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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가 되기
존 가드너 지음, 임선근 옮김, 레이먼드 카버 서문 / 걷는책 / 2018년 8월
평점 :

글을 잘 쓰고 싶어
누구든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글을 쓴다. 나도 그렇다. 처음에는 학교 수업이나 숙제로 글짓기를 하는 것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데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온라인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활동하던 동호회에 글을 쓰면서 처음엔 난잡했던 글이 그나마 정돈이 되고, 때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 때도 있었다. 글쓰는데 재미가 붙었을 때는 스타일을 여러가지로 바꿔서 써보기도 하고 다른 좋은 글들이 쓰는 방식을 살펴 보기도 하고 따라서 써 보기도 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씩은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상상도 해 보지만 아무래도 내 영역이 아닌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상상으로만 그쳤다. 취미삼아 블로그나 동호회에 쓰는 정도로 글쓰기는 만족하고 살기로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이왕 쓰는 글이라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저런 유명한 글쓰기에 관한 책도 많이 읽어 보고 옳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 노력도 많이 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글을 쓰는 원칙같은 것도 정해 놓고 쓰고 있다.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이 책은 지금까지 읽어 본 적이 없는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존 가드너 John Gardner (1933 ~ 1982) 미국의 작가, 소설가, 여러 대학에서 소설 창작을 강의했다. 대표작은 《그렌델》, 《태양의 대화》
유명한 작법 교수의 실질적인 조언
<장편 소설가 되기>는 최대한 대상을 좁혀서 충고를 하고 있는 책이다. '장편 소설가'라는 말에 주의해서 제목을 읽어 보면 넓게는 시나 에세이를 쓰는 좋은 작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좋은 '단편 소설가'가 되는 방법에 대한 충고를 담지도 않았다. 제목부터 저자인 존 가드너의 '장편 소설'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좋은 장편 소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화려하고 개성적인 문체로 천재적인 작가가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글이 아니다. 쓰고 고치고, 문장을 깎아내고 또 고치고, 다시 읽어 보고.. 지난한 작업 속에 성실하게 글을 다듬는 작업에 대해서 계속해서 강조한다.
저자는 좋은 작가의 자질 중에 하나로 언어적인 감수성을 예를 들고 중요시한다. 하지만 과한 것은 모자른 것보다 더 좋지 않다고 한다. 표현에 신경을 많이 쓰면 멋진 문장을 만들 수는 있다. 멋진 문장을 썼을 때, 작가로서 큰 만족감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문장 표현에만 너무 경도되어 스스로만 만족할 뿐이지 독자를 방치하는 소설이 많다. 현란하고 멋진 표현은 독자가 소설 속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 작가는 항상 머릿속에 작품을 읽는 독자를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부분은 나도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인데, 표현이나 설정은 뛰어난데 반해서 글의 내용이 설득력이 없고 개연성이 없는 소설을 꽤 많다. 거꾸로 소재와 주제를 잘 잡아 놓고 글을 쓰는 솜씨가 모자라서 읽기 싫은 책도 많다. 꼭 소설만 그런 것도 아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건 글을 잘 쓰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시작할 때 생각해 보지 않았을 문제들을 짚는다
저자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자질에 대해서 책의 상당한 분량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집어들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문학적인' 조언보다 '실제적인' 조언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책의 목차를 보면 1장의 '작가의 기질'에서 소설가의 자질,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나서 다음으로는 '창작 훈련과 교육', '출판과 생존', '자신감'같이 소설 내적인 내용보다는 외적인 내용에 대해서 많이 다루고 있다.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이후 출판은 어떻게 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가의 삶을 살야햐 하는지.. 1장이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좋은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서 쓰고 있다. 그것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속물적인' 조언까지도 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의 굉장히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책을 쓰는 꿈을 꾸고 있을 테고, 좋은 책을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특성상, 좋은 글을 쓰기만 하면 사람들이 알아 보고 책이 팔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실질적인 문제는 고민을 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마치 훌륭한 엔지니어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놓고 알아서 팔릴 것이라고 손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나는 직업상 그렇지 못한 경우를 너무나도 많이 봤다. 제품이 좋은 것과 좋은 제품이 시장에 제대로 안착해서 팔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책도 그렇다. 지금도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리다 보면 구석 서가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멋진 책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말 좋은 책이다. 하지만 제대로 알려 지지 않아서 팔리지 않는다. 혹은 인터넷 서점에서 보내온 광고 메일이나 SNS를 통한 광고를 보고 혹해서 책을 사기도 한다. 이 경우 절반 정도는 실패한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책을 사게 했으니 판매 목적으로 보면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글을 쓰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그걸로도 좋다. 하지만 책을 판매해서 독자들이 책을 읽게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일년에 출판되는 책은 수만권이다. 하지만 그 책의 저자 중에서 인세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 책은 속물적이면서 세속적인 충고를 한다. 심지어는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설명을 한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꺼려질 수도 있지만 꼭 필요한 충고이다.

소설가는 예술가이기도 하지만 생활인이기도 하다
책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다. 저자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소설가이면서 소설가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을 많은 강좌에서 오랫동안 가르쳐 왔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쓰는 산업, 기술적인 측면에 치중해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성실하게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 치중을 많이 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소질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장편소설'을 써 본 적이 없으니 잘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단편소설이나 시에 비해서 장편소설은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하지만 꼭 그런가 하는 의문은 좀 든다. 어쩌면 이 책을 읽을 정도면 기본적인 자질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 설명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미국 사람이 오래 전(미국 출판일이 1983년이다)에 쓴 것도 좀 아쉽다.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너무 멀이 떨어져 있어서 현재 우리나라의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무려 35년 전의 글인데 그 때에 비하면 글쓰는 환경이 너무 변했고, 미국과 우리나라는 출판환경도 많이 다를 것 같다. 그 때는 아마 지금과 같은 인터넷 환경이나 온라인 서점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쓸 때도 기껏해야 타이프라이터 정도이지 개인용 컴퓨터와 글쓰는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지.
상당히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정말 프로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인 것 같다. 주변에 가끔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현실적인 면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나 단편소설을 출판하려는 작가에게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면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충고를 담고 있다.

좋은 글이라고 해서 작가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수많은 화가의 작품이 그들이 죽은 후에 평가를 받았고, 많은 글들이 유고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죽어서 이름을 떨치는 것이 살아 있을 때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
★★★★
모든 취미는 즐기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취미가 직업이 되는 순간 생활과 직결이 되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장편소설가 되기>는 예술가로서 고뇌하는 소설가의 삶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소설가의 삶까지 고민해야 하는 예비작가들에게 적절한 충고를 하고 있다. 예비작가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실제 출판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도 꼭 필요할 것 같다. 책의 제목이 '장편소설 쓰기'가 아닌 <장편소설가 되기>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책을 써서 먹고 살고 싶은 꿈을 가진 작가들에게 추천한다.