 얘기였다. 일루미나티라는 고대 조직의 이름은 모두에게 한동안 잊고 있던 공포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 P469

"당신들이 전쟁의 승리자입니다."
이제 성당 구석구석까지 침묵이 전해졌다. 모르타티는 절망적으로 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당신들은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러니 승리는 당연한 것입니다. 지금 어느 때보다 그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과학이 새로운 하느님입니다."
궁무처장이 말했다. - P472

궁무처장은 추기경단을 가리켰고, BBC 카메라 기자는 본능적으로 그 손을 따라가 좌중을 비췄다.
"우리는 이제 정말 시대에 어울리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은 모두 마지막 남은 공룡들입니까? 내가 그렇습니까? 이 세상에 정말로 가난하고 약한 자들, 핍박받는 이들,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위한 목소리가 필요합니까? 정말로 여기 모인 이 사람들처럼 불완전하나마 도덕의 기준을 읽어 내고 길을 잃지 말라고 호소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이들이 필요합니까?" - P474

그는 지금까지 세 번 되풀이한 대로 벽에서 횃불 하나를 꺼내 들고 쇠붙이를 달구기 시작했다. 끝이 하얗게 될 정도로 달궈지자 감방으로 향했다. 안에는 남자 하나가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늙고, 혼자 남겨진 채로.
"바지아 추기경, 기도는 했나?"
암살자가 말했다.
이탈리아인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듯 암살자를 쳐다보았다.
"네 영혼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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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안 믿으세요?"
비토리아의 목소리에는 따지거나 평가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랭던은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요, 쉬운 문제는 아니네요. 신앙을 가지려면 믿음이 깊어야 하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나 ‘신성한 간섭‘과 같은 기적을 믿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교인이 되면 따라야 할 규칙도 있고요. 성경이나 코란, 불경에도 다 비슷한 요구 사항에 비슷한 벌이 나와 있죠. 특정한 계율에 따라 살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되어 있고. 하지만 신이 있다면 그런 식으로 세상을 다스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 P140

"랭던 씨, 저는 사람들이 신에 대해 하는 말들을 믿느냐고 물어본 게 아니에요. 신을 믿느냐고 물었죠. 둘 사이엔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야기일 뿐이죠.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을 역사와 전설로 기술한 거예요. 글로 쓰여진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물은 게 아니라 신을 믿느냐고 물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누웠을 때 신의 존재를 느끼세요? 하느님이 손수 만들어낸 작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느냐고요." - P140

랭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신이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에 대해 변명을 늘어 놓는 데 이골이 난 지 오래였다. 어릴 때 부모님께 선물로 받은 소장용 미키마우스 시계였다. 미키마우스가 두 팔을 심하게 뻗어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디자인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랭던이 차고 다니는 유일한 시계였다. 방수에 야광기능까지 있어 수영할 때나 밤에 어두운 캠퍼스를 다닐 때 편했다. 학생들이 패션 센스가 왜 그러느냐고 할 때마다 마음만은 젊게 살고 싶은 뜻에서 미키마우스를 차고 다니는 거라고 대답했다. - P147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지닌 전 세계 추기경 1백65명이 바티칸에 모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신성한 의식이 바로 콘클라베다.
‘지구상의 추기경이란 추기경은 지금 다 여기에 있겠군.
헬리콥터가 성 베드로 대성당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바티칸의 드넓은 경내가 바로 아래에 있었다.
‘그렇다면 로마가톨릭 교회의 권력 구조가 통째로 시한폭탄 위에 앉아 있는 셈이야. - P157

선택된 네 명.
콘클라베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은 모르타티는 이미 적절한 경로로 전갈을 보내 스위스 근위대에 그들의 불참을 알렸다. 아직 답신은 오지 않았다. 다른 추기경들도 이제 네 명의 후보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속삭임이 일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네 명은 제시간에 와야했다. 모르타티는 콘클라베가 길어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펼쳐질 일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P161

르네상스 미술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중 하나였다. 1857년 피우스 9세 교황은 남성 성기의 정확한 묘사가 바티칸 내에서 풍기문란을 초래한다 하여 정과 망치를 동원해 바티칸 내 모든 남성 조각상의 성기를 잘라 버렸다. 그 과정에서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베르니니의 작품들이 훼손되었다. 그훼손 부위를 가리느라 석고가 사용된 것이다. - P166

올리베티는 모니터 앞으로 다가가더니 화면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고는 랭던과 비토리아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이 영상은 바티칸 시국 내부 어딘가에 숨겨진 무선 카메라에서 송출한 것입니다.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니터를 들여다본 랭던과 비토리아는 동시에 숨을 들이쉬었다. 영상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만큼 확실했다. 그것은 CERN의 반물질 트랩이었다. - P169

