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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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어


누구든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글을 쓴다. 나도 그렇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이나 숙제로 글짓기를 하는 것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활동하던 동호회에 글을 쓰면서 처음엔 난잡했던 글이 그나마 정돈이 되고, 때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 때도 있었다. 글쓰는데 재미가 붙었을 때는 스타일을 여러가지로 바꿔서 써보기도 하고 다른 좋은 글들이 쓰는 방식을 살펴 보기도 하고 따라서 써 보기도 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씩은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보지만 아무래도 내 영역이 아닌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상상으로만 그쳤다. 취미삼아 블로그나 동호회에 쓰는 정도로 글쓰기는 만족하고 살기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왕 쓰는 글이라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저런 유명한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읽어 보고 옳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 노력도 많이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글을 쓰는 원칙같은 것도 정해 놓고 쓰고 있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이 책은 지금까지 읽어 본 적이 없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존 가드너 John Gardner (1933 ~ 1982) 미국의 작가, 소설가, 여러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했다. 대표작은 《그렌델》, 《태양의 대화》

 


유명한 작법 교수의 실질적인 조언


<장편 소설가 되기>는 최대한 대상을 좁혀서 충고를 하고 있는 책이다. '장편 소설가'라는 말에 주의해서 제목을 읽어 보면 넓게는 시나 에세이를 쓰는 좋은 작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좋은 '단편 소설가'가 되는 방법에 대한 충고를 담지도 않았다. 제목부터 저자인 존 가드너의 '장편 소설'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좋은 장편 소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화려하고 개성적인 문체로 천재적인 작가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글이 아니다. 쓰고 고치고, 문장을 깎아내고 또 고치고, 다시 읽어 보고.. 지난한 작업 속에 성실하게 글을 다듬는 작업에 대해서 계속해서 강조한다.


저자는 좋은 작가의 자질 중에 하나로 언어적인 감수성을 예를 들고 중요시한다. 하지만 과한 것은 모자른 것보다 더 좋지 않다고 한다. 표현에 신경을 많이 쓰면 멋진 문장을 만들 수는 있다. 멋진 문장을 썼을 때, 작가로서 큰 만족감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문장 표현에만 너무 경도되어 스스로만 만족할 뿐이지 독자를 방치하는 소설이 많다. 현란하고 멋진 표현은 독자가 소설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작가는 항상 머릿속에 작품을 읽는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부분은 나도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인데, 표현이나 설정은 뛰어난데 반해서 글의 내용이 설득력이 없고 개연성이 없는 소설을 꽤 많다. 거꾸로 소재와 주제를 잘 잡아 놓고 글을 쓰는 솜씨가 모자라서 읽기 싫은 책도 많다. 꼭 소설만 그런 것도 아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건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시작할 때 생각해 보지 않았을 문제들을 짚는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자질에 대해서 책의 상당한 분량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집어들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문학적인' 조언보다 '실제적인' 조언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책의 목차를 보면 1장의 '작가의 기질'에서 소설가의 자질,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서 다음으로는 '창작 훈련과 교육', '출판과 생존', '자신감'같이 소설 내적인 내용보다는 외적인 내용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후 출판은 어떻게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가의 삶을 살야햐 하는지.. 1장이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좋은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속물적인' 조언까지도 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굉장히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는 꿈을 꾸고 있을 테고,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특성상, 좋은 글을 쓰기만 하면 사람들이 알아 보고 책이 팔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실질적인 문제는 고민을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마치 훌륭한 엔지니어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놓고 알아서 팔릴 것이라고 손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상 그렇지 못한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봤다. 제품이 좋은 것과 좋은 제품이 시장에 제대로 안착해서 팔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책도 그렇다. 지금도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구석 서가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멋진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려 지지 않아서 팔리지 않는다. 혹은 인터넷 서점에서 보내온 광고 메일이나 SNS를 통한 광고를 보고 혹해서 책을 사기도 한다. 이 경우 절반 정도는 실패한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책을 사게 했으니 판매 목적으로 보면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글을 쓰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그걸로도 좋다. 하지만 책을 판매해서 독자들이 책을 읽게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일년에 출판되는 책은 수만권이다. 하지만 그 책의 저자 중에서 인세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책은 속물적이면서 세속적인 충고를 한다. 심지어는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설명을 한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꺼려질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충고이다.

 

 


소설가는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인이기도 하다


책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저자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소설가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을 많은 강좌에서 오랫동안 가르쳐 왔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쓰는 산업, 기술적인 측면에 치중해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성실하게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 치중을 많이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소질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장편소설'을 써 본 적이 없으니 잘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단편소설이나 시에 비해서 장편소설은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가 하는 의문은 좀 든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을 정도면 기본적인 자질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설명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미국 사람이 오래 전(미국 출판일이 1983년이다)에 쓴 것도 좀 아쉽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너무 멀이 떨어져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의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무려 35년 전의 글인데 그 때에 비하면 글쓰는 환경이 너무 변했고, 미국과 우리나라는 출판환경도 많이 다를 것 같다. 그 때는 아마 지금과 같은 인터넷 환경이나 온라인 서점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쓸 때도 기껏해야 타이프라이터 정도이지 개인용 컴퓨터와 글쓰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지.


