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낙인들은 일루미나티 연구자 대다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이니, 그 자체로도 매혹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자 안에 있는 다른 뭔가가 랭던을 불안하게 했다. 암살자가 다시 움직일 때 랭던은 또 한 번 상자를 흘긋 보았다. ‘맙소사!‘ 인두들은 바깥에 있는 칸 다섯 개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가운데에도 칸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부분은 비어 있었지만 분명히 하나가 더 있어야 할 자리였다. 가장 큰 정사각형 인두. - P540
"자만심이 지나치군. 너희 둘은 아무것도 아니야. 물론 너희들도 죽는 건 확실하지만, 내가 말하는 최후의 희생자는 정말로 위험한 적이다." 랭던은 암살자의 말을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위험한 적? 하지만 프레페리티는 모두 죽었다. 교황도 이미 죽었다. 일루미나티는 그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 마침내 랭던은 텅 빈 암살자의 눈에서 해답을 찾았다. ‘궁무처장.‘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이야말로 이 위기 상황에서 전 세계에 희망의 등불이 된사람이었다. - P542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근위병들은 다들 세계에 진실을 알리고 언론에 일루미나티 공격의 실제 영상을 제공하기로 한 궁무처장의 과단성 있는 결정이 훌륭한 작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루미나티는 교황청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항상 그래온 것처럼 이번에도 침묵을 지킬 거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카를로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은 쉽지 않은 적수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 P546
그녀는 방금 뭔가를 보았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뭔가를 본 것이다. 비토리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헬리콥터를 가리켰다. 이렇게 멀리서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헬리콥터에서 한 사람이 내렸다. 움직이는 모양이 특이해 그 사람외에 다른 사람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앉아 있는데도 힘들이지 않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갈 수 있는 사람… 전기 왕좌에 앉은 대왕. 막시밀리안 콜러였다. - P550
"아드님의 몸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약으로 도와줄 수 있습니다!" 의사 하나가 꾸짖듯이 말했다. 콜러 부부는 결코 허락하지 앉았다. 그들은 약을 믿지 않았다. 누가 감히 주님의 광대한 계획에 끼어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더 열심히 기도했다. 결국 아들을 주신 것은 주님이다. 그런 주님께서 왜 아이를 데려가신다는 말인가? - P554
콜러가 교황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방 안에는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이 혼자서 꺼져 가는 벽난로 앞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콜러가 들어서는데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콜러 씨, 나를 순교자로 만들어 주러 오셨습니까?" 궁무처장이 말했다. - P556
달려가는 랭던의 머릿속은 만화경처럼 뒤섞인 이미지로 가득했다. 콜러, 야누스, 암살자, 로체… 그리고 여섯 번째 낙인? "아마 들어 봤을 걸? 마지막 낙인이 가장 뛰어나." 암살자가 말했다. 하지만 랭던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떠돌아다니는 음모론 중에도 여섯번째 낙인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실재는 허구든 전무했다. 금괴와 완벽하다는 일루미나티 다이아몬드에 대한 소문은 있었지만 여섯 번째 낙인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 P557
궁무처장은 일종의 외상 후 증후군으로 나타나는 인사불성 상태처럼 악마의 혼이 깃든 듯 갑자기 힘이 넘쳤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에게로 두 팔을 뻗은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에게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했다. "말씀하시옵소서! 네, 들립니다!" 궁무처장이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 P577
궁무처장이 놀란 얼굴로 돌아보았다. "지금 뭘 하는 겁니까!" 그들의 눈이 마주치자 랭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사불성 상태에 오락가락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궁무처장의 눈은 맑은 각오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가슴에 찍힌 낙인이 몹시 아파 보였다. "처장님, 거기 내려가시면 안 됩니다. 피신해야 하니까요." 랭던이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궁무처장은 섬뜩하리만치 멀쩡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 나는 방금 계시를 받았습니다. 나는 .… "처장님!" - P583
랭던은 자신이 등진 불빛과의 간격을 좁혀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장님! 반물질을 그 자리에 두셔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 말을 하면서도 랭던은 스스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궁무처장이 받았다는 신의 계시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인 성 베드로 대성당과 그 안에 든 예술품을 파괴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 P590
궁무처장이 성 베드로 대성당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시간은 11시 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반물질을 무슨 신성한 봉물처럼 들고 바깥세상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나섰다. 궁무처장은 불타는 눈으로 광장의 방송사 스크린에 거인처럼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반라에 부상을 당한 모습이었다. - P598
랭던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궁무처장의 계획을 완건히 오판한 것이다. ‘하늘을 보시오!’ 이제 랭던은 말 그대로 하늘이 목걱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궁무처장은 반물질을 떨어뜨릴 생각이 건혀 없었던 것이다. 그는 반물길을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바티칸에서 가장 멀리 가져가고 싶었던 것뿐이다. 돌아가지 않는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 P604
번쩍 섬광이 일었다. 빛의 점은 스스로를 먹고 자란 것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부풀어 올라 눈부신 흰빛의 반경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빛은 상상도 못할 속도로 어둠을 집어삼켰다. 빛의 원구가 커지며 밝기도 세졌다. 악마처럼 자라나 하늘 전체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빛은 빠른 속도로 아래로 달려 내려왔다. - P606
"저길 봐! 저기!" 당혹감에 휩싸인 모르타티는 뒤를 돌아 모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그들은 일제히 대성당 맨 위층, 옥상 테라스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를 묘사한 거대한 조각상이 군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편에서 두 팔을 뻗은 채 서 있는 사람은…… 카를로 벤트레스카 궁무처장이었다. - P609
로버트 랭던은 낙하산도 메지 않은 채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렸다. 밤하늘이 굴러 떨어지는 그의 몸을 집어삼키는 동안 헬리콥터는 위로 치솟아 올라갔다. 랭던 자신이 자유낙하하는, 귀가 멀 듯한 소음 속에 헬리콥터 날개 소리가 점점 파묻혔다. - P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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