랭던은 자신의 기억이 맞기를 바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반복해 말했다. 그는 언젠가 교황 이후 바티칸 권력 설정의 기이한 단면에 대해 읽은 적이 있었다. 랭던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교황이 새로 선출되기 전까지 모든 자치권은일시적으로 영면한 교황의 개인 비서인 궁무처장에게 이양된다. 궁무처장은 낮은 직위의 비서일 뿐이지만, 추기경들이 새로운 교황을 뽑을 때까지 콘클라베를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 P174

랭던은 궁무처장의 모습에 최면이 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젊고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지만 그에게는 신화 속 영웅과 같은 느낌이 있어, 온몸에서 카리스마와권위를 발산하고 있었다. - P186

"아직 근위대가 보고하지 않았나 보군. 이런 죄 많은 영혼이 있나. 하긴 그 자존심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지. 진실을 말하자니 치욕적이겠지. 자기가 지키겠다고 맹세한 추기경 네 명이 사라졌다는 진실 말이야." - P196

"맞아. 그래서 우리도 똑같이 할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살해당한 우리 형제들을 위한 보복의 의미라고 생각하시지. 당신네 추기경 넷은 여덟 시부터 시작해서 한 시간에 한 명씩 죽일 거야. 자정이 되면 전 세계의 눈이 집중될 거다." - P198

교회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모르타티는 궁무처장이 나이가 들어도 절대 교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황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정치적야심이 있어야 하는데, 궁무처장에겐 그런 면이 없었다. - P205

테러의 목적은 공포를 유발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기존 사회의 믿음을 갉아먹죠. 적을 속부터 약화시키는 겁니다. 군중의 불안을 야기하는 거죠. 받아 적으십시오. ‘테러는 분노의 표출이 아니다. 테러는정치적인 무기다.’ 정부도 당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면 사람들의 믿음도 사라지는 겁니다. - P218

랭던은 궁무처장에게 말했다.
"처장님, 지난 삼 년 동안 저는 일곱 번이나 바티칸 문서 보관소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교황청에 청원했는데 매번 거절당했습니다."
"랭던 씨,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런 민원을 제기할 시점이 아닌 듯 싶습니다."
"지금 당장 가봐야겠습니다. 사라진 네 명의 추기경 말입니다. 그분들이 어디서 살해당할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P219

단서 역할을 했던 겁니다. 만약 일루미나티에 입회하고 싶은 사람이 맨 처음 성당에 가서 흙의 표식을 찾으면, 그걸 따라가서 공기를 찾고, 불을 찾고, 물을 찾고, 그러면 결국 계몽의 교회로 이어지게 되어있습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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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병은 생각했다. 카메라 위치가 이동된 것도 문제지만, 당장 훨씬 더 걱정스러운 문제가 있었다. 근위병은 없어진 카메라가 전송해 오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카메라는 정지된 물체 하나를 비추고 있었다. 현대적인 모습의 그 물체는 처음보는 장치였다. 그는 장치의 하단에 깜박이는 전자 디스플레이를 살펴보았다. - P78

"망막 인식 시스템이에요. 매우 안전한 보안책이죠. 저와 아버지, 단 두 개의 망막만 인식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 순간, 로버트 랭던은 공포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레오나르도 베트라의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피범벅이 된 얼굴, 그를 바라보던 한 개의 눈알, 그리고 텅 빈 눈구멍. - P84

침대에서 일어나며, 암살자는 자신이 수행할 임무의 영광스러움을 한껏 음미했다. 아직도 야누스라는 남자와 그가 지휘하는 조직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놀랍게도 조직은 암살자를 택했다. 용케도 그가 가진 적의와 실력을 알아본 것이다.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 P87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비토리아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설명해 보게. 아버지가 하던 실험에 대해서."
"종교의 힘을 빌려 과학의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셨어요. 과학과 종교가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는 하나의 진실로 가는 방법일 뿐이라는걸 증명하고 싶어 하셨죠." - P89

빅토리아는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제 말의 요지는 아버지가 항상 빅뱅 과정에 하느님이 있다고 믿었다는 거예요. 지금 당장 과학으로 창조의 신성한 순간을 이해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계셨어요." - P93

콜러의 얼굴이 굳어졌다.
"비토리아, 정말 저 안에 실제로 샘플이 들어 있다는 얘기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비토리아는 자랑스럽다는 듯 캔을 바라보았다.
"소장님께서는 지금 세계 최초의 반물질 샘플을 보고 계신 거예요." - P96

오래지 않아 비토리아는 밀려드는 공포와 함께 그 물체를 알아보았다. 쓰레기처럼 바닥에 버려진 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는 그것은 바로 사람의 눈알이었다. 비토리아가 그 연갈색 눈동자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리 없었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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