상당히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정말 프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주변에 가끔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현실적인 면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나 단편소설을 출판하려는 작가에게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면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충고를 담고 있다.

 

좋은 글이라고 해서 작가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수많은 화가의 작품이 그들이 죽은 후에 평가를 받았고, 많은 글들이 유고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죽어서 이름을 떨치는 것이 살아 있을 때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


★★★★


모든 취미는 즐기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생활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장편소설가 되기>는 예술가로서 고뇌하는 소설가의 삶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소설가의 삶까지 고민해야 하는 예비작가들에게 적절한 충고를 하고 있다. 예비작가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실제 출판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도 꼭 필요할 것 같다. 책의 제목이 '장편소설 쓰기'가 아닌 <장편소설가 되기>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책을 써서 먹고 살고 싶은 꿈을 가진 작가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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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보는 방법 - 박테리아의 행동부터 경제현상까지 복잡계를 지배하는 핵심 원리 10가지
존 밀러 지음, 정형채.최화정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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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고 또 쪼개고

 

과학이 현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극소수였고 '안다는 것'은 세부적인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것을 의미했다. 그 당시의 지식인을 우리는 고대 철학자라고 부르고, 모든 학문은 철학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는 점점 복잡해졌고, '종합적'이었던 학문은 분화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자연과학이 제일 먼저 분화되었을 것이고, 예술과 사회과학이 분화되었다. 인문학은 철학을 가장 가깝게 계승한 학문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다. 학문이 분화되었다고 해서 학문 사이의 연계성이 완전히 끊어졌던 것은 아니다. 100여년전까지만 해도 지금은 함께 연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수학과 철학을 함께 연구하는 학자가 많았고, 법을 공부하는 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학문 분야는 쪼개지고 또 쪼개져서 갈갈이 찢어져 있다. 하나의 학문도 수많은 분야로 쪼개져 있어서, 학자들은 세분화된 부분은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다른 학문은 알 수가 없고 심지어는 같은 분야라고 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도 많은 지식이 축적이 되고 그것들을 모두 연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학자들이, 더 나가서는 모든 사람들이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너무 작은 부분만을 이해하고 있다. 전체를 보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학문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 다른 분야를 통합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융합과학이라든지 통섭이라는 개념이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까지는 보통은 자연과학에서 설명하는 환원주의 reductionism의 문제점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이다.

 


환원주의는 모든 것을 쪼개서 가장 작은 단위로 만들어 놓고 사회와 사물을 이해하려고 한다. 최소 단위를 완벽하게 이핸다면 그 총합도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자의 성질을 이해하면 모든 사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분을 알아도 전체를 알 수 없다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관의 극단에는 '라플라스의 악마 Laplace's Demon'가 있다. 세상 모든 입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상태를 알고 있는 가상의 존재인 악마가 있다고 가정하면, 이 악마는 미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전에 잔뜩 고무되었던 결정론자들은 모든 것은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서 깨져 버렸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어떤 입자도 정확한 위치와 운동상태를 동시에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라플라스가 생각했던 대전제인 '모든 입자의 위치와 운동상태를 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라플라스의 악마'는 존재할 수 있을까?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전체를 보는 방법>은 복잡계 이론 complex system theory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고, 여전히 라플라스가 틀렸다고 대답한다. 복잡계 이론은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부분을 안다고 해서 전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설명을 해 보면 어떤 물질, 물체, 사회현상 등을 가장 작은 단위로 쪼개서 그 성질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그 단위가 모여서 양이 많아지면(스케일이 커지면), 임계치를 넘어서는 어느 순간 새로운 성질이 창발 emergence되고, 각 단위 요소의 물리적인 합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전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대전제가 틀려서 알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복잡계 이론은 1+1=2일 수 있지만 1+1+1+1+1+1+1+1+1+1=10이 아닐 수 있다고 한다.

 

복잡계는 양이 커짐에 따라서 원래 가지고 있던 요소의 성질과 다른 특성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성질을 창발이라고 한다. 창발이 생기는 순간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단지 규모가 커짐에 따라 어느 순간 발생한다는 것만 추측할 수 있다.


복잡계를 설명하는 10개의 키워드

 

<전체를 보는 방법>은 복잡계 이론에 대한 입문서이다. 복잡계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열 개의 키워드를 골라서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서 설명하고 풍부한 예시로 복잡계 이론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책 속에서 제시하는 열 개의 키워드는 상호작용, 피드백, 이질성, 소음, 분자 지능, 집단 지성, 네트워크, 스케일링, 협력, 자기조직화 임계성이다. 저자는 각 키워드를 설명하면서 단순한 논리연산부터 시작해서 주식시장, 박테리아와 꿀벌, 사회 현상까지 실례를 들어가면서 설명한다. 복잡계 이론이 물리학에서 출발했지만 물리학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현상, 더 나아가서는 모든 모든 학문 영역에서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을 입문서로 생각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복잡계 이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몇가지 개념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복잡계 이론이 무엇인지 설명을 하지 않은 채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려서,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복잡계 이론을 접하는 사람은 이해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알아 두면 좋을 개념은 복잡계, 환원주의, 창발이 어떤 뜻인지 미리 알고 이 책을 읽으면 이 책을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복잡계 이론에 대해서는 나도 처음 읽는 책이라 처음에 몇 가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른 책을 참고해서 이해한 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비효과는 카오스 이론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이다.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까?'라는 질문으로 유명한데 양의 피드백을 가장 극적으로 설명하는 예시이다.


발전하는 중인 학문. 책도 그렇다

 

복잡계 이론은 비교적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기본적인 틀이 완성된 학문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이론 자체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대강 crude (이 책의 원제는 <A Crude Look at the Whole>로 번역하면 '전체를 대충 훑어보기'가 된다.) 살펴보는 학문이기 때문에 이론 체계를 완벽하게 세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히 창발이 발생하는 시점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은데 창발이 시작되는 임계점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복잡계 이론을 연구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면서 한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학문이 아직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지 책도 일관적이지는 않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가장 간단한 현상으로부터 가장 복잡한 현상으로 복잡계를 설명하고는 있는데 과연 열 개의 키워드가 제대로 된 키워드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관적으로 봤을 때, 피드백, 네트워크, 스케일링, 자기조직화 임계성 등은 복잡계를 설명하는 직접적인 키워드가 맞는 것 같지만 다른 키워드들은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연계 키워드라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만델브로트 Mandelbrot 집합. 가장 유명한 프랙탈 도형이다. 프랙탈은 자기유사성을 가진 도형으로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전체의 모습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복잡하다. 왜냐하면 복잡계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개념만 미리 이해하고 들어가면 실례와 함께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사례가 바로 이해되지 않아 수학문제 풀듯이 깊이 생각해서 이해해야 하는 부분도 종종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전혀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복잡계 이론이 많은 학문들, 어떻게 보면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조금씩 안다면 이해를 하는데 굉장히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2장 <복잡계의 3인조> 단원은 너무 어려웠다. 그 부분을 이해하려면 그 안에 제시된 각종 용어와 배경지식을 이해해야 하는데 친절하지 않은 저자가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몇 번 읽어서도 이해하는 걸 포기했다. 나중에 복잡계, 혹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좀더 쌓인 후에 다시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관심가져왔던 분야하고 많이 겹친다. 가장 많이 떠오르는 책은 로버트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인데, 협력이 어떻게 발생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지 이론적으로 밝혀 놓은 책이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진화를 설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도 많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10장 <협력> 부분은 죄수의 딜레마와 팃포탯 Tit For Tat 전략을 다루는 <협력의 진화>를 읽으면 이해하기 편하다. 팃포탯을 설명한 단원인데, 책 한 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한 단원에서 설명을 하려고 하니 처음 보는 사람은 아마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전략을 다루는 '게임이론'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니 <협력의 진화>를 읽던 중에 이 책을 알게 되어서 주문해 놓고 이제야 읽은 것 같다. 지구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설명하는 '가이아 이론'과 초기 입력조건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카오스 이론'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결국 복잡계 이론은 최근 수십년 동안 수행된 수많은 연구성과를 총집결하려는 욕심을 가진 학문인 것 같다.

 


뇌세포 하나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신경망으로 이어진 뇌세포 집단, 즉 뇌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

 


쉽지 않다. 특히 복잡계 이론과 연관이 있는 여러가지 이론에 대해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후반부에 가면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실례를 풍부하게 들어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이론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복잡계 이론이 연구하는 분야와 방법이 어떤지를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된다. 체계를 딱딱 맞춰서 설명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열 개의 키워드를 나열하고 각각의 키워드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통합적인 이론서라기보다는 복잡계 연구자들이 지금까지 해 온 연구를 나열해 놓은 책이다. 하지만 연구자가 아닌 교양 수준에서 복잡계를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복잡계 이론은 모든 학문에 연결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과연 '대충' 이해할 수밖에 없는 학문의 한계를 앞으로 어떻게 넘어설 지가 관건인 것 같다. 특히 창발이 일어나는 순간, 즉 임계점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복잡계 이론의 근본적인 한계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생각을 따라 다녔다. <전체를 보는 방법>은 전체를 보는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는다. 전체를 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어쩌면 '불확정성의 원리' 덕분에 연구하면 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길을 따라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 한 권을 읽는다고 복잡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책을 시작으로 해서 좀더 깊이있게 읽어야 복잡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복잡계에 대해서 '대충'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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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넘 엔드 8
오바 츠쿠미 지음, 오바타 타케시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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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계를 더욱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긴 세월에 걸쳐 모든 노력을 다해 왔다. 하지만 이제 때가 왔다. 신의 자리를 다음 인간에게… 젊은 힘에게 맡길 것이다. 관례대로, 너희 열세 천사가 선택한 열세 명 중에서 다음 신을 정하도록 해라. 선택한 인간이 신이 됐을 때는 천사의 업을 끝내고 그 신의 곁에서 평온한 삶을 보낼 수 있다.

신의 세대교체

일단, 신이 존재한다. 기독교, 이슬람교같은 유대교 계열에서 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인지,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해탈한 부처같은 존재인지, 그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인간과 부대끼며 사는 신인지는 알 수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신이 교체될 때가 왔고, 자신이 선발되었을 때처럼 선택된 열세 명의 인간 중에서 신에 '어울리는' 사람이 차세대 신으로 '뽑히게' 된다. 신의 명령을 받은 열세 마리의 천사는 절망에 의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사람들 중에서 열세 명의 후보를 정한다.


특급 천사인 나세가 선택한 신 후보는 학교의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려고 하던 카케하시 미라이. 일곱 살에 가족을 잃고 이모의 집에 얹혀 살면서 학교에서는 이지메를 당하는 희망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뜻밖에 신이 될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지만 죽으려고 했던 사람에게 그런 의지는 없었다. 하지만 얼떨결에 날개와 빨간 화살, 하얀 화살을 받고 자동적으로 신 후보가 된다. 후보는 되었지만 신이 되려는 의지는 약하다. 단지, 신의 도구를 버리는 순간 자신의 목숨도 끊어지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도구를 버리지는 못한다. 어차피 죽으려고 했었는데, 이제와서 죽는게 두려운 건 이상하다든지 하는 생각은 그냥 잊어버리자.

 


<플래티넘 엔드>에 등장하는 천사는 자살하려던 사람에게 붙어서 그 사람을 신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천사끼리는 사이가 나쁜 것 같지는 않다. 여성형 신과 남성형 신이 있으며, 특급, 1급, 2급으로 나뉜다.


<데스노트>의 설정을 비틀어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관

<데스노트>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이후 <바쿠만>을 함께 만든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다케시 콤비의 신작이다. 신작이라고 하기엔 벌써 8권까지 정식 발매되었으니 꽤 오래된 작품인데, 내가 최근에 만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아서 이런 작품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플래티넘 엔드>는 <데스노트>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바로 알 수 있을만큼 설정이 <데스노트>와 많이 닮았다. 닮긴 했는데 <데스노트>를 묘하게 비틀어 놓았다.

<데스노트>의 사신은 <플래티넘 엔드>에서는 천사로 바뀌었다. 사신은 보통 생각하기에 악한 존재이지만 인간에게 딱히 피해를 입히지 않는 반면, 천사는 선한 존재이지만 인간에게 피해를 입힌다. 둘다 인간은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특정한 조건이 선행되어야 볼 수 있다. 신 후보들은 서로 정확한 정체를 모른다.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되면 생명을 잃을 수 있고, 상대방의 정체를 알면 상대방을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데스노트에 게임의 룰이 있듯이, 신이 되는 게임의 룰도 존재한다. 게다가 그 룰은 빈틈이 있어서 빈틈을 노려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공격을 가할 수 있다. 결국 룰을 숙지하고 그 룰에 따라 전략을 만들어 내야 한다. 사신이든 천사든 그 룰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룰을 해석해 주는 룰 마스터가 존재한다.

 


빨간 화살에 찔린 사람은 화살을 찌른 사람을 33일 동안 사랑하게 된다. 사키는 미라이를 만나자마자 빨간 화살로 미라이를 찔러서 자신에게 거역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미라이는 원래 사키를 짝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33일이 지난 후에도 둘은 동맹을 이어간다. 하얀 화살을 줄 수 없는 1급 이하의 천사들이 선택한 후보들은 다른 후보를 만나자 마자 빨간 화살을 맞춰서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공격수단이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 신 선발전

미라이가 어정쩡하게 지내는 동안 또다른 후보인 개그맨 로드리게스 토마가 빨간 화살의 능력을 이용해 유명 여성 다섯 명과 동시에 연애를 하는 것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 진다. 로드리게스 토마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천사를 보고 후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챈다. 신이고 뭐고 욕망에 충실한 '솔직한' 사람이다. 그런데 매스컴을 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명의 여자와 욕망을 채우던 로드리게스 토마가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토마를 죽인 범인은 후보자와 천사만이 알 수 있는데 그 정체는 메트로폴리맨. 메트로폴리맨은 본심을 숨기고 도시의 범죄자들을 응징하면서 영웅이 되고, 방송에서 후보들만이 알 수 있는 말로 다른 후보들에게 모여서 '대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 대화는 사실은 후보들을 모아 모두 죽이려는 메트로폴리맨의 계략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분명히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신으로 '뽑히게'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신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한 기준점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 기준이 차차 밝혀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그런 기준은 필요가 없었다. 신이 되기 위해서 다른 후보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미친 놈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다른 후보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신을 뽑는 과정이 악마를 뽑는 과정이라고 해도 별반 거부감이 없을 정도이다. 결국 <플래티넘 엔드>의 후보들의 목표는 <데스노트>의 두 주인공처럼 주어진 룰을 최대한 이용하고, 그 빈틈을 찾아내서 적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 적을 죽이는 것이다. <데스노트>는 일대일의 대결이었고, <플래티넘 엔드>는 열세 명의 참가자가 있는 배틀로얄이라는 것이 다른 점일 뿐이다.

 


<플래티넘 엔드>는 여러모로 <데스노트>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특히 작품 속의 초월적 존재인 천사는 사신의 정확히 반대편에 있는 존재이다. <플래티넘 엔드>에서는 선할 것 같은 천사가 아름답지만 굉장히 잔혹하게 묘사되는데, <데스노트>에서 사악할 것 같은 사신은 흉악하게 생겼지만 굉장히 정감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던 점에서 정확하게 대비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과 최고의 작화

전체적으로 <데스노트>와 비슷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데스노트>가 첫 화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이후 데스노트라는 아이템은 일반명사처럼 사용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플래티넘 엔드>에 나오는 하얀화살, 빨간화살, 날개 역시 데스노트만큼이나 이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아이템들이지만 데스노트에 비해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 같다. 아이템의 매력이 좀 떨어지기도 하고 단 하나의 절대적인 존재였던 데스노트에 비해서 세 개나 되어서 아이템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설정 자체는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데스노트>에서도 그렇지만 <플래티넘 엔드>에서도 굉장히 전략적인 수싸움을 치열하게 전개하지만 굉장히 유치한 점이 함께 보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안티히어로의 이름이 '메트로폴리맨'이다. 처음 나왔을 때,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그걸 또 진지한 척 내용을 전개해 나가는 오바 츠구미의 뻔뻔스러움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유아적인 상상력을 당연하다는 듯이 그려내고 그 속에 복잡한 룰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진지하게 목숨까지 걸고 경쟁하는 인물들을 볼 수 있는 언밸런스한 재미가 있다.


오바타 다케시가 그린 작화는 최상이다. <고스트 바둑왕>을 처음 시작할 때 뭉툭했던 선들이 작품 후반부에 굉장히 가늘어 지면서 섬세해 지더니 <데스노트>에서 최고를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플래티넘 엔드>에서는 선은 더 날카롭고 섬세해졌다. 게다가 사신이 아닌 천사를 페이지마다 그려대니 아름다움이 더 극대화되기도 했다. 만화책을 사는 걸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오바타 다케시의 작품은 내용 때문이 아니라 작화 때문에라도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데스노트>는 글을 읽으면서 설정에 맞춰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그림도 자세히 보면서 봤기 때문에 만화책치고는 읽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었는데, <플래티넘 엔드>도 그런 면에서 마찬가지이다.

 


미라이는 '미래'라는 희망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고, 천사도 감탄할 정도로 살인을 하지 않으며, 특급천사가 붙어 있다는 점에서 (주인공이기도 하고..) 신에 가장 가까운 후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점이 있어 보여서 때로는 단호한 결정을 해야 하는 절대자에 딱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이 좋은 것과 그 좋은 사람이 좋은 신이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


※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8권을 끝으로 미라이의 최대의 적이자 안티히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메트로폴리맨이 죽었다. <데스노트>에서 L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메트로폴리맨의 모든 자산은 다른 꼬마에게 넘어갔다. 이제 새로운 경쟁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리고 열세 명의 후보 중에 일곱 명이 죽고 여섯 명만이 남았다. 여섯 명에 붙어 있던 천사 여섯 마리가 한자리에 모여서 회의를 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신 후보가 '절반 밑으로 떨어지면' 남은 후보의 천사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는 것이 상례인 것 같다. 이 회의에서 신을 정하는 새로운 룰이 발표될 것 같다. 결정적으로 단 세 마리밖에 없는 특급 천사 중에 아직 두 마리의 천사만이 등장했다. 세 번째 특급천사가 붙어 있는 새로운 인물이 언제 등장할지도 포인트.


<데스노트>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단, <데스노트>에 비해서 수위가 상당히 높아졌다. 폭력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초반에는 성적인 면도 꽤 나온다. 그런데 전략적인 수싸움도 살펴 보면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좀 머리를 굴리면서 봐야 한다. 만화책 보면서까지 머리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좋아하기 힘들어 보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플래티넘 엔드>와 <데스노트>의 세계관을 합쳐서 작품을 하나 만든다면 굉장히 흥미진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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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헝거게임 개요
- 시기 : 미래의 어느 날, 13개 구역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을 당한지 74년째 되는 해
- 위치 : 판엠 대륙 (구 북미 대륙)
- 주최 : 캐피톨, 대륙의 독재지배 세력
- 선수 : 각 구역에서 추첨으로 선발된 12~18세의 소년·소녀 1명씩, 총 24명
- 방식 : 마지막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사냥하는 배틀 로얄
- 우승자 혜택 : 나머지 인생을 가족과 함께 편히 살 수 있는 부 + 1년간 출신 구역의 식량
- 생존확률 : 1/24

 

 

수잔 콜린스. 1962 ~. 미국의 소설가


판엠, 북미대륙의 디스토피아

아마도 현재로부터 100년 정도 지났을 미래의 이야기이다. 북미 대륙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멸망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판엠 Panem이라는 국가를 만든다. 판엠은 모든 부와 권력이 집중된 캐피톨 지역과 캐피톨의 지배를 받는 1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각구역은 지역 특성에 따라 특산물을 생산해서 캐피톨에 공급하지만 구역의 민중들은 겨우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결국 쌓여있던 불만이 터지고 13개 구역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압도적인 캐피톨의 과학기술과 군사력에 의해서 진압되고, 그 와중에 13구역은 가루가 되어 멸망한다.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후 캐피톨은 피지배자의 반란을 상기시키고 또다른 반란을 막기 위한 기념(본보기)으로 남은 열두 개 구역의 소년·소녀 중에서 남녀 각 한 명씩을 제비로 뽑아 헝거게임을 개최한다. 매해 24명의 아이들은 캐피톨이 만들어 놓은 경기장에서 다른 참가자(조공인)를 모두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은 캐피톨이 12개 구역에 보내는 경고이다. 그리고 올해는 제74회 헝거게임이 열리는 해이다.

 

 

캣니스 에버딘. <헝거게임>의 주인공. 동생을 대신해서 헝거게임에 참가한다. 수렵, 채집 활동에 능하고 완벽에 가까운 활솜씨를 자랑한다.


확률의 배신

헝거게임의 참가자는 제비뽑기로 결정이 되는데, 좀 가슴아픈 룰이 있다. 각 구역의 모든 아이는 열두 살이 되면 추첨함에 제비를 하나 넣고, 이후 한 살씩 먹을 때마다 제비 한 개가 추가된다. 열여덟 살이 되면 아이 한 명당 이름이 적힌 제비 일곱 개가 추첨함에 들어 있다. 그런데 굶주림이 일상인 12구역에서는 제비 한 장을 추첨함에 추가하면 일 년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은 엄마와 동생 프림로즈를 부양하는 소녀가장이었고, 제비를 추가해서 가족을 부양할 수밖에 없었다. 추첨함에는 캣니스의 이름이 적힌 제비가 스무 장 들어 있다. 캣니스의 친구인 게일은 사정이 더 나빠서 마흔두 장이 들어 있다. 프림로즈는 이제 막 열두 살이 되어 이름이 적힌 제비가 딱 한 장뿐이다.


하지만 확률은 확률일 뿐. 수천 장의 제비 중에 뽑힐 확률이라고는 0.1%도 되지 않는 프림로즈의 이름이 뽑히고, 12구역의 헝거게임 대표로 프림로즈가 선발된다. 게임에 참가하자마자 바로 살해당할 것이 분명한 프림로즈를 보낼 수 없었던 캣니스는 동생 대신에 자원을 한다. 남자 대표는 피타 멜라크. 피타는 빵집 아들인데, 캣니스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엄마에게 얻어맞으면서도 무심한 척 캣니스에게 빵을 줘서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준 동네 소년이다. 캣니스는 피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후에 밝혀지지만 피타는 그때부터 캣니스를 좋아하고 있었다. 캣니스와 피타는 헤이미치 애버네시를 멘터(멘토)로 삼고 헝거게임에 참가하기 위해서 캐피톨로 출발한다. 헤이미치는 50주년 기념으로 24명의 두 배나 되는 48명이 참가한 헝거게임에서 우승했지만 지금은 술주정뱅이일 뿐이어서 전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피타 멜라크. 캣니스를 혼자서 짝사랑해 온 12구역 소년. 캣니스와 함께 헝거게임에 참가하게 되어 함께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그림과 은닉술이 뛰어 나고 힘이 세다.


오로지 생존하는 것이 정의

열여섯 살의 소녀와 소년이 주인공이다. 보통 이 나이대의 아이들이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의 성장이 소설의 주요 주제일 수 있는데 <헝거게임>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캣니스와 피타는 소설을 통해서 별다른 성장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캣니스는 12구역에서부터 살기 위해서 평화유지군 몰래 금지된 구역인 울타리 밖에서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살아왔고, 활은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명사수이기 때문에 헝거게임에 최적화되어 있는 인물이다. 피타 역시 빵집에서 익힌 그림 실력을 토대로 한 은신술에 능하며 힘은 모든 참가자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준다. 두 주인공은 백퍼센트 살아 남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완성체로서 헝거게임에 참가하고 있다. 두 명은 헤이미치 이후 우승자를 내지 못한 12구역에서는 꽤 우승 확률이 높은 참가자들이고, 참가하기 전에 이미 완성체이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든지 캣니스는 살아남을 것이 분명한데, 연인이 되어버린 (정확히는 그런 척하는) 피타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시합을 시작하자마다 많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고, 참가자들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참가자를 죽이기 위해서 애쓴다. 캣니스와 피타는 협력을 해서 살아남는다. 중간에 캐피톨은 같은 구역에서 참가한 남녀가 모두 생존하면 두 명을 우승자로 정하여 살아남을 수 있도록 룰을 바꾼다. 캣니스와 피타는 우승하는데 성공하지만 캐피톨은 둘만이 남는 순간, 새로 만든 룰을 폐지하고 단 한 명만이 우승자가 될 수 있다고 룰을 번복한다. 이제 두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우승자가 되기 위해서 상대방을 죽일 수 있을까?

 

판엠의 국기. 판엠은 북미 대륙에 건설된 국가로 12개(이전에 13개) 구역과 하나의 캐피톨로 이루어져 있다.


처절한 경쟁이 펼쳐지는 디스토피아. 그 속에서 보이는 현대인의 자화상

배틀 로얄은 가장 잔혹한 경쟁방식이다. 경쟁에 참가한 모든 사람을 물리친 단 한 사람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헝거게임>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배틀 로얄을 묘사했지만 이게 과연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헝거게임>은 미래를 빌려와서 현재를 묘사한 알레고리 가득한 SF 판타지 소설이다. 나는 소설 속에서 무한경쟁에 내팽겨쳐진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특히 최근의 이슈와 관련하여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는 구직자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었다.


헝거게임의 참가자들은 구직자들로 생각해 보자. 사실 1대 24라면 (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부담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구직자들을 봤을 때 대단한 경쟁률도 아니다. 실제 구직자의 경쟁률은 <헝거게임> 경쟁률의 5~10배는 될테니까. 생존을 위해서 추첨함에 제비를 추가하는 것은 대학생활을 하면서 땡겨서 쓴 학자금대출처럼 느껴진다. 경쟁을 시작하면서 어떤 친구들은 이미 페널티를 얹고 시작한다. 같은 구역의 시민들은 부모님의 모습이다. 어떻게든 자식들이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기를 바란다. 캐피톨에서 이 경기를 구경하는 관람인들은 기득권 세력이다. 흙수저들의 절실함을 즐기며 그 중에 생존한 사람들을 칭송하면서 자신들과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아량을 베푼다. 때로는 흙수저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팬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그 일원이 되는 것은 철저히 차단한다. 기득권에게 참가자들은 그저 구경거리일 뿐이며, 그들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헝거게임>에는 모든 경쟁 상황을 그대로 대입시켜서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플롯이 들어 있다. 읽다 보면 눈쌀이 찌푸릴 정도로 잔혹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더 잔혹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다른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구조가 그대로라면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간접적으로 경쟁자를 죽이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고민을 해 볼 문제인 것 같다.

 

<헝거게임>은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혁명을 기대하며..

<헝거게임>은 3부작 소설이다. 뒤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어떻게든지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캣니스와 피타, 결국은 캐피톨의 억압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열두 개 구역의 민중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사회 구조에 큰 변함이 없다. 하지만 캣니스가 헝거게임의 마지막에서 한 선택이 혁명이 일어날 것 같은 단초를 제공했다. 캣니스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사회를 바꿔나가는지, 아니면 사회를 바꾸는데 실패하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숨어 버리는지 살펴 보는 것도 앞으로 남은 두 권의 책을 읽는 재미가 될 것 같다.

 

판엠의 지도(팬픽). 오른쪽에 탄광이 주업인 12구역, 그 위에 멸망한 13구역이 보인다. 왼쪽 중앙에 스노우 대통령으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서 있는 곳이 캐피톨이다.


★★★★

굉장히 재미있고, 요즘같이 더운 여름에 몰입해서 읽을만한 소설이다. 영화는 못 봤기 때문에 영화를 본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소설의 설정이 흥미롭고 현대의 경쟁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딱히 느슨해 지는 부분이 없어서 작품 내내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다. 의외로 캐피톨의 관리가 허술한 부분이 꽤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통제가 완벽한 사회라고 해도 빈틈이 있기는 마련이니 문제가 되지는 않아 보인다. 번역된 문장도 좋아서 읽을 때 부담이 없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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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1~11 세트 - 전11권 춘추전국이야기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동북아 역사의 출발점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역사를 읽기 시작할까? 나는 어릴 때 그리스 로마신화를 처음 읽고나서부터 각 나라의 신화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각 나라의 신화를 읽다 보니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직도 초등학교 때 처음 그리스신화를 읽고서,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 준 벌로 코카서스 산에 묶여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면서 죽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는 것을 상상하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결국 내가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신화를 읽으면서부터였다. 거창할 것도 별로 없다. 그저 옛날 얘기 읽듯이 역사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사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읽다 보니 처음부터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 단계에서 역사를 여러 문명권별로 나눠서 초기 역사를 보기 시작한 것 같다. 이때 읽기 시작한 것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 중국의 역사였다. (이상하게 인도의 고대사는 크게 관심이 끌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화가 너무 복잡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네 지역의 역사 중에서 아무래도 제일 늦지만 우리나라와 가장 연관이 있는 중국의 역사는 항상 관심의 대상이었고, 귀동냥으로 들은 것도 많았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가장 쉽기도 했다. 중국역사는 항상 관심을 가지고 읽어 왔지만 아무래도 지식은 파편화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춘추전국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한나라 이전 중국고대사를 총정리할 수 있는 책이었다.

 


공원국. 서울대 동양사학과 및 국제대학원에서 중국지역학을 전공. 현재 중국 푸단 대학에서 인류학 공부중.


자세하고 또 자세하다


저자인 공원국은 중국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학자이며, 지금도 중국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춘추전국이야기>는 정통 중국역사학자가 쓴 책답게 굉장히 자세하다. 물론 <사기>나 <후한서>, 또는 역사서라고 하긴 좀 거리가 있는 <동주열국지>같은 당시의 사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같이 원서를 접할 수 없는 아마츄어 역사 애호가가 접할 수 있는 책 중에서는 아마도 분량이 가장 많으면서도 가장 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무려 11권 한 세트가 최근에 완간되었다. 처음 다섯 권은 삼황오제로부터 춘추시대까지, 6권은 당시의 사상가들을 대화 형식으로 설명한 해설서, 7권에서 11권은 전국시대에서 진, 한 제국의 성립까지 다루고 있다. 따라서 열한 권을 모두 읽으면 중국의 고대사의 중요인물과 사건을 조망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관중, ? ~ BC. 645 이름은 이오이며 중은 자이다. 춘추오패의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제환공 시대 명재상이며, 관포지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춘추전국이야기>는 춘추시대의 질서를 확립한 사람으로 관중을 꼽고 있다.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노력과 굳이 숨기지 않는 관점


저자는 엄청난 공부벌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춘추전국이야기>에서 인용한 책은 상당히 많은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책들 외에도 가장 최근에 발굴되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죽간까지 책 속에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최근의 발굴성과에 의해서 <사기>에 기재되어 있는 역사를 바로잡기도 한다. 그만큼 최대한 정확한 역사를 재현해 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쏟았다. 역사라는게 어차피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정도로 철저하게 당시 상황을 기술하지 않는 한 정확한 사건의 전후를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역사책이 수십년에서 수백년이 지난 후에 당시의 자료(라고 추정되는 자료)나 구전을 통해서 내려오는 내용들을 토대로 해서 씌이기 때문에 더욱 실제 역사를 알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그렇게 적었다고 하더라도 편집을 거쳐 정본이 나오는 사이에 편집 책임자의 의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왜곡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역사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당시 상황에 비추어서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텐데, 그 점에서 저자는 책을 쓰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 책이 모두 열한 권이나 되고 페이지로 따지면 4,000페이지가 넘지만 중국의 고대사를 모두 기술하기에는 당연히 부족하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에 따라 인물, 사건이 선택되고 있다. 이 때 저자는 딱히 자신의 관점을 숨기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취사선택의 이유를 밝힌다. 예를 들면 전국시대 초기 가장 스펙타클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손빈과 방연에 대한 내용은 굉장히 건조하게 몇가지 중요한 사건만 언급하고 넘어간다. (개인적으로는 좀 많이 아쉬웠다.) 대신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인물이 부각되는 경우도 있고, 부정적이었던 인물을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역사는 기술하는 사람의 철학이 깃들 수밖에 없으므로 크게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비판적으로 보기엔 많은 자료를 제시하면서 충분한 근거를 대기 때문이다. 공부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함부로 토를 다는게 아니다.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 BC ? ~ 195. <춘추전국이야기>는 유방의 한나라 건국으로 마무리된다.


이야기 책이 아니다.


<춘추전국이야기>를 읽을 때, 이 책을 원래부터 소설인 <삼국지>나 <열국지>, 소설로 많이 씌여진 <초한지>같은 책을 기대하면 좀 읽기 힘들다. 이 책은 본격적인 역사책이고, 저자는 각 권마다 머릿말에서 해당 권의 역사를 다루는 방향이 설명했고, 마지막 권에는 당시 시대에 대한 평가를 기술해 놓았다. 역사에 있었던 얘기를 많이 적어 놓으면서, 고전 사서를 인용한 부분도 많고,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자 나름대로 논증도 해 놓았다. 그러니까 일반 아마츄어가 읽기에는 좀 어려운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도 읽으면서 이해는 했지만 몇 장 읽고 나면 앞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대략 뜻만 이해하고 잊어버리는 식으로 열한 권을 읽었다. 정독이라고는 할 수 없고,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전체 역사를 훑어 보면서 끼워 맞추고 모르고 있던 사이사이의 지식을 이해하면서 읽었으니 완전히 책을 소화해냈다고 볼 수는 없다. 20%나 제대로 읽은 건지 잘 모를 정도다.

 


춘추시대의 지도. 진 晉은 아직 조, 위, 한으로 갈라지지 않았고, 진 秦도 전국시대같은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없다.초가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해서 남쪽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고, 오와 월은 춘추시대 후반기에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하다 전국시대로 진입하기 전에 멸망해 버린다. 전통의 강자 제는 풍요로운 땅 산동을 차지하고 있고, 전국칠웅 중에 가장 약했던 연은 한반도와 맞붙어 있다.


★★★★☆


한 번 읽고 치워 둘 책이 아니다. 역사에 관한 책은 앞으로도 많이 읽게 될 것 같은데, <춘추전국이야기>는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나라 이전 시대 역사에 대한 길잡이는 충분히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기본으로 삼아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살을 붙여 나가면 중국의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는 앞으로 교과서와 같은 책이 될 것 같다.


전체 열한 권의 책 중에서 6권과 11권은 책을 쓴 방향이 좀 다르다. 6권은 춘추전국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인 제자백가, 그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강했던 맹자, 한비자, 묵자, 순자, 장자의 사상을 대화식으로 조망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좀 불만스럽다. 머리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시의 다양한 제자백가 사상의 계통을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11권은 6권을 제외한 10권까지와는 다르게 진 멸망 후 항우와 유방의 투쟁을 이야기 식으로 썼다. 요약한 <초한지>를 보는 느낌이다. 좋게 평가하자면 앞부분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었고, 나쁘게 평가하자면 11권의 대단원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서 좀 급하게 쓴 것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11권은 이전권에서는 그다지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었던 오타가 좀 많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책이고, 열한 권의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뿌듯함과 함께 성취감도 든다. 세트로 살 때 함께 따라오는 <춘추전국이야기 길라잡이>는 책 속의 인물과 지도 중 중요한 것들을 담아 놓았지만 개별 책에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는 들춰볼 일이 없었는데, 다른 증정품인 춘추전국시대 지도는 책을 읽으면서 보면 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봤던 춘추전국시대 지도중에 가장 보기에 편했다.


엄청난 작업을 완료한 공원국 저자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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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12-13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산만했던 춘추전국시대에 대한 지식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어요. 위진남북조도 이렇게 정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